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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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60화
제2장 혈풍(血風) (5)
미로진은 제법 공을 들이기는 했어도 일각을 버티지 못했다. 진의 축을 무너뜨리자 미로진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정천맹의 무인들이 기세 좋게 다시 돌진했다.
정천맹은 흑룡성의 흔적을 쫓아 계곡의 중심부로 돌진해 들어갔다.
산의 막다른 길에 다다를 때였다.
우르르! 쿠꽈과과과광! 꽈과과꽝!
지축이 뒤흔들리는 폭발음이 들렸다. 계곡의 물줄기가 내려가는 지점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정천맹의 무인들은 폭발로 인해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산의 곳곳에 벽력탄이 매설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벽력탄의 위력은 정천맹의 무인들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 단순히 계곡을 막아두는 역할만을 했던 것이다.
“도망치기 위해서 별 수작을 다 부리는군!”
“어차피 이 일대를 벗어날 수도 없을 것이오!”
벽력탄은 다루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대량으로 구입하기도 힘들다. 막대한 화약을 임의로 제조했다가는 제국이 개입할 수도 있었다.
당관일은 여전히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다.
‘벽력탄을 이곳에서 왜 터뜨린 거지?’
도망치기 위해 벽력탄을 사용한다는 것이 수상했다. 미로진부터 시작해서 벽력탄까지의 연계가 전부 후퇴하기 위해서 짠 계획이라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상식적으로 그와 같은 방법이 있으면 적을 요격하는데 사용할 것이다.
다시 추격을 시작하려는 순간 또다시 폭발음이 들렸다.
우르르! 꽈꽈과과꽝! 우르르! 꽈꽈과과꽝!
산을 진동시키는 굉음이 신경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폭탄의 위력은 굉장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무인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무인들은 순간적으로 긴장을 했다가 원래의 신색을 찾을 수 있었다.
“어지간히 급했나 보군!”
“이런 것도 전략이라고 세운 건가!”
“사파놈들이 원래 그렇잖아!”
폭발할 시간과 지점이 틀렸다. 허둥지둥 도망치다 보니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무인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우우우우웅! 쏴아아아악!
“응?”
기척에 예민한 고수들부터 무언가를 느꼈다. 폭발이 터지기가 무섭게 지축을 뒤흔드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벽력탄이 터지는 것과는 달랐다.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무인들이 뒤흔들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였다.
“저…건!”
“피…햇!”
엄청난 양의 물이 계곡 전체를 휩쓸며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무인들은 갑작스런 천재지변에 한동안 몸이 얼었다.
계곡 물이 흐르는 정도의 양이라면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앞에 보인 것은 성을 통째로 집어삼킬 수 있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무인이라고 해도 이런 엄청난 양의 물은 재앙이었다.
당관일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사방이 막혀 있었다. 도망치기 위해 부쉈다고 생각한 계곡의 입구가 물이 흘러가는 장소였던 것이다.
이대로는 빠져나가기도 어렵다. 쏟아져 내려오는 물을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안탕산의 위에 있는 호수를 막아 놓았구나!”
물은 모일수록 위력적이다.
흑룡성은 물을 가둬놓고, 정천맹을 끌어들일 때까지 기다린 것이 분명했다.
벽력탄 2개를 허투루 낭비한 것이 아니라 정천맹을 방심시키고, 유인하려는 작전으로 사용한 것이다.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치밀한 전략이었다.
“피…해야 한다!”
물은 삽시간에 무인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고수들은 사방이 막힌 지대 중에 낮은 곳을 찾아 신법을 전개했다.
솨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악!”
무인들의 비명성이 산을 울렸다.
일반무인들은 수압에 휩쓸려 나갔다. 절정 이상의 무인들만이 비탈진 능선을 타고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올라선 장소에는 흑룡성의 무인들이 버티고 있었다. 빠져나갈 수 있는 곳에 무인을 배치한 것이다. 무인들은 전부 활을 들고 있었다.
다급하게 벗어나려는 무인들은 정신이 분산되어 있었다. 그 상태에서 쏟아지는 화살세례는 절정고수라고 해도 피하기 어려웠다.
슈슈슈슈슉!
푸욱! 푸욱!
흑룡성은 무인 대 무인의 대결을 펼치지 않았다.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그에 따라 작전을 펼쳤다.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주력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초절정의 고수들만이 화살세례를 뚫고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들도 상처를 입고 말았다. 정천맹 역사상 최악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당관일은 흑룡성의 무인들이 없는 반대쪽 지형으로 몸을 피하면서도 이를 갈았다.
“지…독한!”
신중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다. 탐색을 조금 더 했으면 놈들이 부리는 수작을 파악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기가 따라주지 않았다. 구파일방에 닥친 혈사로 인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여지를 주지 않은 것이다. 마치 하늘이 지독한 농간을 부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지옥 같은 참혹한 상황 속에서 무인들은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살려달라는 무인들은 쏟아지는 물의 수압으로 인해 압사를 당했다.
