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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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9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71화
제5장 이간계(離間計) (3)
쿠다다당!
“크…윽!”
숨어 있던 경계조가 반항 한번 못하고 육편이 되었다. 튕겨 나온 복면인들조차 신체의 반이 사라진 채 죽어가고 있었다. 처참하게 박살이 난 복면인들은 마지막 한을 터뜨리다가 죽었다.
“이…게 무슨?”
복면인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놀랐다. 망혼귀음진조차 풀려 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개개인이 절정에 달한 고수들이다. 어중간한 일개 문파 정도는 단숨에 정리해 버릴 수 있는 전력이다.
“누구냐?”
방해자가 나타났다는 것에 경계하느라 그들은 포위하고 있던 여인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여인은 진력이 다해 쓰러졌다. 간신히 숨을 몰아쉬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저벅! 저벅!
수풀 속에서 청년이 걸어 나왔다. 마치 산보를 즐기는 듯한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는 태평하게 걸어와 복면인들 앞에 섰다.
사사사삭!
복면인들은 신속하게 청년의 주변을 에워쌌다. 도망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일이었다. 복면인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청년을 기이하게 보았다.
‘이놈이 귀천마단의 10명을 죽였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절정고수 10명을 일순간에 죽이려면 최소한 초절정을 넘어서야 한다. 놈의 나이를 감안하면 절대 그와 같은 경지에 올라설 수 없다.
귀천마단의 단주 마광은 감각을 극대화하여 청년을 주시했다. 기운을 간파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기운도 청년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내 외부의 기운이 평범한 사람과 비슷했다.
‘설마 반박귀진!’
입신의 경지에 들어 내 외부의 조화를 이루면 내공의 유무가 사라져 버린다. 눈앞에 나타난 놈이 그와 같은 경지에 들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반박귀진(返樸歸眞)을 넘어 반로환동에 든다면 저처럼 젊을 수도 있으나 그와 같은 강자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 해도 마광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주변에 동조자가 있을 수도 있었다.
마광은 청년에게 말을 걸면서 눈짓을 보냈다.
“겁이 나지 않는다면 정체를 밝혀라!”
“복면을 뒤집어쓴 주제에 말은 잘하는군.”
청년의 손가락이 뒤로 물러났다 앞으로 움직였다. 간단한 손짓에 복면인들 전부 순간 경직되었다. 게다가 여인을 제압하기 위해 은밀하게 다가가던 복면인의 머리통이 박살나 버리고 말았다.
퍼억!
허연 뇌수가 핏물과 함께 사방으로 튀었다. 머리 잃은 몸뚱이가 힘을 잃고 주저앉았다. 죽은 후에도 발걸음을 움직이는 것으로 봐서, 낌새조차 채지 못했던 것 같았다.
기척조차 느끼지 못한 것은 귀천마단의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마광 역시 놀라서 움찔거렸다.
“말…도 안 돼!”
절정을 넘어서는 마광조차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했다. 무형탄지공(無形彈指功)이 극의에 이르면 흐름조차 파악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와 같은 경지는 꿈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수작부리면 재미없지.”
청년은 놈들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었다. 어쭙잖은 수작에 당해줄 정도로 그는 멍청하지 않다.
“네…놈은 도대체 누구냐?”
“무진이다.”
“뭐? 설…마!”
무진은 대수롭지 않게 정체를 밝혔다. 안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마광의 눈빛이 흔들렸다.
냉혈무신 강무진. 천하무림을 떠들썩하게 만든 존재다. 무진을 모르는 자는 극히 드물다. 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더군다나 귀천마단은 정보를 수집하고 추적하는 집단에 속한다. 무진을 모를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는 알 수가 없다. 대적할 수 없는 자가 나타난 것이다. 무진의 실력은 드러난 것보다 더 강한 것 같았다.
“무…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오!”
“연약한 자를 돕는 것이 협의라고 하지 않나. 나는 협의를 실천하고 싶다.”
무진의 무감정한 말투에 소름이 돋는다. 표정조차 변화가 없다. 여인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조차 걱정하는 눈빛이 아니다. 그런데도 태연하게 협(俠)을 논하고 있었다. 마광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협의 따위를 모르는 자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 여유롭기까지 한 무진의 태도는 도저히 협을 논할 수 있는 자로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수작을 부린다는 것이 느껴졌다. 뻔히 보이는 수작이지만 정면대결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냉혈무신의 이목을 피해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모른 척해 준다면 사례를 하겠소!”
“싫다.”
