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56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56화
제2장 혈풍(血風) (1)
-매화객잔(梅花客棧).
매화객잔은 섬서성 화음현(淮陰縣)에 위치하며, 객잔 주변에 매화나무가 운치 있게 자리하고 있어 봄이 되면 매화꽃이 만발한다. 화사한 자주색의 매화꽃잎이 날릴 때는 객잔 전체가 꽃잎에 둘러싸인 것처럼 화려한 절경을 자아낸다.
또한 매화나무에서 열리는 매실로 담근 차와 술이 일품이라 회음현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유명한 객잔이다.
3층 객잔 위에 창문을 끼고,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3명의 청년은 객잔 최상층에 올라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청년들은 약관을 갓 넘어 보이지만 범접하지 못할 분위기를 풍겼다.
“맛이 괜찮군.”
매화객잔의 식사는 수준급을 넘어 굉장한 맛을 내었다. 화려한 매화와 어울리는 맛이었다.
무진은 잘 버무려진 재료와 양념의 적절한 비율이 마음에 들었다. 제법 요리를 할 줄 아는 자가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진의 옆에는 밀영1호 차중천과 흑영1호 단유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슬슬 시간이 되어 가는군.”
해가 산의 능선 아래로 넘어가려는 시각이다. 조금만 지나면 해가 진다. 무진은 밤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무진이 차중천과 단유성을 보았다.
“둘은 처음이겠지.”
“그렇습니다.”
“예.”
단유성과 차중천이 서로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차중천은 흑영대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기에 그리 놀라는 기색은 아니었다.
반면에 단유성은 차중천을 보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호적수를 만났다기보다는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에 대한 두근거림이었다. 무진을 만났을 때와는 다른 감각이었다.
단유성은 또 한 번 깨달았다. 무진은 단순히 무력만 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세상에 나와 보니 무진의 세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천하상계의 지배자이면서 차중천과 같은 무력집단을 가지고 있다. 천하는 알지 못하는 어둠의 절대자였다.
3층은 한산한 편이다. 이곳에서 식사를 할 정도의 부를 가진 자들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객잔 위로 올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3남 1녀로 무공을 수련한 무인이었다.
3층으로 올라온 무리가 창가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무진 일행을 보았다. 붐비는 1, 2층과는 다르게 손님이 별로 없는 곳이라 시선이 마주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눈 꼬리가 약간 올라간 것을 제외하고는 미인의 축에 속하는 여인이 무진 일행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불구하고 무진 일행은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몹시 못마땅한 그녀였다.
어느 누구에게도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그녀였다. 하찮은 자존심일지 모르지만 여인의 자존심은 때론 말도 안 되는 억지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저 자리로 하겠어.”
“하… 하지만 손님이 계신데.”
“그래서 내 말을 이행하지 못하겠다는 거야!”
언성이 높아지자 점소이가 두려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이 일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화산파의 여인이었다.
화산파 내에서는 검종(劍宗)의 맥을 이끌고 있는 장문인의 금지옥엽, 화산일화(火山一花) 육여은이었다. 그의 할아버지가 변심했다는 강호의 소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중하고는 있는 편이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빠악!
쿠다당!
망설이는 점소이를 치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육여은에게 잘 보이려고 미리 손속을 과시했다. 나머지 청년들은 내심 선수를 빼앗긴 것을 안타까워하는 듯했다.
화산파는 검문 이전에 도가의 맥을 잇고 있다. 정신적인 수양을 목적으로 탄생한 곳이 화산파다. 그러나 이제는 검의 재능과 지닌 배경만으로 사람을 선택하고 있었다. 인성의 수양이 덜된 것이다.
점소이는 바닥에 쓰러졌다가 간신히 일어났다.
“빨리 가서 자리를 만들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
“아…알겠습니다!”
