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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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82화
제2장 유인(誘因) (3)
중원대륙이 혼란했다.
황명(皇命)에 의해 병사들의 징집이 강행되었고, 군수물품이 북방으로 보내졌다.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이 알려졌으니 백성들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또한 무림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천맹과 흑룡성의 무인들이 차출되어 전장으로 출전했다.
정천맹의 무인 중 절반 이상이 북방으로 차출되면서 천라지망이 약해졌다. 도주하는 자들에게는 전쟁이 반가운 일이 되었다. 천하공적으로 이름을 올린 육혈마는 사방에서 조여 오는 추적자들로 인해서 피로가 극에 달해 있었다.
영악하게도 북리중천은 추격대를 그들의 사문을 중심으로 편성했다. 사문을 상대로 살수를 펼치기가 쉽지 않았다. 되도록 마찰을 피하며 도주를 하다 보니 힘이 두 배로 들었다. 제갈수혁이 진법을 교묘히 설치하여 빠져나갈 틈을 만들지 않았다면 사문의 피로 대지를 적셨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전쟁은 호기입니다. 이목을 끌지 않고 최대한 빨리 중원을 벗어나야 합니다.”
“벗어나서 어찌 하잔 말인가?”
“중원에서는 동조세력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사방에 깔린 정천맹과 천무상회의 정보망을 피해 세력을 만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서장이나 변황으로 가면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변황이라니!”
변황은 중원을 침공한 적이었다. 다른 이들은 제갈수혁의 뜻에 쉽게 동조하지 못했다.
절대사천과는 대적으로 만났던 이들이다. 세력을 규합하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꺼림칙했다.
변황을 통합해도 문제였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천하공적이 되는 것이다.
“무력으로는 놈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세력으로 놈을 능가하는 것도 아닙니다. 고작 우리 6명이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지금은 대의나 명분을 따질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제갈수혁은 가슴에 담고 있는 것을 터뜨렸다. 대의명분을 따지려고 하다가 도리어 무진의 수법에 놀아나고 말았다.
“놈에 의해서 사문이 박살나고, 우리의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잃을 것도 없습니다!”
공오대사, 팽관혁, 육진풍, 남궁훈, 당사혁은 제갈수혁의 말에 깨닫는 바가 컸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이미 뭉개져 버린 명예다. 다시 일으켜 세울 수도 없다. 정면으로 무진과 맞서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진과 대적하기 위해서는 대의명분을 따질 것이 아니라 힘을 늘려야 했다.
“여기서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죽을지 아니면 힘을 기르고 세력을 일으켜 세울지를 결정하십시오!”
제갈수혁의 단호함에 그들은 눈빛이 변했다. 마음을 붙잡고 있던 한 가닥의 실이 끊어진 것이다. 그들은 결심을 굳혔다.
“자네의 말대로 하지.”
“가자.”
사실 제갈수혁이 변황을 고집한 것은 다시 한 번 복수를 다짐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변황이 되었든 서장이 되었든 수단으로 사용하면 그만이다.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천하무림을 지배하고 있는 무진과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에 버금가는 세력이 필요하다.
변황, 서장, 천축, 신강, 대막, 운남, 해남 등 세외 세력 전부를 통합해야 가능할지 모른다.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는 시작도 못하고 끝날 수 있었다.
육혈마가 된 순간 인간의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발길을 재촉했다.
사삭!
육혈마가 떠나고 난 후 검은 인영이 대지에서 솟구쳐 올랐다. 천하16대고수들의 기감을 벗어나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은신술이 극에 이르러 있는 자였다.
그는 태산부터 이곳까지 육혈마를 추적해왔다. 그가 받은 명령은 육혈마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육혈마가 추적거리를 벌렸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추격을 받은 것은 모두 그의 작품이었다.
그는 밀영 서열 50위인 한풍영이었다. 무력보다는 경공술과 은신술에 뛰어난 존재다. 작정하고 숨어버리면 상위서열 밀영들조차도 찾기 힘들다.
‘이제 만나겠군.’
그의 임무는 끝이 났다. 이제는 흔적을 남길 필요가 없다. 육혈마가 정천맹의 추격권에서 벗어날 시기였다.
그는 애초에 없던 사람처럼 대지에 스며들었다. 마치 모래 속에 스며드는 물방울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초원에 바람이 분다.
사분오열(四分五裂)되었던 부족들이 제왕성의 명령에 의해서 하나로 뭉쳤다. 개개인의 힘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군사력은 날이 갈수록 증강되었다.
제왕성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대전에 참여하는 부족은 살려두고, 말을 듣지 않는 부족은 전멸시켰다. 동족이라고 해도 명령을 거부하는 존재는 적으로 간주해 버렸다.
강력한 힘을 숭상하는 초원의 전사들은 대전에 참여하는 것을 영광으로 알기 때문에 반항하는 부족은 많지 않았다. 10만에 달한 초원전사들이 순식간에 20만에 달했다.
