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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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319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319화
심판의 검 (1)
프랄지카는 정말 쓸모가 많은 마족이다.
킬 라시온 멤버들 모두 이 생각에 조금도 반박하지 않았다.
마계에 대한 지식도 풍부했으며, 살기 위해서라면 제 동족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배반할 수 있는 생존 욕구도 마음에 들었다.
때문에 언제고 킬 라시온 멤버들마저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배반할 수 있다는 잠재적 가능성이 큰 것 또한 사실이지만, 애초부터 프랄지카를 완전히 신뢰할 생각 자체가 없었기에 그 정도의 위험성은 모두 인지하고 있었기에 큰 문젯거리도 아니었다.
그리고 프랄지카에게서 또 하나의 쓸모 있는 점을 발견했다.
프랄지카는 영혼 증폭석을 킬 라시온 멤버들이 원하는 형태의 액세서리로 제작한 것이다.
공간 주머니에서 간이 작업대를 꺼내서 그 자리에서 조물락거리더니 금방 제작을 마쳤다.
프랄지카의 말에 의하면 액세서리 제작이 취미라며 그 몇 개의 작품을 보여주었는데, 그 퀄리티가 생각보다 상당한 편이었다.
그런 실력을 증명하듯이 즉석에서 뚝딱뚝딱- 만들어낸 영혼 증폭석의 액세서리 역시도 꽤나 봐줄만 했다.
“이거 쉽게 끊어지거나 파괴되는 건 아니겠지?”
무혁은 자신의 목에 걸린 새카만 줄에 매달린 영혼 증폭석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예쁜 모양새도 좋지만, 역시 내구성이 가장 중요했으니까.
“코베나의 힘줄을 이백 년 동안 가공해서 만든 줄이다. 어지간해서는 끊어지지 않는다.”
코베나가 어떤 마수인지는 알 수 없지만, 힘줄을 이백 년 동안이나 가공했다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지만, 그래도 확인을 하지 않고 넘어가자니 찜찜했던 것일까?
무혁은 목에 걸려 있던 영혼 증폭석 목걸이를 직접 블랙 본 장검으로 끊어봤다.
결과적으로 블랙 본 장검에 의해서 코베나의 힘줄이 끊어지기는 했지만, 여러 차례 칼질을 해야만 했기에 상당히 질기다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코베나의 힘줄이 끊어질 정도의 충격을 받으려면 사실상 목숨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큰 상처를 입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영혼 증폭석 목걸이를 분실할 위험은 없다 할 수 있었다.
더불어 영혼 증폭석 또한 쉽사리 깨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끊어진 목걸이를 프랄지카에게 다시 건네자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는 다시 새로운 코베나의 힘줄을 이용해서 새 목걸이로 만들어주었다.
대다수의 킬 라시온 멤버들은 목걸이 형태로 영혼 증폭석을 제작해서 목에 착용했지만, 아르케니아와 엘리엇, 방구름은 귀에 영혼 증폭석을 박아 넣는 피어싱 형태로 완전히 밀착해서 붙여버렸다.
“나도 피어싱으로 제작할 걸 그랬나?”
미첼이 목걸이 형태의 영혼 증폭석을 만지작거리며 아르케니아와 엘리엇의 귀를 바라봤다.
푸른빛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피어싱 형태의 영혼 증폭석이 꽤나 예쁘게 느껴졌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바꿔달라고 하든지.”
르케임의 말에 미첼은 고민을 하다가 이내 목걸이를 프랄지카에게 내밀었다.
“…인간의 변덕이란.”
조금은 짜증이 난 듯한 얼굴로 프랄지카는 미첼의 영혼 증폭석을 피어싱 형태로 바꿔주었고, 그 모습에 르케임과 방적삼, 실비아도 바꿔달라며 목걸이를 건네주었다.
역시나 그 자리에서 프랄지카는 새롭게 제작을 마쳤고, 미첼 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하르마돈인가 하는 놈은 46지역에 메카르만이 없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레오의 물음에 무혁은 그렇지 않아도 자신 역시 그 점이 궁금했지만, 먼저 말을 꺼낼 수가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왕이 마왕성을 비우고 외부 활동을 하는 일이야 흔한 일이니까 아마도 하르마돈은 별 의심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대신, 자신의 방문을 미리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기다리지 않고 외부 활동을 나갔다는 사실을 못마땅해 하겠지. 하르마돈에 대한 소문대로라면 앞으로 수십 년 동안은 46지역에 발도 들이지 않을 거다. 그 나름대로의 보복인 셈이지.”
