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9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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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92화
제3장 멸살(滅殺) (3)
꾸물! 꾸물!
뭉개진 고깃덩어리와 같은 혈천강시의 몸이 재생이 되었다. 어둠을 감싸는 혈기가 혈천강시의 몸으로 흡수가 되자 빠르게 원래의 모습을 찾아갔다.
무진은 혈천강시의 체질이 상당히 특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진의 눈빛이 백청색으로 변해갔다. 바람조차 불지 않는 대해의 차가운 물처럼 흔들리지 않는 안광이 혈천강시의 내부를 관조했다.
혈천강시의 몸이 투영이 되어 내부의 흐름이 비추어졌다.
“흠, 혈기가 덩어리가 되어 영성이 생겼군.”
혈천강시는 오랜 시간 혈기에 노출되었다. 사이한 핏빛 기운을 지속적으로 흡수했던 혈천강시는 몸이 버티지 못하는 지경에 처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혈기는 혈천강시를 보호하기 위해서 내부에 단(丹)을 만들어 낸 것이다.
혈기는 단을 만들면서 한 차원 높은 영성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의 다양한 성격과는 다르지만 한 걸음 더 내디딘 것이다. 그로 인해 죽은 강시지만 살아 있는 것처럼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천인혈의 피를 머금은 사념덩어리라.”
천인혈을 통해 온갖 사념이 어둠 속에 가득 찼다. 그 중에서도 피의 갈증과 지독한 분노, 원념이 혈천강시의 혈정(血精)을 이루는 중심축일 것이다.
무진은 혈천강시의 혈정을 제압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철무정과의 대결에서 혈기를 제압하지 못했던 무진이다. 그 당시보다 강해진 무진은 혈기를 제압해서 이겨내고 싶었다.
진정으로 강한 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서 승리한 자다. 무진은 물러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자존심을 건드리는군.”
회복되기 전에 혈천강시를 분멸해 버리는 것이 효과적이다.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을 놔두고 무진은 호승심을 버리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결정을 한 이상 무진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무진의 의지가 영역을 넓혔다.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어둠 속에 가득 찬 혈기가 무진의 의지를 막아내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다.
우우우우우웅!
격공섭물로 혈천강시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재생을 거듭한 혈천강시가 반항을 해보았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무진의 의지는 견고한 그물망과 같았다.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고통만 가중될 뿐이다.
“꺾어 주겠다.”
자존심과 자존심의 대결이다.
무진의 의지가 혈천강시의 원념 덩어리인 혈정을 투영했다. 혈정과 무진의 의지가 일직선으로 관통하자 눈에 보이지 않는 격렬한 파공성이 분출되었다.
-죽인다! 피를 줘! 다 죽인다! 피를 내놔!
혈정이 무진의 의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원념을 분출했다. 천인혈의 원념이 하나로 뭉쳐져 새로운 원념이 되어버렸다. 그 원한의 크기는 측정하기 힘든 정도로 크고 무서웠다.
원념은 증폭되고 증폭되어 무진의 의지를 깔아뭉개려고 했다.
주르륵!
무진의 귀밑머리로 땀이 흐르고 있었다.
육체적인 대결이 아니다. 정신과 정신의 대결이다. 무진이 혈정의 원념에 사로잡히게 되면 세상은 피에 젖은 진정한 마신을 보게 될 것이다.
뇌리로 스며드는 혈정의 원념을 다스리기 위해서 무진은 수라혼원심공을 극의로 끌어올렸다.
‘좋군!’
흥미진진한 대결이 되었다. 무력으로 충분히 압도할 수 있지만 무진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진정한 강자는 무력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서 압도해야 한다.
경각지경의 상황에서 무진의 뇌리는 희열감을 맛보고 있었다.
혈천강기와 수라탄강기가 자연스럽게 운용이 되었다. 검붉은 기운과 백청색의 기운이 허공에서 무시무시한 위력을 선보였다.
대기가 일그러지면서 주변 환경까지 변화를 일으켰다. 무진과 혈천강시의 주변이 산산이 부서지며 가루가 되고 있었다.
