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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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21화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21화 큰그림 (3)
위저드 툰드라.
레이칸의 상사이자, 평의회의 간부 중 하나.
나이는 대략 20대 중반.
얼음 계열의 대가이자, 네이슨과 사사건건 대립.
이 방에 도착하기 전, 유렌이 툰드라에게 가지고 있던 정보는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이 방에 들어와 그녀를 본 순간, 유렌은 머릿속 정보에 두 가지를 더 추가시켜야 했다.
‘이 정도면 5위계- 위저드 중에서도 상급이야.’
유렌은 은청색 머리를 찰랑거리는 그녀를 보며 살짝 감탄했다.
이 육체로 눈을 뜬 이후, 만나본 마법사 중, 가장 강해 보이는 것은 바로 그녀였다.
같은 위저드 위계라는, 네이슨보다도 훨씬 더.
‘그리고 99%로 대귀족, 혹은 아주 유서 깊은 곳 출신이고.’
그녀를 만난 것은 이제 겨우 2분.
말도 아직은 몇 마디를 나눠본 것이 다다.
하지만 유렌은 직감했다.
셀레나에게서 짙은 혈향이 나듯,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숨길 수 없는 기품의 존재가 느껴졌다.
어릴 적부터 몸에 박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그것이었다.
“탐색은 이제 다 끝났어?”
“설마요. 이 짧은 시간에 다 파악이 될 리가 없죠. 반대로 그쪽은 이미 다 끝나셨습니까?”
“……헤에?”
툰드라는 당황은커녕 그대로 맞받아치는 유렌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역시, 보통의 메이지와는 너무 달라.’
지금의 그녀는, 살짝이지만 일부러 마력을 내뿜고 있는 상태였다.
일반적인 메이지라면 상당한 압박감을 받고 있을 터.
하지만 유렌은 너무나 담담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다른 마법사들, 특히 남자 마법사들의 시선에선, 항상 휘몰아치는 깊은 감정들을 느꼈다.
음심, 질투, 동경, 공포, 사랑 등등.
그것이 무엇이 되던 간에, 그녀로선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렌의 눈에선 그저 흥미와 탐색. 그리고 조금의 의문만 느낄 뿐, 다른 감정은 일절 없었다.
그것이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새로웠다.
“그럼, 일단 일은 해야겠지. 자. 이걸 받아.”
툰드라는 눈 속의 호기심을 지우고, 서류 몇 장을 유렌에게 내밀었다.
“요 며칠 사이, 평의회가 처분한 물건들의 대금이야. 아직 일부지만, 경매에서 팔린 물건들도 있으니, 한번 봐 보는 게 좋을 거야.”
“빠르군요. 감사합니다.”
유렌은 서류를 받아 슥슥 넘겼다.
[고대 예술품 (가제 –은빛 달의 강림) - 금화 2,500개.
고대 예술품 (가제 –푸른 신의 분노) - 금화 3,000개.
마법 재료 (B급) 15개 – 금화 1,863개……]
금화의 개수가 순식간에 만의 단위까지 뛰어올랐다.
더욱 무서운 건, 아직 처분되지 않은 것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었다.
뭐, 숨겨둔 것까지 합친다면야 더더욱 많겠지만.
“게다가 마석 특화 A급의 던전까지 얻었지. 이제 부자네? 축하해. 비록 어떤 활활 불타는 바보 위저드가 널 불태우려 하고 있긴 하지만.”
위협과 축하가 절묘하게 섞인 툰드라의 말에, 유렌이 가볍게 웃었다.
과연 그래서 부른 것인가.
공식적으론 저 중간 내역서를 건네주기 위해서였지만, 사실 저런 종이 쪼가리는 다리만 달려있다면 누구나 심부름이 가능하다.
굳이 그녀 같은 위저드가 직접 나선 것이라면, 답은 한 가지뿐이다.
“……그래서, 그쪽 밑에 들어오라는 겁니까?”
“돈도 많고, 눈치도 빠르네? 4위계도 오래 있지 않아 갈 수 있을 것 같고. 이런 인재를, 그 멍청한 불덩이에게 불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툰드라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멍청한 재무 담당관이 힘쓴 덕에, 그 정신 나간 여자가 너의 호위가 되었지? 그건 확실히 행운이라고 해줄 만해. 그 불덩이도, 굳이 그 여자와 부대를 건드릴 리는 없으니까.”