마광은 이가 갈렸다. 다 잡은 고기를 놓칠 위기에 처했다. 이대로 살아 돌아간다고 해도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무슨 수를 쓰든 놈과 함께 죽는 것이다.
마광이 단원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일시에 덤벼들라는 뜻이다.
“죽을 각오가 된 모양이군.”
“오늘 일을 평생 후회하게 될 것이다!”
9명의 귀천마단이 무진을 향해 돌진했다. 9명이 일시에 살검진을 펼쳤다. 무진을 죽이겠다는 살의가 번들거렸다. 혼신멸살진(魂身滅殺陣)이 무진의 사방을 차단하고, 시야를 어지럽혔다.
망혼귀음진이 혼을 빼놓는 진이라고 하면 혼신멸살진은 혼과 육체를 분리시켜 소멸시키는 살진이었다. 혼이 사라진 육체는 죽는다. 일단 완벽하게 발동이 걸리면 절대고수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마광은 다소 안도했다. 진이 발동되기 전에 무진이 빠져나가 버리면 큰일이었다. 무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 때문에 상황을 간과하고 있다고 여겼다.
“방심한 대가를 치러주마!”
“버러지들을 상대하는데 전력을 다할 필요는 없지.”
무진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말아 쥔 주먹에 기운이 서렸다. 찰나간 응집된 기운을 뻗었다.
푸아아앙!
허무하게 뚫리고 공간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진을 구축하고 있던 귀천마단 3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혼신멸살진은 내공의 격체진력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공격을 받게 되면 자동적으로 모든 공력이 타점에 모이게 된다. 강기를 막아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소용없는 짓이 되었다. 그들의 진력은 무진의 진력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압도적인 패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커억!”
진력을 보낸 귀천마단은 도리어 충격을 받고 피를 토해내었다. 마광은 현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는지 내상을 입은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한눈팔 때가 아닐 텐데.”
선이 그어졌다.
무진의 몸이 선이 되어 사라졌다. 대기에 줄을 일직선으로 뻗은 것 같았다. 삽시간에 공간에서 사라졌다. 다시 찾으려고 했을 때 귀천마단 4명의 목이 기이하게 꺾였다.
“막…아!”
마광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무진의 팔이 좌에서 우로 휘둘러졌다. 단조롭지만 그 안에서 서린 패력이 천지사방을 끌어왔다. 공격을 피하려던 귀천마단의 무인이 몸을 빼려다가 흡입력에 끌려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안간힘을 써도 소용없는 짓이다. 마치 휘두르는 궤적에 무인이 달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퍼어어어엉!
무진의 패력에 부딪친 무인의 몸이 분산되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육체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일순간 폭풍이 스치고 지나가자 귀천마단 중에 살아남은 존재는 마광뿐이었다.
덜! 덜! 덜!
마광의 생애 이토록 무서운 존재는 처음 보았다. 귀천마단의 주인조차 저처럼 압도적인 무력은 지니고 있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공격에 절정고수 10명이 반항도 못하고 죽었다.
‘이…자는 괴…물이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자 마광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대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자였다. 반드시 무진의 존재를 성에 알려야 했다.
마광은 가슴속에 숨겨둔 독탄과 연막탄을 꺼내 무진에게 던졌다. 어떻게 해서든 기회를 만들려고 했다.
척!
바닥에 떨어져 터져야 할 독탄과 연막탄이 공중에 떴다. 반경 10장의 대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무진이다. 무의식적인 호흡조차 강기를 형성할 수 있었다. 무진의 권능 안에서는 수작 따위가 통하지 않는다.
“저…럴 수가!”
마광은 상황이 이런 식으로 흐를 줄은 몰랐다. 도망치기 위해서 다급하게 귀령마보(鬼靈魔步)를 펼쳐보았지만 어느새 목덜미가 무진의 손아귀에 잡혔다.
“커억!”
발버둥조차 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마른 고목처럼 온몸이 굳어 버렸다. 눈동자조차 제 마음대로 뜨고 감을 수 가 없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호흡뿐이었다. 호흡도 마광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진의 뜻에 의해서 규칙적으로 반복되었다. 숨 쉬는 것조차 허락을 받아야 했다.
칠흑 같은 무정한 눈빛이 마광의 눈동자를 관통했다.
찌릿!
번개에 맞은 것처럼 굳어 버린 마광은 눈을 감고 싶어도 감을 수가 없다. 뇌리에 간직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것 같았다. 감추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심령은 부서져 내려갔다. 무진의 눈동자는 점점 더 강렬하게 변했다.
