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8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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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9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81화
제2장 유인(誘因) (2)
장원에 밀영1호 차중천이 대기하고 있었다. 무진은 방으로 들어와 차중천의 보고를 받았다.
“어떻게 됐지?”
“주군의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천맹과 흑룡성의 무인들을 차출하고, 밀영들은 전쟁을 지원해라.”
“알겠습니다.”
혈신의 부재에도 제왕성은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무진은 판단했다. 그래서 미리부터 천무상회의 재력을 안문관 근처로 집중시켰다. 전쟁이 벌어지면 지원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춘 것이다.
또한 북리중천과 담소극에게 명령을 내려놓았다. 원의 부활을 막는 일은 비단 제국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관과 무림이 상호불가침의 관계라고는 하나 대륙의 안위가 달린 일에 무림이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주하영이 대규모 징집을 신속하게 마치고 무림과 일치단결한다면 전쟁에서 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진은 확실한 승리와 패배를 원하지 않는다. 밀영들을 파견한 것은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손님이 오고 있으니 이제 그만 가보거라.”
“예.”
차중천이 조심스럽게 방에서 나갔다. 그가 나가고 난 후 손님이 장원 안으로 들어왔다.
주하영은 황궁의 일을 처리하고 난 후 청송장원을 찾았다. 신하를 보내도 되는 일이지만 무진과의 만남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은 주하영이다. 사실이 밝혀지면 황궁의 일이 외부로 발설이 될 수도 있다.
제국의 치부를 드러낼 수는 없기에 사전에 입단속을 시켰다. 그렇다 해도 한 손으로 열 개의 입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알게 모르게 소문은 전 중원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주하영이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무진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주인의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주하영은 무진의 성격을 알기에 뭐라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지키는 수하들은 심기가 불편했다. 제국의 여황제가 될 주하영이다. 황제 앞에서 자리를 권하지도 않고 일어서지도 않다니 무례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만약 무진이 아니라 다른 자였다면 구족을 멸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주하영을 호위하는 이들은 밀천의 십대고수들이다. 그들은 무진의 무력을 조금이지만 알고 있다. 제국을 넘어서는 인간 같지도 않는 무력을 지닌 초월자를 그들이 감히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저자는 제국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너무 위험한 자다. 그렇다고 척을 질 수도 없으니!’
무진과 갈라서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그를 배척해봤자 손해 보는 것은 제국이다. 한 개인에 의해서 제국의 운명이 걸려 있다니, 상상을 초월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밀천의 고수들은 무진의 약점을 잡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허점이 보이지 않았다. 단 한 점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천하최강의 무력과 천하제일의 재력. 그 이외에도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았지만 파악할 수조차 없었다. 너무나 대단하기에 감히 측정하기도 힘들었다. 제국의 황제조차 무진 앞에서도 초라해 보일 지경이다.
‘하!’
속으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무진의 시선이 주하영을 지나 밀천의 고수들을 향했다. 알 듯 모를 듯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움찔!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다.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차가운 비수와 같았다. 그들은 내심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씨익!
무진은 얼마든지 파악해 보라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본 그들은 소름이 돋았다. 은밀하게 밀천을 가동했는데도 무진은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작은 빈틈조차 허용하지 않는 무진의 능력에 경악했다.
주하영은 가급적 무진을 허물없이 대하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주변은 항상 그녀를 노린다. 그녀가 지닌 배경과 능력을 얻고 싶어 했다. 그에 반해 무진은 달랐다. 스스로의 힘과 능력이 그녀의 배경과 능력을 넘어섰다.
강한 존재에게 끌리는 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습성이다. 특히 여인은 강한 힘과 능력을 지닌 사내를 선택하려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무진의 능력을 인정했다. 그리고 무진이 지닌 배경과 힘을 얻을 수만 있다면 제국의 힘은 완전해질 것이라 여겼다.
“장원은 마음에 드나요?”
“불편하지 않다.”
“그동안 왜 아무런 연락도 안 했어요?”
“수련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예?”
주하영과 밀천고수들은 기가 막혔다. 지금도 얼마나 강한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런데도 더 강해지기 위해서 수련을 한다니, 도대체 어디까지 강해지려는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전쟁준비에 필요한 물자를 보급받아야 해요. 천무상회에서도 지원을 해 주었으면 해서요.”
“원하는 대로 지원해 주지.”
전쟁물자는 막대하다. 소모되는 양도 많을뿐더러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군상으로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도 있으나 방어하는 상황에서는 이익을 얻기가 힘들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대가를 받는 것도 천무상회에는 별다른 이권이 아니다. 이미 천하 상계의 대부분을 집어삼켰다. 무진이 버티고 있는 한 제국의 힘으로 굴복시킬 수도 없다.