점소이는 서둘러서 무진에게 다가왔다. 더 이상 망설였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맛보았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벌벌 떠는 점소이를 보며 여인과 청년들은 하찮은 벌레를 보는 듯이 비웃고 있었다. 그들은 육여은과 같은 화산파의 이대제자들인 진사성, 조옥당, 옥수겸이었다. 젊은 나이에 이대제자의 항렬에 든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자존심과 명예욕이 강하다는 뜻도 되었다.
애초부터 육여은이 점소이에게 화를 낸 것도 무진 일행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 소란이 벌어지면 어쩔 수 없이 쳐다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무진 일행은 관심을 두기는커녕 돌아보지도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육여은은 조금씩 열이 받았다. 모든 이들의 관심을 받아오며 살아온 그녀에게 무관심은 모욕과 같았다.
‘흥! 좋아.’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물러서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육여은은 점소이의 요구에 그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저… 손님, 자리를 좀 양보해 주시겠습니까!”
점소이가 절박한 심정으로 부탁을 해왔다. 여기서 자리를 양보해 주지 않으면 화산파의 무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애꿎은 손님들까지 피해를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무진이 점소이를 돌아보았다. 약하기에 무력하게 행동했다. 사내로서 당당하지 못하고, 바지에 실례까지 하려고 한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못한 점소이라 할지라도 억울하고 분할 것이다. 그렇지만 점소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스스로 변하지 않는 이상 세상은 무엇도 이룰 수 없다. 언제나 점소이로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사실 무진 일행은 보지 않아도 육여은이 무슨 의도로 저러는지 알고 있었다. 한없이 떠받들어진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고 여기기에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렇지 않을 일이 우월주의에 빠진 자들에게는 다른 시각으로 다가온다.
“그러지.”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자리를 옮겨 드리겠습니다!”
“식사는 됐고, 차나 한 잔씩 가져와라.”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점소이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의외로 무진은 흔쾌히 자리를 양보했다. 단유성이 놀라는 반면에 차중천은 분노했다. 그는 전신으로 퍼져 나오는 살기를 억지로 참고 있었다.
차중천에게 무진은 하늘이다. 건방진 계집 따위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다. 생각 같아서는 단숨에 쳐 죽어 버리고 싶었다.
무진이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옮겨서 앉으려고 하자 육여은이 다가왔다. 육여은에게서 오만함이 묻어 나왔다. 멋모르는 놈들이 화산파라는 것을 알고 물러섰다는 것에 만족한 듯한 표정이다.
다만 육여은을 따르는 청년들은 불만이 가득했다. 육여은이 관심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잘 생각했어.”
“식사를 마쳐서 자리를 내준 것뿐입니다. 그러니 마음에 담아 두지 않으셔도 됩니다.”
단유성이 대답했다. 무진과 차중천이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는 반면에 단유성은 호탕하게 잘생겼다. 전설 속에 나오는 송옥과 반옥에 견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사내다운 모습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무진은 일부러 단유성에게 대화를 맡겼다. 어찌하나 지켜볼 요량이었다.
단유성은 최대한 좋게 마무리를 하려고 했다. 그녀의 행동이 불쌍하고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은 생사의 기로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반면에 육여은은 부드러우면서 정중한 단유성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어떤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식사를 다해 자리를 내준 것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었다.
“그 말은 식사를 마치지 않았으면 양보하지 않았다는 거야!”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여인 특유의 반발심이 작용하고 있었다. 사내의 관심을 이끌어 내거나 그에 준하는 보상을 받으려는 심리였다.
“입 다물어라! 감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그따위 오만한 행동을 하는 것이냐!”
때마침 기회를 잡은 진사성, 조옥당, 옥수겸이 단유성을 위협하듯이 몰아붙였다. 그들은 단유성의 조각 같은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육여은이 단유성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육여은은 진사성, 조옥당, 옥수겸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단유성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려는 것이었다.
단유성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렇게 들렸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전혀 그런 뜻으로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마음을 푸시기를 바랍니다.”
정중하게 말하는 단유성의 말투에 진사성, 조옥당, 옥수겸은 그가 겁을 먹고 꼬리를 만 것이라 여겼다. 조금 더 몰아붙이면 살려달라고 구걸하게 될 것이라 보았다.