“으…으윽!”
마광의 심령에 자리한 금제조차 무진의 통천안을 막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무진은 인정사정없이 금제를 뚫어버렸다. 마침내 금제(禁制) 속에 숨어 있는 비밀이 순식간에 무진의 뇌리로 읽혀졌다.
“별로 아는 게 없군.”
마광의 눈동자는 돌아가고 입에서는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 백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드득!
마광의 목을 잡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마광의 생이 소멸되었다. 무진은 쓸모없어진 마광을 쓰레기 치우듯이 던져 버렸다. 정탐이나 하는 놈들에게서 정보를 얻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무진은 한쪽에 쓰러진 여인에게 다가갔다. 여인은 혼절해 있었다. 잠시간 눈을 뜨고 있었지만 그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쓸모가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도록.”
씨익!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무진은 여인을 들었다.
비스듬히 열려진 창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선처럼 내리쬐었다. 방 안에 누워 있던 여인은 눈을 부시게 만드는 따뜻한 햇살에 반응했다. 여인의 피부는 도자기에 유약을 바른 것처럼 반짝거렸다.
보석을 박아 놓은 듯한 그녀의 청초하고 맑은 눈동자가 서서히 떠졌다. 그녀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윽!”
머리가 아픈지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망혼귀음진에 걸린 충격이었다. 혼이 제압되는 고통을 겪었으니 머리가 아픈 것은 당연했다.
“여기는?”
낯선 환경이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방 안을 돌아보았다. 비단을 깔아 놓은 침상과 가지런하게 정리된 방 안의 장식물들을 보니 고급객잔인 것 같았다.
“내가 왜 여기에?”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마차를 타고 가는데 정체 모를 집단이 습격해 왔다. 청우진을 비롯한 밀천의 고수들 5명이 속수무책으로 죽었다. 그녀의 목숨도 경각에 달려 있었다.
그때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젊은 청년이 수풀 속에서 나와 놈들을 상대했다. 거기까지가 그녀가 아는 모든 것이었다.
“그가 나를 이곳에 데려왔나?”
끼이익!
그녀가 고민하고 있을 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자가 있었다. 그는 어제 어렴풋이 봤던 청년과 같았다. 아니 그가 확실했다.
“괜찮나.”
그는 무뚝뚝하게 물었다. 감정이 섞이지 않은 음성은 걱정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그녀는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 이유 따위는 없다. 그저 그런 느낌을 받았다. 더군다나 그녀는 대륙에서 가장 존귀한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친인(親人)을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런데 의문의 청년은 당연하다는 듯이 하대를 하고 있었다.
“괜찮냐고 물었다.”
대답이 없자 청년은 다시 물었다. 북해의 시린 물처럼 차가운 비수와 같았다.
“괜…찮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고 말았다.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건방지군.”
여인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녀의 생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우는 처음이다. 뒤에서 그럴 수는 있겠지만 정면에서 건방지다는 말을 한 자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바보처럼 되묻고 말았다.
“뭐?”
“은인에 대한 태도가 무척이나 건방지다는 뜻이다.”
“당…신이 나를 알아?”
“모른다.”
“흥! 내 신분도 모르면서!”
“알아야 하나.”
“그…건!”
막상 신분을 밝히려고 하니 막막했다. 이대로 밝혀도 좋은 것인지가 의문이었다.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그녀를 노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놈들은 절정 이상의 실력을 지닌 고수들이었다. 그만한 전력을 지닌 곳은 많지 않았다. 상대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체를 드러내는 것은 바보짓이었다.
“그러는 너는 왜 반말이야!”
“나는 그럴만한 위치에 있다.”
“뭐?”
“천하최강자다.”
“이…런 미친!”
본인 스스로 천하최강자란다. 여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대가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객잔의 비용은 네 돈으로 지불했다.”
“뭐라고!”
그녀는 남의 허락도 없이 돈에 손을 댔냐고 따지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무진의 태도가 무덤덤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을 따지고 묻는 그녀의 태도가 못마땅한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네 숙박료다. 그걸 내가 지불하기 바라는 것은 아니겠지.”
“그래도 그렇지! 주인 허락도 없이 꺼내는 법이 어딨어!”
“기절해 있던 주제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군.”
“그럼 내 호위들은 어떻게…됐지?”
“죽었다.”
알면서도 다시 물어보는 여인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수족이 죽었는데 가슴 아프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에 반해 무진은 고민 한번 해보지 않고 직선적으로 대답했다. 여인의 슬픔 따위는 관심의 대상도 아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