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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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57화
제2장 혈풍(血風) (2)
목이 없는 시체가 늘어나고 있었다. 핏물이 화산파의 넓은 대연무장을 붉게 만들었다.
화산파의 전 무인이 대연무장을 중심으로 복면인을 포위하듯이 모였다. 족히 7백에 달하는 무인들이었다.
화산파의 무인들은 분노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동료였던 이들이 처참하게 죽어 버린 것이다. 어찌 참을 수 있단 말인가!
화산의 장문인 매화검군(梅花劍君) 육선종은 흑영대가 소림을 무너뜨린 놈들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소림에서 전해온 정보에 의하여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다. 분노만으로 상대하다가는 화산이 소림과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었다.
“대천강매화검진을 펼쳐라!”
대천강매화검진(大天剛梅花劍陣)은 화산파 최고의 검진이다. 구궁검진(九宮劍陣), 오행검진(五行劍陣), 사상검진(四象劍陣), 육합검진(六合劍陣)의 위력을 하나의 검진으로 승화시킨 화산 검진의 정수였다. 화산의 절정검수들이 펼치는 검진으로 소림의 백팔나한진을 능가한다 자부하고 있었다. 방진보다는 적의 멸살에 중점을 둔 검진이라 무척이나 패도적이고 위력적이었다.
육선종은 결코 태만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머지 무인들은 오행매화검진(五行梅花劍陣)을 펼치게 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하도록 했다. 그와 동시에 삼청궁(三靑宮)과 현천궁(現天宮)의 원로고수들에게 적의 수뇌를 격살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화산파의 원로고수 중에서도 가장 강한 태청오노(太淸五老)까지 불렀다.
육선종의 대처는 나쁘지 않았다. 화산파를 쳐들어온 적의 수가 적다 하나 그들 모두 범상치 않았다. 안일한 대처는 위험하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육선종은 흑영대를 보자 소름이 돋았다. 개개인의 실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검진을 형성한 화산파의 무인들이 속절없이 당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검법과 검진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소림에서도 이와 같은 경험을 했다고 했다. 소림의 무공원류가 유출되었다는 것을 들었을 때는 화산의 무공이 아닌 것에 안심을 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화산은 소림과 같은 처지를 당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단순히 유출된 것이 아니라 극상성의 무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화산의 화려하고 날카로운 검속이 유지되기 위해서 필요한 사전동작을 미리 파악하고 끊어버리니 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침입자들의 무력까지 출중해서 일방적으로 밀렸다.
“매화검수는 어서 나서서 적을 막아랏!”
대천강매화검진과 오행매화검진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그것이 다였다. 검력이 발출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화산파를 대표하는 매화검수들이 나서서 흑영대의 무력을 요격하기 시작하자 좀 전과 같은 학살은 벌어지지 않게 되었다.
육선종도 놈들의 수뇌를 죽이기 위해서 검을 들었다.
채채채채챙!
검과 검이 부딪치며 공명음이 시끄럽게 울렸다. 대결이 좀 전부터 평행선을 긋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자색의 기류가 용권풍이 되어 솟구쳐 올랐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자색와류는 강맹한 힘을 퍼뜨렸다. 완연한 자색 와류와 매화의 짙은 향기는 무인들을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무진이 대천강매화검진의 중심에 섰다. 무진의 등장에 흑영대는 재빠르게 좌우로 길을 텄다.
무진은 자색의 기류를 퍼뜨리면서 검강을 뿌렸다. 매화의 절대적인 향이 밤의 대기마저 취하기 만들었다. 무진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졌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차가운 눈빛은 서늘한 기운을 뿌렸다.
“쓸어주지.”
무진의 검이 한순간에 매화의 꽃잎을 그려내었다. 폭풍에 흩날리는 매화꽃의 사나운 춤사위가 쏘아져 나갔다.
흩날리는 매화꽃잎을 맞은 무인은 가슴이 한 자 이상 뚫린 채 절명했다. 기겁한 무인들이 매화꽃잎을 막으려고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무진이 형성한 매화꽃잎은 강기의 수준에 달해 있었다. 절정고수조차 막아낼 수 없는 매화이십사수검법의 총화인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이었다. 휘날리는 꽃잎과 함께 퍼지는 진한 매화의 향기는 죽음의 향기와 같았다.
“매…화만리향이라니!”
매화이십사수검법은 화산파 무공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화산의 무공은 전부 매화이십사수검법에서 파생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반부 12초식까지는 재능이 있다면 익힐 수 있다. 그러나 후반부 12초식은 평생을 걸려도 완성해 내기 어려운 초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육선종조차도 저처럼 선명하고, 화려한 매화만리향은 불가능했다. 육선종의 뒤에 자리한 태청오노조차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진이 매화삼절검형의 최강초식인 매화만검(梅花萬劍)을 펼쳐 대천강매화검진을 휩쓸었다.
