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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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4화
소드마스터가 눈을 뜸
14화 던전 속 숨겨진 것 (1)
“으차.”
유렌은 커다란 가방을 마차에서 꺼내 짊어졌다.
보통의 배낭보다 두 배 이상은 큰 부피의 짐을 보자, 병사들과 레이칸의 눈에 의문이 실렸다.
“……저기 말임다. 메이지 유렌.”
“후우-. 뭐죠?”
“그, 뭐냐. 짐이 너무 많은 것 아님까? 굳이 그걸 전부 다 지고 가실 필욘…….”
레이칸의 지적은 타당했다.
지금은 규모 큰 던전을 며칠 안에 주파하러 갈 게 아니다.
이미 알려질 대로 다 알려진, 소규모 초보 던전을 둘러보러 가는 것이다.
“뭐, 필요한 물건들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시다면야…….”
본인이 괜찮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유렌과 레이칸은 두 병사와 마차를 마을에 두고 길을 떠났다.
던전까지는 마을에서 걸어서 1시간 여.
하지만 두 마법사는, 에어 워크로 공중을 미끄러지듯 걸어가 도착하는데 20분을 넘기지 않았다.
“여기군요.”
“네. 도착한 것 같슴다.”
그곳은 극히 평범한 동굴 입구에 낡은 나무문만이 달려있었다.
입구부터 돌이나 금속의 석상들이 멋들어지게 조각되어있는, 다른 고대 던전들과 비교하면 한없이 볼품없었다.
나무 문 위쪽에 부착된, ‘하바트 던전’이라고 써진 낡은 간판만이 이곳을 던전임을 알리고 있었다.
“확실히 초라하긴 하네.”
“…….”
유렌의 중얼거림에, 레이칸은 자신도 모르게 동의하려다 흠칫 멈췄다.
스스로 말재주가 없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지금 옆에서 ‘그렇슴다. 정말 초라함다!’라고 맞장구를 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그, 뭐냐. 음. 자연미? 가 넘쳐서 멋짐다!”
“……뭐 그렇군요.”
어쨌든 말재주가 없는 건 똑같지만.
콰앙-!
그때. 던전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네 명의 남자들이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왔다.
“젠장! 이게 뭐야! 이 쓰레기 같은 곳은!”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여기 오는 게 아니라고!”
“설마 이렇게나 심한 줄 난들 알았겠어?”
그 중, 두 명은 갈색 로브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견습 마법사였고, 나머지 두 명은 딱 봐도 용병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거, 마법사님들. 보수는 확실하게 주셔야 합니다?”
“저희도 워낙 한 게 없어서 맥이 빠지긴 했는데, 그래도 계약은 계약이니까요.”
“젠장. 안다! 누가 안 준다고 했나? 시끄러우니 그 입 좀 다물어!”
용병으로 보이는 남자의 말에, 한 견습 마법사가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두 용병은 인상을 잠시 찌푸렸지만, 거기서 그쳤다.
아무리 견습이든 뭐든 상대는 마법사. 용병인 그들이 뭐라고 할 존재가 아니었다.
게다가 고용주이기도 하고.
“아, 저 사람들. 아까 촌장이 유일하게 던전 속에 있다던 그 그룹 아님까?”
“그런 것 같군요.”
“좋은 분위기는 아닌 것 같슴다.”
유렌과 레이칸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스쳐 지나가는 그들의 투덜거림에 슬쩍 귀를 기울였다.
“젠장. 고블린과 스켈레톤만 주구장창 나오는 던전이라니! 다양한 몬스터가 나온다는 건 다 헛소리였잖아!”
“마석들이라도 멀쩡히 나오면 또 몰라. 대부분의 시체에선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겨우 나온 것도, 죄다 최하급뿐이고!”
“애초에 그런 하급놈들마저 적으니 원! 여기 정말 던전 맞는 거야?”
길지 않은 말들이었지만, 이미 중요한 정보는 죄다 나와 있었다.
몬스터의 종류가 적고, 마석이 잘 나오지 않으며, 심지어 그 몬스터마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초보자용이라지만, 이러면 던전으로선 완전히 낙제다.
