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3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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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322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322화
심판의 검 (4)
“또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귀찮아하는 티를 조금도 감추지 않는 니첼라의 모습에 비두시아가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다.
“얼마 만에 온 건데 너무하는 것 아냐?”
“날 찾아왔던 게 10년 전도 아니잖아?”
10년도 채 되지 않았으면 꽤나 자주 보는 거라 여기는 니첼라였다.
“그걸 말이라고…….”
비두시아는 툴툴- 거리면서도 니첼라의 맞은편에 앉았다.
내심 그냥 돌아갔으면 싶었던 니첼라로서는 아쉬웠지만, 자리까지 차지한 이상 자신을 찾아온 목적이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용건이 뭐지?”
“요즘 마계에 이상한 소문이 도는 거 알고 있어?”
“이상한 소문?”
전혀 모르겠다는 투로 니첼라가 반문하자 비두시아가 모르는 척 시치미 떼지 말라며 코웃음을 쳤다.
비두시아가 알고 있는 마왕들 중 니첼라만큼 정보에 빠른 존재는 없었다.
다시 말하면, 니첼라는 마계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을 거의 다 알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정확하게 모든 소문에 대한 진의를 파악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이러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라는 내용은 빠짐없이 챙기고 있을 정도로 꼼꼼한 성격이었다.
“자바하부터 시작된 것 맞지?”
“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저히 못 알아듣겠군.”
“니첼라! 이건 너와 나, 아니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라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비두시아가 화를 내자 그제야 니첼라가 앉아 있던 자세를 바꾸며 입을 열었다.
“비두시아, 누가 먼저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누군가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거지.”
이제야 진심을 보인다는 사실에 비두시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그 누군가가 누군데? 비첼라, 당연히 알고 있겠지?”
“몰라. 워낙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어서 좀처럼 꼬리를 잡을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상당한 위험한 존재라는 거다.”
“위험하다고? 그래봐야 뭐가 얼마나……!”
“메카르만이 당했다.”
“…뭐?”
비두시아가 두 눈을 끔뻑거렸다. 그 모습에 니첼라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저, 정말이야? 메카르만이 당했다는 거?”
“그래.”
“…말도 안 돼!”
서열을 무시하는 마왕, 제 능력에 비해 너무나도 하찮은 권력을 누리는 마왕이 바로 메카르만이다. 그런데 그런 메카르만이 쥐도 새도 모르게 당했다는 사실이 비두시아로서는 결코 믿겨지지가 않았다.
“상위 서열 마왕들도 알고 있는 거지?”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겠지.”
“몰라서는 안 되는 일이잖아!”
할 수 있다면 니첼라 네가 직접 상위 서열 마왕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냐는 비두시아의 외침이었다.
“다짜고짜 찾아가서 말하라고? 내가 왜?”
니첼라가 냉랭한 표정으로 비두시아를 노려봤다.
범인의 꼬리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상위 서열 마왕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누군가 하위 서열 마왕들을 죽이고 있으니까 도와달라고는 식으로 말이라도 하라는 뜻인가?
니첼라로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비두시아 역시 생각해보니 같은 마왕으로서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기에 자신이 니첼라에게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내가 실수를 했어. 진심으로 사과할게.”
“두 번 말하지 않아. 말을 하기 전에 생각이라는 걸 한 번 해. 다시는 비두시아, 너와 대화라는 걸 하고 싶어지지 않을 지도 모르니까.”
여전히 차가운 니첼라의 표정에 비두시아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니첼라가 표정을 풀며 말했다.
“어쨌든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누구인지 알 순 없지만, 분명한 건 우리 쪽 마왕들을 목표물로 삼고 있다는 건 분명한 거니까. 문제는 메카르만까지 잡을 정도로 상대가 만만하지 않다는 거다.”
“그러니까 상위 서열 마왕들이 하루라도 빨리 움직여야지.”
“나 외에도 이번 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상위 서열 마왕이 분명히 있을 거다. 우선은 그들이 먼저 움직이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답답하더라도 같은 마왕으로서의 자존심이 우선인 니첼라였고, 비두시아 역시 그 부분에 있어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누굴까?”
“우리와 다른 길을 가는 마왕이겠지.”
마신 라시온이 아닌 다른 마신을 섬기는 마왕일 가능성이 99퍼센트라 여기는 니첼라였다.
그만큼 마계에서의 치열한 전투는 같은 마족, 마왕들끼리 벌어졌다.
아주 간혹, 천계의 천사들이 은밀하게 마계에 잠입해서 일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현재 마계와 휴전 상태라는 걸 생각하면 천사들이 먼저 움직였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반대로 말하면, 천사들은 그만큼 평화를 지지했고, 반대로 마족들은 전쟁을 원했다.