그녀는 실행부대가 왜 유렌의 호위로 간 이유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거야. 너도 알잖아? 그 호위대는 몇 달 이상 너에게 붙어 있을 수는 없다는 걸.”
“한 마디로, 살고 싶으면 자신의 밑으로 들어와라. 이 말이십니까?”
“후훗. 정말 직설적이네. 맞아. 네가 보물을 얻긴 했어도, 메그넘 자작 가문이나 그와 동맹을 맺은 가문 전체보다 돈이 많아진 것은 아니야. 네가 메이지치곤 강하다고 해도, 5위계 위저드나, 그의 많은 수하보다 강한 것은 아니고.”
사실 툰드라의 말은 정론이었다.
그 누가 보더라도, 유렌과 메그넘 자작 가문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그쪽이 피해를 볼 것을 각오하고, 명분을 무시하고 공격하면 버틸 수가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흠.”
하지만 유렌의 입장에선, 그저 웃기지도 않았다.
메그넘 가문. 나름대로 세력이 있다지만 그래봐야 자작 가문 중 하나일 뿐이다.
겨우 왕국의 자작 가문 하나 넘지 못하고서야, 겨우 6년 뒤에 개전되는 ‘대전쟁’은 어떻게 막겠는가?
7레벨, 아니 그 이상으로 강할 수도 있는 흑막 놈들은?
넘어야 할 고산들이 잔뜩 있는 유렌에겐 자작가는 그저 하나의 둔덕.
겨우 그 정도를 넘지 못할 정도라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유렌이 거절의 말을 꺼내려던 순간, 무언가가 그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잠깐, 뭔가가 좀 걸려.’
이전부터 유렌의 머릿속에 작게 있던 의문이, 지금 이 만남으로 급작스럽게 커졌다.
왜 이런 마법사가 미래에 알려지지 않았지?
느껴지는 마력으론, 아마도 5위계 중에서도 상위 클래스.
잘하면 수년 안으로, 6위계인 마스터의 자리에 오르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다.
대전쟁이 시작되는 개전의 날까지는, 앞으로 6년.
만약 전쟁 초기에 죽었다 치더라도, 이 정도로 특성이 강한 6레벨 마스터가 후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을 리 없다.
‘그러면 그 전에 사라졌다는 말이 되는데. 이 정도의 실력과 위치인데도 휘말렸다면……?’
정치 싸움일 확률이 아주 높았다.
그것도 평의회의 최고위층이나, 왕가의 정치 싸움.
‘……그러고 보니 대전쟁의 3년 전. 왕국 쪽 소식으로 시끄러웠던 기억이 있었지.’
먼 옛날의 기억이, 유렌의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그의 체감으로는 분명 18년 전.
왕국에서 일어나 제국까지 소식이 들려온 거대한 정쟁.
바로 이 마도 왕국의 왕위를 두고 일어난, 후계자끼리의 싸움이었다.
분명 후계 싸움의 결과는…….
공주가 왕자에게 패배해, 목이 잘렸다.
덜커덕-
유렌은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퍼즐 일부분이 머릿속에서 들어맞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좋아.’
잘하면, 일이 훨씬 커질 수도 있겠는데?
그렇다면, 한 번쯤 떠볼 가치는 충분했다.
* *
“위저드 툰드라.”
“그래, 생각은 끝났어? 결론을 말해줘.”
툰드라는 말은 그렇게는 했지만, 차갑게 웃고 있는 것이 이미 그의 영입을 확신하고 있었다.
저 메이지가 아무리 유능해도, 기껏 제자들 몇 명을 데리곤 조직 자체를 이길 순 없으니까.
하지만 유렌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전혀 뜻밖의 말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저에게 공주님을 모시란 말입니까?”
“……!!”
쩌어엉-
공기가 얼어붙었다.
만년설보다 더 차가운 기운이 툰드라의 몸에서 마구잡이로 분출된 것이다.
‘빙고였군. 앗, 차차!’