그러나 증병된 전력만큼이나 군수물자가 풍족하지 않았다. 전쟁이 시작된 순간부터 시간과의 싸움이 되고 있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초원의 거친 이리처럼 적을 물어뜯어 물자를 충당해야 했다.
제왕성의 천왕들은 지체하지 않았다. 명의 군사력이 북방에 집중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만리장성을 중심으로 견고한 방어책을 구축할 것이 분명했다.
최단기간 내에 전력을 가다듬은 제왕성은 진군을 감행했다. 오랜 시간 참아온 초원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떨칠 시기였다.
오래전 그들은 내부 분열과 명의 간교한 계략에 무너졌다. 제왕성은 즉결 참(斬) 제도를 강력하게 활용했다. 분열을 초래하는 불순분자는 이유를 막론하고 참수해 버렸다.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강력한 통제력을 중요하게 여겼다.
8명의 천왕이 출병하기 전에 3명의 천왕이 특급전사들 30명을 이끌고 중원으로 들어왔다. 하북성과 산동성으로 이어지는 흔적을 따라 빠르게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건곤천왕(乾坤天王) 연철인, 무영천왕(無影天王) 화세인, 지옥천왕(地獄天王) 엽도였다. 중원의 지형과 지세를 잘 알고 있었고, 복장과 생김새에서 특이점이 보이지 않았기에 그들이 선택되었다.
“칸께서 부상을 당하신 것이 틀림없다.”
“흔적을 보니 놈들은 지독한 놈들이다.”
추격하는 솜씨가 보통을 넘어섰다. 도주로를 벗어나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조여드는 형태였다. 절대고수조차 빠져나가기 쉽지 않은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칸의 상태가 위급하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분명 심각한 부상을 당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서둘러 추격한다!”
중원에 깔아놓은 만귀당(萬鬼黨)은 제왕성이 미리부터 심어 놓은 정보조직이었다. 황궁의 일도 만귀당을 통해서 전해졌었다.
그들은 최단거리로 이동을 한 후 철무성을 추격하는 놈들을 섬멸할 생각이었다.
“감히 칸을 위협한 대가를 치러주마!”
“비열한 수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
스산한 살기가 천왕들의 몸에서 번져 나왔다. 혈신은 그들의 주인이자 대륙을 지배할 제황이었다. 주인을 위협하는 자들은 절대 살려둘 수 없었다. 위기를 틈타 비열한 수를 쓰는 놈들에 대한 지독한 분노였다.
그들은 산둥성 비현(費縣)의 인적이 드문 이름 없는 산을 가로지르며 남하하였다. 그리고 막 산을 넘어 흔적을 찾아 움직일 때 좁은 길목을 앞서가는 자들이 있었다. 인원은 2명이었다.
하늘에 붉은 노을이 졌다. 조금만 지체하면 어둠이 찾아오는 시각이었다. 산을 넘어가는 사람이 있을 시간이 아니기는 하지만 별달리 의심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천왕들과 일급전사들은 상관하지 않고 지나가려고 했다. 앞서 가던 이들도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돌아보다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괜한 마찰을 빚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기에 의심을 지웠다.
특급전사들 2명이 앞서 가는 자들을 가로질렀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 청년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씨익!
잘생긴 청년의 얼굴에 천진난만한 미소가 지어진 순간 예리한 살기가 공간을 찌르고 들어왔다.
갑작스런 살기에 놀란 특급전사는 황급하게 몸을 틀었다. 그들은 모두가 정련된 절정 이상의 고수들이다. 미세한 기감에도 반응할 수 있는 반사신경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청년은 초절정을 넘어서는 존재다. 대비하지 않은 상황에서 하수가 고수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푸욱! 푸욱!
특급고수 둘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믿을 수 없는 듯한 눈동자였다. 가슴을 찌르고 들어온 비수가 어느새 청년의 손에 회수되었다. 귀신같은 찌르기였다. 일검에 두 명을 저세상으로 보내버렸다.
털썩! 철퍼덕!
혼을 잃은 몸뚱이가 썩은 고목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동료의 죽음에 정신을 차린 특급전사들이 두 청년을 에워쌌다. 동료를 잃은 전사들은 짙은 분노를 표출했다.
지옥천왕, 건곤천왕, 무영천왕은 자책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이런 외지에 수상한 놈들이 한가하게 걸어간다는 것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2명이라는 수에 안일한 대처를 한 것이다.
특급전사들은 제왕성에서 집중적으로 단련을 한 전사들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전사들이 아니었다. 한순간의 방심이 불러온 화근이었다.
“절대 편히 죽이지 않겠다!”
소름끼치는 살기가 산의 정적을 깨웠다. 사방에서 조여 오는 살기는 무형의 기세가 되어 상대를 격살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씨익!
