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3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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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7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311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311화
마계 (8)
“빅튜라?”
눈을 찌푸리며 헤수넴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마족을 바라봤다.
“서쪽 제한 구역에 서식하고 있던 놈이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현재로서는 도저히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조용히 잘 있던 놈이 갑자기 왜?”
“그건 잘…….”
이유까지는 알지 못한다는 마족의 대답에 헤수넴은 됐다는 듯 손을 저었다.
마수의 행동 하나, 하나를 모두 상식에 맞춰서 생각할 순 없었기에 헤수넴은 왜 빅튜라가 난동을 부리는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1분이라도 빨리 그 난동을 잠재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비축해 놓은 페일런의 배설물을 이용해서 빅튜라가 더 이상 마왕성 인근까지 접근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통제부터 해라.”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시도를 하려고 했는데…….”
“했는데?”
마족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페일런의 배설물이 모두 사라졌다고 합니다.”
“…사라져?”
헤수넴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잠시 멍한 표정으로 마족을 바라봤다.
페일런의 배설물은 빅튜라를 억압할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용도로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유용한 물건은 또 아니었다.
오로지 빅튜라의 억압제로서의 쓸모만 있었을 뿐, 어지간해서는 사용할 일이 없어서 그 보관에 대한 중요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빅튜라가 골칫덩어리 마수라고 해도 지금처럼 난동을 부리는 일은 수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 보니 막말로 악취만 풍기는 지독한 배설물을 누가 훔쳐가려고 하겠는가?
그런데 그걸 누가 훔쳐간 것이다.
“도대체 누가 그걸!”
헤수넴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화를 내려다 이내 진정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누군가 노린 짓이군.”
갑작스런 빅튜라의 난동, 그리고 사라진 페일런의 배설물.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도가 명확해지는 일이었다.
“메카르만 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하지 않을까요?”
빅튜라는 강하다.
그것도 아주 굉장히 강한 마수였기에 어지간한 마족들은 수십, 아니 백 단위가 넘는다 하더라도 제압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현재로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메카르만이 직접 나서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도 확실했다.
“메카르만 님께서 나서선 안 된다.”
헤수넴의 노릿한 눈동자가 요사스럽게 번들거렸다.
상황이 너무 절묘하지 않은가?
마치 이건…….
“메카르만 님을 끌어내기 위한 수작질을 벌이다니…….”
누구인지,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헤수넴은 상대가 원하는 대로 따라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마왕성의 최소 경비만을 두고 모두 빅튜라를 잡으러 간다.”
일정 부분 희생을 당하더라도 우선은 빅튜라부터 처리하고 그 이후에 이 일에 대한 진상조사를 철저하게 하겠다고 다짐하는 헤수넴이었다.
“알겠습니다.”
마족이 헤수넴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는 급히 방을 빠져나갔다.
“누군지 모르지만 이 장난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할 일인지 확실하게 알려주마.”
비릿하게 웃는 헤수넴의 온 몸에서 새카만 연기가 뭉클뭉클- 피어오르고 있었다.
두 시간 후.
헤수넴이 직접 이백 여명에 이르는 마족들을 이끌고 마왕성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멀지 않은 곳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프랄지카의 말 그대로네.”
무혁은 우르르- 몰려나가는 마족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성동격서라는 계획은 자신이 세웠지만, 빅튜라를 이용하고 메카르만을 보좌하는 헤수넴이라는 마족의 성격까지 계산에 넣어 지금의 상황을 예측한 것은 프랄지카였다.
“역시 약아빠진 놈이라 그런지 머리가 잘 돌아간단 말이야.”
48지역에서 프랄지카를 생포한 것이 이렇게까지 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인간에게 빌붙어서라도 어떻게든 살겠다는 생존 욕구가 강했기에 언제고 후환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지금까지 프랄지카의 존재는 무혁에게 있어서 그리고 킬 라시온 멤버들에게도 커다란 조력자로서 톡톡히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대충 난동을 부려서 조금이라도 마왕성의 마족들 일부를 바깥으로 돌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었던 무혁으로서는 거의 텅- 비다시피 한 마왕성을 바라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자, 그럼 메카르만을 잡으러 가볼까?”