“설마, 전쟁이라도 하자는 걸까?”
비두시아의 말에 니첼라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여겼다.
마신 라시온의 위치가 견고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영원하지도 않았으며, 절대 무너지지 않을 자리도 아니었으니까.
즉, 언제라도 다른 마신이 라시온의 권좌를 빼앗겠다고 달려들어도 이상할 건 없는 일이었다.
“마수의 대지에서는 마족들이 당하더니 마계에서는 마왕들이 당하다니… 이걸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
비두시아의 말에 니첼라는 자신이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알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도 분명한 건 헬-라시온에서의 일은 자바하가 확실하게 끝을 냈다는 거지. 자바하가 움직이고 나서부터 잠잠해졌으니까.”
“그건 그렇지만, 그 일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전혀 다르니까.”
한낱 마족들이 죽는 것과 마왕들이 죽는 것을 비교할 수 없다는 비두시아의 말에 니첼라 역시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녀의 의견에 동조했다.
“범인이 누구든 이번 일은 쉽게 넘어갈 수 없을 거다.”
이건 명백한 도발이었기에 단순하게 마왕들을 죽인 범인만 잡는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배후를 정확하게 알아내고 그에게 모든 책임과 그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반드시 받아내야만 할 일이었다.
그 일을 상위 서열 마왕들이 할 것인지, 마신 라시온이 직접 나설 것인지는 배후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당분간 신세 좀 질게.”
“무슨 소리지?”
니첼라가 눈을 찌푸리자 비두시아가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뻔뻔하게 답했다.
“메카르만까지 당했다면서? 그럼 니첼라 너나 나나 모두 위험한 건 마찬가지잖아. 혹시 알아? 당장 내일이라도 메카르만을 죽인 놈이 쳐들어올지? 최소한 우리 둘이서라도 힘을 합쳐야 적을 막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 아냐?”
비두시아가 자신을 찾아온 진짜 목적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흐음.”
제 멋대로 찾아와서는 빌붙겠다는 비두시아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말이 틀린 건 없었기에 니첼라로서도 딱히 그녀를 쫓아낼 수가 없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녀가 자신의 마왕성에 머문다는 것이 한 편으로는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속내를 드러냈다가는 비두시아가 더욱더 기고만장해져서 제 멋대로 행동할 수도 있었기에 니첼라는 연신 인상을 찌푸리며 귀찮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비두시아의 말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36지역에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으며, 그들은 거침없이 마왕성을 향해 진격해왔다.
“몇 명이라고?”
니첼라의 물음에 마족 하나가 곧바로 대답했다.
“14명입니다.”
“정체는?”
“그게…….”
“본 그대로 말해!”
꾸물거리는 마족을 향해 니첼라가 고성을 내지르자 그가 화들짝 놀라더니 재빨리 입을 놀렸다.
“확실한 마족은 한 명이고, 12명은 마족인 것 같으며, 나머지 한 명은… 정체가 불분명합니다.”
마족인 것 같은 것은 무엇이며,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건 또 뭐란 말인가?
니첼라가 인상을 구겨대자 마족이 마른침을 꿀떡꿀떡- 삼키며 긴장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혹시라도 괜한 날벼락이 떨어지면 어쩌나 싶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비두시아가 끼어들었다.
“지금 중요한 건 정체가 뭔지가 아니잖아. 어떻게 할 거야? 여기서 이대로 우리 둘이서 놈들을 막을 거야 아니면…….”
다른 마왕에게 연락을 취해서 도움을 요청할 것인지를 묻는 비두시아의 물음에 니첼라가 다시금 마족을 향해 물었다.
“마왕은 없었던 거냐?”
“마왕은 분명히 없었습니다.”
“음…….”
마왕이 없다는 말에 니첼라의 표정이 다시금 일그러졌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꼬리도 제대로 잡지 못할 정도로 모습을 꽁꽁- 숨겨가며 마왕들을 죽였던 놈들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갑자기 제 모습을 대놓고 드러내며 마왕성을 향해서 달려들고 있었으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좀처럼 갈피가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마왕도 없다는 말이 니첼라의 머릿속을 더욱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혹시 작전을 바꾼 것인가? 이전까지의 작전들이 더 이상은 먹혀들지 않을 것 같아서? 겉으로 드러난 놈들은 사실은 미끼이고 진짜는 따로 있겠지?’
어디선가 자신을 노리고 있을 진짜 범인, 아마도 마왕으로 짐작되는 인물이 숨죽인 상태로 기회만을 엿보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점점 더 니첼라의 머릿속에서 굳어져 갔다.