휘이이이잉!
혈기를 다스리기 위해서 마련한 단단한 광장이 모래알이 되어 휘날렸다.
혼연일체(渾然一體).
몸과 마음이 일어서자 굳건한 의지가 되어 세상만물을 다스리게 된다.
무진은 황홀감을 느꼈다. 정신의 대결을 통해 그의 내부에 감추어져 있던 편린들이 합쳐지며 완전한 무진의 의지가 되어 버팀목이 되어갔다.
홀황무아(惚恍無我)의 경지에 다다라 무극과 자아의 경지를 넘어섰다.
대해를 담은 혼원공과 끊임없이 분출하는 수라공의 공능이 완벽하게 일치하여 수라혼원심공의 경지를 한 단계 높여주었다. 거친 풍랑에도 끄떡하지 않는 굳건한 의지가 완성되었다.
초원을 여행하면서 다스린 마음의 공부가 이제야 빛을 발휘하게 되었다. 굳건한 바탕이 완전체(完全體)의 경지에 발을 들이게 만들어 준 것이다.
무진은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다. 노력은 한순간 태양이 되어 광영(光榮)을 비추었다.
수라혼원심공의 공능에 의해서 분출된 수라탄강기가 혈천강시의 혈천강기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부들! 부들!
혈천강시의 몸이 경련이 난 것처럼 거칠게 요동쳤다. 혈정의 원념이 마지막 발악을 하려고 하는지 어둠 속에 남아 있는 모든 혈기를 빨아들였다.
여력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다 흡수하여 무진의 의지에 대항했다.
쿠쿠쿠쿠쿵!
강렬한 기파가 발생하며 지축을 뒤흔들었다. 제왕성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무지막지한 여파에 휩쓸리면 살아 있다는 흔적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원념과 패력의 대결은 시간이 지날수록 격렬해졌다.
‘꿇어라.’
-크…으윽! 싫어!
‘굴복하라.’
-안…돼!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무진의 의지가 혈정의 원념을 잠식해 들어갔다.
혈정의 원념은 더 이상 무진의 뇌리에 침투하지 못했다. 폭풍처럼 잠식해 들어간 무진의 패력이 혈정의 원념을 포위해 버렸다.
무진은 단숨에 제압하지 않고 혈정을 두드렸다. 끊임없이 두드리며 공포를 각인시켰다.
패력의 극에 달해 있는 수라탄강기가 어느새 혈천강시의 내부에 흐르기 시작했다. 혈기가 수라탄강기에 잠식당하면서 혈정의 능력이 반감되어갔다.
수라탄강기를 완벽하게 제어하게 된 무진은 혈천강시의 몸을 지배해 나갔다.
-크으으윽! 그…만!
‘복종하라.’
-싫…어!
‘그러던지.’
반항을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다만 고통스러울 뿐이다.
무진은 더욱더 거세게 혈정을 압박했다. 칼로 내부를 들쑤시는 것처럼 끊임없이 고통을 가했다.
반항이 지속될수록 혈정의 원념은 조각조각 깨져나가고 있었다. 겉을 감싸고 있던 혈기가 벗겨지면서 혈정은 점점 더 작아져만 갔다.
부서져간 혈기는 무진의 수라탄강기에 의해서 집어삼켜졌다. 혈기가 수라탄강기로 변화되어 갔다. 혈기를 집어삼킨 수라탄강기는 증폭되어 강력해지고 있었다.
동혈 안에 가득 찼던 혈기도 이제는 사라져 버렸다. 혈천강시가 전부 흡수한 후 수라탄강기에 먹혔기 때문이다.
혈정의 원념은 작아질 대로 작아졌다.
그 결과 원념 자체도 성정을 잃어갔다. 무진의 의지와 패력에 의해 혈정의 원념이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무진은 혈정을 백지상태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끝이다.’
-크아아악!
끝까지 버티던 혈정은 드디어 무너졌다.
혈천강시를 감싸고 있던 혈기가 사라지고 수라탄강기의 푸른빛이 감돌았다.
무진은 분출했던 기운을 내부로 갈무리하며 다듬었다.
