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29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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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3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290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290화
마르케디악 (8)
“크하하하하하하!”
연신 술을 퍼마시며 콜로시가 기분 좋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내가 너무 지크, 자네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은 건가?”
좋다고 한참이나 웃어놓고 이제 와서 생각하는 척 말을 건네는 콜로시의 모습에 무혁은 헛웃음이 나왔지만, 이내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신경 꺼.”
“그래? 어쨌든 오늘 경기는 참 재밌었어? 안 그래?”
도전권 쟁탈전의 우승 후보 중 한 명인 쿠다스와 노브스키의 싸움.
확실히 무혁은 두 마족의 싸움이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마족들의 싸움보다도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었다.
‘케트라와 막상막하의 실력자.’
당연히 쿠다스였다.
무혁이 지켜본 바에 의하면 쿠다스는 케트라와 맞붙어도 결코 쉽게 패배를 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힘을 소유한 마족이었다.
어째서 도전권 쟁탈권의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지 충분히 그 가치를 증명해냈다.
“노브스키도 꽤 대단했어.”
콜로시가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는 듯 혀를 삐죽- 내밀었다.
쿠다스의 상대였던 노브스키 역시 강했다.
단순한 복병 정도가 아니라, 정말 한 끗 차이로 쿠다스에게 패배를 당했을 정도로 의외의 실력을 보임으로써 많은 마족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특히, 콜로시의 경우 쿠다스가 노브스키에게 공격을 허용하며 신음과 함께 피를 흘릴 때마다 두 손을 꽉! 움켜쥐며 절대 쓰러지면 안 된다는 고함을 얼마나 쳤는지 곁에 앉아 있던 무혁은 물론이고, 다른 마족들까지도 시끄러워서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다.
‘하마터면 1만 마르크를 잃을 수도 있었을 테니 똥줄이 탔겠지.’
피식- 웃으며 무혁은 술잔을 들이켰다.
“지크, 오늘은 내가 거하게 살 테니까 마음껏 마시자고!”
어차피 자신과의 내기에서 이긴 대가로 얻은 1만 마르크로 술을 사는 것이었기에 무혁은 그걸 생색내는 콜로시가 우습기만 했다.
‘골탕 좀 먹여볼까?’
무혁은 술잔의 술을 한꺼번에 입 안으로 털어 넣고는 다시 술잔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연거푸 술을 마셔버리자 순식간에 술병의 술이 쭉쭉- 줄어들었다.
“여기 술!”
무혁의 외침에 콜로시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마셔. 그렇게 급하게 마셨다가는 금방 취한다고.”
퍽이나.
마음껏 마시라고 했지만, 정작 무혁이 술을 너무 빠르게 마셔버리자 그 돈이 아까운 것이 뻔히 보이는 콜로시였다.
무혁은 콜로시의 말을 무시하며 술잔을 빠르게 비워나갔다.
한 병, 두 병 술병이 쌓여나갈 때마다 콜로시의 말수가 줄어들었지만, 1만 마르크는 생각보다 큰돈이었기에 고작 둘이서 술값으로 모두 탕진하긴 쉽지 않았다.
떠들길 좋아하는 콜로시가 입을 다물어버리자 무혁도 이쯤이면 충분히 놀렸다는 듯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죽은 마족들의 시체는 어디로 옮기는 거지?”
도전권 쟁탈전이 끝나고 죽은 마족의 시체들은 모두 수레에 실어서 경기장 밖으로 옮겼다.
무혁은 그 점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은근슬쩍- 콜로시에게 물은 것이다.
“시체? 그거야 당연히 시체 무덤으로 보내지.”
뭘 그런 걸 묻냐는 듯 콜로시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아… 시체 무덤.”
깜빡- 잊었다는 듯 그렇게 말을 하는 무혁의 눈동자가 반짝- 거렸다.
마족의 시체는 무혁에게 있어 최고의 보물이다.
그런 마족들의 시체가 한 곳에 모여 있는 곳은 말 그대로 보물 창고다.
구태여 힘들이지 않고도 마족의 시체를 얻을 수 있다면?
‘찾아보자!’
하루에 도전권 쟁탈전을 통해 죽는 마족들의 수만 하더라도 수십 명에 달했다.
더욱이 오늘 죽은 노브스키와 같은 마족들은 일반적인 마족들보다 월등하게 강한 힘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무혁으로서는 군침이 날 수밖에 없었다.
콜로시가 연신 비어 있는 술병들을 힐끔- 거리며 미간을 찌푸린 상태로 뚱한 표정을 짓고 있자, 무혁은 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값비싼 안주를 주문했다.
“뭐, 이런 걸 다! 역시 지크, 자네는 내가 만난 그 어떤 마족보다 통이 커! 크하하하하!”