무진이 원하면 무엇이든 들어주어야 하는 것이 주하영의 입장이었다. 무리한 조건이라도 수용할 작정이었던 주하영은 대수롭지 않게 수락하자 허탈하기까지 했다.
“조건은 없나요?”
“없다.”
“너무 쉽게 수락하니, 의심스럽기까지 하네요.”
“의심스럽다면 조건을 걸지.”
“뭔데요?”
“대명상회를 흡수하겠다. 개입하지 마라.”
“안 돼요!”
대명상회의 상회주 주유성은 주하영에게 숙부가 된다. 황족이 운영하는 상회를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애초에 들어줄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더군다나 대명상회는 황궁과 연계를 하면서 서로의 이권을 창출하는 동반자적인 관계다. 한쪽이 사라져 버리면 균형이 무너져 버릴 수 있었다.
“어차피 천하상계는 내 손에 있다. 대명상회가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지.”
“대륙상권을 전부 독차지하려는 거예요! 욕심이 너무 과한 것 아닌가요!”
“인간의 욕망은 원래부터 한계가 없다.”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다 할 수 없어요. 절제와 자제라는 말이 왜 나왔겠어요! 욕망의 끝없는 분출은 결국 파멸을 초래하게 되어 있어요!”
“그럴 수도 있겠지.”
무진은 말싸움을 선호하지 않는다.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것으로 인해 이권을 얻을 생각은 처음부터 갖지 않았다. 대명상회를 무너뜨리는 것은 무진의 안중에도 없는 일이었다. 그저 주하영의 생각을 떠본 것에 불과했다.
“한시가 급해요! 언제까지 지원해줄 건가요?”
“준비는 이미 끝났다.”
“진짜로요?”
“그렇다.”
북방으로 군수물자를 이동시켜 놓았다는 무진의 말에 주하영과 밀천고수들을 또다시 놀랐다. 군수물자를 하루 이틀 만에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는 것은 예전부터 북방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황궁의 일까지 예견하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세상이다. 선견지명(先見之明)이라는 말로써는 부족했다.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지경이다.
‘도대체 못하는 게 뭐야?’
주하영은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황족이라는 고귀한 혈통을 이어받은 주하영조차 무진에 비한다면 반딧불에 불과했다.
‘열등감 가질 필요 없어. 그냥 무시해!’
주하영은 고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머리 싸매며 고민하고, 비교해봤자 소용없는 짓이다. 그냥 맘 편히 사는 게 무병장수의 지름길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나중에 저 능력이 내 것이 될 수도 있지!’
하나가 되면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몇 번이나 목숨을 구해준 것으로 봐서는 관심 없는 척해도 자신의 매력에 점점 물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협의라는 거창한 대의보다는 아름다운 여인을 구해주는 영웅이 얼마나 멋진가! 전적으로 주하영의 독단적인 생각이었다.
무진은 주하영을 직시했다.
‘귀엽게 노는군.’
당돌하면서도 어떤 때는 누구보다 단호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로 주하영을 만만히 볼 수 없다. 가벼운 것 같지만 그녀의 내면은 차가우면서도 강인한 편이다. 무진이라는 벽이 있기에 작게 보이는 것뿐이다.
“군수물자는 그렇다 치고, 징집은 어떻게 되고 있지?”
“최대한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에요. 그래도 한 달 이상은 걸릴 것 같아요!”
“그전에 공격이 올 텐데.”
“북방의 수비병력이 30만은 돼요. 시간을 버는 것쯤은 문제없어요.”
“놈들을 간과하지 않는 게 좋아.”
“알고 있으니까, 걱정 말아요.”
제왕성의 병력 규모와 전투력이 밝혀지지 않는 상태다. 쉽사리 전황을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병력에서는 우위에 있을지 몰라도 태만한 시간이 길었다. 제대로 된 방비를 하지 않으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원의 공격방식은 기마병을 통한 빠른 전진에 있다. 속단하여 시간을 예측하다가는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놈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초원 전체에 동원령을 내렸을 것이다. 단합되지 않는 부족들을 규합하며 군사력을 증강시킬 것이 분명했다.
“그놈은 찾았나요?”
“아직.”
“하루라도 빨리 그자를 처리해야 하는데.”
