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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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62화
제3장 단죄(斷罪)의 장 (1)
흑룡성과의 결전에서 정천맹이 패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정예가 함정에 걸려 전멸을 면치 못한 것이다. 5천의 무인 중에 살아남은 수가 고작 3백을 넘지 않았다. 일방적인 패배였다.
남아 있는 무인으로 항전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들 대부분이 각 문파의 주 전력이기는 해도 수가 늘어나는 흑룡성과 대적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선은 정천맹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절강성 항주를 지나기 전까지 흑룡성의 추격을 받아야 했다. 흑룡성은 그 이상 추격을 하지 않았다. 절강성에 있는 정천맹의 분타를 제거하면서 영향력을 확장시켰다.
절강성 항주의 북서쪽 안휘성으로 넘어가는 지점에 천목산(天目山)이 있다. 산세가 험하고 봉우리가 뾰족한 산으로 마치 하늘과 눈이 맞은 것 같은 모양이다.
흑룡성과의 전투에서 패한 정천맹은 안휘성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안휘성으로 넘어가는 이유는 강소성보다는 정천맹의 지배력이 크기 때문이다.
문파의 정예무인을 잃은 그들은 무척이나 피로해 있었다. 예상치도 못한 일방적인 패전은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들었다. 그동안 사파무림을 무시하며, 우월주의에 빠져 있었기에 패전의 충격은 더 컸다.
당관일은 그날의 패배를 떠올릴수록 치가 떨렸다. 독심수사라고 불리는 그가 전혀 손을 써보지도 못했다.
“믿을 수가 없다!”
살아남은 장로들도 당관일과 같은 심정이다.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는 일이었다.
또한 안타까움이 묻어나왔다. 당관일의 뜻대로 조금 더 시간을 두고 탐색을 했다면 이처럼 일방적으로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정천맹으로 돌아가서 전력을 재정비하는 것이었다. 흑룡성을 이대로 놔두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천하에 산재하는 분란 세력이 전부 흑룡성과 결합할 가능성이 있었다.
“반드시 멸살해야 한다!”
뿌드득!
당관일과 장로들은 이를 갈았다. 흑룡성의 비열한 수법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았던 것이다. 아니 평생이 동안 지워지지 않을 뼈아픈 흔적이었다.
천목산의 중턱을 지나는 길목에서 발걸음이 멈추었다. 자의적으로 멈춘 것이 아니라 누군가 설치한 장애물로 인해 멈추어 선 것이다.
“무슨 일이냐?”
패천일도(敗天一刀) 팽가성이 물었다.
“진이 펼쳐져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사람이 지나 다니는 길목에 진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막아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관일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길목을 막은 진은 단순히 차단을 목적으로 쳐진 금쇄진(禁鎖陣)이었다. 무슨 이유로 길목을 차단한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금쇄진은 시간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체할 수 있었다. 시간을 끄는 것이 목적이라면 쫓아오는 것을 느껴야 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대부분이 절정 이상의 고수들이었다. 상승고수들이 낌새조차 느끼지 못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흑룡성이 앞서 왔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때 모두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예상치도 않은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병기를 손에 든 50명의 무인들이었다. 싸늘하고 무표정한 기운을 풍기는 자들은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웬 놈들이냐?”
무당의 청운검 현운 장로가 느닷없이 나타난 존재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스르렁!
대신에 병기를 뽑아 들었다. 정천맹의 무인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50명밖에 안 되는 인원으로 공격하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저럴 수 없었다.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죽고 싶다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패전의 분노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정천맹의 무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병기를 뽑아 들었다.
당관일은 놈들이 수작을 부리는 것이 아닌지 확인을 해보았다. 하지만 어떤 수작도 눈에 띄지 않았다.
여기에 모인 자들은 흑룡성이 처 놓은 함정을 벗어난 절정 이상의 고수들이다. 설혹 사기가 떨어졌다고 해도 전력으로만 따지면 대문파의 전체 전력을 상회하고도 남았다. 50명으로 이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모두 죽여주마! 쳐랏!”
당관일도 살기를 뿜어냈다. 그도 쌓인 분노가 만만치 않았다. 이제까지 계획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명예를 드높이기는커녕 오히려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300대 50의 대결이 펼쳐졌다.
병기와 병기가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휘둘러졌다.
서걱! 서걱!
“커어억!”
일검이 휘둘러지자 목이 떨어졌다. 삽시간에 50명이 넘는 무인이 저세상으로 향했다.
당관일의 눈빛이 흔들렸다. 일방적으로 죽여도 시원찮을 상황에 정천맹의 무인들이 죽었다. 그것도 일검도 막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향한 것이다.
“저…럴 수가!”
“말도 안 돼!”