단순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듯이 콜로시는 무혁이 안주를 시켜주자 다시 밝아진 표정으로 쉬지 않고 주절대기 시작했다.
여기에 무혁은 콜로시의 기분을 더욱더 끌어 올려주었다.
“생각해보니 내기에서 졌는데 술값도 내가 내는 게 맞겠어. 오늘 술값은 내가 내지.”
“정말?”
콜로시가 입가에 함박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되물었다.
무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콜로시가 얼른 자신의 잔에 채워놓았던 술을 물 마시듯 입 속으로 털어 넣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기 술! 술 가져와! 두 병! 아니! 세 병! 괜찮지, 친구?”
친근하게 자신을 향해 친구라고 부르는 콜로시의 모습에 무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잔뜩 마셔라. 네가 나에게 해줄 것에 비하면 이깟 술값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콜로시의 머리끝까지 술을 들이 부어서 원하는 걸 모조리 토하게 만들겠다는 무혁의 멋진 계획이었다.
#
마르케디악에서 북쪽으로 10킬로미터를 가면 거대한 구덩이가 존재한다.
“여기가 시체 무덤이군.”
무혁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구덩이, 시체 무덤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마족들은 죽으면 그 시체를 하나의 구덩이에 항상 모아둔다.
애초부터 혈연관계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인간들처럼 장례라는 개념 또한 없어서 마족들은 죽으면 그냥 한 곳에 시체를 모아두고 자연스럽게 동족들끼리 썩어 가도록 둘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구덩이는 마족들의 시체가 마수 등의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파수꾼들이 항상 지키고 있었다.
“…냄새 한 번 지독하네.”
무혁은 코를 찌르다 못해 썩게 만들 것만 같은 강렬한 악취에 황급히 코를 틀어막았다.
주변에 다른 누가 있는 지를 살피면서 무혁은 구덩이를 향해 다가가다가 급히 발걸음을 멈췄다.
구덩이 주변에 서 있는 세 명의 파수꾼을 발견한 것이다.
시체 무덤의 파수꾼들은 놀랍게도 갑옷, 살아서 움직이는 새카만 갑옷이었다.
“저게 데스 아머(Death Armor)군.”
데스 아머는 마수도, 마족도 아닌 정말 보이는 그대로 갑옷 그 자체였다.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는 마족들도 몰랐기에 막연하게 마신 라시온의 작품일 것이라고만 믿고 있었다.
어쨌든 그런 데스 아머는 마족 외의 다른 존재가 마족의 시체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일만 한다.
존재의 목적이 그것뿐이라는 듯, 마족 외의 존재가 시체 무덤으로 다가오면 이런저런 경고도 없이 다짜고짜 검을 휘두르며 막아선다.
“구름이의 포션이 통하는지 한 번 볼까?”
무혁은 혹시라도 데스 아머가 자신을 마족으로 착각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가까이 접근을 해봤다.
쇄애애애액!
무혁의 머리를 노리고 새카만 검날이 날아들었다.
“안 통하네.”
하긴, 구름이가 만든 ‘마족마족’ 포션은 인간의 체취를 없애면서 마족들로 하여금 동족이라 느끼게 만들 뿐이지, 인간을 마족으로 만드는 건 아니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데스 아머를 상대로는 꼼수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무혁의 선택은 간단했다.
카앙!
“부숴버려야지.”
데스 아머 뒤로 엄청난 수의 마족의 시체가 구덩이에서 썩고 있는 중이다.
저 많은 시체들을 가져가서 영혼을 흡수하면 그만큼 강해지는 무혁으로서는 결코 이대로 물러날 수가 없었기에 데스 아머를 상대로 전투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무혁과 데스 아머 3기와의 싸움.
데스 아머는 생각보다 강했다. 아니, 까다로웠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었기에 고통이나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혁에게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퍼억!
좌측에서 접근을 해오던 데스 아머의 가슴팍을 무혁이 걷어차니 꼴사납게 뒤로 튕겨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재빨리 몸을 일으키고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다시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무혁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이 빌어먹을 것들은 죽기나 하는 건가?”
이름부터가 아이러니 하게도 ‘죽은 갑옷’이니 죽을 리가 없다.
혹시나 싶어서 블랙 본 해머를 이용해서 갑옷 자체를 파괴시켜보려고 했지만, 얼마나 단단한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장장 30분이 넘도록 치열하게 싸우고 나서야 무혁은 데스 아머들을 쓰러트리거나, 부숴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니들이 그렇게 나오겠다니… 나도 어쩔 수 없지.”
무혁은 말도 통하지 않는 데스 아머들의 모습에 이내 방법을 변경했다.
