신을 죽이러 갑니다. 293화
무료소설 신을 죽이러 갑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0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293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293화
마르케디악 (11)
“이거 이번에는 내 예상이 맞아버렸군.”
콜로시가 승자의 포효를 질러대는 자고라카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좋냐? 그래, 나도 좋다. 그깟 돈 너 다 가져라. 대신 난 오늘 밤에도 강한 마족의 영혼을 흡수할 테니까.’
자고라카가 승리해서 덕분에 무혁은 콜로시와의 내기에서 3만 마르크라는 제법 큰돈을 잃게 되었지만, 역시나 마족들의 돈 따위엔 관심이 없었기에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자고라카를 상대로 예상외의 팽팽한 싸움으로 경기장에 후끈- 불을 지폈던 마족의 영혼을 흡수할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자꾸만 자리를 잡으려는 걸 억지로 붙들어야만 했다.
“큼, 오늘은 내가 한 잔 살게, 지크.”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다보니 큭- 거리며 무혁이 낮은 침음성을 흘렸는데, 그게 콜로시에게는 돈을 잃은 불쾌함의 신호로 느껴졌는지 달래듯 술을 사겠다고 말을 했다.
“그러지.”
무혁은 애써 무겁게 말을 내뱉고는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자고라카를 바라봤다.
도전권 쟁탈전도 어느덧 종착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방금 경기를 끝으로 이제 그 많았던 도전자들 중 남은 마족은 고작 다섯 명이 전부였다.
많은 마족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이번 도전권 쟁탈전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탑4인 수르피, 쿠다스, 그리고 방금 자고라카까지 세 명은 준결승까지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앙할카스는…….
“나온다!”
콜로시의 외침처럼 자고라카의 경기로 인해 엉망이 되었던 경기장이 복구되기가 무섭게 오늘의 마지막 경기를 치르기 위해 앙할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혁은 앙할카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미 몇 번이나 봤지만, 볼 때마다 참 독특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마족이었다.
‘마족 주제에 순백의 마법사라니…….’
새하얀 백발, 그리고 나는 인자하다- 라고 어필을 하듯이 보기 좋게 주름진 노안과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순백의 로브까지.
이마 한 가운데 툭- 튀어나와 있는 뿔만 아니라면, 정말 태생이 마족이 맞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나무로 만든 길쭉한 지팡이까지 탁탁- 짚으며 걷는 모양새마저도 볼 때마다 정말 마족이라는 생각을 순간 깜빡 잊게 만들었다.
그런 앙할카스의 상대는.
“베게로! 베게로! 베게로!”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는 앙할카스를 위협적으로 내려다 볼 정도의 큼지막한 체구에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근육을 자랑하는 베게로였다.
“이번 경기는 보나 마나겠군.”
콜로시는 해답이 뻔히 보이는 아주 풀기 쉬운 문제를 앞에 둔 것처럼 낄낄- 거렸다.
“내기 할까?”
무혁의 물음에 콜로시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내기를 하자고? 설마 앙할카스에게 돈을 걸려고?”
누가 봐도 뻔히 보이는 승패였기에 콜로시는 무혁의 의도를 못마땅하게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뻔뻔한 내기는 까맣게 잊은 것처럼.
“아니, 난 베게로에게 걸지. 15만 마르크. 어때?”
15만 마르크를 내기로 베게로에게 승리를 걸겠다는 무혁의 모습에 콜로시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베게로에게 걸겠다고? 그것도 15만 마르크를?”
“그래.”
무혁의 너무나도 침착한 모습에 콜로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길게 생각할 것 없다는 듯 콜로시가 고개를 저었다.
“지난 3일 동안 지크, 자네가 잃은 돈이 얼마였지? 딱 15만 마르크군. 나도 이제는 양심이 있지! 더 이상은 자네의 돈을 딸 수가 없어! 그리고 이번 경기는 보나마나한 결과야. 지금까지 베게로가 예상외의 실력으로 여기까지 올라왔지만, 이번 상대는 아주 불운하다고! 아니, 천적이지! 지크, 자네가 지난 3일 동안 내게 돈을 잃어서 분한 마음에 그걸 한 방에 만회하겠다고 이러나본데. 알면서도 그걸 모르는 척 받아들여 자네의 돈을 더 가져갈 순 없어. 그러니까 이번에는 서로 마음 불편하지 않도록 둘의 싸움을 즐기기만 하자고.”
자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는 듯 콜로시가 그렇게 주절거렸지만, 무혁은 피식- 웃음 밖에 나오질 않았다.
콜로시는 아마도 지금 머릿속에 작은 불안감이 싹을 틔웠을 것이다.
분명 이성적으로는 앙할카스가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무혁이 갑작스럽게 베게로에게 15만 마르크라는 큰돈을 걸겠다니 마음이 불안해졌을 거다.
왜?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무혁에게 몇 번이나 당했으니까!
