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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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화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화 다시 눈을 뜨다(프롤로그)
피와 철, 그리고 죽음.
그것들로 가득 찬 전장 한복판에, 나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커……억.”
나는 온몸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격통과 함께,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갑옷 채로 짓뭉개진 시체.
통째로 불타버린 시체.
말과 함께 반 토막이 나버린 시체.
시체, 시체. 그리고 시체.
한쪽 눈이 짓뭉개져 있는 좁은 시야였지만, 나의 뇌리엔 이 광경이 뚜렷이 박혔다.
당연했다. 이 주검들은 나- 에드빈 드라이언과 함께 20여 년을 함께한 소중한 부하와 동료들이었으니까.
물리적 의미로도 내 없어진 오른팔의 대신이 되겠다던 부관.
자기가 승마 내기에서 진 건, 내가 한쪽 팔이 없는 만큼 가벼워서라고 빡빡 우기던 기병대장.
다음번엔 목을 날려 먹을 거냐고, 제발 자중하라던 군종 사제.
그 밖의 나의 소중한 부하와 동료들.
지금 그들 중 살아 숨 쉬는 자들은 없었다.
한쪽밖에 없는 눈이 떨려왔다.
5년 전에 떨어져 나간, 지금은 없는 오른팔 역시 마구 쑤셔왔다.
‘이렇게 전멸이라니.’
사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의 빌어먹을 조국인 제국은, 이름값도 못 하고 왕국에게 압도당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언젠가가 설마 오늘일 줄이야.
“역시 대단하군. 거기서 혼자 마법을 비틀어 살아남다니. 뭐, 그래도 치명상은 피하지 못한 모양이네만.”
약 20m 앞.
번쩍이는 금색 로브를 입은 한 청발의 중년인이, 이쪽을 담담히 바라보며 말했다.
마도 왕국의 사상 최고의 대마도사.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7레벨에 오른 천재.
그리고 조금 전, 내 부대를 전멸시키고 나에게 치명상을 입힌 자.
레니안 폰 베르슈리거.
얼핏 들으면 담담한 듯한 목소리엔 감탄, 슬픔, 분노 등 강렬한 감정들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에드빈 드라이언. 속칭 마법 학살자. 하. 처음 들었을 땐 참으로 과장이 심하다 싶었는데, 이제 보니 오히려 그 이명이 소박한 것이었어.”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핏물이 맺힌, 들끓는 듯한 목소리를 걸걸히 내뱉었다.
“그래 봐야, 부하 하나 제대로 못 지킨 병신인데.”
그래. 내가 제국의 세 번째 검이면 뭐하겠는가.
마력을 분석하고 마법을 장악해, 마법쟁이 놈들에게 ‘마법 분쇄자’라며 두려움을 받은 게 무슨 의미가 있냔 말이다.
나와 함께 살아온, 그리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은 이미 옆에서 고깃덩어리로 변해버렸는데.
“후후. 맞아. 그 말이 정확하군.”
내 말을 들은 그 역시,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주변에 토막 나 있는 마법사들의 잔해를 둘러보았다.
6레벨 마스터가 둘. 5레벨 위저드가 열.
나와 내 부대가 죽을힘을 다해 토막 낸 마법사들의 시체가, 전장에 아무렇게나 널려있었다.
“7레벨이라고, 대마도사라 칭송받으면 뭐 하겠나. 나 역시 제자들 하나 지키지 못했는데.”
“……!”
뭐야. 저놈들, 전부 그의 제자였나?
그러면, 난 나도 모르게 그에게 원한을 갚은 건가?
아니. 오히려 내가 먼저 그들을 죽였으니, 반대로 그가 나에게 원수를 갚은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서로 죽고 죽인 개싸움에 불과한가.
“쿨럭-!”
답이 나오지 않은 의문의 고리 속, 나는 찢어지는 가슴의 통증을 느끼며 피를 내뱉었다.
울컥-
검붉은 피가, 입에서 끝도 없이 줄줄 나오는 게 느껴졌다.
‘이게 죽음인가?’
그동안 전장에서 중상을 입은 적이야 수도 없이 많았다.
왼눈도, 오른팔도 다 그렇게 날아갔으니까. 그럴 때마다 뛰어난 군종사제와, 소드마스터 특유의 강대한 치유력으로 살아남아 왔다.
하지만 이렇게 몸속에 무언가가 부서졌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다.
차갑고 공허한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조금씩 나를 좀먹어가고 있었다.
“그럼, 이제 끝내지.”
쿠우우웅-
대마도사의 머리 위로, 압도적인 마력 덩어리가 모이기 시작했다.
모두 다섯 덩이의 그 엄청난 마력들은, 각자의 개성을 뽐냈다.
모든 것을 불태울 듯한 화염과 그 어떤 것도 얼려버릴 혹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질풍 등.
각 분야의 대마법들이 서서히 한 개의 덩어리로 변해가고 있었다.
-지이잉
그리고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으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다섯 개의 서로 다른 강대한 마력이, 말도 안 되는 의지의 힘으로 압축되어 강제로 섞여갔다.
말 그대로 기적이나 다름없는 짓.
그는 3개 이상 합쳐지지 않는다는 속성을, 무려 5개나 합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군. 5가지 속성을 억지로 쑤셔 박아서 그걸 증폭시키다니.”
다 죽어가는 나의 중얼거림에, 대마도사의 눈이 커졌다.