무혁은 공간 주머니에서 검은 색 알약을 꺼내 입안에 넣었다.
까득-!
[특수 포션 ‘마족마족’을 섭취했습니다.]
[24시간 동안 마족에게 동족의 향기를 발산합니다.]
마계에서 방구름이 만든 ‘마족마족’ 포션은 가장 큰 쓸모가 있었다.
무혁은 물론이고, 킬 라시온 멤버들 전원이 매일같이 마족마족 포션을 먹음으로써 마족들에게 들키지 않고 행동할 수 있었으니까.
함께 동행하고 있는 프랄지카는 어째서 무혁과 킬 라시온 멤버들에게서 인간 특유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고 의문을 품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방구름이 만든 마족마족 포션이 아니었다면, 사실상 무혁과 킬 라시온 멤버들은 마계에서 이렇게까지 편안하게 움직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은신.”
모습까지 완벽하게 감춘 무혁은 마왕성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 나갔다.
초감각을 통해서 느꼈던 것처럼 마왕성 내부의 마족들은 최소 인원만이 남아 있었다.
‘페일런의 배설물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면 헤수넴은 분명 누군가 메카르만을 마왕성 밖으로 유인해 내려고 한다고 의심을 할 거다. 그러면 분명 헤수넴은 메카르만을 마왕성 안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하고 스스로 마족들을 데리고 빅튜라를 잡으려고 할 거다.’
‘함께 나올 수도 있잖아? 아니면 아예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고.’
‘함께 나올 일도 없고, 아예 움직이지 않을 일도 없다. 유인이 목적이라면 외부에서 어떤 함정이 준비되어 있을지 알 수 없으니 가장 안전한 마왕성 내에서 머물 거다. 적어도 마왕성 내에서만큼은 메카르만이 쉽게 누군가에게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난동을 피우는 빅튜라를 잡지 않으면 메카르만의 성격상 마왕성을 박차고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헤수넴으로서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사냥을 하려고 할 거다.’
정말이지 프랄지카의 예상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을 정도로 딱- 맞아떨어졌다.
그러니까 더 조심해야 한다.
언제 자신들의 뒤통수를 칠지 알 수 없으니 무혁은 항상 프랄지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왕성으로 들어선 무혁은 내부 가장 안쪽에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마기가 메카르만이라고 확신했다.
‘확실히 강하네.’
프랄지카가 말했던 것처럼 서열 따위로만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메카르만이 풍기는 기세는 강력했다.
구태여 비교를 하자면, 자바하보다 최소한 두 배 이상은 강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열을 올릴 생각이 없다니… 하여간 별종이군.’
무혁은 어쨌든 덕분에 수월하게 메카르만을 잡을 수 있다고 여겼다.
마왕들의 특성상 서열이 높을수록 보좌하는 마족들의 수준도 높고, 거느리는 마족들의 수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메인 메뉴를 먹기 전에 에피타이저부터 시작해볼까?’
무혁은 텅 빈 마왕성에서 메카르만과 단 둘이서만 신명나게 싸울 생각에 마왕성 곳곳에 남아 있는 마족들부터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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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가 죽었군.”
메카르만은 자신의 방에 앉아서 생명의 불꽃이 꺼져버린 마족의 존재를 느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솔직하게 메카르만도 알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마왕성 내부의 공기 흐름이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고, 마왕성을 지키고 있는 마족들의 수가 하나씩 줄어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반면, 상대의 기척은 조금도 찾을 수가 없었다.
굉장히 은밀했으며, 조용하고도 신속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가 아닌 둘, 혹은 그 이상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야 메카르만은 다수가 아닌 단 한 명이 자신의 마왕성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헤수넴을 밖으로 끌어내고 혼자서 내게 접근을 해오는 적이라…….”
메카르만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긴장감과 흥분감, 그리고 가슴 깊은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투쟁심에 메카르만은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았다.
“자바하는 아닐 테고…….”