“그럼 사과를 해야지.”
“무슨?”
“교만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빌란 말이야!”
“어찌 그런!”
적반하장도 유분수로, 이들이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자 단유성은 어이가 없었다.
육여은은 단유성의 비굴한 모습에 흥미를 잃었다. 조금은 반항을 할 줄 알았건만 너무 저자세였다. 단지 얼굴만 잘생긴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육여은의 신경을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저놈들은 뭐야?’
단유성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옮겨 태연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무진과 차중천이 이상하게 보였다. 동료가 위험한데 저리 태평하다니 관계가 수상하기까지 했다.
“사과할 수 없습니다. 무슨 잘못을 했다고 용서를 빌란 말입니까!”
“네놈이 감히 화산파의 무인을 기만하고도 죄를 모르겠단 말이냐!”
“기만이라 함은 상대를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제가 언제 기만을 했단 말입니까! 순순히 자리를 양보한 것이 그리 큰 죄가 된단 말입니까!”
“이…놈이! 감히!”
말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판단한 진사성이 손을 들어 올렸다.
짜아아악!
단유성의 고개가 크게 돌아갔다. 입술이 터져 핏물이 흘렀다. 진사성의 손이 단유성의 뺨을 가격한 것이다.
하지만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단유성의 고개가 좌우로 계속 돌아갔다. 사내라면 뺨을 맞는다는 것 자체를 수치스럽게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당한 단유성을 보며 조소를 띠는 진사성이었다.
조옥당, 옥수겸도 단유성의 비참한 모습에 비릿한 조소를 보냈다. 육여은은 더 이상 단유성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무공을 지니지 않은 사내는 그녀에게 별다른 호감을 주지 못했다.
단유성은 뺨을 맞으면서 화가 치솟았다. 되도록 마찰을 빚지 않으려고 했는데 세상은 그리 쉽게 놔주지 않았다. 말로써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초절정을 넘어선 고수가 고작 일류고수도 되지 못한 애송이게 뺨을 맞다니 상식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손을 쓰지 못했다. 무진이 전음을 날렸기 때문이다.
[그냥 맞아라.]
단유성의 뺨이 붉어지도록 맞고 있을 때 무진이 일어섰다. 육여은 일행에게 신분을 밝히고 정중히 사과를 청했다.
“화산파의 협사님들께 무례를 범해 천무상회의 이름으로 정중히 사과를 드리는 바입니다.”
“음!”
천무상회가 거론되자 육여은과 일행은 표정이 조금 변했다. 오랑캐 상단이며 중원무림을 무시한 상단이기는 하지만 천하제일상단이라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천무상회는 정천맹에도 막대한 자금을 보내고 있었다. 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천무상회를 드러내놓고 적대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이번 일은 억지성이 다분했다. 천무상회에서 본격적으로 물고 늘어지면 화산파로써도 좋다 할 수 없다. 먼저 정중하게 화해를 했으니 적당히 받아주는 것이 나았다.
일이 커지는 것은 육여은과 일행도 원하지 않았다. 다만 확실하게 해둘 필요는 있었다.
“앞으로는 경거망동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아무리 천무상회라고 해도 화산파를 무시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
“물론입니다. 그리고 사과의 표시로 작지만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무진은 육여은에게 금과 보석으로 세공된 목걸이를 주었다. 오밀조밀하게 세공이 된 목걸이의 겉은 은은한 광택과 더불어 화사함을 선사해 주었다. 척 봐도 상당히 고가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육여은은 무인이기 전에 여인이었다. 선물까지 받고 끝까지 물고 늘어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작 목걸이로 넘어갈 수 있다고 보는 거야!”
“가까운 시일에 좀더 성의를 표시하겠습니다.”
“좋아, 그대의 성의를 생각해서 오늘은 이 정도로 넘어가지.”
“여협의 관대한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무진은 최대한 성의를 표시함과 동시에 식사비까지 객잔에 지불해 주었다.