“허. 6레벨 마스터들도 처음엔 이해 못 하던 이 마법을, 기사가 단숨에 분석한다고? 역시나군. 혹시 마법을 배웠다면 7레벨에도 다다를 수 있을 거라는 말들이 절대 헛소리는 아니었어.”
그의 얼굴에서 아쉬움이 스쳐 감과 동시에, 마법이 완성되었다.
구우우웅-!!
거대한 원구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파괴밖에 느껴지지 않는 그 대마법은, 여러 가지 색이 겹쳐 반짝였다,
“만약 네 녀석이 마법을 10년 만이라도 배웠다면, 이보다 더한 대마법을 쓸 수도 있었겠지.
아니, 전쟁만 이렇게 커지지 않았더라도. 적어도 이런 식으로 그 재능을 없애진…….”
그는 약간의 미련이 남은 듯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그렇다고 마법의 발동을 멈추진 않았다.
당연했다. 이미 내가 죽인 마법사들만 네 자릿수 가까이 될 테니.
15년.
우리는 무려 15년을 서로의 씨를 말려가며 죽이고 또 죽였다.
뒤늦게 이 전쟁을 뒤에서 조종한 배후들이 밝혀졌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놈들은 혼란을 틈타, 어느새 양국의 지도부를 잠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이전에, 이미 우리의 손은 상대의 피로 질척하게 젖어있었다.
동료의 원수를 향해 치켜든 검과 마법을, 차마 그냥 내릴 순 없었다.
콰지지지직-!!
살의는 있지만, 증오는 없는 대마법이 나에게 다가왔다.
시체도, 말도. 무기도, 갑옷도.
그 거대한 덩어리가 스쳐 가기만 해도, 가루가 되어 부서져 갔다.
모든 걸 해체하며 다가오는 죽음의 빛에, 나는 그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만약 뒤에서 전쟁을 조정한 놈들을 미리 막았더라면.’
그렇다면, 나나 내 부하들은 살 수 있었을까?
만약 전쟁이 계속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내 부하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혹시, 저놈의 말대로 마법이라도 배워봤을까?
만약 그랬다면, 자신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
만약, 만약에.
만약에……!
“하.”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죽음이 눈앞에 닥쳐온 지금. 너무 늦은 가정이었다.
콰아아아앙-!!
그렇게, 반평생 마법사를 베며 살던 나는 끝내 마법사에게 죽었다.
기사면서 마법으로 얼룩진, 기묘한 인생이었다.
* *
.
.
……라고 생각했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아니, 죽잖아. 보통은.
자신의 육체가 수천, 수만 조각으로 갈가리 찢어지는 걸 느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지.
하지만 나는 눈을 떴다.
아무래도 아직 죽지 않은 모양이다.
“……여기는?”
나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린 소리에서, 강한 위화감을 느꼈다.
적당히 굵으면서도 깨끗한 미음.
이거, 내 목소리가 아니다.
“……!”
그뿐만이 아니다. 시야가 넓다.
몇 년 전까지 양 눈이 멀쩡할 때 보이던 바로 그 시야였다.
“응? 뭐야. 너. 어떻게 일어난 거냐? 못 일어나길래 장의사나 불러오려고 했더니.”
낯선 이의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난 넓어진 시야로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깔끔한 침대에 사람들이 누워있는, 깨끗하고 넓은 방.
그리고 새하얀 로브를 입은 3명의 ‘마법사’들.
파앙-!
그것을 파악한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튀어 올랐다.
마법사는, 적이니까.
‘……역시 몸의 손상이 심해.’
통증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몸의 반응이 너무도 느리고 무거웠다.
덜렁-
게다가, 이미 잘려나간 오른쪽 팔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까지.
필시, 몸 자체가 이미 망가져 있는 거겠지.
하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
그보다는 상대의 제압이 먼저였다.
휘익-
나는 재빠르게 왼손을 뻗어 이쪽에게 투덜거렸던 젊은 마법사의 목을 쥐었다.
“흐억?!”
나는 그의 목을 잡아 가볍게 바닥에 자빠트린 후, 그의 몸통에 올라탔다.
그리고 무릎으로 가슴을 찍어 눌렀다.
“커헉!”
어지간한 고위 마법사가 아닌 이상, 이렇게 목과 폐를 동시에 제압하면 캐스팅은 불가능하다.
나는 밑에 깔린 놈의 새빨개진 얼굴을 확인하고, 남은 두 마법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놈이 과연 인질로서의 가치가 있을까?
만약 없다면 이대로 목을 부러트린 후에 저 놈들을…….
“메, 메이지 유렌!”
그중 한 중년의 마법사가 경악해 크게 소리쳤다.
유렌? 이놈 이름인가?
“어?”
바로 그때.
내 시야의 한편에, 이쪽을 비추고 있는 한 큼지막한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날짜 기능이 붙어있는, 오래전 귀족가에서 유행했던 커다란 마법 거울이었다.
“……뭐야? 이거.”
반짝이는 거울 속,
익숙한 외눈 외팔이 기사는 없었다.
거기엔 반쯤 불타버린 로브를 입은, 웬 비리비리한 마법사가 이쪽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메이지 유렌! 빨리 손을 놓게! 자네 지금 대체 뭐 하는 짓인가?!”
분명 기사로서 죽었어야 할 나는, 처음 보는 마법사가 되어있었다.
[대륙력 380년 4월 7일 13:27]
그것도 21년 전의 날짜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