‘지금까지 당했던 모든 마왕들이 마왕성에서 당했다.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면 나 역시 같은 수법에 당했겠지?’
니첼라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그려졌다.
혼자였다면 쉽사리 모험을 걸 수가 없었겠지만, 현재는 비두시아가 함께 있었다.
분명 상대는 이 사실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놈들을 잡는다!’
니첼라는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을 놈을 초조하게 기다리기보다는 차라리 겉으로 드러난 놈들을 잡아서 그 배후가 누구인지를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더욱더 효과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비두시아, 나와 함께 놈들을 잡는다.”
“마왕성 밖으로 나가자고?”
비두시아가 꼭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는 듯 못마땅한 표정을 드러냈다.
마왕성에서 완벽하게 방어진을 구축해놓고 상대를 기다리는 편이 훨씬 더 안전하고도 확실하지 않겠느냐는 의견까지 내놓았지만, 니첼라는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며 오히려 마왕성이 바깥보다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그녀를 설득했다.
“메카르만도 마왕성에서 당했다면야…….”
하지만, 니첼라의 설득보다도 메카르만이 자신의 마왕성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 비두시아의 생각을 고쳐먹게 만들었다.
“좋아, 어떤 놈들인지 그 얼굴이나 보자.”
비두시아가 팔까지 걷어붙이며 그렇게 말을 하자 니첼라 역시 좋은 자세라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한쪽에 서 있는 마족에게 명령을 내렸다.
“당장 모든 인원이 나와 함께 놈들을 잡는다! 서둘러서 준비해!”
마왕성을 완전히 비워버린다.
설마하니 마왕이 마왕성을 비워버릴 줄 예상이라도 해봤겠는가?
‘성이 텅텅- 비어 있다는 걸 알면 놈도 당황하겠지? 큭큭큭!’
니첼라는 자신의 비상한 머리가 놈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다고 굳게 믿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니첼라와 비두시아는 곧바로 마왕성에 머물고 있던 3백여 명이 넘는 마족들을 이끌고 마왕성을 박차고 나왔다.
혹시라도 마왕성 밖으로 나오길 기다렸다가 기습 공격이라도 당할까 싶어서 몇 번이나 경계를 철저하게 하고 나서야 니첼라와 비두시아는 마족들과 함께 마왕성을 향해 진격해오고 있다는 의문의 무리를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고작 14명을 잡기엔 너무 과한 것 아니야?”
비두시아의 말에 니첼라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하지만 우리는 놈이 본격적으로 행동하기 전에 놈들을 잡고 배후부터 알아내야 한다. 텔레포트 링은 있겠지?”
혹시라도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는 곧바로 도주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마계 내에서도 값비싼 텔레포트 링이 가장 확실했다.
“물론이지. 혹시라도 상황이 좋지 않다면 나는 볼칸의 마왕성으로 갈 생각이야.”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텔레포트 링을 가리키며 비두시아가 그렇게 말하자 니첼라의 표정에 비웃음이 생겨났다.
명색이 마왕이면서 항상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마왕에게 빌붙을 생각만 하는 비두시아였기에 한 편으로는 경멸스럽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이 비두시아가 살아가는 방식이었으니 니첼라로서도 더 이상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를 달리고 나서야 나첼라와 비두시아는 여러 명의 마족들과 싸우고 있는 침입자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뭐야? 진짜 저것들 마족 맞아?”
비두시아는 좀처럼 마족처럼 보이질 않는 이상한 놈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족이라면 당연히 머리에 뿔이 있다. 이건 절대 가릴 수가 없는 마족만의 종족 특징이었다.
그런데 확실한 마족 한 명과 이질적인 기운을 동시에 품고 있는 또 다른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이 죄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기에 마족인지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코끝으로 느껴지는 향기와 기운은 마족이라 하기에 큰 이질감이 없었지만,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그때, 상대 쪽에서도 니첼라와 비두시아의 모습을 발견한 듯 잠시 멈칫거렸다.
그 모습에 니첼라와 비두시아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본능적인 두려움에서 시작된 몸짓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린 것이다.
“모두 살려둘 필요는 없으니까 절반만 사로잡아.”
니첼라의 말에 비두시아가 걱정 말라는 대답을 하려던 찰나,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던 놈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디로……!”
비두시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니첼라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위!”
후드를 뒤집어 쓴 놈이 니첼라와 비두시아의 머리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놈의 얼굴이 보였다.
뿔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마족이 아니었다.
놈의 정체가 무엇인지 의심도 하기 전에 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심판의 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