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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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3화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3화 천덕꾸러기 마법사 (2)
아직 어둠의 장막이 깊게 남으면서도, 샛노란 태양의 빛이 조금씩 보이는 시간.
새벽 6시.
짹짹짹-
마도 왕국의 수도 베리헨의 아침은 빨랐다.
이 도시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마법사들의 성지’라고 불리는 이곳이, 다른 도시와 비슷한 시각에 아침을 맞이하는 걸 보고 놀라곤 했다.
흔히들 마법사는 밤을 새워서 연구하고, 낮에나 일어난다고들 알고 있으니까.
“자-! 모두 아침 구보. 시작!”
실제로, 베리헨의 마법사들 대부분이 그런 생활 패턴을 지니고 있긴 했다.
하지만 이 도시의 구성원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대륙의 마법 인재들이 모인다 한들, 인구 50만의 대도시에서 그들은 어디까지나 소수.
대다수 도시 시민들의 아침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흐아아암-. 어느새 해가 떴나? 병사님들!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하나둘! 하나둘! 옙! 좋은 아침임다!”
상점가 구역의 중심대로.
마차가 한꺼번에 6대가 지나가도 남을 정도의 커다란 길에, 경무장한 수백 명의 병사가 일사불란하게 달리고 있었다.
중간 중간, 졸린 눈을 비비는 시민과 인사를 나눠가면서.
50여 년 전.
당시 한 경비대장이 생각해낸 새벽대로 구보는, 이미 도시의 명물이 되어있었다.
어차피 일반 시민들이야 해가 뜰 때쯤 기상하니, 그들을 깨우는 자명종 역할로도 아주 좋았고.
“하나둘! 하나둘!”
“오늘도 수고들 하십니……어?”
“뭐야, 저거 누구야?”
당연히도 귀족이나 마법사들의 거처는 피했기에, 이건 어디까지나 시민들만의 소소한 풍경이었다.
분명 어제까진 그랬다.
“헉-허억. 헉.”
사람들의 시선이, 병사들의 한참 뒤에서 힘겹게 달리고 있는 청년에게 향했다.
그의 적갈색 머리칼도, 훤칠하지만 삐쩍 마른 꺽다리도, 다 죽어가는 숨소리도, 전부 눈에 띄긴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것은, 그의 오른 어깨에 걸치고 있는 번쩍이는 푸른색 천이었다.
“저 퍼런 거, 메이지 위계의 증표 아냐?”
“맞아. 마법사가 로브를 벗을 때 차야 하는 그거···. 잠깐. 그럼 저 사람?”
“메, 메이지야? 메이지가 왜 병사 뒤에서 뛰고 있지?”
3위계의 정식 마법사가, 병사들의 뒤에서 뛴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떠들썩해졌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 못 할 행위였기 때문이다.
-마법사의 육체단련은 시간 낭비다. 어디까지나 그건 마법에 재능이 없는 병사와 기사들이 하는 고행일 뿐이다.
마법사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신체 강화마법은 높은 효율성을 자랑한다.
신체 강화의 증거인 초록빛이 온몸에서 은은히 빛나는 순간- 기사급에 준하는 육체 능력을 갖출 수 있으니까.
-멍청하게 육체를 단련할 시간에, 마력을 조금이라도 더 일깨워라!
왕국에선 일개 시민들도 모두 알고 있는 마법사의 상식.
그것을 깬 청년에게 시선이 모이는 가운데,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한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잠깐. 저거 혹시 메이지 유렌아냐?”
“응? 누구?”
“맞는 것 같네. 적갈색 머리에 키가 크고 말랐다고 했으니.”
“뭐야, 그 멍청이로 유명한?”
“쉬잇! 아무리 그래도 메이지야!”
“죽을 뻔했다더니, 좀 맛이 간 건가?”
웅성- 웅성-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인파의 시선에, 비웃음이 조금씩 섞이기 시작했다.
“허억-. 커억-!”
그러거나 말거나, 유렌은 과하게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병사들의 뒤를 계속 따랐다.
약한 육체는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의 영혼이 몸을 이끌었다.
“하나둘! 하나둘! 저, 저기 뒤에서 웬 메이지가 쫓아오는데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합니다.”
“헛둘, 헛둘! 후우. 내버려 둬. 곧 마법을 쓰겠지. 거. 참. 괴짜로구만.”
병사들이나 시민들이나 모두, 곧 유렌의 몸에 초록빛이 번쩍일 거로 생각했다.
당연했다. 마법사의 순수 신체 능력은 암담 그 자체니까.
게다가 저 유렌이란 멍청한 작자는 특히 더 말라빠졌는데, 어떻게 마법 없이 뛰겠는가.
“어?”
“계, 계속 뛰는데? 저 상태로?”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빗나갔다.
강화마법의 초록빛은, 구보가 끝날 때까지 유렌의 몸에서 비치지 않았다.
“커헉- 크헉! 허어어억-!”
유렌은 거의 죽을 듯이 숨을 헐떡이면서도, 마지막까지 뛰었다.
