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29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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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291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291화
마르케디악 (9)
이제 새로운 해가 열흘 밖에 남지 않았다.
헬-라시온에 인간들이 살기 시작한 이래 이번 년도처럼 충격적인 해가 또 있었을까?
인간들을 헬-라시온으로 제 멋대로 끌고 왔던 마족들이 수십 명이나 죽었으니 이 충격적인 사실은 그 어떠한 일과도 비교가 될 수 없었다.
헬-라시온 15년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작년부터 헬-라시온을 휘젓기 시작했던 킬 라시온이 이번 일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처음에는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킬 라시온 멤버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마족을 죽인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게 왜 말이 안 돼? 커스틸 강제 사냥에서도 차무혁이 마족을 죽였다잖아!”
“당시 마족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고 하던데?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 정상적인 마족이었다면 고작 인간에게 죽을 일이 있겠어?”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마족이라고 불멸의 존재는 아니잖아.”
“하! 그렇다고 마족을 죽여? 인간이? 그렇게 쉽게 인간에게 죽을 마족들이었다면 이미 진즉에 죽었겠지! 차무혁만 특별해서 마족을 죽일 수 있었겠어? 막말로 차무혁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하이 랭커 수십 명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마족은 아마 눈도 깜짝하지 않고 전부다 썰어 버릴 수 있을 걸?”
“…아니, 뭐 나도 믿기지는 않지만, 소문이 그렇게 나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
“헛소문이야! 괜히 킬 라시온의 이름값을 높이려는 수작이라고!”
“그런데 이름값을 높이겠다고 마족을 죽였다는 소문을 퍼트리는 게 정상일까?”
“그건 또 그렇네. 아! 킬 라시온을 무너트리려는 놈들의 작전이네! 생각을 해봐. 그렇지 않아도 마족들 분위기가 흉흉한데, 말만 잘 못 걸어도 죽일 것처럼 날이 바짝! 서 있잖아. 이런 분위기에서 킬 라시온이 마족들을 죽였다는 소문을 내면 마족들이 가만히 있겠어?”
“절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그래! 그거네! 킬 라시온의 적대적 세력이 퍼트린 거짓 소문! 킬 라시온을 무너트리기 위한 계략! 어때? 그림이 딱딱! 맞는 거 같지?”
“하긴, 요즘 킬 라시온 멤버들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긴 하던데… 사실은 미개척지 탐사를 떠난 것이 아니라 벌써 마족들에게 다 죽은 건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이처럼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달고서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소문은 어느새 확신으로 변해갔다.
킬 라시온이 마족에게 모두 죽임을 당했다!
지난 5월 도시 길드들을 박살내고 나서 그 종적을 감춰버린 킬 라시온은 벌써 해가 다 지나가도록 단 한 명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으니 소문은 더욱더 사실처럼 굳어만 갔다.
그러한 허무맹랑한 사실이 헬-라시온에 떠돌고 있는 사이, 정작 소문의 주인공들은 마수의 대지를 열심히 뒤지는 중이었다.
“정말 이쪽이 맞는 거야?”
“서북쪽이라고 했으니까 맞아요.”
“그러니까 그 서북쪽 어디? 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막연하게 서북쪽이라는 말만 듣고 이렇게 움직이는 건 솔직히 비상식적인 행동 아니야?”
레오가 이건 정말 무식한 짓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혁이가 특별히 부탁한 일이니까 조금만 더 찾아봐요.”
르케임이 달래듯이 그렇게 말을 하자 레오가 입맛을 쩝쩝- 다셨다.
“진짜 무혁이 부탁만 아니면…….”
당장 때려 쳤었다는 듯이 레오가 투덜거리고는, 보이는 것이라고는 삭막한 모래벌판 밖에 없는 지평선 너머를 눈알이 빠져라 노려봤다.
“차라리 이럴 줄 알았으면 개미굴로 갔을 텐데!”
“개미굴보다는 그래도 여기가 낫죠. 그 컴컴한 곳에서 끝도 없이 밀려드는 마수들과 싸우는 건… 으으.”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는 듯 르케임이 양팔을 비벼댔다.
“차라리 정신없이 싸우는 게 낫지. 이게 뭐야? 아무것도 없는 사막을 정처 없이 뒤지고 다니는 게 뭐가 좋아? 엘리엇 누님이랑 바꾸는 거였는데!”
젠장, 젠장- 소리를 연신 내뱉는 레오였다.
르케임으로서도 레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크기가 보통 큰 것도 아니고 무지막지하게 큰 마수의 대지 서북쪽을 뒤져달라는 무혁의 부탁은 확실히 너무나도 막막하기만 한 일이었다.
‘마수의 대지 서북쪽 어딘가에 커다란 모래 무덤이 있다고 해요. 거길 찾아줘요.’
뜬금없이 무혁이 그렇게 부탁을 해왔다.
