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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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2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4화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4화 천덕꾸러기 마법사 (3)
“안 믿기면 직접 보시겠습니까? 참고로 이번 위계 박탈은 11년 만에 일어난 일이라는군요. 참 대단하십니다.”
금발 머리의 소년. 쥬드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자신의 마스터에게 두루마기를 내밀었다.
“쥬, 쥬드! 아무리 그래도 말이 너무 심해! 아직은 우리……!”
일행의 홍일점인 에리나가 말렸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진짜 심한 건, 눈앞의 저 무능한 스승이었으니까.
[……그리하여 우리 베리헨 평의회는, 대륙력 380년 4월 18일까지 마땅한 업적을 올리지 못할 경우, 유렌 슈나이더를 3위계의 자리에서 강등시킨다는 결정을 통보…….]
마법사의 계급이자 칭호인 ‘위계’.
실력주의를 표방하는 마법계는, 철저하게 레벨과 위계를 맞췄다.
예컨대 3레벨의 마법사에겐 3위계인 메이지의 위계를.
4레벨의 마법사에겐 동위계의 세이지. 5레벨에겐 위저드 등.
레벨 = 위계라는 것은 이미 상식이자 공식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3레벨인 유렌이 2위계로 강등된다면?
전례 자체가 극히 드문,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지금까진 비교도 안 되는 경멸과 비웃음이 쏟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2위계가 된다면 더는 제자를 거느릴 수 없게 된다.
즉, 그들은 자유라는 말이었다.
“아카데미의 졸업 규정상, 어쩔 수 없이 당신의 제자가 되었지만 이제 그것도 다 끝입니다. 당신에게 배운 건, 무능도 죄라는 말을 아주 잘 알게 된 것뿐이야!”
“그렇지!”
“당신은 같은 스승은 이쪽에서 거절이다!”
“…….”
뒤에 서 있던 갈색 로브를 입은 두 소년은 쥬드의 말에 격하게 호응했다.
심지어는, 그나마 유렌에게 동정적이던 에리나마저도 침묵으로 그 말에 동의했다.
전투 마법사를 지망하는 그들에게, 지금까지의 유렌은 정말 최악의 스승이었으니까.
쥬드는 비웃는 눈으로 차분히 두루마기를 읽는 유렌을 바라보았다.
‘흥. 충격으로 말도 안 나오나 보군.’
하지만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유렌은 두루마기를 다 읽고는, 평온히 말했다.
“흠. 뭐야, 아직 확정도 아닌데. 너희들 너무 일찍 기뻐하는 거 아냐? 기간도 열흘이나 남았는데.”
툭-
그리곤, 두루마기를 대충 옆 바닥에 던져버렸다.
이대로 시간을 더 끌다간, 음식이 식을 게 뻔했다.
얇고 긴 뼈의 양면에 붙어있는, 야들야들하면서 육즙이 흐르는 고기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 사이에 공적이든 뭐든 세우면 되는 거잖아. 뭐, 가져다 준 건 고마운데 시끄러우니까 이만 가봐. 자고로 밥 먹을 땐, 신병도 안 건드리는 법이니.”
유렌은 손바닥을 훠이훠이 흔들며 축객령을 내렸다.
절망은커녕,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뭐, 뭐어?”
쥬드를 비롯한 제자들의 눈이 커졌다.
본래의 그라면 틀림없이 울먹이면서 고개를 숙이고 도움을 청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긴커녕 귀찮다는 듯 꺼지라니?
“우, 웃기지마! 겨우 열흘간 당신이 어떻게 업적을 쌓겠다고……!”
“그만.”
흥분해 붉은 얼굴로 소리치려던 쥬드의 외침이 멈췄다.
흠칫-
쥬드의 눈동자가 유렌과 마주친 순간, 그의 몸이 제멋대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너희들의 마스터가 누구지? 벌써 열흘이 다 지났나?”
“…….”
“분명 마스터는, 불손한 제자들을 자유롭게 처분할 권리가 있다지? 죽이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꿀꺽-
‘그, 그런 권리는 없는데!’
네 명은 머릿속으로 동시에 부정했지만, 방안은 침묵만이 가득했다.
