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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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48화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48화 쌓아 올리는 것들 (8)
“크크크큭. 백작님도 고생이시군요. 이런 곳에서 연금이시라니.”
“……닥쳐라.”
베르헨 근방.
근처에 숲이 많은 한 별장의 지하실.
온몸을 붉게 물들인 마법사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듣는 사람을 오싹하게 만들고 있었다.
‘네이슨 메그넘. 이놈도 확실히 미쳐가는군.’
지난 몇 주간.
베이어른 백작도 악몽 같은 나날을 보내긴 했다.
아직 베이어른 가에게 쓸모를 느낀 왕자파들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살아남긴 했지만, 재산과 영향력이 반 토막 수준으로 사라졌으니까.
지난 20여 년간 수완가인 백작이 쌓아 올라왔던 것이, 한 방에 전부 무너진 셈이었다.
‘그 유렌이라는 망할 자식! 그리고, 그 뒤에 있는 그 빌어먹을 공주!’
하지만 지난 20년이 허송세월로 변한 백작의 눈으로 봐도, 메그넘 가가 받은 타격이 수십 배는 더 컸다.
만약 가주가 귀족원에 입성하고, 세력을 몇 년 더 쌓으면 백작위도 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지던 가문이다.
돈도 권력도 모두 충분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집안이 하루아침에 준남작으로 떨어졌다.
말만 귀족이지, 사실상 평민과도 별 차이 없는 준남작으로.
재산 역시 몽땅 압수되었고, 그 여파로 일족들 역시 자살하거나 행방불명되었다.
한 마디로 메그넘 가는 이미 몰락해버린 것이다.
“툰드라! 그리고 유렌! 그드드득-! 모두 죽여 버릴 거다!”
백작은 입에서 피를 주륵주륵 흘리며 이를 가는 그의 모습엔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 말의 내용엔 동감했다.
위저드 툰드라.
얼마 전까진 설마 했었지만, 최근 들어 대놓고 공주를 지지하고 나선 위저드.
공주파에겐 마법계에선 대단한 지지자가 없었던지라, 그녀가 나선 파장은 상당했다.
젊은 천재로 소문이 나고, 미래의 마스터로 점찍힌 인재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유렌 슈나이더.
사실상 자신들을 엿 먹이기 위해 마탑을 창립한 이놈은,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어처구니없는 행적을 이어가고 있었다.
‘역시 그놈이 제일 위험해.’
행적을 보면 도저히 왜 저런 일을 할까 알 수 없는 놈.
하지만 어느새 급부상한 것은 물론이고, 그를 적대하는 자들에겐 커다란 타격까지 입히고 있다.
거기엔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고.
찰그랑-
백작은 뒤쪽의 수하에게 시켜, 금화가 든 커다란 주머니를 네이슨에게 건넸다.
“지원금이다. 그리고 내 수하를 열 명 정도 빌려주지. 3위계와 4위계가 섞여 있지만, 전투에선 제법 베테랑이니 도움이 될 거다. 그걸로 마음대로 날뛰어보도록.”
“큭큭큭……. 예. 원하시는 대로, 크게 폭발해드리죠! 놈들과 함께 말입니다. 하하하핫-!”
네이슨은 미친 듯이 광소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돈주머니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지하실의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백작의 수하들이, 허겁지겁 그의 뒤를 따랐다.
“부디 놈이 큰 타격을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 만일을 위해 놈을 따라간 수하들의 기록을 삭제해야겠지.
백작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새로 임명된 5집사가 헐레벌떡 백작의 곁으로 다가왔다.
“주, 주인님! 그 유렌이란 놈의 소식입니다.”
“그래? 어떤 일이냐!”
백작은 생각을 멈추고, 재빨리 집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놈과 관련된 소식은, 어떠한 작은 거라도 즉시 자신에게 보고하도록 명해두었다.
이번에 놈은 또 무슨 일을 했을까?
괴상한 핑계를 대고 수하들과 멀리 떠난 그놈은, 틀림없이 또 엉뚱한 짓을 했겠지.
백작의 진지한 눈빛에, 집사는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음, 그, 드워프를…… 발견했답니다.”
“……뭐?”
“그 옛이야기에 나오는, 드워프 말입니다. 발견해서 데리고 베르헨에 도착했다고…….”