휘리리리릭! 푸아아아아아앙!
벽력탄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진천뢰력탄(震天雷力彈)이 터진 것 같은 위력을 선보였다.
대연무장의 반경 20장에 달하는 곳이 소멸되었다. 그 중심을 구성하고 있는 대천강매화검진의 무인들 중 삼분지 이가 사라졌다. 남아 있는 것은 움푹 들어간 연무장과 부서진 파편뿐이다.
모두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육선종과 태청오노가 나서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그들이 나섰다고 해도 막아낸다 자신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저와 같은 위력을 낼 수 있는 검법은 흔하지 않다.
또한 완연한 자색 기류와 짙은 매화향이 뜻하는 바는 한 가지였다. 검을 시전한 자는 그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라는 소리였다.
“아…버지! 도대체 왜?”
육선종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육진풍이 변심했다는 것을 들었지만 결단코 믿지 않았다.
무진은 공황상태에 빠진 무인들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았다. 그가 뿌리는 검력에 화산의 무인들은 검조차 휘둘러보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었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못했다. 대천강매화검진이 무너지자 흑영대의 무력을 막아낼 수 있는 방패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육선종을 뒤로하고 태청오노가 나섰다. 태청오노는 화산을 지탱하는 버팀목과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 개개인의 무력이 초절정을 상회한다고 알려졌다.
태청오노가 검을 뽑아 나서려는 때에 흑영1호 단유성이 막아섰다. 태청오노는 무진을 제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야 전투가 끝이 날 것이다. 막아서는 놈들을 빨리 처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단유성이 이끄는 흑영대는 보통이 아니다. 이들은 흑영대에서도 상위서열의 존재들이다. 개개인의 무력이 태청오노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
카카캉! 퍼펑!
검력과 검력을 부딪치며 공방전이 펼쳐졌다. 쉽지 않은 승부였다. 태청오노는 검력을 타고 전해지는 흑영대의 놀라운 위력에 경악했다. 반백년 이상을 수행한 공력에 비해 절대 부족하지 않은 공력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놈들이!”
복면을 했다 하나 체형과 눈빛을 보면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서른을 넘기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태청오노가 경악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대로 성장을 계속한다면 흑영대는 강호의 어떤 무력집단도 넘볼 수 없는 존재들이 될 것이다.
육선종의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는 최대한 냉정을 찾으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육진풍이 이런 일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육진풍이 지닌 배경만 해도 강호제일이었다.
침착하게 생각하자 진실이 조금씩 보였다. 그에게 다가오는 자의 무공이 비록 화산의 절기이기는 하나 육진풍과 같지는 않았다. 우선 눈빛이 완전히 달랐다.
“너…는 아버지가 아니다!”
“자식이라서 그런지 제법 눈치가 빠르군.”
무진은 순순히 인정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네…놈은 누구냐?”
육선종이 악을 쓰듯이 소리쳤다. 그러나 육선종은 모르고 있었다. 무진과 육선종의 주변 전체가 기막(氣膜)으로 뒤덮여 있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 소리를 지른다고 해도 누구도 들을 수 없다.
육선종은 소리를 지르고 난 후에야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무슨? 설마?”
“머리를 굴려봤자 소용없다.”
“말…도 안 되는 짓을!”
육선종은 소름이 끼쳤다. 눈앞의 존재가 육진풍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초절정고수가 주변에 기막이 펼쳐진 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천외지경(天外之境)의 고수라고 해도 이런 황당한 수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무척이나 젊었다. 전설의 반로환동으로도 설명이 부족했다.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상황을 겪은 이들의 반응은 한 가지뿐이다.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할 수 없다.”
“상관없다.”
“도…대체 왜 이런 참혹한 짓을 벌이는 것이냐?”
화산이 도대체 무슨 짓을 했다고 이다지도 잔인한 혈사를 벌이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우월주의에 빠져서 자신들의 잘못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겠지.”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것이냐?”
“어차피 네놈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잘못과 허물은 쉽게 잊혀 버리는 작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당하는 자는 그 작은 것에 의해 커다란 절망을 겪는다. 이들은 오로지 자신들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과거의 무진이었다면 크게 화를 냈겠지만 지금의 무진은 달랐다. 화를 내되 방법이 그릇되었다 생각하지 않았다. 저들이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자신도 똑같이 행동하면 그만이다. 오늘 화산이 무너지는 것은 무진에게 잊혀 버린 과거에 불과한 것이다.
“내 세상에 화산은 없다.”
“그…런.”
“지워주지.”
“그…럴 수는 없다!”