유렌에게 흘러나오는 무시무시한 압박감이 그들의 입을 굳힌 것이다.
“나도 과거에…… 너희에게 미안했던 감정이 있었으니 여기까지 참은 거다. 세 번은 말 안 하니, 꺼져라.”
유렌의 말은 흡사 맹수가 그르렁거리는 것처럼 울려 퍼졌다.
제자들의 목덜미에 땀이 촉촉이 맺혀갔다.
사실 유렌은, 이 제자라는 짹짹이들의 칭얼거림은 딱히 손을 쓸 생각은 없었다.
물론 가소로운 기분이야 들긴 했지만, 원래의 유렌이 일기장에 쓴 기록을 보면 그들에게 죄책감이 있었으니까.
가벼운 긁음 정도야 넘어가 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
맛난 밥을 먹으려는데, 앞에서 병아리가 계속 짹짹거리며 방해한다면?
그건 어서 내쫓아야지.
“가, 가볼게요. 마스터.”
에리나의 조용한 인사와 함께, 제자들은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특히 의기양양하던 쥬드의 얼굴은, 혼란과 의문. 그리고 경악이 가득 담겨 있었다.
서걱-
이제야 고기를 썰어 입술에 댄 유렌의 인상이 조금 찌푸려졌다.
젠장.
좀 식었잖아.
하지만, 그래도 고기는 고기다.
우적-
달콤한 소스가, 부드러운 고기와 함께 풍부한 육즙을 터트리며 입안에 맴돌았다.
양고기 특유의 노릿함을 소스로 잘 잡아준 것이다.
유렌은 몸을 떨며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아쉬움도 살짝 느꼈다.
‘조금만 더 따뜻했더라면, 훨씬 맛있었을 텐데.’
저놈들이 약간만 더 빨리 돌아갔어도.
‘니네들. 다음엔 각오해라.’
유렌은 머릿속으로 생각한 ‘교육’의 난이도를 한 단계 올렸다.
신병들의 곡소리를 끌어냈던 훈련 경험이,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조합되었다.
소년 소녀들의 미래가, 조금 더 험난해지는 순간이었다.
* *
꽤나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후.
유렌은 숙소를 나와, 발걸음을 재빠르게 옮겼다.
인구 50만의, 대륙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이 대도시는, 다른 곳에는 없는 특수 지구가 존재했다.
-마법 지구.
다른 도시처럼 마탑이나 마법 상점이 몇 개 모여 있는 정도가 아니다.
건물, 사람, 상품 등 말 그대로 이 구역 전체가, 오로지 마법과 관련된 것들로만 들어차 있었다.
“저거, 유렌 아냐?”
“응? 흐흐. 맞군. 실험 때문에 오늘내일한다더니, 아니었나 보지?”
“용케도 일찍부터 뻔뻔히 돌아다니는군.”
수군수군-
유렌이 마법 지구에 들어서자, 주변의 수군거림이 배는 늘어났다.
아무래도 마법사들이 많아지니,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 또한 많아진 것이다.
‘얘가 미치려고 했던 이유도 알겠군.’
길거리만 돌아다녀도, 최소 열 쌍 이상의 눈에서 멸시의 시선이 느껴졌다.
안 그래도 소심한 성격의 그가 버티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갔다.
‘뭐, 나로선 신선하지만.’
끽해야 3레벨 찌그러기들이 보내는 시선이, 공포와 절망이 아니라 멸시라고?
신선함을 느낌과 동시에, 웃기지도 않았다.
유렌은 코웃음을 치며 재빠르게 목표로 삼은 곳으로 발을 옮겼다.
‘여기, 맞나?’
구역 외곽에 위치한, 목재로 된 낡은 2층 건물.
딱 봐도 주위보다 확연히 작고 볼품없는 이 건물에, 한 작은 마도구 상점이 있었다.
-레드 라이트닝.
약간 비뚤어진 간판에는, 여러 갈래로 퍼지는 붉은 번개와 가게의 상호가 적혀있었다.
끼익- 끼익-
낡은 출입문이 지나가는 바람으로 신음을 내지르고, 손님 하나 없는 풍경이 참으로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놀랍군. 정말 여기가 맞아?’