자바하가 아무리 서열에 목숨을 걸고 있다 하더라도 공식적인 마왕 서열전이 아닌 이상, 이런 식으로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겠지만, 라시온의 분노를 살 수도 있었기에 굉장히 위험한 도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라시온의 분노를 피할 수 있으면서도 이런 과감한 짓을 할 수 있는 건 타 마신을 섬기는 마왕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메카르만 역시 한 때는 이런 아슬아슬하면서도 짜릿한 짓을 해봤기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호마탄을 섬기는 놈인가? 그도 아니면… 오리악?”
메카르만은 마신 라시온과 사이가 좋지 않은 마신들을 떠올려봤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내 머릿속에서 털어버리고 말았다.
배후가 누구인 것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어차피 마신들은 신경도 쓰지 않을 일인데.
중요한 건 자신이 섬기는 마신을 위해 제 목숨을 걸며 싸우는 마왕들일 뿐이다.
그러니 메카르만이 신경 써야 할 문제는 자신을 노리고 있는 적이다.
“대충 정리가 끝나가는 모양이군.”
메카르만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왕성에 남은 마족들이 죽어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다.
힘이 없으면 결국은 죽어야 하는 세계인 마계에서 적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죽은 마족은 그 자체로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 여기는 메카르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마족마저도 자신의 동료들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상태로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순간, 메카르만의 입꼬리가 더욱더 길게 늘어져 올라갔다.
마지막 마족을 죽이고 나자 상대가 자신의 기운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건 자신감의 발로였다.
내가 너를 죽이기 위해서 찾아왔다는 아주 뚜렷한 자신감!
“재밌군.”
쥐새끼처럼 은밀하게 다가와서 기습을 가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메카르만으로서는 예상외의 전개였고, 상대의 대단한 자신감에 더욱더 몸이 흥분감에 들뜨기 시작했다.
“신호를 보낸다면 마땅히 답을 해줘야겠지!”
메카르만 역시 한참 전부터 억누르고 억눌러왔던 투쟁심을 한껏 발산했다.
쩌저저적!
메카르만의 방 벽면에 균열이 갔으며, 심지어 방문이 퍼억- 소리와 함께 뜯겨져 나가버릴 정도로 강대한 기운이 폭발하듯 상대를 향해 쏟아져 나갔다.
죽을 각오로 덤벼라!
자신을 죽이러 왔다는 상대의 신호에 메카르만은 그렇게 답을 해주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상대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자신의 강대한 기운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차분하면서도 아주 당당한 걸음걸이가 한결 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큭큭!”
메카르만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너무 기뻐서, 이런 짜릿한 긴장감을 언제 느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할 정도였기에 메카르만은 진심으로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기쁘고 즐거웠다.
“네가 메카르만?”
뜯겨져 나간 방문 밖으로 몇 발자국을 남겨둔 상대가 그렇게 물어왔다.
자신의 비해 너무나도 작은 체구의 사내.
“넌… 누구지?”
기뻐서 들떴던 메카르만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상대가 마왕이 아니었으니까.
마족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뿔이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천사일까?
하지만, 천사도 아니다.
천사라면 마족들과 다르게 날개가 있어야 한다.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날개가.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저건 아무리 봐도…….
“…인간?”
메카르만은 자신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이 튀어나왔다.
분명, 인간 특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아무리 뜯어봐도 사내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차무혁. 이름 정도는 알아둬.”
사내가 그렇게 답을 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정말 인간이라고? 고작 인간? 한낱 인간 따위가… 내게 도전을 해왔다고?”
메카르만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자신을 흥분하게 만들었던 투쟁심이 싸늘하게 식어버렸고, 대신 용암처럼 들끓는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빠르게 솟구쳤다.
“감히 인간 따위가 나에게 도전을……!”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분노를 터트리던 메카르만이었지만, 그보다 앞서 그의 머리 위로 무혁이 순식간에 이동을 하고는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거대한 체격의 메카르만이 의자와 함께 바닥으로 납작- 찌그러졌다.
“고작이 아니야. 무려 인간이다.”
무혁이 꼴사납게 널브러진 메카르만을 거만하게 내려다보며 그렇게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