뜬금없는 경기에서 무혁이 어처구니없는 마족에게 큰돈을 걸어서 콜로시를 물 먹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콜로시로서는 또 다시 그때의 악몽이 머릿속에서 떠올랐을 것이다.
‘앙할카스가 절대로 질 일은 없겠지만… 악취미야!’
콜로시는 무혁이 지독한 악취미를 지녔다고 생각하고 있다.
승패를 알면서도 줄곧 돈을 잃어주다가 한 방에 그 모든 것을 만회해버리는 악취미!
콜로시는 그런 무혁에게 더 이상은 농락을 당할 수 없었다.
‘15만 마르크가 아쉽기는 하지만…….’
안 된다. 이렇게 무혁의 수작질에 걸려들었다가 후회를 몇 번이나 했는데, 또?
콜로시는 고개를 재차 흔들며 무혁의 마수에서 황급히 벗어났다.
경기장의 분위기는 콜로시의 예상대로 앙할카스에게 절대적으로 우세했다.
베게로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강력한 전투의 흔적들은 아쉽게도 천적이나 다름없는 앙할카스를 만남으로 인해서 그 빛이 바래진 상황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마족들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베게로의 이름을 연호하며 그를 응원했다.
“베게로! 시작과 동시에 달려들어서 앙할카스의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는 거야!”
“버텨!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것처럼 끝까지 버텨서 승리를 쟁취해라!”
베게로를 응원하는 목소리에 대다수의 마족들이 비웃음을 지었다.
“앙할카스! 베게로의 사지를 모조리 터트려 버려라!”
“베게로가 믿는 건 탄탄한 몸뚱이가 전부라고! 앙할카스, 이번 기회에 그 몸뚱이가 얼마나 허약한지 보여주라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앙할카스의 응원에 무혁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앙할카스는 보이는 그대로 마력 스킬에 능통한 전투로 강력한 한 방, 아니 수십 방을 가졌으니까. 그렇기에 제 아무리 베게로의 방어가 단단하다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상대들과는 차원이 다른 앙할카스의 공격을 끝까지 버티기엔 역부족이었다.
‘분명 베게로에게 불리한 싸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패는 까봐야 아는 거지.’
무혁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앙할카스와 베게로의 싸움이 시작됐다.
처음부터 앙할카스는 강력한 마력 스킬들을 쏟아냈다.
베게로의 장점이 무엇인지 잘 알기에 단순한 기선 제압이 아닌, 초장에 완전히 박살을 내버리겠다는 의지였다.
어지간한 나무통보다도 굵은 검은 벼락이 베게로의 몸에 내리꽂혔고, 좌우에서 달려든 검은 폭풍이 베게로의 몸을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했다.
확실히 이전에 베게로가 상대했던 마족들과는 차원이 다른 공격이었다.
쾅! 쾅! 콰자자자작!
쉬지 않고 몰아치는 앙할카스의 공격을 베게로는 이전 싸움들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묵묵하게 버텨냈다.
온 몸에 힘줄이 터질 듯 튀어나오고, 살갗이 찢어지고, 피부가 벗겨지다 못해 허연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어가면서도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할카스는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아주 침착하고도 냉정하게 베게로와의 거리를 철저하게 유지하며 공격을 퍼부었다.
“역시 앙할카스로군!”
콜로시는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마족들보다도 강력한 공격을 연달아 펼치는 앙할카스의 위용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새하얀 백발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정반대로 지독할 정도의 검은 마기를 온 몸으로 발산하는 앙할카스의 모습은 확실히 섬뜩할 정도였다.
“아무리 베게로라도 이건 얼마 버티지 못하겠지, 안 그래?”
확실히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면 콜로시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베게로는 앙할카스의 머리카락 한 올을 건드리지 못했으니까.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처음 대결 시작했을 때의 거리조차 단 한 걸음도 좁히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폭격을 당하고 있었다.
더불어 그토록 단단하게만 보였던 베게로의 몸도 엉망진창으로 상처를 입어가고 있었으니 누가 봐도 앙할카스가 우세하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베게로의 장점은 이제부터 발휘된다.’
무혁의 생각처럼 베게로가 자신을 폭격하듯 쏟아지는 앙할카스의 공격 속에서도 우직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점이 뜯겨져 나가고, 붉은 피를 울컥- 토하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게 걸으면서도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앙할카스를 향해 천천히 전진했다.
연속으로 쏟아 붓는 공격 속에서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베게로의 모습에 앙할카스가 더욱더 사납게 몰아붙였다.
그러면서도 빠른 속도로 베게로와의 거리를 벌리는 모습은 확실히 원거리 전투의 노련함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베게로의 방어와 체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상대를 잘 못 골랐어. 차라리 근접전을 벌이는 쿠다스나 자고라카가 상대였다면 모를까… 앙할카스는 베게로에게 역시 천적이야! 이런 경기에 내기라니…….”