죽은 이들 중에 각 문파의 장로들도 포함이 되었다. 비현실적인 상황이 눈앞에 벌어졌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놈들의 병기에서 솟아 오른 완연한 형태의 기운을 본 순간 소름이 돋았다.
“강…기!”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면 강기무공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저 정도로 선명한 기운을 퍼뜨리는 강기를 형성시키려면 초절정의 넘어서야 한다.
대문파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화경의 고수들이 떼로 나타났다. 이것을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보지 못했다면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푸우욱!
털썩!
청운검 현운 장로가 몇 수를 버티지 못하고 검강에 꿰뚫렸다. 가슴을 파고든 검강이 등을 뚫고 나왔다.
“한 놈도 살려두지 않는다.”
감정의 고저가 느껴지지 않았다. 정천맹의 무인들은 오싹한 공포를 느꼈다.
밀영대는 무진의 명에 의해서 천목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흑룡성과의 대결에서 패한 정천맹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목이 천목산이었다.
밀영100호가 안탕산에서 며칠간의 시간을 벌어주었기에 밀영대가 모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밀영대는 총 100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절반 이상이 투입된 것은 이번 작전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무진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밀영대가 피해 입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밀영대는 무진이 가진 최대의 무기이자 수단이다. 밀영대의 피해 없이 정천맹의 무인들을 남김없이 쓸어버리기 위해 대규모 인원을 보낸 것이다. 한 놈이라도 살아남으면 귀찮은 일이 발생한다.
“악…마 같은 놈들!”
정천맹도 처음에는 밀리는 것 같았지만 수로 밀어붙였다. 그들도 강기를 쓸 수 있는 고수가 있었다. 밀영대와 같은 수준은 아닐지라도 그에 준하는 실력자들이 있는 이상 쉽사리 물러서지는 않았다.
채채채챙! 꽈과과광!
강기무공이 펼쳐지자 주변 지형이 삽시간에 박살나 버렸다. 눈부신 검강과 도강, 창강 등 강기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빛을 가르는 일격이 펼쳐지고 난 후 산악을 부수는 패도적인 위력이 뿜어졌다.
카카카캉! 투꽈꽈꽝!
밀영1호 차중천은 정천맹의 반항을 염두에 두고 50명으로 구성했다. 밀영대는 개개인이 초절정의 넘어서는 실력을 가졌지만 합격술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의 주인이자 무의 신이라고 불리는 무진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멸살진을 펼쳐라.”
밀영대가 진형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주었다. 방위를 점하는 지점과 지점 사이에 끈이 이어진 것처럼 밀영대가 하나로 연결이 되었다.
멸살진의 무서운 점은 상대가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었다. 합격진이 펼쳐졌다는 것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전황이 뒤집힌 후일 것이다.
멸살진이 개진(改進)된 것을 감지하지 못한 정천맹의 무인들은 점점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형국이 되었다. 그리고 완벽한 형태의 진이 펼쳐졌을 때 밀영대가 조여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진형을 완벽하게 감싸고 멸살하는 것이 멸살진이었다.
당관일은 순간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치졸한!”
초절정의 고수가 저런 식으로 완벽한 진을 형성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절정고수만 되어도 자존심이 하늘에 이른다. 그렇기에 웬만해서는 진을 짜서 합공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놈들은 초절정을 넘어선다. 그런 놈들이 합공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아아악!
“크아아앗!”
일방적인 도살의 현장이 벌어졌다. 안에 갇힌 무인들을 구하기 위해서 덤벼들었을 때 밀영대는 20명이 방패막이가 되어 막아섰다. 일시에 그물과 방패 형태로 변형을 시키는 밀영대였다. 적의 공격 형태에 따라서 진의 변화가 무궁무진하며 빨랐다.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드는 가공무쌍한 무력집단이었다.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놈들이 나타난단 말이야!”
세상천지를 뒤져봐도 밀영대와 같은 존재들은 없을 것이다.
멸살진이 거둬지고, 다시 형태를 취했을 때 그 안에 갇힌 존재들은 살아 숨 쉬지 못했다. 압살당했다고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삽시간에 3백의 무인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정천맹의 무인들은 멸살진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돌진하지 않았다. 뒤로 물러서면서 방어진형을 갖춘 것이다.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밀영대는 무인들의 정면을 창처럼 뚫고 들어가 반으로 갈라 버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방적인 학살은 막아낼 틈도 없을뿐더러, 구한다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50명이 하나와 같았다. 한 동작, 한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공력과 공력의 흐름도 한 호흡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밀영대를 주변으로 강기막이 형성되어 있어, 강기를 튕겨 내버렸다.
아미파의 금정신니(金頂神尼)가 관음금정신공(觀音金頂神功)을 극성으로 운용하여 금정면장(金頂綿掌)을 펼쳤다. 강기를 뚫어버리는 무당의 십단금(十段錦)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위력을 지닌 금정면장이다.