살기를 맞은 잘생긴 청년은 좋아 죽으려고 했다. 살기는 그의 자양분이자 타고난 본성이다. 눈빛에서 생기가 돌고 있었다.
반면에 다른 청년은 여전히 무심했다. 살기 따위는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 같았다.
“이런 미친놈들이!”
3천왕은 놈들의 반응에 기가 막혔다. 살기에 좋아 죽으려고 하다니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었다. 순간 주변에 매복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싱글벙글 웃는 청년은 잘생겼다. 관옥 같은 피부에 잘 제련된 이목구비, 여인이 바라마지 않는 그런 얼굴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소가 아름답기는커녕 차가웠다. 웃는 얼굴에 침은 못 뱉어도 칼은 찔러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살기가 아주 맛있네!”
“뭐라!”
“짜릿하고 맛있어! 이런 살기 어디서 배웠냐?”
“미친놈이구나!”
“아주 제법인데, 이거 칭찬이니까! 기뻐하라고!”
“사정 봐주지 말고 쳐라.”
대화를 하는 것도 상대가 정상이어야 할 수 있다. 미친놈과 잠시나마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 자체가 불쾌한 천왕들이었다.
우우우웅!
특급전사들의 기운에서 혈기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제왕성의 10대 무공에 속하는 혈화무극공(血花無極功)을 익혔다. 가벼이 볼 무공이 아니다. 혈기가 붉은 꽃의 형상을 이룰수록 혈화무극공의 수위가 높은데, 특급전사들 전부는 일정수준 이상을 넘어서 있는 상태였다.
특급전사들은 미친놈이라고 하여 가벼이 보지 않았다. 특급전사 둘이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죽었다. 범상한 놈이라 여길 수 없었다. 또한 희생을 늘이기보다는 강력한 힘으로 단번에 제압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여기고 있었다.
3천왕은 놈들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특급전사들의 합공은 화경의 고수도 상대할 수 있었다. 놈들의 수법이 만만치는 않지만 절대고수의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는 보지 않았다. 그런 자들이라면 3천왕도 알고 있어야 했다.
그때 무심한 표정의 청년이 손바닥을 횡으로 휘저었다.
휘이이잉!
바람이 불었다.
휘청!
포위를 하고 있던 특급전사들의 진형이 바람에 흐트러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절정을 넘어서는 고수를 손바람으로 물러서게 만들다니 그게 상식적인 일인가!
옆에서 지켜본 천득구도 기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손바람이기는 한데 일반적인 바람과는 차원이 달랐다.
‘바람을 마음대로 조종하다니!’
천득구가 함부로 다가설 수 없는 경지였다. 등 뒤로 찌릿한 한기가 치솟아 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네가 저놈들을 상대해라.”
“예? 저보고 저 30명을 모두 상대하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
“농…담이 아니겠죠.”
‘떠그럴!’
급한 것은 놈들이다. 그에 반해 무진은 한가했다. 천살성의 위력을 감상해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진형을 흐트러뜨리고 길을 연 무진이 한쪽으로 물러섰다. 특급전사들은 무진의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좀 전에 벌어진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천득구는 졸지에 날벼락을 맞고 말았다. 초절정에 근접하는 특급전사들도 문제지만 3천왕도 만만치가 않은 상대들이다. 천득구 일생에서 무진을 제외한 가장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괜히 따라왔네!’
흑룡성에서 북방으로 파견되는 무인들의 틈에 껴서 무진에게 왔었다. 한동안 피를 보지 못해서 적적했던 천득구는 무진의 호출에 희열을 느꼈다. 오랜만에 피를 좀 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웬걸, 너무 심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긴장감을 느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천득구가 두려움에 떠는 존재는 아니다. 천득구는 만면에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어디 해볼까!”
천득구의 전신에서 원천적인 살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기 위해서 천살지기를 퍼뜨렸다.
찌릿! 찌릿!
지독한 살기가 아닐 수 없다. 특급전사들의 살기와는 차원이 다른 살기였다. 무형지기와 맞먹는 살기였다.
지옥천왕, 무영천왕, 건곤천왕도 천득구의 살기에 미간을 찌푸렸다.
‘보통 살기가 아니다!’
‘이런 지독한 살기라니!’
살기만을 비교해 볼 때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기운이라고 할 수 없었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을 죽였을 때나 형성할 수 있는 살기였다.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지독한 살기를 뿌리는 놈 뒤에 팔짱을 낀 채 나무에 기대서 있는 놈이 더 신경 쓰였다. 놈이 좀 전에 보여준 수법은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바람에 의지를 실은 건가?’
‘저토록 젊은 놈이 어떻게?’
‘반로환동? 그럴 리 없다!’
3천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명 사술을 썼을 것이라 단정했다. 약관을 갓 넘어 보이는 놈이 반로환동한 고수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