철무성이라는 존재가 주하영에는 가장 껄끄러운 대상이다. 내부에 칼을 품고 있는 상태다. 언제 살가죽을 뚫고 빠져나올지 모른다. 배가 갈리면 전력을 쓸 수가 없다. 전쟁을 치르는 중간에 놈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에 무진이 필요했다. 무진이 있어야만 모든 일을 계획하고 풀어나갈 수가 있었다.
“정보력을 총 동원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놈은 보통이 아니잖아요.”
“네가 고민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쓸데없는 걱정보다는 전쟁에 집중해라.”
“당신이 걱정돼서 한 말인데 무슨 말을…….”
‘그렇게 몰인정하게 하냐!’
“고맙다고 해야 하나.”
“원래 그렇게 말하는 것이 교양 있는 사람 아닌가요.”
“고맙군.”
‘누워서 절 받는 것도 아니고!’
무진의 성의 없는 표현에 주하영은 못마땅했다. 주하영은 자신이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굳게 믿었다. 이런 아름다운 여인이 걱정해 주면 당연히 고마워하는 것이 정상적인 작동을 하는 사내들의 심리가 아닌가!
‘설마 작동 안 하는 것은 아니겠지.’
사내와 교접을 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장난 사내를 원하지는 않는다.
주하영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가 간신히 참았다. 그렇다고 해서 벗겨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정도의 부끄러움은 가지고 있는 주하영이었다.
“딴생각이 많은가 보군.”
“아…무것도 아니에요.”
“일 다 봤으면 이만 가지.”
“아니, 손님으로 왔는데 차 한 잔도 안 주다니 너무 실례예요!”
“바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군.”
“차 한 잔 마실 시간은 있어요!”
“그럼 한 잔 주지.”
‘내가 거지냐! 구걸하는 것도 아니고! 젠장!’
청송장원에 오기 전에 주하영은 꽃단장을 했다. 특별히 외모에 신경을 기념비적인 날이다. 가꾸지 않아도 고귀한 기품과 아름다움을 뽐내는 자신이 정성까지 들였다. 반하지 않을 사내가 없다고 여겼건만 목석이 따로 없다. 괜히 자존심이 상한다. 이대로 물러서기에는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 한 번에 훅! 넘어오면 재미없지.’
결국 그녀는 차 세 잔을 마시고 돌아갔다. 무진과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무진이 수련을 해야 한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안타까움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주하영은 물러섰다.
‘두고 봐.’
주하영이 가고 난 후에도 무진은 한동안 상념이 떠나지 않았다. 잊고 있었던 옛일이 떠올랐다.
“연화.”
무진의 죽은 부인의 이름이다. 연화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권력의 숙청으로 노예가 된 그녀의 부모로 인해 피폐한 삶을 살아야 했다. 무진을 만나서 노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비참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무진을 항상 은인으로 대하며 어려워했다. 무진의 사랑을 바라지만 감히 요구하지 못하고 참았던 여인이다. 그것이 가슴 아픈 한으로 남아 마음의 병을 얻었다.
사랑을 갈구하면서 적극적이지 않았다. 가지고 싶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진의 마음을 얻었어야 했다. 무진도 연화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내하는 사랑은 무진이 지향하는 바가 아니었다. 욕망의 절제 따위는 무진에게 통용되지 않는다. 연화의 마음을 받아들인다면 이제까지 무진이 살아온 삶이 부정당한다고 여겼다.
그에 반해 주하영은 다르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당당하고, 저돌적이다. 그런 성격은 누가 가르친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본성이었다. 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지금도 굳이 무진을 직접 찾아올 필요는 없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시켜 서신을 보내면 그만이었다. 그녀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무진을 만나러 왔다. 무진의 내면에 감추어진 잔인한 성정을 조금이지만 본 주하영이다. 그런데도 꺾이지 않고 찾아왔다.
상반된 두 여인이다. 하지만 둘 다 특별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 인세에 찾아보기 힘든 특별하면서도 신비한 여인들이다. 무진의 마음에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었다.
“한심하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무진이었다. 여인으로 인해 감상에 젖어들었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진은 언제 어디서는 절대부동의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인간일 뿐이라는 건가! 하긴 벗어나려 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조화의 극에 달한 존재들을 신선이라고 한다. 그들은 인간의 육신을 벗어 던지고 신의 반열에 올라선 자들이다.
그러나 태생이 인간이다. 인간이면 인간으로서 초월자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굳이 인간의 굴레를 벗어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무진은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하늘을 능가할 것이다. 신이 될 생각은 애초부터 갖고 있지 않았다. 신을 능가하는 인간이 될 뿐이다.
무진은 상념을 떨쳐 버렸다.
“미끼를 던졌으니 걸려들 때가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