프랄지카의 말에 무혁은 자신이 상대해봤던 하르마돈의 성격을 떠올리고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마왕들이 굉장히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간다는 점이 무혁과 킬 라시온 멤버들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자, 그럼 41지역으로 가볼까?”
필립의 말에 무혁과 킬 라시온 멤버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마왕 서열 41위 페르소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방구석 마왕’이다.
글자 그대로 방구석에서 좀처럼 나오질 않는 은둔형 마왕이라고 할 수 있다.
“오, 오십 년?”
“소문대로라면 그렇다.”
프랄지카의 말에 모두가 놀란 눈으로 입을 떡- 벌렸다.
페르소는 마왕성에서 자그마치 50년 동안 외부로 단 한 번도 발걸음을 한 적이 없단다.
“도대체 마왕성에서 뭘 하기에?”
가장 먼저 드는 자연스러운 의문, 도대체 마왕성에서 며칠도 아니고, 몇 십일도 아니고 무려 50년 동안이나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오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연구를 하는 것 아닐까요?”
방구름이 가장 먼저 그렇게 유추를 했다.
사람 중에서도 연구에 몰두하면 수십 일은 연구실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들이 부지기수였으니, 페르소 또한 그런 류의 마왕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더욱이 시간에 대한 개념이 인간들과는 차원이 다른 마왕이니 정말 무언가를 연구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다면 50년이라는 시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 라는 말을 꺼내려던 르케임보다 먼저 프랄지카가 입을 열었다.
“내가 알고 있는 페르소는 무언가를 연구할 정도로 탐구적인 마왕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머리를 쓰지 않고 사는 마왕으로 유명하다.”
“…연구는 아니네.”
르케임이 재빨리 말을 바꾸었고, 방구름도 자신의 예측이 벗어났다는 사실에 입맛을 다셨다.
“어쨌든 한 번 마왕성에 틀어박히면 어지간해서는 외출을 하지 않는다는 거지?”
“그렇다.”
무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페르소를 상대할 방법을 생각해봤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있었다.
“그냥 쳐들어가는 수밖에 없네.”
“41지역에도 빅튜라가 있나?”
송정민의 물음에 킬 라시온 멤버들 모두 메카르만을 상대했었던 방법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페르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프랄지카의 대답에 모두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말았다.
“빅튜라는 그리 흔한 마수가 아니다. 또한 서열이 높은 마왕의 지배지일수록 찾아보기 힘든 마수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빅튜라를 이용하겠다는 생각을 접으라는 뜻이었다.
“그럼 우리가 흔들어 놓는 수밖에 없겠네?”
레오가 히죽- 웃었다.
마왕이라면 모를까, 일반 마족들을 상대로는 얼마든지 자신감을 가져도 상관없었기에 빅튜라를 이용하지 않고 자신들이 전면에 나서서 마왕성의 마족들을 밖으로 불러내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
“나쁘지 않은 것 같네.”
마크가 고개를 끄덕였고, 필립과 송정민 또한 은밀하게 움직이면서 41지역에 혼란을 조장하는 정도라면 충분히 시도할 만한 작전이라고 여겼다.
“무혁이 네 생각은 어때?”
“내 생각에는…….”
솔직하게 말해서 무혁은 혼자 은밀하게 마왕성으로 접근해서 페르소를 잡고 싶었다.
자신도 있었고, 충분히 가능성도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항상 자신이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해결을 하다보면 언제고 한계에 부딪힐 것이고, 그 때 가서 다른 이들의 힘을 빌리기엔 늦을 가능성이 컸기에 무혁은 할 수 있는 한은 최대한 킬 라시온 멤버들의 힘과 경험이 높아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여겼다.
“그렇게 하죠. 대신, 저는 언제든 마왕성으로 들어가서 페르소를 잡을 수 있도록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을게요.”
즉, 자신이 없는 상황에서 킬 라시온 멤버들이 활약을 해달라는 뜻이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이 정도는 무혁 동생이 없다 하더라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방적삼이 가장 먼저 자신감을 드러냈고, 다른 멤버들 또한 맡겨만 놓으라는 듯 믿음직스러운 표정으로 무혁을 바라봤다.
“이번만큼은 나도…….”
빠져있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던 프랄지카는 자신에게 향하는 수십 개의 매서운 눈초리에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너희 인간들 못지않게 활약을 해주겠다. 41지역이라면 여기서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또 다시 동족을 향해 칼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한탄스러운 프랄지카였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여기며 이 짓도 한 번, 두 번 하다보면 결국은 익숙해 질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좋아, 그럼 바로 시작하자.”