물의 힘은 굉장했다. 일류고수도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휩쓸렸다. 지상에서와 다르게 물에 빠진 무인은 허우적댈 뿐이었다. 발버둥을 쳐도 물은 악마의 손이 되어 무인의 발을 잡아당겼다.
“살…려!”
빨려 들어간 무인은 격랑에 휩쓸려 다시 올라오지 못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무인들도 초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흑룡성이 비탈진 능선을 포진하여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전멸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남아 있는 무인들을 이끌고 어떻게 해서든 안탕산에서 벗어나야 했다.
“와아아아아아아!”
물에 휩쓸려 나가는 정천맹의 무인들을 본 흑룡성의 무인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동안 당한 설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억눌렀던 울분을 통해내고, 자신감을 되찾았다.
담소극은 흑룡성의 대승을 기뻐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5천에서 절반이 넘는 무인이 죽었다. 정천맹의 정예무인과 부딪친 결과였다. 전략이 아니었다면 괴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실질적인 무력에서는 비교가 되지 못했다. 정천맹이 전투에서 죽은 수는 고작 7백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4배에 달하는 무인을 희생하고 나서야 이긴 전투다.
피를 밟고 서 있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이겼다. 승리한 전투를 발판 삼아 세력을 규합해 나가면 되었다. 흩어졌던 사파인들이 뭉칠 구실을 얻게 되었다. 단 한 번의 승리지만 그 어떤 승리보다 값지다 할 수 있었다.
“추적해야 합니다!”
“단 한 놈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담소극은 수하들의 분노를 느꼈다. 오랜 시간 쌓여온 원한이 극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실을 냉정히 살펴야 한다. 많은 수의 무인을 잃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정천맹은 강하다.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까지 쫓아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담소극은 적당히 추적하면서 흑룡성의 영향력을 넓히는데 주력하기로 결정했다.
* * *
사천무림의 실세이자 독의 종주세가인 사천당문의 현판이 반으로 쪼개졌다. 어둠 속에 스며든 검은 그림자가 폭풍이 되어 사천당문을 휩쓸었다. 바람은 빠르며 강했다. 사천당문을 지키고 있던 무인들은 반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심장이 꿰뚫렸다.
당문이 자랑하는 독과 암기가 검은 그림자에게 뿌려졌다. 구환살(九幻殺), 배심정(背心釘), 폭우이화정(暴雨梨花釘), 독질려(毒疾藜), 단혼사(斷魂沙)가 검은 바람을 저지하지 위해서 펼쳐졌다. 한 줌으로도 사람을 녹여 핏물로 화해 버리는 당문의 무시무시한 독이었다.
사천당문 자체가 독의 천지라고 할 수 있다. 절대고수도 당문 안에서도 살아나올 수 없다는 말이 있었다. 살아난다고 해도 독에 중독되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이도 당문을 공격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당문이 침입에 무너지고 있다.
흩날리는 독과 암기가 하늘을 까맣게 뒤덮었다.
퍼퍼퍼펑! 타타타탕!
비릿하고 역겨운 독향이 주변을 진동했다.
“막…아!”
“놈들을 막아!”
사천당문의 무인들이 흑영대를 막아섰다. 흑영대는 독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 독무를 뚫고 검을 뻗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검속은 당문의 무인들을 베어내었다.
주력이 빠져나갔다고 해도 당문은 당문이었다. 이처럼 일방적인 침략을 당할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흑영대는 공포와 같았다. 살아 있는 살인병기는 두려움 없이 적을 멸살하는 데만 주력했다. 당문의 무인은 흑영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사천당문의 가주 독군(毒君) 당문천은 눈앞에 펼쳐진 참상에 피눈물을 흘렸다. 소림, 화산, 종남 등 구파일방의 대문파가 당했다고 해도 당문은 상관하지 않았다. 당문의 독과 암기가 있는 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현실은 당문천의 확신을 완전히 뭉개버렸다. 살아 숨 쉬는 당문의 식솔들이 처참하게 학살당하고 있었다.
당문천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 만류귀원신공을 운용하여 연환십이참(連環十二斬)을 뿌렸다. 연사적으로 뿌려지는 연환십이참은 공력에 따라 암기와 암기간의 간격이 극히 짧다. 동선 자체가 한곳으로 뿌려지기에 막았다고 방심하는 순간에 벌집이 되어 버릴 수 있었다.
슈슈슈슉! 타타타탕!
뿌려지던 12개의 암기가 전후좌우로 거세게 요동치는 채찍의 곡선에 의해서 전부 튕겨 나가 버렸다. 연화십이참이 채찍의 회전력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튕겨 나간 연환십이참이 당문의 식솔들에게 날아가서 박혔다.