육선종이 발악하듯 무진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몸에서 자색의 기류가 형성되었다. 자하신공의 영향으로 형성된 독특한 기류와 향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하지만 무진의 자색 기류는 육선종과 비교불가였다. 선명함과 힘의 여력에서 차원이 달랐다.
무진은 육선종의 검강이 지척까지 뻗어옴에도 불구하고 어떤 동작도 취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는 공격으로 여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육선종은 무진이 방심하고 있다고 여겼다. 회심의 절초였다. 태청무극검법(太淸無極劍法)의 쌍검무극(雙劍無極)이었다. 검속에 스며든 또 하나의 검이 실체라고 할 수 있다. 방심하지 않는다고 해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절대고수도 이러한 간격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고 확신했다.
“끝이닷!”
슈우우웅!
피륙을 꿰뚫었다. 검끝에서 기세가 갈라지는 것을 느꼈다. 육선종은 검격이 성공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매…화뇌섬!”
매화이십사수검법 중에 가장 빠르다는 매화뇌섬(梅花雷閃)이 육선종의 미간에 손톱보다 작은 매화 꽃잎을 수놓았다.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그는 인식하지도 못했다. 그저 빠름이 극에 달해 있을 뿐이었다.
털썩!
육선종의 신형이 허무하게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자는 돌아보지 않는다. 무진이 육선종을 쓰러뜨릴 때 태청오노도 단유성과 흑영대에게 죽임을 당했다. 서로가 대등한 실력이라고 해도 절기의 파해식을 사용한 이상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흑영대가 화산파의 무인들 대부분을 처리한 직후, 무진은 화산의 전각과 진산기물을 모조리 다 불태워 버리라고 명했다.
무진은 손에 쥐어진 화산의 장문영부 매화검령(梅花劍令)을 보다가 등을 돌렸다. 화산이 불타 버린 것은 큰 그림 속의 한 장면에 불과했다. 작은 일에 쉽게 감흥을 느낄 무진이 아니었다.
무진은 부서진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늦은 시각 화산으로 올라가던 육여은과 일행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화산의 초입부터 누군가의 침입으로 인해 무인들이 죽어 있었다.
큰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녀와 일행은 신법을 전개해서 화산파로 향했다.
위로 올라갈 때마다 주변에 시체가 널려 있었다. 단 일검에 당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감히 화산파에 쳐들어오다니!”
그녀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벌어진 것이다. 그것은 진사성, 조옥당, 옥수겸도 마찬가지였다. 구파일방의 한 축이자 검종무맥의 절대검문으로 통하는 화산파를 쳐들어온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서둘러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화산파에 올라섰다.
제일 처음 그들의 눈에 띈 것은 부서진 정문이었다. 서둘러 계단을 올라 정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에 띈 참혹한 장면에 그들은 얼이 빠져 버리고 말았다.
화산파가 불타고 있었다. 곳곳에 죽어 있는 시체들 전부가 화산파의 무인들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건 꿈이야!”
현실을 인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화산파가 하루아침에 불타 버릴 것이라 어느 누가 예상할 수 있단 말인가! 거짓말 같은 현실을 지켜보게 된 육여은과 일행들이었다
활! 활! 활!
불은 용트림을 하듯이 솟구쳐 올라 밤하늘을 밝게 비추었다. 일렁이는 불빛 속에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복면을 한 이는 불타는 화산파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서릿발 같은 한기를 몰고 왔다.
그가 얼이 빠져 있는 육여은, 진사성, 조옥당, 옥수겸을 보았다. 그들은 복면인의 눈빛에 오싹함을 느꼈다. 몸이 얼어붙어 버릴 것 같은 한기였다.
복면인은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 복면을 벗었다. 드러난 복면인의 모습은 그들에게 경악감과 당혹감을 선사했다.
“아…니?”
육여은, 진사성, 조옥당, 옥수겸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그를 보았다. 2시진 전까지 그들에게 고개를 수그리며, 성의 표시까지 했던 존재가 버젓이 나타났다.
“네…놈이 여길 어떻게?”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되나 보지?”
화산파가 불타고, 처참하게 죽어 있는 화산파의 무인들이 가득했다. 그에 반해 복면을 한 자는 태연하게 걸어 나와 당당하게 복면을 벗었다.
그들도 눈이 있으니 모를 리 없다. 다만 인정하기 힘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로 다시 돌아온 그들은 격렬히 분노했다.
“설마 네놈이 이런 짓을 한 것이냐?”
“감히 상인 따위가 화산파를 건드리고 무사할 것이라 여기는 것이냐!”
그들은 무진을 향해 지독한 살의를 뿜어내었다.
“화산을 건드린 죄는 죽음보다 더하다!”
진사성, 조옥당, 옥수겸이 검을 뽑아 무진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