‘……이상함다. 서류상으론 이렇게까지 심한 곳은 아니었는데 말임다?’
레이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태연한 표정의 유렌을 따라 던전 안으로 향했다.
* *
던전이란, 간단히 말해 몬스터 생성 장치다.
보통 던전이라 하면 복잡한 미궁 속에 몬스터가 모여들었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사실 그 반대였다.
던전 안에 있는 거대한 마석인 코어가 몬스터를 만들어 내고, 소환하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생기는 던전은 극소수였고, 절대다수가 실험용, 경비용, 훈련용 등 사용 목적에 맞춰 인공적으로 설계한 것들이다.
그 중, 당연히도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귀중한 물건이 숨겨져 있는 경비형 던전이었다.
굳이 이런 던전까지 만들어가며 숨긴 물건들의 가치가 낮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원래 ‘던전의 보물’이라고 하면 던전에 숨겨져 있는 물건들을 뜻했다.
수백 년 전부터, 세계 곳곳에 묻힌 던전의 보물들이 발굴되어 그 아름다움과 강력함을 대륙에 알렸다.
하지만 대부분의 던전들이 발굴되어 가면서, 그 뜻은 변하기 시작했다.
숨겨진 물건이야 한 번 발굴이 되면 거기서 끝이다.
즉, 대부분의 던전들이 발굴되어 버린 현재. 옛 의미의 ‘던전의 보물’의 존재는 거의 사라져버렸다.
그 대신, 여러 번 반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던전의 보물이라 새롭게 불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소환된 몬스터가 들고 있는 물건들과, 그 몸에서 나오는 마석 및 마법 재료들이었다.
하나하나의 가치야 옛 보물들보다 훨씬 떨어졌지만, 던전이 유지되는 이상 끊임없이 리셋 되어 튀어나온다,
이 훌륭한 경제성을 재인식하자, 어느새 던전은 어지간한 금이나 은 광산보다도 귀중한 존재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흠. 이 던전. 코어의 힘이 다 되어 가는군요.”
물론, 어디까지나 코어가 멀쩡한 던전에 한해서였지만.
“그, 그런 것 같슴다.”
두 장신의 마법사가 던전으로 들어온 지 반 나절.
둘은 던전 이곳저곳을 돌아가며, 열쇠로 코어가 있는 곳까지 조사 후, 결론을 내렸다.
이 던전의 수명은 이제 거의 다 되었다고.
유렌은 이 광경을 보고도 덤덤한 얼굴이었지만, 오히려 레이칸의 얼굴에 당혹이 서렸다.
‘……이거, 메이지 유렌이 완전히 당한 것 아님까?’
레이칸은 유렌의 배낭에서 랜턴을 빼, 다시 한 번 서류들을 살펴보았다.
원래 이 던전은 메그넘 자작가의 사적 소유인 물건.
당연하지만, 국가 소속의 던전과는 다르게 특정 기간마다 코어의 힘을 측정할 의무는 없었다.
‘이전 코어의 측정 기간은…… 3년 전. 그때까진 그래도 멀쩡한 편이었음다.’
분명 3년 전까지만 해도, 초보자 던전을 유지하는 데는 충분한 코어의 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의 1/3도 되지 않았다.
‘메이지 유렌이 던전을 넘겨받았다고 하는 것은, 불과 열흘 전. 메그넘 가문에서 몰랐을 리가 없음다!’
아무리 이 던전이 메그넘 가문에서 중요성이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던전은 던전.
최근 반 년간 들어오는 탐험자의 수만 봐도 그것을 모를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메그넘 가문은 일부러 던전의 코어 측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재기록을 하지 않는 이상, 이 던전은 기록상으론 2년 전의 코어 힘을 가진 채니까.
‘잘 모르는 메이지 유렌을 속인검다!’
자세한 사정까지 잘 모르는 레이칸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 계약에 ‘서류상의 문제’는 없었다. 유렌이 최근 방문자 수를 알면서도 사인을 했으니까.
그리고 자신은 이 서류대로 이루어졌는지를 지켜보는 감사직이다.
분명 중립을 지키며, 넘겨야 할 터.