……자기 전 꼬마들에게나 들려주던, 그 이야기 속의 드워프를 진짜로 발견했다고?
그러면, 그 계획서는 적당히 꾸며 쓴 게 아니라 진짜고?
“아니, 그걸 대체 어떻게 찾은 거야?!”
콰앙-!
백작은 눈앞의 작은 상을 때려 부수며 주먹을 꽉 쥐었다.
보나 마나 이걸로, 마법계는 물론 베르헨 어디에서도 놈의 이름이 더 알려질 것이다.
그럼 당연히 그 뒤에 있는 공주파들에게도 좋은 일들이 될 것이고.
‘젠장. 네이슨. 그 미친놈에게 더 크게 걸 수밖에 없나.’
백작은 당장 추가로 보낼 수 있는 수하들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이번 기회에 거슬리는 그놈들을 죄다 쓸어버려야겠다고 말이다.
* *
베르헨.
평의회 소속의 어느 숙소.
“이, 이쪽에 진짜 드워프가 묵고 있다던데! 좀 만나 볼 수 있겠나?”
“시, 실험! 실험은 언제 해 볼 수 있겠나?! 위험한건 아닐세! 뭐? 안 된다고? 젠장! 왜 발견된 게 한 명뿐인 건가! 수십 명이 있었으면 그중 하나쯤은……!”
마법사들이란 기본적으로 실험과 그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루어진 생명체들.
당연하게도, 기본적인 조사를 끝낸 매키넨에겐 온갖 마법사들이 달려 들어왔다.
유렌은 2층으로 매키넨을 피신시킨 후, 1층에서 그들을 맞이했다.
“모두 물러나 주시길 바랍니다. 드워프와 어떤 활동을 하고 싶다면, 먼저 평의회에 정식으로 요청을 넣은 후. 저에게 말해주시길.”
이젠 키에 어울리는 체격이 된 유렌이 좁은 통로를 막고 서자, 마법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다, 당신이 무슨 권리로! 아무리 발견자라고 해도 그럴 권리는 없어! 게다가 겨우 메이지가……!”
그런 자신의 행동에 창피했는지 한 흥분한 세이지 한 명이 따지고 나섰지만, 유렌은 그저 코웃음만 쳤다.
“권리는 있습니다. 뭐 발견자에겐 없다고 치더라도, 보호자에겐 있죠. 저희 ‘스태프 오브 파워’ 마탑이 정식으로 그의 보호자가 되었으니 당연히 권리도 있습니다.”
“뭐, 뭐라고?!”
“못 믿으시겠다면, 평의회에 정식으로 문의를 해 보시죠. 그리고 메이지에게 밀린 게 그렇게 분하시면, 그 메이지에게 정식으로 쓴맛을 한 번 보여주시죠?”
유렌이 그렇게 말하고, 심장의 마력을 강하게 방출하자 주위의 있던 마법사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 이 마력의 양은 대체?!”
“이 마력이 3위계라니. 말도 안 되는군. 아직 위계만 낮았던 건가.”
“……크윽!”
흥분해서 따지던 그 세이지는, 아무 소리도 못 하고 그저 노려보기만 하며 물러갔다.
그 시선을 느낀 유렌은, 어깨만 으쓱이며 물었다.
“저분은 어디 소속이십니까?”
“……저 친구 말인가? 분명 그리폰 마탑의 하위인 푸른 루비 마탑 소속이었던 걸로…….”
“흠. 특이한 이름이군요. 기억해두겠습니다. 그분들은 아마 드워프를 만나기 힘들겠군요. 다른 분들과는 다르게 말이죠.”
“……!”
유렌의 말에 다른 마법사들은 눈을 번쩍였다.
저 멍청한 놈과 소속의 하위 마탑이, 어떻게 되든 그들의 알 바 따윈 아니다.
오히려 방금 유렌의 말에서 힌트를 읽은 것이다.
‘저런 멍청한 놈과 다른 행동을 하면, 드워프를 만날 수 있다’라고 말이다.
“흠, 흠! 그러고 보니, 스태프 오브 파워의 창립을 제대로 축하해주지도 못했군요. 이거 부끄럽습니다. 저희 마탑에서 다음엔…….”