당문천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채찍의 용트림을 보았다. 채찍은 당문천도 익히 알고 있는 기물이었다.
“교…룡신편!”
당사혁의 독문병기, 교룡신편이었다.
당문천은 그것이 왜 복면인의 손에 들어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방금 보여준 수법은 금사편법의 나선풍(螺旋風)이었다.
당문천의 연환십이참을 한순간에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편법의 고수는 극히 드물다. 아니 당문 내에서도 금편독왕 당사혁뿐이다.
그러나 당문천은 복면인이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체형이 같고, 당문의 무공을 익혔다고 해서 침입자가 당사혁이 될 수는 없다.
“네…놈은 누구냐?”
“그런 소리 듣는 것도 지겹다.”
무진은 대답하기도 귀찮았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당문천의 신형을 교룡신편으로 휘감았다. 좌우로 휘청거리는 교룡신편의 움직임은 마치 살아 있는 교룡을 보는 것 같았다.
당문천은 암룡보(暗龍步)를 펼쳐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무진의 편법은 극에 달해 있었다.
휘리리릭! 차차착!
감겼다.
독아를 잔뜩 품은 독사가 먹이를 잡아채듯이 감아 올랐다. 다리에서 시작된 교룡신편이 타고 오르더니 당문천의 전신을 휘감았다.
“으으윽!”
입까지 가려진 당문천의 몸을 교룡신편이 조여 들어왔다. 교룡의 뼈를 갈아 만든 돌기가 당문천의 몸을 파고들어 왔다. 발버둥을 쳐봤자 무의미했다.
교룡신편은 당문이 제작한 최고의 기병이었다. 기운을 쓸수록 몸으로 파고들어 오는 힘이 강해졌다.
당문천의 위기를 본 당문십수(唐門十手)의 당기정이 소매 속에서 동그란 구슬을 꺼냈다. 손바닥을 채우는 구술의 끝에는 잡아당길 수 있는 실이 있었다. 실을 잡아당기면서 던지자 구슬이 폭발을 일으켰다.
파아아앙! 파파파파팟!
구슬이 터지면서 5백 개나 되는 강침이 무진을 향해 날아갔다.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보였다.
구슬은 당문이 자랑하는 천뢰구(天雷球)였다. 폭발과 동시에 강침이 발사되어 육체는 물론 호신강기까지 뚫어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귀찮게 하는군.”
무진의 손이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이 휘둘러졌다.
강력한 바람이 불었다.
휘이이이잉!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바람은 천뢰구의 강침을 모조리 다 날려버리고도 남았다. 되돌아오는 강침을 본 당기정은 기겁하며 물러섰다.
“말…도! 커억!”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라 그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즉사를 당했다. 오히려 주변의 무인들까지 강침에 맞아 절명했다.
당문은 지나가는 관문에 불과했다. 호북성의 무당파와 제갈세가를 칠 줄 알고 있었던 정천맹에서는 모든 정보망과 무력을 무당파에 집중한 상태다. 더군다나 사천당문의 경우 독을 다루는 세가이기에 다른 문파보다 안전할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무진은 그런 예상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당문을 공략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무진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리고 무진은 정천맹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보고 있었다. 북리중천이 정천맹의 맹주대리를 하고 있는 이상 무진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
우드드득!
당문천의 몸이 오그라들어 버리고 말았다. 살이 베어지고 뼈가 박살났다. 더 이상 살아 숨 쉬지 못했다.
무진은 당문을 부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당가의 외당을 지나 내당의 깊숙한 비지, 만천독지(萬天毒止)로 걸어 들어갔다.
당문이 연구한 모든 독의 총화가 여기에 숨 쉬고 있었다. 대기에 흐르는 기운 자체가 독이었다. 일반적인 무인은 들어가는 즉시 혈수로 변해 버렸을 것이다.
뿌연 독무로 인해 한 치 앞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지극독무(地極毒霧)를 뚫고 안으로 들어간 무진의 눈동자가 빛을 내었다.
무언가가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검은 인형이 무진을 향해 쏘아져 왔다. 목과 가슴을 찍어 들어왔다. 독에 맺힌 기운이 완연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독의 절대경지에 들어서야만 만들어 낼 수 있는 독강(毒剛)이었다.
독강의 위력은 강기를 사용하는 자들조차 경계를 해야 하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독강을 타고 흐르는 기운이 육체를 중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푸른빛을 띠는 독강은 쾌속했다. 당문의 독천비강수(毒天飛剛水)였다. 일단 스치기라고 하는 날에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씨익!
무진의 입가가 약간 뒤틀렸다. 당문에 독강을 사용하는 자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렇다 해서 당황한 것은 아니다. 의외의 일에 흥미가 동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