유렌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 몸 전체를 얼리려는 툰드라의 마력을 조금씩 흐트러트렸다.
마력 자체는 툰드라의 얼어 붙이려는 마력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하지만, 7레벨 대마도사의 마력에도 어느 정도 간섭이 가능하던 유엔의 마력 컨트롤이다.
바스스-
얼음은 유렌의 몸을 얼리지 못하고, 피부 근방에서 부스러져갔다.
“너, 너, 너! 그걸 어디서! 아니, 지금 그건 또 어떻게!”
툰드라의 도도한 얼음 가면이 완벽하게 깨지며, 격렬한 동요가 밖으로 드러났다.
“질문은 한 번에 하나씩 합시다. 제가 당신과 공주님의 관계를 안 것이 궁금한 겁니까, 아니면 제가 지금 당신의 마력을 흐트러트리고 있는 것이 알고 싶은 겁니까?”
“둘 다야!”
“하나만 받겠습니다.”
“……으으윽!”
툰드라는 잠시 발을 동동 굴렀지만, 몇 초 뒤 냉정함의 가면을 다시 뒤집어썼다.
스으윽-
북극의 삭풍보다도 차가웠던 한기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툰드라는 흥분하여 조금은 붉어진 얼굴로 유렌에게 다시 물었다.
“나와 공주님의 관계를 어떻게 안거지?”
대답에 따라서는, 조금 전 따위는 우습게 보일 마법들을 준비하면서.
하지만 유렌의 답은 참으로 간단했다.
“저에게 정보를 주는 기관이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내가 공주님의 수하라는 걸 아는 사람은, 채 스무 명도 안 될 거야. 모두 목숨을 걸고 신뢰하는 사람들이야. 그들 중 배신자가 있을 리 없어!”
정답이었다.
유렌은 어디까지나 미래의 정보와 추측으로 한번 블러핑을 걸어버린 것일 뿐, 그들과는 무관했으니까.
“그들 중 누가 배신자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누구든지 움직일 때는, 반드시 조금의 흔적이 남기 마련이죠.
그리고 머리 좋은 자들은, 그것을 조합해서 결과를 이끌어냅니다. 위저드 툰드라. 정말로 당신들의 움직임을 이 나라의, 이 대륙의 아무도 모르리라 생각했습니까?”
“……윽!”
꾸욱-
툰드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 보니,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저번의 만남만 해도 꽤나 아슬아슬했었고, 3달 전에는 더…….
툰드라가 그렇게 자신들의 실수(?)를 생각하고 있을 때, 유렌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툰드라의 푸른 눈동자를 뻔히 바라보았다.
‘……이거 생각보다 잘 속네?’
물론 그녀의 은근한 협박을 집어넣은 회유 방식은, 네이슨과는 비교도 안 되게 뛰어나긴 했다.
보통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넘어갔을 테니까.
다만, 이런 식으로 당황스럽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던 경험은 없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유렌은 미래의 지식과 툰드라의 반응으로 확신했다.
공주와 그녀의 가신들, 그리고 툰드라는 3년 후. 왕위 계승 전쟁으로 다들 목이 잘린다.
‘좋아. 그렇다면 아예…….’
흑막들에게 쉽게 이용당하는 미래의 암군이자, 망나니로 소문난 것이 현재의 왕자다.
차라리 그보다는, 훨씬 작은 세력에도 선전했던 공주가 낫지 않을까?
세력이 적은 만큼, 흑막들의 손도 거의 타지 않았겠고.
유렌은 머릿속으로 결론을 빠르게 내린 다음, 아직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은빛의 위저드에게 말을 걸었다.
“위저드 툰드라.”
“……뭐지?”
경계심에 가득 찬, 그녀의 눈 속에 유렌의 미소 섞인 얼굴이 비쳤다.
“저랑 아니. 제 뒤에 있는 ‘조직’이랑, 동맹을 맺지 않으시겠습니까?”
“……뭐라고?”
이왕 속인 거, 좀 더 그럴듯하고 큼지막하게 속여 봐야지.
* *
콰드드득! 우지지직!
유렌이 돌아가고 약 20분.