마르케디악에서 매일 밤마다 마족의 시체를 대량으로 가져오는 무혁이었기에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수만 명이 살고 있는 마족의 도시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무혁을 생각하면 이까짓 수고스러움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커다란 모래 무덤이라고 했다. 당연히 아주 먼 거리에서도 충분히 보일 것이 분명했다.
물론, 너무나도 광활한 마수의 대지를 생각하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일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혁이가 한 부탁이었기에 반드시 찾아내겠다고 큰 소리를 쳤었다.
그런데 현실은.
“깝깝하네.”
르케임은 레오와 함께 벌써 7일째 밤낮으로 마수의 대지 서북쪽을 뒤지고 다니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모래 무덤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그냥 우리 찢어질까?”
레오의 말에 르케임이 괜한 소리 말라는 듯 타박을 했다.
“어떻게 다시 만나려고요?”
“그거야… 젠장!”
방법이 없다.
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따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며, 위치 추적 스킬은 포지션이 사냥꾼인 르케임만이 사용할 수 있는데, 이미 따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더 이상 쓸 수가 없는 상태였다.
즉, 레오의 말대로 이대로 찢어졌다가는 이 드넓은 마수의 대지에서 미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언젠가는 나오겠지. 언젠가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는 레오와 그 뒤를 따르는 르케임이었다.
레오와 르케임이 마수의 대지 서북쪽을 뒤지며 모래 무덤을 찾고 있다면, 엘리엇과 실비아, 방적삼은 마수의 대지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개미굴에서 잠시도 쉬지 못하고 마수들을 사냥하고 있는 중이었다.
개미굴은 그 가장 밑바닥이 얼마나 아래쪽인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가 깊은 곳이었다.
이곳에는 크기가 2미터에 달하는 개미를 닮은 마수가 우글거렸는데, 그 때문에 킬 라시온 멤버들이 개미굴이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콰작! 콰작! 콰작! 콰작!
단단한 외피가 박살날 때마다 지독한 악취와 함께 누런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2미터의 개미를 닮은 마수가 지나다니는 길이기에 그리 좁지는 않았지만, 정신없이 몰려드는 마수들을 사냥하다보면 누런 액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이 지긋지긋한 새끼들!”
누런 액체를 잔뜩- 뒤집어 쓴 실비아가 연신 욕설을 내뱉으며 검을 휘둘렀다.
검 끝에서 발출되는 검기에 어김없이 마수의 몸 여기저기가 퍽퍽- 터져 나갔지만, 개미굴 전체를 꽉! 채우고 있는 마수들의 모습을 보면 이 싸움이 언제나 끝날지 감조차 잡히지가 않을 정도였다.
“개미굴 뚫기!”
외침과 함께 푸르스름한 빛이 광선마냥 일직선으로 쭉- 뻗어나갔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개미굴을 가득 채우고 있던 마수들의 몸통이 뻥- 뚫렸다. 그러나 그 뒤에 줄지어 있는 마수들로 인해 또 다시 막혀버리고 말았다.
“무혁 동생은 왜 여기를 탐색해달라고 한 거야? 왜!”
방금 창을 내질러 수십 마리의 마수들의 배를 시원스럽게 뚫어버린 방적삼이 조금은 원망스럽다는 듯 그렇게 소리쳤다.
“무혁이가 허튼 짓을 하진 않으니까 분명 중요한 이유가 있겠죠.”
엘리엇은 자신의 앞을 막고 있던 마수의 머리통을 부숴놓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 역시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는 이 지루하고도 피곤한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궁금해 했다.
최소한의 이유만이라도 알아야 동기 부여가 될 것 아닌가?
그런데 무혁은 이유는 나중에 설명을 해줄 테니 개미굴의 구조만이라도 탐색을 해달라고 했다.
마족도 쉽게 사냥할 정도가 되었기에 실비아, 엘리엇, 방적삼은 셋이면 충분하다 여겼다.
하지만, 대단히 큰 착각이었다.
무려 7일 동안 개미굴에서 마수들을 죽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미굴의 깊이는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았고, 마수들 또한 마치 죽으면 그 즉시 재생산이 되는 것 마냥 쉬지 않고 몰려왔기에 제대로 된 탐색조차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말 그대로 무한 반복의 사냥이었다.
“아무래도 손이 더 필요할 것 같아. 실비아, 네가 가서 누구라도 좋으니까 데려오면 안 될까?”
방적삼의 말에 실비아가 그게 가능했으면 벌써 갔었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모래 무덤인가 뭔가를 찾으러 간 레오랑 르케임을 제외하곤 모두 마족들과 싸우고 있는데 어디서 손을 빌리라고? 애초부터 우리끼리 하기로 한다고 큰 소리 쳤으니까 그냥 우리끼리 해요!”
“도대체 끝이 없어 보이니까 그렇잖아!”