육여은은 좀전까지 태평하게 행동했던 무진과 차중천의 행동을 잊어버렸다. 무진이 준 목걸이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진사성, 옥수겸, 조옥당도 육여은의 성향을 알기에 더 이상은 나서지 않았다.
돌아선 무진은 웃지 않았다.
‘육영기가 내 손에 당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까짓 목걸이에 잊는단 말인가.’
화산파와 천무상회는 원수지간이나 마찬가지다. 당당한 비무였기에 따지지는 못하지만 결코 좋다 할 수 없다.
무진은 매화객잔을 나왔다. 그 뒤를 차중천과 단유성이 따랐다.
단유성은 무진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 줌도 되지 않는 벌레를 이처럼 관대하게 처분하는 것은 무진의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온전히 죽여주는 것도 무척이나 관대한 아량이었다.
“할 말이 있나?”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뭐가?”
“그들…….”
단유성은 차마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기는 힘들었다. 그것은 차중천도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이었다. 주군의 성향을 제법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후후!”
무감각한 웃음소리가 오히려 서늘하게 느껴졌다. 무진은 말없이 웃다가 입을 열었다.
“조금쯤은 유희가 필요하겠지.”
뜻이 분명하지 않다. 그렇지만 단유성과 차중천은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밤이 가기 전에 벌어질 일에 비하면 지금 당한 것은 별것 아니다.
단유성은 무진이 결코 호의를 베푼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과연 그들은 오늘밤에 벌어질 일을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인가!
단유성은 무진의 호의가 소름끼쳤다.
* * *
중원오악(中原五岳)의 서악(西嶽) 화산(華山)의 연화봉(蓮花峰).
중원무림의 검문일맥의 중심에 서 있는 곳이자 무당파와 더불어 검의 절대종주검문으로 이름이 높은 화산파가 위치해 있다. 연화봉 정상의 상궁(上宮)과 옥녀지(玉女池)를 중심으로 발생한 화산파는 도가와 검가의 맥을 이으며 발전을 해왔다.
밤늦은 시각 화산파의 정문이 갈가리 부서져 파편으로 화해 있었다. 검은 복면을 한 무리는 정체를 숨기지 않고 정면으로 쳐들어갔다. 정문을 지키고 있던 화산파의 무인들은 산송장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뎅! 뎅! 뎅!
한밤의 정취를 깨우는 비상종이 시끄럽게 울렸다. 검은 바람이 종을 울리고 있는 화산파 무인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커억!”
목이 서서히 갈라지더니 핏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검은 바람은 무서울 정도로 빨랐다. 화산파의 무인들이 진형을 갖추기도 전에 100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들 대부분이 변변한 반항도 하지 못했다.
검은 폭풍의 사나운 기세가 화산파 전체를 감쌌다. 화산파의 정예무인들이 다급하게 나타났다. 검천각(劍天閣)의 각주 구궁검(九宮劍) 노상학은 복면인들이 벌이는 참살(慘殺)에 노호를 터뜨렸다.
“웬 놈들이냐! 감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살수를 펼치는 것이냐!”
복면인들은 노상학의 외침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무인들을 도륙했다. 노상학의 표정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이놈들!”
노상학과 검천각의 무인들이 복면인들을 막아섰다. 노상학의 검에서 구궁검법(九宮劍法)이 뿌려졌다. 아홉 방위를 차단하는 구궁검법은 적의 검로를 막아내고 흐름을 끊어버리는데 탁월했다.
하지만 흑영대의 검속은 아홉 방위를 넘어서는 검광을 뿌리고 있었다. 일시에 뻗어나간 검은 어둠을 조각조각 잘라내었다.
쉬시시식!
서걱!
화산파를 구성하는 2궁, 5각, 7당 중 5각에 속하는 각주 노상학의 어이없는 최후였다. 구궁검법 하나만으로도 화산파내에서 50위 안에 드는 고수가 일검도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검천각의 무인들도 흑영대에게는 일방적인 도륙 대상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