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3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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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317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317화
마계의 상인, 하르마돈 (3)
원하는 조건을 적으라는 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왜냐면…….
“아주 강력한 검술… 이건 좀 너무 빈약하지? 웬만한 마력 공격보다 월등하게 강력한 검술이라고 쓰면 되려나? 아니면… 마계에서 가장 강력한 검술? 천계의 물건도 있다고 했으니까, 마계와 천계를 통틀어서 가장 강한 검술? 이왕이면 마신도 단 칼에 찢어 버릴 수 있는 검술이라고 적을까?”
이놈의 욕심이 문제였다.
한 글자를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던 무혁은 한참만에야 머릿속을 정리해서 펜을 휘갈겼다.
마계의 글을 몰라도 상관없을 정도로 쓰고자 하는 단어가 쉽게 쓰였다.
마신을 죽일 수 있는 검술
심플하게 간다.
최종 목적이 마신 라시온이니까.
조건을 적었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뭐야? 고장 난 건가? 아니면, 너무 얼토당토 안한 조건이라서 맞는 것이 없는 건가?”
입맛을 다시며 썼던 단어를 손으로 지우려고 할 때였다.
무혁이 썼던 글자가 깨끗하게 지워지면서 저절로 글이 생겨났다.
심판의 검
“조건에 부합되는 검술인 건가? 이름은… 마음에 드네.”
심판의 검이라는 이름 자체는 딱히 나쁘지 않았다.
무혁은 곧바로 게걸스럽게 고기를 뜯어 먹고 있는 하르마돈에게 말을 했다.
“심판의 검이라는 능력구는 얼마나 하지?”
“우걱우걱… 뭐라고? 심판… 의 검?”
추잡스럽게 입안에 고깃덩어리를 잔뜩 집어넣고 씹어대던 하르마돈이 더러운 분비물을 튀겨대며 그렇게 되물었다.
“그래, 심판의 검.”
잠시 기다리라는 듯 하르마돈은 손을 들어 올리고는 입안의 음식물들을 꿀떡- 삼킨 후에 허공에서 무혁에게 건넨 새카만 판과 동일한 것을 또 하나 꺼냈다.
“심판의 검이라고 했지?”
하르마돈은 판에다가 심판의 검이라는 글자를 꾹꾹- 눌러썼다.
그리고.
“…너 도대체 뭘 고른 거지?”
하르마돈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무혁을 바라봤다.
“혈청이 몇 개나 필요한 건데?”
“이건 못 사.”
“못 사다니?”
“혈청이 10만 개나 필요하니까.”
심판의 검의 가격은 무려 혈청 10만 개.
지금까지 하르마돈이 수없이 많은 물건을 팔았지만, 혈청 10만 개짜리는 그 역시도 처음이었다.
가장 비싸게 팔아먹은 물건이라고 해봐야 혈청 3천 개가 조금 넘었을 뿐이었으니, 10만 개짜리 물건은 하르마돈으로서도 황당했으며, 이렇게까지 비싼 물건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해본 일이었다.
판매자인 하르마돈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 물건이니, 그걸 사겠다는 구매자가 존재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10만 개?”
무혁의 되물음에 하르마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도 10만 개짜리 물건이 있을 줄은 몰랐다. 도대체 무슨 조건을 걸었기에 이런 황당한 걸 찾아낸 거지?”
판매를 하고 있지만, 하르마돈은 혈청을 받고 물건을 건네주는 중개자일 뿐이었기에 실질적으로 모든 물건의 정보까지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혈청 10만 개라…….”
“내가 아무리 권한을 이용해서 가격을 깎아준다 하더라도 이건…….”
할인을 해준다 하더라도 살 수 있는 존재가 없을 것이라고 하르마돈은 확신했다.
“가격을 깎아 줄 수도 있는 건가?”
“깎아 줄 수는 있지만.”
하르마돈의 투실투실한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깎아준다 하더라도 정상 가격이 10만 개짜리다.
“다른 걸 찾아봐.”
하르마돈이 잠시 내려놓았던 고깃덩어리를 집어 들려고 할 때였다.
“얼마나 깎아 줄 수 있지?”
깎는다고 네가 살 수 있겠느냐는 듯 하르마돈이 짜증스러운 눈으로 무혁을 노려봤다.
하지만, 진지하기는 무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말해봐.”