41지역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무혁과 킬 라시온 멤버, 그리고 어느 샌가 인질로 시작해서 한 패거리가 되어버린 프랄지카까지 페르소 사냥을 시작했다.
#
“아… 귀찮아. 귀찮아.”
축- 늘어져서는 꼼짝도 하지 않는 거구의 마왕.
소와 염소의 중간을 닮은 괴기한 동물형 외형으로 운동장처럼 넓은 침대 위에서 하루 종일 누워있기만 하는 이 마왕이 바로 마신 라시온을 따르는 서열 41위 페르소였다.
“페르소 님, 니첼라 님께서…….”
“귀찮아. 없다고 해.”
시중을 드는 마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페르소가 그렇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언제나 항상 마왕성 그것도 제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페르소라는 걸 모를 마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소는 그 어떤 마왕이 연락을 해와도 오로지 귀찮음에 없다는 말로 회피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다른 마왕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페르소는 오히려 그 점이 자신을 귀찮게 굴지 않아서 좋다며 만족해하는 괴팍한 성격이었다.
“페르소 님, 오늘부터…….”
“귀찮아. 내일 해.”
“페르소 님, 어제 말씀을 하셨던…….”
“귀찮다니까. 내일 해. 내일.”
“페르소 님.”
“귀찮아. 다음에.”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페르소는 모든 것을 거부했다.
귀찮아서, 움직이기 싫어서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회피했다.
덕분에 41지역은 다른 마왕들의 지배지에 비해서 상당히 낙후되어 있었고, 마족들의 삶 또한 윤택하지가 못했다.
물론, 페르소의 이러한 성격을 지지하는 마족들도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문제는 그들 또한 페르소만큼이나 나태하기가 짝이 없었기에 41지역은 언제나 항상 정체되어 머물러 있는 듯한 곳일 수밖에 없었다.
“페르소 님.”
“알겠어. 알겠으니까 다음에 하자고.”
이번에도 페르소가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지 않고 그렇게 말을 했다.
하지만, 보고를 하려던 마족 또한 이번만큼은 반드시 보고를 하겠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삼일 전부터 41지역에서 의문의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누군가 고의적으로 하는 행동인 듯 싶습니다. 어쩌면 지난번처럼 로테키아의 짓이 아닐까 싶습니다.”
“로테키아?”
귀찮다는 듯, 말을 하던 말던 한쪽 귀로 흘려듣고 있던 페르소가 처음으로 날선 반응을 보였다.
마신 바르메칸을 섬기는 로테키아는 마계의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니면서 다른 마왕들의 지배지를 약탈하기로 유명했다.
지난 번, 그러니까 80년 전에는 페르소 또한 로테키아로 인해서 지배지가 약탈을 당한 적이 있었다.
언제고 한 번 버릇을 고쳐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 그 때가 온 것이다.
“확실한 거야?”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확신을 못하는 마족의 대답에 페르소의 눈빛에 서렸던 독기가 서서히 빠져나갔다.
“확실하지 않다면야…….”
슬슬- 다시 귀찮음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때와 비슷합니다.”
어떻게든 이 나태함에 빠진 마왕을 방밖으로 끌어내겠다는 듯 마족이 힘을 줘서 말을 했다.
그러나 이미 귀찮음에 물들어버린 페르소는 손가락만 까딱- 거리며 말했다.
“확실한 증거를 가져와. 그러면 내가 직접 로테키아의 버릇을 고쳐줄 테니까.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귀찮게 하지 마.”
페르소의 말에 마족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지금부터 누구의 소행인지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대답도 귀찮다는 듯 페르소가 손가락만 까딱- 거리며 나가보라는 신호를 줬다.
다시 텅- 비어버린 방안에 홀로 남은 페르소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평화로움… 역시 좋아.”
이윽고 페르소가 눈을 감았다.
늘어지게 한 숨 자고 일어나겠다는 듯.
그렇게 페르소가 팔자 좋게 잠에 빠져드는 사이, 마왕성에서는 삼일 전부터 41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문의 사건들을 파악하기 위해서 대대적인 조사대가 파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물론, 잡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태함으로 똘똘- 무장한 마왕을 따르는 마족들답게 일부 마족들이 귀찮다거나, 왜 자신이 나가야 하냐며 실랑이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한참의 실랑이 끝에 마왕성에 머물고 있던 마족들 중 절반이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멀지 않은 곳에서 은신하며 지켜보고 있던 무혁은 드디어 자신이 움직일 때라고 여기고는 마왕성을 향해서 빠르게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