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63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20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63화
제3장 단죄(斷罪)의 장 (2)
정천맹의 회의장 안은 어수선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을 하기 힘든 대치상황이다.
구심점이 필요한 시기였다. 명문정파의 위상이 무너진 시점에서 새로운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자는 맹주대리 북리중천뿐이었다. 그를 지지하는 중소문파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현 명문정파의 행동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세력이 현저하게 약화되었다.
이제까지 암중으로 알력을 넣어 무마해 왔지만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황에서는 불가능해졌다. 북리중천을 중심으로 뭉쳐진 중소문파의 힘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힘을 넘어선 것이다.
북리중천이 회의장의 상석에 앉았다. 중소문파를 대표하는 자들도 회의장 안에 참석했다.
북리중천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선별하여 정천맹의 요직에 선임하는 등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장로들이 반발했지만 북리중천은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세력과 명분에서 앞선 북리중천을 막아설 수가 없게 되었다.
북리중천의 지시에 의해 회의가 시작되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 파견된 장로들은 두 가지를 쟁점 대상으로 올렸다.
“정천맹의 권위를 무너뜨린 흑룡성을 단죄해야 합니다.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정천맹의 위업을 더럽히는 일이 됩니다.”
“맞습니다. 사파세력이 더 이상 커지도록 놔두는 것은 정도무림의 앞날을 어둡게 만드는 일입니다.”
“다음으로 혈풍을 일으키는 암중세력을 확실히 조사하여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암중세력은 우리끼리 자중지란을 벌이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로서는 두 가지를 당장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다. 우선은 내부의 우환을 외부로 집중시켜 무림의 여론을 돌려 놔야 했다. 그 가운데 내부에 산재한 문제를 조속한 시일 안에 해결해야 했다.
그들은 정천맹의 대의명분을 강조하며 결정을 내려주기 바랐다. 반면에 북리중천은 결정을 쉬이 내리지 않았다.
“단목 장로는 어찌 생각하시오?”
북리중천에 의해서 선임된 단목세가의 낙성검(落星劍) 단목진성이었다. 강소성의 십대고수로 과거의 북리중천과 비슷한 처지인 단목세가의 가주다.
“정천맹이 흑룡성에 패한 것은 무력이 아니라 지략에서 진 것입니다. 무턱대고 절강성의 오지로 쳐들어간 것부터가 잘못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섣불리 전쟁을 했다가 패하게 되면 정천맹의 위상은 다시 세우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죄는 하되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렇겠군.”
북리중천의 수락에 의해서 중소문파의 수장들이 입을 열었다. 풍도문(風刀門)의 폭풍도(暴風刀) 송철원이 북리중천의 의중을 파악하고 답을 내놓았다.
“이런 말 해서 죄송하지만 암중 세력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사천성과 호북성에서 벌어진 혈사를 제대로 규명조차 하지 않은 채 외부 세력을 단죄한다는 것이 우습지 않습니까?”
“뭐…라고! 뚫린 입이라고 어디서 함부로 말하는 것이냐!”
송철원의 말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간의 전쟁을 왜 정천맹이 나서야 하는 것인지를 따지는 것이었다. 자기 살을 깎아 먹는 전쟁을 벌인 명문정파를 비꼬는 대답이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장로들이 반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평소 같으면 감히 대적할 생각도 못하는 중소문파의 수장들이 오늘은 달랐다.
“제가 못할 말을 한 것입니까!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전대 맹주를 비롯한 16대고수의 배신, 그로 인한 혈사를 우리가 모를 줄 알았습니까! 내부적인 단속을 정천맹 전체의 문제로 치부하려는 것이 타당한 일입니까!”
“입증된 것도 없이 사실처럼 떠벌이지 마라!”
“이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원의 간세라는 증거는 명백하지 않습니까!”
“닥쳐랏!”
하북팽가의 천삼도객(天三刀客)에 속하는 천강일도(天强一刀) 팽무성이 송철원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소리쳤다.
전임 맹주와 천하16대고수에 관한 것은 암묵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더군다나 각 문파의 최고 배분을 지닌 그들의 배반은 확실하게 증명되지 않는 이상 믿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소란은 거세지는 분위기였다. 화산이 터지기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그만.”
우우우웅!
조용하지만 무언의 힘이 실린 기운이 팽무성과 송철원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 주변에 있던 장로들도 기파를 느끼고 물러서야 했다.
그들 전부 놀란 듯이 북리중천을 바라보았다. 차분한 북리중천의 기세가 회의장 안을 장악했다.
‘이…정도라니!’
‘맹주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장로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들이 느끼는 기파는 천하16대고수만이 풍기는 기세였다. 북리중천이 뛰어난 무인이라는 것을 인정했지만 이 정도까지 성장한 줄은 몰랐다.
“이곳에 모인 그대들은 각 문파를 대표하는 수장들이다. 서로간에 지켜야 할 것은 지켜라.”
겉으로 보면 모두를 나무라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기세를 눌러 놓은 것이다.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경고였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장로들은 속으로 분노를 삭여야 했다. 힘의 균형이 무너진 이상 화를 내봤자 얻어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분위기가 조용해지자 정보각주 귀룡(鬼龍) 운고성이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 우리가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외부적인 문제보다는 내부적인 단속에 있습니다. 지금이 무척이나 힘든 시기임에 틀림없습니다. 힘을 합쳐 일치단결해도 어려운 상황에서 분란은 망조의 지름길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북리중천이 넌지시 물었다. 운고성은 아무도 보지 못하게 입꼬리를 약간 올렸다가 원래의 표정을 찾았다.