콜로시는 앙할카스가 무조건 베게로를 이길 것이라는 듯 그렇게 단언하며 내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살짝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말 이게 끝이라고?’
후드 속에 가려진 무혁의 얼굴이 의심스러움으로 물들어갈 때였다.
“으아아아아압-!”
미련할 정도로 앙할카스의 공격을 받으며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계속 좁히며 걸음을 내딛던 베게로가 돌연 고함을 내지르며 두 주먹을 머리까지 들어 올렸다가 바닥을 내리쳤다.
콰- 앙!
거대한 굉음은 물론, 경기장 전체가 들썩- 거릴 정도의 충격파와 함께 경기장 바닥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균열이 간 경기장 바닥에서 앙할카스는 순간적으로 비틀- 거리며 균형을 잃었다.
동시에 쉬지 않고 퍼부어지던 공격들도 아주 잠깐이지만 멈칫- 거렸다.
그리고 그 잠깐의 틈을 베게로는 놓치지 않았다.
베게로는 우선 갈라진 바닥의 조각들을 두 발로 걷어차고, 양손으로 빠르게 집어 던졌다.
큼지막한 바닥 조각들이 앙할카스를 향해 미사일마냥 날아갔다.
앙할카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방어를 했다.
무혁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앙할카스로서는 피해를 입더라도 베게로의 발을 붙잡았어야 했다.
바닥 조각들을 막겠다고 공격에서 방어로 전환을 하는 순간, 베게로는 연신 바닥 조각들을 날려보내며 빠른 속도로 앙할카스와의 거리를 좁혀나가고 있었으니까.
“저런 조잡한 공격으로 뭘…….”
화려하고도 강력했던 앙할카스의 공격들과 비교하며 콜로시가 베게로의 공격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하긴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만큼 둘의 공격은 수준 차이가 컸으니까.
하지만, 베게로가 노리는 것이 고작 그것일까?
앙할카스가 자신을 노리고 날아오는 바닥 조각들을 일일이 방어하는 동안 어느새 베게로가 코앞으로까지 다가와 있었다.
‘자, 여기서 하나 더 보여주면…….’
무혁의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반짝- 거렸다.
베게로의 장점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막강한 방어력과 체력이지만, 무혁은 그가 도전권 쟁탈전에 참가한 만큼 날카로운 발톱 하나 정도는 충분히 감추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더욱이 앙할카스와 같은 유명한 탑4가 보란 듯이 자신의 천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이 싸움에 목숨을 걸었다는 건, 베게로에게도 대비책이 있을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만약 없다면?
‘튼튼한 몸 하나만 믿고 대책 없이 달려든 바보겠지만.’
지금까지는 분명 그랬다.
다만, 그 튼튼한 몸이 너무나도 튼튼하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
즉,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베게로가 숨기고 있던 발톱을 끄집어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앙할카스는 다르다.
숨기고 있는 발톱이 있다면 반드시, 무조건 드러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무혁의 예측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앙할카스의 몸을 뒤덮어버리는 베게로의 새카만 마기.
그것은 마치 끊어지지 않는 쇠사슬처럼 앙할카스의 온 몸을 칭칭- 감아버렸다.
앙할카스가 깜짝- 놀라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베게로는 늦었다는 듯 자신의 가슴 어림밖에 오지 않는 그의 정수리를 정확하게 이마로 들이 받았다.
콰작-!
“크아아아악!”
앙할카스의 뾰족한 비명을 들으며 무혁은 생각했다.
“끝났군.”
온 몸이 상처를 입은 베게로였지만,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흉폭한 한 마리의 맹수가 되어 있었고, 그의 발톱 아래 짓눌린 앙할카스는 그제 곧 온 몸이 피떡이 되어서 죽고 말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콜로시가 떨리는 음성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결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결과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으니 그 충격은 더욱더 컸다.
절대적인 우세라고 여겼던 경기가 오히려 그 반대가 될 줄이야!
떨리는 눈동자로 베게로에게 속절없이 얻어터지고 있는 앙할카스의 모습을 지켜보던 콜로시가 자신의 곁에 앉아 있는 무혁을 돌아봤다.
“도, 도대체 지크, 자네는 어, 어떻게 이런 결과를 예상했던 거지? 아, 아니! 베게로에게 저런 능력이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건가? 그렇지? 내 말이 맞는 거지?”
“나도 몰랐어.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지.”
“…거짓말.”
절대 믿을 수 없다는 듯 콜로시가 불신에 찬 눈으로 무혁을 노려봤다.
콜로시가 어떤 눈으로 자신을 보든 무혁은 경기장에서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앙할카스를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드디어 탑4의 영혼을 흡수하는 건가?’
이번 도전권 쟁탈전의 탑4로 불리며, 강력한 마력 스킬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앙할카스였기에 무혁은 벌써부터 그의 영혼을 흡수할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