툰드라는 살풍경한 방에서, 얼마 남지 않은 가구들을 마음껏 얼음덩이로 만들며 감정을 조절하고 있었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조금 진정하시지요.”
조금 전 유렌을 안내한, 무뚝뚝했던 메이드가 지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걱정했다.
“미안. 난 괜찮아. 조금 혼자 있게 해줄래?”
“……알겠습니다. 어떤 일이든 필요하신 게 생각나시면, 꼭 불러주십시오. 아가씨.”
“응, 고마워.”
중년의 메이드가 물러난 후, 툰드라는 다시 심호흡하며 바닥에 떨어진 한 개의 고대 금화를 노려보았다.
유렌 슈나이더.
보통의 메이지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뒤에 그런 미스테리한 조직이 있을 줄이야.
-……동맹?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입니다. 저희 ‘조직’은 공주님의 왕위에 올리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저희 조직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시면 됩니다.
-……!
약 40여 분 전. 유렌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툰드라에게 동맹을 권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그런 말을 하려면 적어도 무슨 조직인지, 무엇이 목적인지, 그리고 지휘부가 누구인지는 밝히는 게 기본 아니야?
-저희 조직은 조금 특이해서요. 현지에서 조직원을 구하는 조직입니다. 제가 선택된 것처럼 말이죠.
-……뭐?!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무리 뒤에 뭐가 있더라도, 겨우 현지에서 모은 조직원만으로 왕위 계승의 동맹을 논한다고?
-잘 생각해보십시오. 여태껏 그저 ‘멍청이’에 불과했던 저 유렌 슈나이더가, 요 한 달여 간. 갑자기 왜 이리 바뀌었을까요?
-……조직에, 그만큼 특이한 힘이 있다는 이야기야?
-그것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멍청이’가 메그넘 가문에 엿을 먹이고, 보물을 강탈했죠.
-그건 인정해, 하지만 그것 가지곤……!
-당신 뒤에 있는 분의 정체를 알아냈는데도 부족하다라. 뭐, 좋습니다. 그럼 우리 ‘조직’의 힘을 조금만 보여드리죠.
그렇게 말하고, 그 적갈색 머리의 메이지 – 유렌은 공간을 ‘비틀었다.’
촤르르르르릉-
유렌의 무릎 앞 1m 정도에 일렁이는 차원의 균열이 생기더니, 고대의 금화를 와장창 뱉어냈던 것이다.
고대의 금화 수백, 아니 수천 개가 방의 조명을 받아 황금색으로 반짝였다.
-세, 세상에. 공간이 갈렸어?
-부피와 무게를 무시하고, 차원을 비틀어 수납과 반출이 가능한 아티팩트. ‘디멘션 포켓’입니다.
-……! 이, 이걸 가지고 들어가 보물의 일부를 빼돌렸던 거야?
-하하. 글쎄요.
말 그대로 이야기 속에서나 듣던 물건이었다.
차원을 비틀어, 부피와 무게를 무시하다니. 대체 얼마만큼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인가.
툰드라는 당장 공주의 세력에 저 아이템만 생겨도 금전적, 물질적으로 굉장한 도움이 되리라 확신했다.
-흐읍.
-……!!
그리고 유렌의 손짓 한 번으로, 수천 개의 금화가 순식간에 일렁이는 균열로 빨려 들어갔다.
단 한 개의 금화만 제외하고 말이다.
-뭐, 섣불리 결정을 내리시진 못하시겠지요. 그렇다면, 증거로 이 테란달 금화를 한 개 남겨드리죠.
그럼, 공주님께 전해드리고 천천히 생각해보십시오.
유렌은 그렇게 금화 한 개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 저 입을 막아야 하나 생각하던 툰드라도, 무려 공간을 조정하는 아이템을 보자 도저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뒤에 무슨 힘을 더 숨기고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적어도 그 조직이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건 확실해. 그러면?’
수상하긴 확실히 너무나 수상하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밀리는 현 상황에, 큰 도움을 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날 밤.
툰드라는 옛 금화 한 개를 든 채, 끝없는 고민에 빠져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모든 것이 유렌이 즉석에서 생각해낸, 생판 거짓이라는 것을 모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