“정천맹의 분열은 맹주의 부재에 있습니다. 물론 부맹주께서 맹주대리 역할을 수행하시고는 있지만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확실한 맹주를 선출해서 맹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할 때입니다. 그러고 나서 내부적인 문제인 암중세력을 토벌하고, 더 나아가 흑룡성을 처결해야 합니다.”
“음!”
침음성이 흘렀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장로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금 맹주로 거론될 수 있는 자는 북리중천뿐이다. 그를 넘어설 수 있는 자가 사실상 없다. 중소문파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상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 맹주가 선임되기는 힘들었다.
“혼란한 시기에 맹주의 선출은 나중에 해도 되지 않소이까!”
“혼란하기에 힘을 모을 구심점이 필요한 것입니다.”
운고성은 세력을 저울질한 후 북리중천에게 붙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힘이 더 강했다면 반대의 경우를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확실히 문제가 있겠군.”
“맹주의 부재는 큰 문제입니다.”
“그럼 관례에 따라 정하도록 하지.”
북리중천은 맹주선출을 장로들의 다수결에 의해서 결정하고, 정천맹 산하 소속 문파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다수결에서 북리중천은 많은 자리를 확보하고 있었다. 맹주선출은 당연히 통과가 되었다. 관례에 따라서 소속 문파의 결정의 의해 맹주가 선출될 것이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북리중천이 맹주가 되고 나서부터는 중소문파의 입지가 더 넓어질 것이다.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에 발만 동동 굴렀다.
천룡각에서 결정된 사안이 정천맹 소속 문파에 전달이 되었다. 과반수 이상이 북리중천을 지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들의 바람은 북리중천이 맹주가 되어 더 많은 기회를 얻는 것이었다.
* * *
어둠이 자리하고 있는 지하동혈.
간간이 비추는 횃불만이 유일한 빛으로 천지사방이 완벽히 막힌 장소였다. 습한 기운과 차가운 기운이 공조를 하여 살아가기 무척이나 척박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간 곳에 철창이 존재했다. 철창으로 가로막힌 감옥 안에 사람이 있었다. 찢겨진 옷 사이로 드러난 상처는 곪은 채 치료되지 않고 있었다. 간신히 끼니만 때웠던 그들은 피골이 상접해 있는 상태다.
6명 전부 힘이 전혀 없어 보였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자들처럼 느껴졌다.
“공오대사! 놈이 우리를 왜 살려두었을 것 같소?”
“모…르겠소이다.”
말조차 하기 힘들어 하는 노인이 공오대사였다. 천하무림의 절대자인 불성 공오대사가 이런 처참한 신세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에게 말을 건 자도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그는 하북팽가의 전대가주이며, 도(刀)의 일인자로 불리는 벽력도제 팽관혁이었다.
그들만이 아니다. 바닥에 누워 눈조차 뜨지 못하는 위인은 화산파의 전대 문주이며 삼제의 일인으로 추앙받던 매화검제 육진풍이다. 그 주변에 벽에 기대고 있는 이들은 금편독왕 당사혁, 창천검왕 남궁훈, 신기수사 제갈수혁이었다.
각 문파를 대표하며, 천하무림의 한손에 쥐고 좌지우지했던 이들이, 살날이 얼마나 남지 않은 초라한 모습으로 생을 연명하고 있었다.
뿌드드득!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누워 있던 육진풍이 섬뜩한 눈빛을 빛내며 이를 갈고 있었다. 그가 이런 처참한 신세가 된 것은 전부 무진 때문이었다. 그놈이 육진풍의 모든 것을 풍비박살 내 버렸다.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놈!”
다들 죽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쉽게 죽음을 허락할 수도 없다. 무진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지 않는 이상 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부정적이다. 단전이 망가져 버린 이상 철창조차 벗어날 수 없다. 원한과 분노,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육진풍만큼이나 그들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었다.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을 것인가, 아니면 비참하더라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가!
선뜻 결정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무진의 의도였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 동혈을 지키는 자가 끼니때마다 식사를 가져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개미새끼 한 마리 접근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길이 없다. 그들은 그것이 왠지 모르게 더 불안했다.
갑자기 조용하던 동혈에 소리가 울렸다.
뚜벅! 뚜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한 불빛 사이로 소리에만 의지하다 보니 내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척에 예민해졌다.
그들이 발걸음 소리에 놀란 듯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식사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한 번도 시간을 어긴 적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발소리를 들어보니 3명이었다. 식사를 제공하는 자를 제외하고는 1명도 보지 못했다.
계단을 내려온 존재가 철창을 향해 걸어왔다. 불빛 사이로 그림자가 형성되었다. 빛이 통하는 지점에 선 자를 확인한 그들은 눈을 부릅뜨며 격렬한 분노를 표출했다.
“네…이놈!”
“죽…여버리겠다!”
일어설 힘도 없을 것 같았던 그들이 철창 앞에 선 자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분노를 표출하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존재는 가소로운 듯이 미소를 지었다.
“어디 해봐라.”
“이…익!”
분했지만 망가진 육신으로는 철창조차 부숴버릴 수 없었다. 결국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무진의 뒤에 시립하고 있던 밀영1호 차중천이 의자를 가져왔다. 의자에 앉은 무진은 차중천이 건네준 책을 느긋하게 펼쳤다. 노려보고 있는 자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였다.
명백한 무시에 그들은 분노하고 또 분노했다.
“하늘…이… 네놈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팽관혁이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제야 무진이 팽관혁을 바라보았다. 화산처럼 타오르는 분노를 표출하는 팽관혁과는 다르게 무진에겐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분노가 서려 있었다. 무심한 눈동자 속에 숨어 있는 차가운 기운은 분명 분노였다.
팽관혁은 무진의 눈을 계속 볼 수 없었다. 결국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