하지만 레이칸은 속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런 우수하고 착한 메이지를 속여서……!’
강력한 마력과 빠르고 정확한 상황판단. 그리고 통 큰 씀씀이까지.
오래 보진 않았지만, 레이칸은 이미 유렌에게 푹 빠져있었다.
그런 사람이 이런 껍데기나 다름없는 곳을 받았다고?
분명 거래 자체는 문제없었지만, 레이칸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음, 저. 메이지 유렌. 거래를 무르시는 게 좋을 것 같슴다.”
“흠?”
열심히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유렌의 얼굴이, 레이칸에게 향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메이지 레이칸.”
“아무리 봐도, 이 던전은 이제 끝났슴다. 팔아 봐야 큰돈도 안 될검다. 어떤 거래가 있는 지까진 제가 잘 모르지만, 분명 메이지 유렌은 메그넘 가문에게 속은검다!”
이글이글 불타는 레이칸의 눈빛이 유렌에게 향했다.
“항의해서 거래를 무르십쇼! 제가 도와드리겠슴다! 물론 제힘만으론 힘들지도 모르지만, 위저드 툰드라까지 나서주신다면 분명……!”
“자작가를 상대로 거래를 무른다? 되기도 힘들겠지만, 만약 가능해도 전 위저드 툰드라에게 꼼짝없이 묶이게 되겠죠. 꽤나 큰 빚을 진 게 될 테니까. 혹시 그걸 노리는 겁니까?”
“……!”
차분하면서도 날카로운 유렌의 말에, 레이칸의 몸이 잠시 굳었다.
그런 건 미처 생각도 못 했다는 듯, 두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고개를 떨궜다.
“그, 그건 아님다. 전 그냥…….”
유렌은 낙담한 레이칸의 얼굴을 보고, 금세 그의 진의를 읽었다.
‘뭐야. 그냥 순수한 호의였어? 나 참. 이런 쪽으론 정말 안 어울리는 사람이로군.’
마법사든, 감사관이든, 교섭이든.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으니 이렇게 고생이 많은 것이다.
유렌은 고개를 추욱 숙이고 있는 레이칸의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봐도, 지금과는 반대쪽으로 재능이 넘쳐 보였다.
자신도 모르게,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한 번 봐볼까? 마침 도와준다고도 했으니.
“메이지 레이칸.”
“예, 옙.”
낮게 깔린 유렌의 목소리에, 레이칸이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배낭에서 곡괭이를 꺼낸 유렌이 작게 미소 짓고 있었다.
“도와주신다고 하셨죠? 그 도움, 좀 다른 쪽으로 받을 수 있을까요?”
“……예?”
짐작조차 안 가는 유렌의 말에, 레이칸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 *
-대장님! 대장님! 대장님! 그 소식 들으셨어요? 대륙 북쪽에서, 또 새 던전이 발굴됐다고 해요! 와! 저걸 제가 발견했어야 했는데!
-네? 전쟁이 끝나면 새 던전을 발견해서 우아한 귀부인이 되는, 이런 멋진 꿈이 헛되다고요? 에이. 아니에요. 대장님! 제가 몇 번이고 불러 드렸잖아요! 아직 새 던전은 많이 있을 거예요!
네? 몇 번이 아니라 수백 번이요? 헤헤헤! 제가 그렇게나 노래를 불렀던가요? 뭐, 기왕이면 한 번 더 들어보세요! 자- 갑니다!
소드마스터로 전쟁을 치렀던 시절.
부하 중, 레인저로 뛰어난 성과를 보이던 소대장 하나가 있었다.
밝고 노래를 좋아하며 말이 많던 그녀- 레이나의 꿈은 바로 새 던전의 발굴.
헛된 꿈이라며 주위에서 타박을 받아도, 레이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던전의 정보를 노래로 만들어,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당시 기준으로 발굴된 지 얼마 안 된 던전들의 발굴 과정을 가사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두 번째는- 드래곤 산맥의~ 가장 깊은 곳! 드워프들의 땅굴에서~ 용과 함께 튀어나왔지. 라라라라~
시도 때도 없이 흥얼거리는 미성과 절묘한 음이 합쳐지자, 어느새 대부분의 부대원들은 노래를 반강제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유렌 역시 거기에 포함되어있었고.