필연적인 기연에 이끌렸던 무진은 완전히 다른 경지에 올라섰다.
무진은 혈기를 제압하면서 수라혼원심공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천하무적이었던 무진이 더 강해졌으니 대적할 자가 감히 나타날지가 의문이었다.
번쩍!
혈천강시의 감았던 눈이 떠졌다. 혈광을 번뜩이던 눈이 이제는 푸른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서서히 빛이 사라지며 보통 사람의 눈빛으로 변했다.
무진이 응시하자 혈천강시는 고개를 숙였다. 복종의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혈천강시는 혈기 대신 수라탄강기를 운용하고 있었다. 이제는 혈천강시가 아닌 수라강시가 되었다.
“네 이름은 이제 수라다.”
-수…라!
“가자.”
-예!
무진이 돌아서자 수라는 말없이 뒤를 따랐다.
무진과 수라가 동혈을 나와 계단을 걸어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과 동시에 제왕성이 크게 들썩였다.
쿠꽈꽈꽈꽝! 투꽈꽈꽝!
엄청난 폭발음이었다. 충격에 의해서 제왕성이 무너지려고 했다.
섬마단주 구대성은 수십 명의 희생을 내며 천득구를 유인해 내었다. 제왕성의 주 전력이 외부로 빠져나가기는 했지만 전사들의 무력은 결코 낮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득구의 무력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천득구가 뿜어내는 경력과 살기에 맞닿은 전사들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비명횡사해야 했다.
“지독한! 하지만 여기가 끝이닷!”
제왕성 내에 전사들도 꺼리는 장소가 바로 지옥혈이다. 수백 장에 달하는 깊이에 잴 수 없는 독물이 우글거리는 곳이라 일단 빠지면 다시 기어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천득구를 유인하여 지옥혈의 입구를 열면 끝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천득구가 멈추어 서더니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살포시 굴리는 것이 아닌가!
데구르르르르!
도화선에 불이 붙은 주먹만 한 구술덩어리가 구대성의 발치까지 굴러왔다.
그것이 무언지 확인하는 순간 구대성의 얼굴색이 시퍼렇게 질렸다. 이미 심지는 타들어간 지 오래였다.
“이…것은! 피…해!”
진천뇌력탄(震天雷力炭).
강호에서 사용되지 말아야 할 금지된 폭탄이다. 벽력탄을 수십 배나 능가하는 폭발력으로 반경 50장을 초토화시켜 버릴 수 있었다.
그런 무지막지한 폭탄이 구대성의 눈앞에 버젓이 존재했다. 그것도 폭발하기 일보직전이다. 도망이고 자시고 망설이 틈도 없이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투꽈꽈꽈꽝!
천득구는 구슬을 놓자마자 도망치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천득구보다 훨씬 더 빨랐다. 바람을 가르는 천득구는 시원하게 한마디 해주었다.
“꼬라지하고는!”
수작에 넘어가는 척하면서도 역으로 치명적인 일격을 날렸다는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천득구다. 속이 다 시원해지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폭발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천득구는 원래 위력보다 훨씬 더 강력한 위력에 기겁하고 말았다. 후폭풍이 일시에 사방을 집어삼키며 따라오고 있었다.
“이런! 벽력탄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진천뇌력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천득구다.
상상을 불허하는 폭발력에 휘말리기 전에 벗어나야 했다. 벌써부터 제왕성 내부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휘말리고 말 것이다.
“빌어먹을! 이야야얍!”
힘찬 함성과 동시에 필생의 여력을 신법에 전가하였다.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뭣 빠지게 달리고 나서야 폭발의 여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제왕성에서 벗어난 천득구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겨우 빠져나왔네.”
이마빼기에 흘러내리는 땀을 훔친 천득구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마터면 저 거대한 성과 함께 생매장되어 버릴 뻔했다.
아무리 천득구가 절대지경의 경지에 다다른 무인이라고 해도 저곳에서 매장 당하면 빠져나갈 방법이 많지 않았다. 아마 압사 당할 것이 분명했다.