온몸이 파김치가 되고, 다리도 부들부들 떨렸지만, 맨몸으로 병사들의 뒤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비틀비틀-
구보가 끝나고,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 유렌의 뒷모습에, 시민들과 병사들의 시선이 모였다.
‘뭐지? 왜 달리기를?’
‘마법사가 맨몸으로 뭐하는 거야?’
‘그래도 끝까지 마법 없이 따라갈 줄은 몰랐네.’
시종일관 비웃음거리였던 유렌의 평판 속에, 희한한 괴짜 타이틀이 조그맣게 추가되었다.
* *
“허억- 허억. 젠장. 겨우 그만큼 뛰었다고 아주 죽겠네 죽겠어.”
생각보다도 더 연약한 육체다.
유렌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숙소 건물로 돌아와, 곧장 샤워방으로 향했다.
석재로 만든 널찍한 방에 천장에 마도구를 달아 따뜻이 몸을 씻을 수 있는 곳.
수도도 환기도 하수도도 아무것도 없이, 몇 가지의 마도구만으로 완성된 이 공간은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런 쪽으론 제국보다 수십 년, 아니 최소 백 년 이상 앞서있군.’
21년 전의 왕국에서 눈을 뜬 지 이제 이틀째.
유렌은 왕국의 마도 기술에 놀라고 있었다. 20년 후의 제국조차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났으니까.
뭐, 그때의 제국이야 마법과 담을 쌓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상태였긴 했지만.
“후우- 시원하다.”
샤워를 마친 유렌은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끌고 방으로 돌아왔다.
“이거였던가?”
그리곤 문 쪽 벽에 박혀 있는 작은 수정구에 마력을 약간 집어넣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생활 마도구에 대한 기억은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빠진 상태였지만.
삐익-
마력을 얻은 수정구가 반짝거렸다.
-하아암. 누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부르시는···. 헙! 메, 메이지 유렌!
식겁한 숙소 관리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유렌은 거울의 시계를 슬쩍 보았다.
07시 58분.
기사라면 이미 식사까지 다 마치고 출근을 마칠 시간이었다. 확실히 마법사의 아침은 느렸다.
“지금 방에서 식사를 좀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아, 예! 물론이죠! 빨리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존 정식이 아니라, 고기 요리들을 잔뜩 부탁 가능할까?”
-어? 고기 요리…… 말입니까?
어제 이후로 유렌에게 공포를 가진 관리인이었지만, 그의 엉뚱한 주문에 의문이 먼저 올라왔다.
마법사에게 고기는 불호의 식재료다.
집중을 방해하고 몸에 좋지 않은, 평민이나 환장하는 음식의 대명사니까.
“그래, 고기 요리, 양 많게. 왜? 안 돼?”
오싹-
하지만 유렌의 낮게 깔린 목소리를 듣자, 관리인은 자신도 모르게 오금이 저렸다.
어제의 그 미칠듯한 공포가 다시 떠오른 것이다.
-아, 아닙니다! 약간 시간이 걸리겠지만, 최대한 빨리 요리해서 보내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유렌은 관리인과의 대화를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았다.
‘식사가 오려면 꽤 시간이 걸리겠지.’
이곳선 흔치 않은 고기 요리다.
그것을 대량으로 주문했으니 더더욱 그럴 터.
유렌은 그 시간 동안, 현재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스슥-
빈 종이 위로, 잉크를 머금은 깃털 펜이 거침없이 춤을 췄다.
먼저 아까 전 시작한 육체의 강화.
대마도사를 목표로 삼긴 했지만, 그렇다고 비실비실한 몸으로 살아갈 생각은 없었다.
건강한 정신은 체력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게다가 신체 강화마법은 나중에 전투에선 사장 될 예정이고.’
허약한 육체도 간단히 준 기사급으로 만들어주는 신체 강화마법.
아주 효율적이라 기본 중 기본이 된 이 마법은, 불과 10여 년 후. 갑작스레 전장에서 사장된다.
‘당시엔 그 덕에 왕국을 몰아붙일 수 있어 좋아했었지만.’
훗날 안 사실은, 흑막들이 양 나라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한 짓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맞설 생각이면서, 신체 강화마법에 의존한다? 완전히 바보짓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지위와 명성.’
흑막들은 왕국의 고위 마법사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게 뒤에서 조종하다, 기회다 싶었을 때 단숨에 꿀꺼덕 삼켰으니까.
이를 상대하려면? 일정 이상의 지위는 물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자신만의 조직이 필요했다.
하지만 현재 자신의 지위와 명성은, 제로를 돌파해 마이너스인 상태.
‘귀족과 마법사들의 평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려. 그럼 차라리 먼저 밑쪽부터 다져놔야지,’
그래서 일부러 시끄럽게 시작한 아침 달리기다.
조용한 곳에서 해도 될 것을, 굳이 과하게 눈에 띄게 했다.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결과가 나오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법.’
톡톡-.
유렌은 자신도 모르게 펜으로 종이 위를 두들겼다.