“…네놈을 내 최고의 고객이라 여긴다 하더라도 5천 개 정도가 최대치다. 그래도 9만 5천개다.”
살 수 있겠느냐는 듯 하르마돈이 빈정거리자, 무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길 언제 떠날 생각이지?”
“뭐?”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 하르마돈이 되묻자, 무혁은 언제까지 46지역에 머물 것인지를 다시 물었다.
“3일.”
하르마돈은 딱 3일만 46지역에 머물 예정이었다.
“알겠다. 3일 후에 다시 보자.”
“다시 보자고?”
하르마돈은 진심으로 무혁을 미친 놈 보듯 바라봤다.
“3일 후에 9만 5천개의 혈청을 지불하겠다. 정 기다릴 수 없다면 네 이동경로를 내게 알려줘라. 내가 찾아갈 테니까.”
“…….”
하르마돈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눈앞의 무혁이 정말 혈청 9만 5천개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것인지, 그냥 망상에 빠져서 헛소리를 지껄여 대는 것인지 솔직히 판단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3일 후에는 곧바로 다른 마신의 영역으로 떠날 것이기에 네가 찾아오고 싶다 하더라도 날 찾을 수가 없다. 그 전까지 혈청을 구해서 날 찾아오든지.”
이걸로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치 않았다.
솔직히 하르마돈 입장에서는 무혁이 혈청 9만 5천개를 구해서 올 것이라고 조금도 믿지 않았으니까.
하르마돈이 두툼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무혁의 손에 들려 있는 판을 다시 반납하라는 의미였다.
무혁은 하르마돈이 그랬던 것처럼 판을 가볍게 던져줬다.
“흐음…….”
무혁과의 거래에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믿었던 하르마돈은 푸짐하게 차린 음식들을 아쉽다는 듯 바라보다 이내 다시 철퍼덕- 주저앉았다.
거래는 끝났지만, 음식에 대한 욕구는 차마 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무혁의 존재를 새카맣게 잊은 것처럼 음식에만 집중하는 하르마돈의 모습을 보며 무혁은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렸다.
앞으로 3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수를 사냥해야 할 것만 같았다.
#
심판의 검.
그것의 가치는 정확하게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무혁은 강하게 믿었다.
‘마신을 죽일 수 있는 검술’이라는 단 하나의 조건에 부합했기에 분명히 그것을 손에 넣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물론, 사람인 이상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익혀보고 쓰레기라며 욕을 하는 것이 최소한 익혀보지도 못하고 두고두고 후회를 하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었다.
죽어라 마수를 사냥했다.
히포의 성장보다 혈청을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이 우선 순위였기에 마수를 사냥하는 것은 무혁이었고, 히포는 그렇게 사냥한 마수의 몸에서 혈청을 추출하는 일에 전념했다.
혈청은 마수의 종류와 등급에 따라서 다르다.
때문에 하르마돈에게 지불해야 할 혈청은 5등급짜리로 정해져 있었다.
9등급 혈청 150개, 8등급 혈청100개, 7등급 혈청70개, 6등급 혈청 30개가 5등급짜리 혈청 하나와 동일했다. 당연히 4등급 이상의 혈청은 반대로 더 많은 값어치를 지니고 있었다.
무혁은 46지역에서도 가장 등급이 높은 마수들이 서식하고 있는 곳에서 마수를 사냥했다.
최하 등급이 4등급이었고, 이따금씩 1등급의 마수도 사냥할 수 있었기에 무혁은 3일 내내 정신없이 마수를 죽이는 일에 몰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기에 킬 라시온 멤버들이 돕겠다며 팔을 걷어붙였고, 무혁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도움을 뿌리치지 않았다.
덕분에 46지역의 마수들은 때 아닌 봉변을 당하고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마족들도 접근을 하지 않는 자신들만의 땅에 웬 인간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다짜고짜 살육을 해대고 있었으니 마수들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그리고 삼일이 흘렀다.
“갔다 올게요.”
3일 사이에 얼굴의 양쪽 볼이 헬쑥해진 무혁의 모습을 보며 킬 라시온 멤버들도 힘없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모두 몰골이 비슷했다.
지난 3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였으니까.
“정말 하얗게 불태웠던 3일이었어.”