누가 봐도 망해가는 낡은 가게.
하지만, 간판을 본 유렌의 눈이 반짝였다.
‘저 표식. 확실해.’
20여 년 후.
왕국은 물론, 전쟁 중인 제국까지 이름이 알려진, 대륙 최고의 마도구 상회.
레드 라이트닝.
‘아. 그러고 보니, 한 번 망하고 다시 재기했다던가?’
지금이 망하기 전인지 후인지까진 알 수 없었다. 원래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은, 이 짧은 지식과 주인의 이름뿐이었으니까.
끼이이익-
유렌은 볼품없는 가게의 문을, 거침없이 열고 들어갔다.
“계십니까! 선배!”
훗날 거대해지는 이 상점의 주인이, 유렌과 친분이 있다는 우연에 다시금 놀라면서.
* *
세이지 위계의 4레벨 마법사- 베두인 디 페르안은, 최근 커다란 두 가지 고민이 있었다.
“어제 매출은 얼마나 나왔지?”
“은화 3개요.”
“……그래. 에휴우-.”
첫 번째는 망해가는 자신의 가게.
-품질만 좋으면, 손님은 자연히 올 거야! 입지는 중요하지 않아!
2년 전.
저런 개소리를 하면서, 외곽에 있는 싸구려 건물에 가게를 차린 자신을 저주했다.
오픈 때부터 조금씩 적자가 쌓여간 이 가게는, 아마 파산 직전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친한 고향 후배의 몰락.
유렌 슈나이더.
나이 차는 약간 있었지만, 같은 고향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형제처럼 지내던 사이였다.
좀 소심하긴 했지만, 고향에선 제법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던 그다.
하지만, 이곳 베리헨에선 말 그대로 모두에게 비웃음당하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역시 그 사건이 결정적이었나?’
게다가, 최근에 목숨이 위험한 사고까지 당했다는 말까지 들렸다.
도저히 손을 뗄 수 없는 중요한 실험 도중이라 갈 수 없었지만, 이제야 마무리되어 만나러 가던 참이었는데…….
“오! 선배! 여기 계셨군요.”
“유, 유렌?”
뭔가 달라진 유렌이, 그를 먼저 찾아와 있었다.
“갑자기 죄송합니다만, 선배. 단시간에 업적을 어떻게 올리죠?”
“응? 뭐야, 갑자기. 웬 업적?”
“안 올리면, 위계를 강등시킨다고 해서요.”
“뭐, 뭐라고?!”
“아, 그리고 기초 마법의 원리도 좀 알려주시겠어요?”
“그건 또 왜? 아니, 그것보다 위계를 강등 시킨다는 건 대체?”
“저, 실험으로 기억이 좀 날아가서. 마법에 대해 기억이 하나도 안 나거든요.”
“뭐야아?!”
베두인의 두 번째 고민이, 더욱더 깊어졌다.
* *
“그러니까, 하나씩 차분히 얘기해보자.”
“그러죠.”
가게의 2층.
두 사람은 베두인의 방에 들어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꿀꺽꿀꺽-
일단 베두인은 목이 타는지, 물 한 컵을 비우고는, 유렌을 바라보았다.
“기억의 상당수가 날아갔다고?”
“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것보다 안 나는 게 더 많아요. 특히 마법 쪽은 죄다 날아간 것 같고.”
“이런.”
베두인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움켜잡으며, 후배의 불행에 깊이 탄식했다.
‘이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네.’
그를 바라보는 유렌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다시 눈을 뜬 뒤, 이 몸에게 호의를 가진 인물은 처음 보았다.
‘마법사에게 받는 호의라. 익숙하진 않군.’
베두인은 크게 한숨을 쉬더니, 고향 후배에게 잔인한 현실을 고했다.
“음. 유렌, 네가 아직 기억이 온전치 못한 것 같은데……. 지금 강등이 문제가 아니야. 마법사로서 지식을 잃어버렸다는 건, 말 그대로 마법사로서의 너를 잃은 거라고.”
몸이야 마력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으니, 아예 초심자보단 나았다.