사실 지금 가장 문제인 것 이것이다.
자신의 머릿속엔, 마법을 쓰기 위한 지식이 하나도 없었다.
본래 육체가 가지고 있었던 기억 속에서 마법 이론이 쏙 빠진 상태였으니까.
‘상대 마법이야 수없이 찍어 눌러보긴 했지만, 내 마력을 마법으로 바꾸는 건 해본 적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니.’
비록 여러 문제는 있었지만, 본래의 유렌은 3레벨의 정식 마법사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1레벨의 기초 마법조차 모르는 상태.
마법사라고 하기조차 애매한 상황.
‘일단 마법의 기초부터 알아 갈 필요가 있어.’
어제 이 방의 책들을 다 뒤져봤지만, 그가 원하는 초보자용 마법 입문 책은 없었다.
‘도서관에 가던가, 그게 아니면···.’
믿을 만한 사람에게, 사정을 말하고 책을 얻거나 배우던가.
일기장과 단편적인 기억에서, 유일하게 믿을만한 한 선배를 떠올릴 그때-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다.
“오, 밥이군.”
시계를 보니, 어느새 50분이 지나있었다.
운동으로 기운이 빠졌으면, 그것을 꽉꽉 채워줘야 하는 법.
이런 보급은 매우 중요했다.
특히 고기는 더욱 그랬다.
근육과 미식. 두 개의 만족을 다 채울 수 있으니까.
‘제대로 된 고기 요리가 얼마 만이지? 거의 1년?’
전장에서의 마지막 반년은, 매번 육포만 씹었었지.
유렌은 종이를 치워버린 후, 흡족하게 웃으며 문 쪽으로 향했다.
맛난 고기의 시간이었다.
* *
……가 아니었다.
분명 고기는 왔지만, 그 외의 것도 함께 와 버린 것이다.
유렌이 방문을 열자,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이 우르르 들어왔다.
“내가 이렇게나 음식을 많이 부탁했던가?”
관리인 하나.
식사를 나르는 일꾼 둘.
갈색 로브를 입은, 아직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년 소녀 넷.
자신까지 총 여덞 명의 사람이 방 안에 있자, 제법 넓었던 방도 좁아 보였다.
“메, 메이지 유렌. 죄송합니다. 마침 이분들이 찾아오셔서.”
“……?”
유렌에게 사과하는 관리인에게, 갈색 로브 중 가장 앞에 선 금발 소년의 눈길이 의아하게 머물렀다.
“이, 이게 뭐야. 죄다 고기 요리잖아?”
“이른 아침부터 이게 무슨? 윽! 이 냄새!”
갈색 로브 무리 중, 뒤에 선 두 소년이 그렇게 쫑알거리자, 유렌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멋대로 들어오더니, 이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코를 잡아?
“너희들은 뭐냐? 남 식사하려는데, 멋대로 들어와선,”
유렌의 그 말에, 순식간에 방안엔 침묵만이 남았다.
달그락- 달그락-.
오로지 일꾼들이 접시를 놓는 소리만이 방안을 울렸다.
“그, 그럼 가보겠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그래, 수고 많았다.”
“네, 넵!”
관리인과 일꾼들은 엮이기 싫은지 후다닥 음식을 놓고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저게 무슨?”
갈색 로브들은 관리인의 비굴한 태도에 잠시 놀랐다가, 유렌의 조금 전 말로 다시 의식을 돌렸다.
“혹시, 지금 저희보고 누구냐고 물으신 거예요?”
“그래.”
“아니, 지금 대체 그게 무슨 소리……!”
“에리나. 잠깐.”
일행 중 홍일점인 자줏빛 머리의 소녀가 흥분하자, 금발의 소년이 그녀를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혹시나 했는데, 기억에 혼란이 생겼다는 게 정말인 것 같군요. 마스터.”
“마스터?”
“네. 마스터. 저희는 당신의 제자들입니다.”
상큼하게 웃으며 말하던 금발 소년의 미소가, 곧 일그러지며 비웃음으로 변했다.
“딱 열흘 뒤까지만 말이죠.”
소년은 로브 속에 있던 두루마기를 꺼내 활짝 펼치며 말했다.
“열흘 뒤에 있을 3위계- 메이지 칭호의 박탈. 미리 축하드립니다. 마스터.”
대놓고 이쪽을 비웃는, 금발 소년을 보자, 유렌은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네가 여단장인가? 반갑다. 내가 새 소대장으로 임명된 사람이다! 난 위대한 자작가의 일원이니, 계급과는 상관없이 경례는 그쪽이 먼저 하도록!
분명 웬 귀족 애송이가 신입 장교로 와 그렇게 땍땍거렸던 적이 있었지.
그때 느꼈던 그 감정이, 이 육체에서도 몽글몽글 올라왔다.
그래. 그때와 비슷했다.
가소로운 게 지나쳐 화도 나지 않는.
바로 이 묘한 기분 말이다.
귀여운 제자를 바라보는 유렌의 입가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