르케임이 아무렇게나 드러누우며 그렇게 말하자, 다른 멤버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3일 동안 정말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할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에 따른 대가 역시도 상당한 편이었다.
바로 마정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섭취한 것이다.
마수를 잡으면 혈청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마정도 얻기 마련이다.
무혁과 다르게 킬 라시온 멤버들은 마정을 통해서만 마력의 등급을 올릴 수 있었기에 3일이라는 기간 동안 얻은 마정으로 인해 성장한 마력 등급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했다.
“모두 오늘은 푹 쉬자고.”
필립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미 아르케니아와 미첼 등은 고개까지 꾸벅거리며 졸고 있었다.
“과연 혈청이 10만 개나 필요한 스킬이 얼마나 대단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
그렇게 말을 하는 방적삼 또한 무겁게 가라앉으려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입까지 벌린 상태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 시각, 무혁은 하르마돈을 찾아서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하르마돈과 헤어지기 전에 그에게 위치 추적 스킬을 걸어뒀기에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하- 르- 마- 돈!”
아슬아슬하게 46지역을 벗어나려고 하는 하르마돈 일행을 향해 무혁이 커다랗게 소리를 쳤다.
이윽고 행렬이 멈추었고, 거대한 가마가 땅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가마에서 뒤뚱거리며 걸어 나오는 하르마돈.
“정말로 찾아올 줄은 몰랐군.”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무혁을 향해 하르마돈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말을 했다.
“다시 보자고 했으니까.”
“그랬지.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있었어야지.”
빈정거리는 투가 여전히 무혁이 9만 5천 개의 혈청을 가지고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 싶었다.
“차라리 그때 다른 물건을 샀으면 좋았잖아. 그러기에 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서는 나를 번거롭게 만드는……!”
와르르르르르르르르-!
하르마돈의 발 아래로 혈청이 산처럼 쌓여갔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쌓여가는 혈청들을 바라보며 하르마돈을 입만 쩍- 벌렸다.
“몇 개인지는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9만 5천 개는 분명히 넘을 거다. 확인해봐.”
무혁의 자신감 가득한 말에 하르마돈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 이윽고 소테오마를 향해서 소리쳤다.
“확인 해봐!”
“예!”
소테오마는 곧바로 몇 명의 마족들과 함께 무혁이 쌓아놓은 혈청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등급별로 분류하고 그 수량을 체크하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겠지만, 어느 누구도 그 시간을 지루하게 여기진 않았다.
“수량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많은 혈청을 구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하고 싶군.”
이번만큼은 진심이었다.
무혁이 개인이든, 다른 조력자나 단체에 소속되어 있든 이렇게까지 많은 혈청을 확보했다는 사실에 하르마돈은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
“수량이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물건을 구매할 의향은 있겠지?”
설마하니 저렇게 많은 혈청을 다시 가지고 돌아가지는 않을까 싶어 이제는 하르마돈이 살짝- 안달이 난 표정을 드러냈다.
물건을 팔면서 받게 되는 혈청의 일부를 자신이 가질 수 있는 하르마돈이었기에 이 많은 혈청 중 일부가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는 기회를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말은 꺼내지 않고 있었지만, 어지간하면 무혁의 요구 조건을 모두 수용해줄 생각까지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프랄지카의 말이 사실인 모양이군.’
하르마돈은 강도가 아니다.
자신을 호위하는 마족과 마수들을 데리고 다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편일 뿐이지, 그 힘으로 구매자의 혈청을 강탈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마계의 유일한 상인으로서의 명예이자, 자존심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심판의 검’뿐이다. 하지만, 그런 고가의 물건을 사는 구매 고객에게 적당한 서비스는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마계 유일의 상인으로서의 배포가 있다면 말이야.”
적당히 칭찬을 섞으면서도 자존심을 건드린다.
무혁의 말에 하르마돈은 조금도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히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지금까지 내가 한 거래 중에서는 가장 큰 거래인데 마계 최고의 상인으로서 당연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지! 단! 심판의 검을 살 수 있다면 말이야.”
즉, 심판의 검을 살 수 없다면 네가 이 많은 혈청으로 다른 물건들을 구매한다 하더라도 서비스는커녕, 어떠한 할인도 없다는 하르마돈의 속 좁은 반격이었다.
“기대하지.”
무혁으로서는 걱정하지 않는다는 듯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