그 엄청난 중독성 때문에, 일곱인가 여덟 번째 구절까지 죄다 머릿속에 박혀있었다.
설마 이런 게 나중에 도움이 될 줄은.
-네 번째는~ 왕국 남쪽의 하바트! 초보용의 탈을 쓴, 보물의 창고~ 서쪽 벽이 부서지자 새로운 모습이 드러냈다네. 라라라라-
유렌은 레이나의 네 번째 노래를 중얼거리며, 하바트 던전의 가장 서쪽에 ‘있었던’ 벽을 바라보았다.
콰앙-! 콰아앙-!
어둡고 축축한 습기가 가득 찬 던전 안.
엄청난 소음과 함께 돌벽이 깨져나가고 있었다.
콰앙-! 콰아아앙-!!
곡괭이가 한 번 번쩍일 때마다, 던전 전체가 부르르 떨려왔다.
벽은 돌가루와 흙먼지를 뿜어내며 반항했지만, 파괴에 저항하지 못했다.
곡괭이 한 자루로 던전 벽을 통째로 박살내며 전진하고 있는 것은, 바로 마법사 – 레이칸이었다.
“흡! 흐읍!”
콰아앙-! 콰아아앙-!
녹색으로 빛나는 그의 팔이 두어 번 휘둘러지자, 마치 벽은 쿠키처럼 쉽게 파이고 박살이 났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괴력이었다.
물론 마법을 전혀 안 쓴 것은 아니었다.
몸에는 신체 강화 마법에, 쥐고 있는 곡괭이는 직접 유렌이 강화 마법을 걸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마법사다.
그것도 몸을 쓰는 걸 수치스러워해, 30대 중반인 지금까지 단련한 적이 없는.
그냥 마법사.
그런 그가 두어 가지 초급 마법들의 도움만 받고, 마력에 눈을 뜬 베테랑 기사 같은 파괴력을 내고 있었다.
콰앙-! 콰아앙-!!
‘자세가 빠르게 능숙해져 가고 있어. 정말 말도 안 되는 재능이야.’
처음 곡괭이를 휘두를 때는, 누가 봐도 서툴렀다.
하지만 휘두름이 5번을 넘기자, 어느새 그 어색함이 반으로 줄었다.
열 번을 넘길 때, 어색함은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휘두른 횟수가 50번을 넘은 지금.
어느새 레이칸은, 숙련된 광부처럼 능숙히 곡괭이를 다루고 있었다.
‘더 볼 것도 없어. 이건 그냥 재능 덩어리 그 자체다.’
육체는 물론, 도구- 즉 무기를 다루는데도 특출나다니.
전사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낼만한 재능의 원석이었다.
그 길과 정반대를 걷고 있는 것이, 조금 문제이긴 했지만.
콰아아앙-!
“어?!”
“오.”
무언가 뚫리는 소리와 함께, 레이칸의 곡괭이가 허공을 갈랐다.
마지막 벽이 무너지며 빈공간이 나온 것이다.
“메이지 유렌! 저, 정말로 무슨 공간이 나왔슴다!”
“와. 이런. 진짜 나올 줄은 몰랐네요. 안쪽에서 마력이 조금씩 새어 나오길래, 혹시나 한 건데.”
흥분에 휩싸인 레이칸은 미처 눈치 채지 못했지만, 유렌의 목소리는 아주 침착했다.
마치 이 빈공간이 나오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처럼.
“잠깐, 실례.”
유렌은 구멍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머리를 집어 놓고는 크게 냄새를 맡았다.
흐읍-
가득 찬 흙먼지 속에 느껴지는 건, 강렬한 마력의 향기.
마치 수백 년 동안 농축된 것 같은, 농밀한 마력들이 이 안쪽에서 느껴졌다.
마력이 아주 희미해진 이곳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짙었다.
“빙고.”
초보자들도 무시하는 쓰레기 던전 하바트.
그곳에 숨겨져 있던, 진짜가 발견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