우르르르! 꽈꽈꽝!
제왕성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하 수백 장에 달하는 공터가 존재하는 제왕성이다. 단단했던 기둥이 진천뇌력탄에 의해서 부서지자 힘을 잃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간신히 빠져나온 몇몇의 전사들은 무너지는 제왕성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굳건했던 제왕성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전사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아깝다.”
무너지는 제왕성을 보며 천득구는 한숨을 터뜨렸다.
나중에 자신의 별장으로 사용하려고 했던 성이 무너지자 안타까움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이만한 성을 다시 만드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 안타까움을 더 부추겼다.
‘빌어먹을 상인 놈!’
일전에 천득구는 암흑상인(暗黑商人)에게 거금(?)을 주고 벽력탄을 샀다. 음지에서 거래되는 물품이라 비밀을 요하는 품목이 벽력탄이다. 거래량도 많지 않았다.
천득구는 꼼꼼히 사용설명서를 다 읽고 난 후 거래를 했다. 물론 거금을 주며 협박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실 협박과 폭력으로 벽력탄 가격의 절반 이하로 깎아 내리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천득구의 입장에서 양호한 거래였다. 죽이지 않은 것을 감사히 여겼어야 했다.
그 결과 앙심을 품은 암흑상인이 벽력탄 대신에 진천뇌력탄을 준 것이다. 벽력탄보다 수십 배는 강한 진천뇌력탄을 준 이유는 같이 터져 뒈져버리라는 뜻이 다분했다.
“음? 그런데!”
뭔가 잊어버린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는데 딱히 무언가를 두고 나온 기억은 없는 것 같았다. 떨어진 것이 있나 몸을 뒤져보았지만 없어진 것은 없었다.
“뭐지?”
다시 한 번 시작부터 끝까지 재연을 해보는 천득구다.
“내가 놈들에게 유인 당하는 척할 때 주군은 성 안으로…….”
생각이 정지됐다. ‘뜨악!’이 되어 버린 천득구다.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생리현상까지 두려움을 부추겼다.
“이런 떠그럴!”
무진이 죽었으며 그것대로 괜찮다.
그런데 벽력탄 정도로 무진이 죽었을까!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천득구는 확신했다.
만약 저곳에서 무진이 살아 돌아와서 그 책임을 묻게 되면 어찌될지 감당이 되지 않는다.
‘최소 사망이다!’
천득구의 눈동자가 빠르고 회전했다. 이럴 때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천득구의 시선이 전사들에게 향했다. 우연치 않게 천득구의 시선과 전사들의 시선이 교차했다.
“재물 낙점.”
움찔!
“네놈들이 나 대신 당해줘야겠다! 크크크크!”
전사들은 천득구의 사악한 웃음에 소름이 돋았다. 무언지는 알 수 없지만 불길함이 작렬하고 있었다.
천득구는 시간이 얼마 없었다. 무진이 빠져나오기 전에 전사들을 몰살시켜 살인멸구해야 한다.
천득구는 전력을 다해 천살지기를 분출했다. 지존천마공을 끌어올려 천뢰검법을 인정사정없이 휘둘렀다. 전사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생존에 대한 욕구는 전사들보다 천득구가 더 강했다. 미친 살인마가 광분해서 날뛰자 감당이 되지 않을 지경에 처했다.
“나를 위해 영광스럽게 빨리 죽어랏!”
슈카카캉! 파아아앙!
천살강기를 유감없이 뿌리자 검력의 주변이 육편덩어리로 화했다. 전사들은 천득구의 무지막지한 검력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검진을 형성해 보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천살강기가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무참하게 검진을 갈라버렸다.
“악…마같은!”
“지랄! 내가 죽게 생겼는데 뭔 개소리야! 귀찮으니 어서 빨리 뒈지란 말이야!”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있었다. 전사들의 반항이 너무 끈질겼다.
그 순간 무너져 버린 제왕성의 중심부에서 거대한 기운이 하늘높이 솟구쳤다. 반경 10장이 솟구쳐 올라갔다. 기운을 여파로 인해 주변이 모조리 다 휩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