방적삼이 답답한 마음에 버럭- 소리를 내지르자 실비아의 눈매가 매섭게 치켜 올라갔다.
그 모습에 방적삼은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닫고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는 열심히 창질을 해댔다.
“…아오! 빡쳐!”
실비아가 큰 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자, 방적삼의 창질이 더욱더 빨라졌다.
“목숨을 내걸고 마족들 사이에서 홀로 버티고 있는 무혁이를 생각하자.”
엘리엇이 달래듯이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실비아와 방적삼의 분노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래, 그 자식도 지금쯤 엄청 긴장하며 가까스로 버티고 있을 텐데! 이 정도에 불만을 품는 건 안 돼!’
‘지금 내가 하는 고생은 무혁 동생의 고생이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겠지? 더 힘을 내자!’
그 시각, 무혁은?
킬 라시온 멤버들에게 막막하고도 피곤한 임무를 부여한 무혁은 벌써 보름째 이어지고 있는 도전권 쟁탈전 경기를 시원한 음료와 간식을 먹으며 여유롭게 관람하고 있었다.
“지크, 네가 보기엔 누가 이길 것 같아?”
“글쎄… 쉽지 않은 싸움이라서 선택하기가 어렵네.”
무혁의 대답에 콜로시 역시 같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베게로가 이길 것 같기도 하고, 라세크가 이길 것 같기도 하고… 거 참, 쉽지 않은 선택이네.”
보름 동안 정말 많은 마족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고, 이제는 서서히 그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시점이었다.
도전권 쟁탈전이 벌어지기 전부터 우승 후보로 꼽혔던 쿠다스, 자고라카, 앙할카스, 수르피는 탑4의 명성답게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탑4라고 무조건 그들 중에서 마왕 도전권을 획득하란 법은 없었다.
바로 지금 벌어질 경기의 두 마족, 베게로와 라세크는 충분히 탑4를 위협할 만한 실력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조금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탑4와 붙었으면 했던 많은 마족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오늘 둘 중 한 명은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무척이나 컸다.
“내기 할까?”
무혁의 제안에 콜로시가 기다렸다는 듯 먼저 선택을 했다.
“좋아! 나는 라세크에게 걸지!”
“마음대로. 판돈은 10만 마르크 괜찮겠지?”
“10만 마르크?”
생각보다 너무 큰 판돈이 걸리자 콜로시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버렸다.
지금까지 무혁에게 딴 돈이 딱 그 정도였기에 자칫 이번 판을 지게 된다면 지난 보름 가까이 야금야금- 털었던 돈을 한방에 날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왜? 너무 커?”
설마 그 정도의 배짱도 없냐는 듯 무혁의 놀리는 목소리에 콜로시가 입술을 꽉- 깨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10만 마르크! 지크, 분명히 말하지만 후회하게 될 거야.”
“얼마든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꾸를 하는 무혁과 다르게 콜로시는 속으로 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10만 마르크가 걸린 베게로와 라세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콜로시의 간절한 응원이 통한 것일까?
초반부터 라세크가 베게로를 몰아붙였다.
힘, 속도, 기술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라세크였기에 콜로시뿐만 아니라 다른 마족들 또한 베게로보다는 조금 더 승률을 높게 쳐주었다.
‘이건 베게로가 이긴 싸움이야.’
하지만, 무혁은 전혀 다르게 생각했다.
라세크는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을 정도로 정말 모든 능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문제는 상대가 좋지 못했다.
엄청난 방어력과 체력을 자랑하는 베게로는 무혁이 생각하기에 이번 도전권 쟁탈전에 참가한 마족들 중 가장 우승후보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방어력만 높고 체력만 무지막지한 놈일지 몰라도, 지금까지 베게로가 싸워왔던 모습을 떠올려본다면 라세크가 비장의 한 수를 숨겨두지 않고 있다면, 분명 싸움 후반부에 지쳐서 스스로 자멸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
‘그래도 실력만큼이나 똑똑한 놈이네.’
베게로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는 라세크는 초반에 모든 힘을 쏟아 붓고 있었다.
그러나 무혁의 예상대로 라세크는 베게로에게 치명상을 입힐 정도로 강력한 한 방이 없었다.
“…이, 이러면 안 되는데!”
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승자의 포효를 내지르는 베게로의 모습을 보며 콜로시는 절망스럽게 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런 콜로시에게 무혁은 손을 내밀었다.
“10만 마르크.”
콜로시에게는 지난 보름 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오늘은 내가 거하게 한잔 사지.”
무혁은 지독한 허무함에 사로잡혀 있는 콜로시를 끌고 술집으로 향했다.
‘라세크의 영혼이라면 상당히 훌륭하지!’
오늘도 무혁은 콜로시를 잔뜩- 취하게 만들어놓고 라세크의 시체를 수거하러 갈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