“굳이 니들과 불필요한 싸움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필요한 것만 가지고 간다. 블링크!”
무혁은 곧바로 시체 무덤으로 블링크로 이동했다.
지독한 악취와 시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탁한 마기들에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 도는 기분이었지만, 무혁은 어느새 자신을 뒤쫓아서 달려오는 3기의 데스 아머들의 모습에 황급히 눈에 보이는 멀쩡한 마족의 시체들을 공간 주머니에 쓸어 담았다.
그냥 마족의 시체를 가지고 튄다!
이것이 무혁이 생각을 해낸 방법이었다.
수십 구나 되는 마족의 시체를 공간 주머니에 담았을 때, 3기의 데스 아머들이 무혁을 노리고 맹렬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내일 또 올게.”
무혁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데스 아머들을 검날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텔레포트 스킬로 자리를 피해버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공격 대상인 무혁이 사라져버리자 3기의 데스 아머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윽고 느릿하게 본래의 자리를 찾아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혹은, 자신들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는 듯한 여유로움마저 느껴지는 움직임들이었다.
#
“으으으… 내가 도대체 어제 얼마나 마신 거지?”
콜로시는 지끈-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지난밤의 기억을 떠올려봤다.
도전권 쟁탈전에서 우연찮게 옆 자리에 앉으면서 친해진 지크와 함께 부어라, 마셔라 진탕 술을 마셨던 것은 분명히 기억이 났다.
“무슨 이야기를 했었지?”
머리를 꾹꾹- 누르며 콜로시가 지크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려고 했지만, 도통 무슨 말을 했었는지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별거 있겠어?”
콜로시는 혹시라도 자신이 지크에게 실수를 했을까봐 그것만 걱정이 됐다.
오랜만에 사귄 친구였기에 자신의 괜한 실수로 그와의 우정에 금이 간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타는 듯한 갈증에 물 한 통을 단번에 들이킨 콜로시가 그제야 정신이 좀 든다는 듯 두 눈을 똑바로 치켜떴다.
“만나보면 알겠지.”
콜로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집을 나와 곧바로 도전권 쟁탈전이 벌어질 경기장으로 향했다.
“콜로시.”
경기장 근처에서 항상 후드로 자신의 얼굴을 꽁꽁- 감추고 있는 지크가 한손을 번쩍- 들며 서 있었다.
그 모습에 콜로시는 자신이 어젯밤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았고, 당연히 지크와의 우정에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오늘도 저 녀석의 돈을 따볼까?’
콜로시는 오늘 도전권 쟁탈전에 나서는 마족들 중 승산이 가장 높은 마족이 누구인지 재빨리 기억을 더듬어봤다.
‘그렇지! 오늘 자고라카가 싸움을 하는 날이군!’
쿠다스만큼이나 우승 후보로 꼽히는 자고라카였기에 콜로시는 무조건 그에게 돈을 걸면 내기에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문제는 과연 어제도 양보를 해주었던 지크가 오늘도 뻔히 질 것 같은 내기에서 양보를 해주느냐였다.
“지크! 어제는 너무 즐거웠어. 안 그래?”
“당연히 즐거웠지!”
다른 때보다도 한결 밝고, 기분 좋아 보이는 지크의 음성에 콜로시는 어제 자신과의 술자리가 정말 즐거웠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콜로시는 지금 지크의 기분이라면 미리 내기를 걸어도 응해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내기 한 판 어때?”
“한 판? 그러지 말고 두 판 하자고.”
“두 판?”
“네가 생각하는 승자 한 명,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승자 한 명.”
“그, 그럴까?”
콜로시는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어진 지크의 말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대신 내기의 판돈은 모두 콜로시, 네 의견을 전적으로 따르겠어. 어때? 할래?”
“그렇다면야 좋지!”
오늘 자고라카의 상대는 별 것 없는 마족이다. 그러니 무조건 승리는 확정적이다.
자고라카가 나오는 경기에 판돈을 크게 걸고, 지크가 원하는 경기에서는 판돈을 절반만 걸어도 어쨌든 자신의 이익이었기에 콜로시로서는 오늘도 두둑하게 돈을 챙길 수 있다는 생각에 입꼬리가 귀까지 치켜 올라갔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콜로시의 모습에 무혁은 희미하게 웃고 말았다.
‘네 덕분에 어제 아주 포식했다. 어차피 나한테는 있으나마나 한 돈이니 매일매일 잃어주마.’
콜로시 덕분에 마족의 시체를 손쉽게 얻은 무혁으로서는 앞으로도 유용한 정보를 쏙쏙- 빼먹을 필요가 있는 그와의 관계를 더욱더 돈독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 그럼 들어갈까?”
무혁은 콜로시와 함께 경기장으로 나란히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