하지만 마법의 기초 원리도 모른다면, 마법을 익힌 것이 대부분 날아갔다는 이야기다.
“열흘 동안 강등당하지 않을 업적이란 건. 너보다 강한 3위계 상대를 결투에서 압도하거나, 특정 난이도 이상의 던전을 정복해야 할 거야.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기억이 있는 너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거야.”
“결투요?”
“그래. 그것도 3위계 중에서 이름 있는 자를 이겨야, 필요 업적에 닿을락 말락 하겠지. 그걸 지금의 네가 어떻게 하겠어? 유렌. 솔직히 말할게. 고향에 돌아가 지내는 거.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봐.”
베두인은 그렇게 말하고,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유렌에게 건넸다.
<아이부터 시작하는, 마법의 걸음마!>
현재 그의 상점에 있는, 가장 어린아이용 기초 마법 책이다.
3위계의 마법사에겐 이걸 배우라고 건네는 것 자체가 모욕이나 다름없는 책.
“줄 테니까 일단 이것부터 다시 익혀보고.”
하지만 베두인은 이것이 그의 현실이라고 여겼다.
-딸랑.
그때. 마법의 종이, 1층의 방문객을 알렸다.
“이런. 하루 종일 안 오던 손님이 이럴 때만 오는군. 잠시만 기다려.”
하나 있던 종업원은, 마침 조금 전 퇴근 시켜 버렸으니.
베두인은 투덜거리며, 1층으로 향했다.
“결투라.”
그거 좋은 방법인데?
홀로 남은 유렌은 받은 책을 집고는 슬며시 웃었다.
* *
약 30여 분 후.
“그러니까, 꼭 방염 기능이 있어야 합니다. 그을림 방지 정도가 아니라, 어지간한 불에는 끄떡없게요.”
“그러면 가격이 꽤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불의 수정의 조각 가격들이…….”
“그러니까 그걸 조금 어떻게든 해주세요. 대신 세 개나 주문하지 않습니까?”
베두인은 한 남작가의 집사와 숨 가쁜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
간만에 커스텀 마도구의 주문이 들어온 것은 좋았는데, 상대가 너무나 짠돌이였다.
‘세 개면 뭐해? 이러면 이윤이 거의 안 남는데.’
차라리 자작가 이상의 귀족이라면, 체면 때문에 이러지도 못할 터인데.
베두인이 크게 한숨을 쉬려는 그 순간.
쿠웅-
주위의 마력이 뒤틀렸다.
“크억?”
“그러니까 좀 더 싸게…… 어? 왜 그러시죠. 마법사님?”
일반인인 집사가 영문을 모르는 눈으로 베두인을 바라보았다.
‘뭐, 뭐야? 이건.’
베두인은 집사의 눈길을 무시한 채, 황망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주변의 마력이, 뒤틀려가며 2층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유, 유렌?’
“어, 어디 가십니까!”
다다다-
위층에 남아있는 후배의 걱정에, 베두인은 재빨리 달려 올라갔다.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찼지만, 몸은 움직였다.
‘2층에 있는 마도구가 폭주한 건가? 아냐. 그런 물건은 없을 텐데?!’
번쩍-
어찌나 급했는지, 신체 강화마법의 초록빛이 그의 몸을 뒤덮었다.
올라가는 속도가 몇 배로 빨라졌다.
콰앙-!
“이, 이게 무슨?!”
그리고 보게 된 2층의 풍경에 베두인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주변의 마력이, 유렌에게 모이고 있었다.
“큭!”
심지어는 몸에 걸린 신체 강화마법마저 분해되어 빨려가자, 베두인은 경악했다.
이곳저곳에서 모아진 마력은, 유렌의 오른손에 응축되어 웅웅거리고 있었다.
“아, 선배. 다 끝났나요? 마침, 이 책 좀 읽고 따라 해보던 중이였습니다.”
베두인을 보며 덤덤히 말하는 유렌의 왼손에, 어린 아이용 마법 책이 펴져 있었다.
[2장 – 마력을 모아보자.]
베두인은 그저, 멍한 눈으로 달라진 후배를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