쿠우우웅!
“커억!”
밀영대의 후면 사각지역을 후려친 금정신니의 몸이 반탄력에 튕겨 나가 버리고 말았다. 강기를 전문적으로 부수는 장법이라고는 하지만 50의 밀영대가 형성한 강기막을 뚫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오히려 금정신니는 혈맥이 가닥가닥 끊어져 절명하고 말았다.
초절정 고수의 허무한 죽음 이후에도 합공을 통한 공격이 있었지만 무의미했다. 밀영대의 움직임은 기민함을 넘어 합격의 극에 달해 있었다.
휘리리릭!
수적인 우위가 줄어들자 밀영대의 진형이 부챗살처럼 퍼졌다. 전체를 포위하는 진형으로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구축했다. 당관일이 뒤늦게 밀영대의 움직임에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놈들! 끝까지!”
창처럼 찌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정천맹의 무인들은 뒤로 밀렸다. 결국 금쇄진이 있는 곳까지 밀리고 말았다. 그로 인해 퇴로가 막혀 버렸다.
밀영대는 끝까지 전략대로 싸웠다. 정천맹의 무인들처럼 힘의 우위만 믿고 덤벼들지 않았다.
“네 이놈들! 용서하지 않겠다!”
“너 따위의 용서는 필요 없다.”
갈중혁과 당관일이 부딪쳤다. 밀영대의 서열 2위인 갈중혁의 무위는 절대고수에 버금가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관일이 맞상대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몇 합을 겨룬 당관혁은 쉴 새 없이 밀리다가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심장에 가해진 살격이 가슴을 관통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털썩!
당관일의 신형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반 시진도 되기 전에 정천맹의 무인들 중 땅을 밟고 서 있는 무인은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갈중혁은 싸늘하게 식어 가는 당관일을 시체를 내려다보다가 원래 작전대로 이 일대를 소각했다. 증거가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전소시킨 후 흔적을 전부 날려 버려야 했다.
아직 밀영대의 무력은 밝혀져서는 안 되는 시기다. 무진이 생각하는 적은 정천맹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 *
사천당문에 혈풍이 불었다. 당문이 자랑하는 기관지학, 암기, 독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당문의 생존자들은 침입자들을 흑마(黑魔:검은 악마)라고 지칭했다.
하지만 사천당문의 비극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당문의 금지가 무너지면서 당문 전체가 독무에 휩싸여 버렸다. 수백 년간 터전이 되었던 곳이 들어갈 수 없는 지옥이 된 것이다.
생존자들과 외부에 파견된 당문의 무인들이 다시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해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진상 조사를 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독무 속을 조사하려는 자들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죽어 나갔다.
당문 내에 존재하는 것은 독무만이 아니었다. 안을 지키고 있는 독인들이 진입하는 자들을 살려두지 않았다. 불완전한 독인이라고 해도 일반 고수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독무가 사방에 퍼진 상태에서는 초절정 고수라도 버티기 힘들었다.
천하무림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은 연이어 터졌다. 혈풍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호북성을 관할하는 제갈세가와 무당파가 봉문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 일대를 지키고 있던 무인들은 너나 할 것도 없이 도망쳐야 했다. 혈천독인(血天毒人)이라고 불리게 된 10명의 독인이 뿌리는 독에 닿는 것만으로도 한 줌의 혈수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많은 수의 무인이 있어도 독인의 가공할 독공(毒功)은 막아내지 못했다. 제갈세가가 독인의 습격에 의해 무너지고 난 후 무당파까지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받았다. 주력이 남아 있었다고 해도 독인의 가공할 능력을 막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강호에 혈풍을 불게 만든 단체를 추적하기에 이르렀다. 독인의 이동경로를 추적하면서 무림은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독인의 동선이 사천당가로부터 이어졌기 때문이다.
실상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파명문이며, 오대세가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사천당가가 왜 그런 일을 벌이겠는가!
당가의 생존자들이 아니라며 극구 부인을 했다. 문파의 명예가 달린 일이라 끝까지 부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죽어 버린 무인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더군다나 당문 내에 존재하는 독인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벼랑 끝에 몰리게 되었다. 명문정파 간에 서로 반목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혈풍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흑룡성을 공격한 정천맹의 주력이 전멸당했다. 안탕산에서 흑룡성의 계략에 휘말려 일방적인 패전을 한 이들이 천목산으로 들어가서 사라져 버렸다. 그 일대를 살펴보려고 했지만 불이 나는 바람에 확인이 불가능해졌다.
내부적으로 벌어지는 반목과 외부적으로 연이어 터지는 혈풍과 패배로 정천맹은 갈 곳 잃은 배가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