한 마탑에서 간부직을 맡은 장년의 세이지 한 명이 먼저 나섰다. 마법 실력은 애매하지만, 출중한 사무 능력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유렌은 조금 전과는 다르게, 웃는 얼굴로 그 말을 받았다.
“네. 그러시군요. 좋습니다. 그럼 그쪽의 탑주님이 직접 오신다면, 저희도 탑주님께서 직접…….”
“오오! 그래 주신다면야, 감사합니다.”
“예. 그러면 드워프는 모레 정도엔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까진 아무래도 평의회 쪽으로 바쁠 것 같아서요. 대신, 모레는 아침에 뵐 수 있을 듯합니다.”
“허허헛. 감사합니다. 저희도 그렇다면…….”
유렌은 제법 이름 있는 마탑의 탑주와 약속을 잡고는, 화기애애하게 대화했다.
이제 막 세운 마탑이다. 툰드라나 공주 세력 이외엔, 다른 단체와는 아직 교류조차 없었다.
당연히 유렌은, 이 상황을 그냥 내버려 둘 생각 따윈 없었다.
‘다른 단체와도 최소한의 라인은 필요해.’
물론 그렇다고, 멍청이들이나 이쪽을 이유 없이 적대하는 쪽까지 감싸주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방금 저 화내고 간 멍청이의 소속 마탑. 분명 푸른 루비라고 했던가?
분명 저 마탑만 만남 금지를 때려버리면, 무슨 일이 있는지 윗선도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이쪽에 사과하러 온다면? 윗선까지 멍청이는 아니라는 뜻이니 충분히 사이를 돌릴 수 있다.
오히려 화를 낸다면, 걸러야 할 놈들이 걸린 거니 나쁠 것 하나 없고.
“저, 저는 마도구점 소속의……!”
“저는 부족하지만 아인종 연구회를 이끄는 몸입니다!”
그렇게 유렌은 각종 단체와의 연결선을 미약하게나마 만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마법사들 앞에서도 공개 될 예정이었던 매키넨을, 하루 빠르게 만나게 해준다는 이유로 말이다.
* *
그날 밤.
달도 캄캄해 제대로 뜨지 않은 어두운 밤.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은 두 그림자는, 조용히 은행의 불 꺼진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곳엔 웬 키가 작은 그림자 하나가, 불도 키지 않고 캄캄한 방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번쩍-
그림자는 곧 불을 켜더니, 조명에 머리를 번쩍이며 웃으며 말했다.
“으하하핫-! 잘 돌아오셨습니다! 메이지, 아니 이젠 곧 달라지려나요? 세이지 유렌!”
“아직은 아니니 그냥 메이지라고 불러주십시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유렌은 공간을 열어, 드워프들의 보물 일부를 사무실 바닥에 내려놓았다.
“오호-! 오호-! 이거, 여러 가지로 놀랍군요. 그놈들의 보물들을 죄다 털어온 것이나, 그것을 이리도 쉽게 운반하신 거나. 둘 다 말입니다!”
하이아킨은 잠시 머리를 치며 감탄하다가, 곧 진지한 얼굴로 유렌에게 물었다.
“그럼…… 뒤에 있는 그 자가 제 동족이자, 지상의 두 번째 드워프가 되겠군요. 아니, 사실은 더 있으려나요?”
“역시 눈치가 빠르시군요. 네, 5명 정도 더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곳에서 이미 작업에 들어간 상태고.”
“아예 숨길 수는 없으시니, 나중에 추가로 발견했다고 하실 겁니까?”
“예. 그래야죠. 갈색 산맥 어딘가에서 발견했다고 하면, 거짓이 아니니까요. 뭐, 그 후에 다른 마탑이나 평의회가 드워프들을 찾느라 애쓰겠지만……. 발견되진 않겠죠.”
유렌은 싱긋 웃으며 손의 있는 ‘땅의 보석’을 쥐었다.
이것과 그 장소에 대한 지식 없는 한, 아무리 뛰어난 고위 마법사라도 그 지하에 도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갈색 산맥의 땅을 파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러면 추가로 드워프들을 발견한 메이지 유렌과 그 마탑에 대한 평가만 더 상승하겠군요. 으하하핫-! 역시, 머리를 굴리시는 게 보통이 아니십니다!”
그렇게 웃는 하이아킨의 눈은 여전히 유렌의 뒤에 있는, 얼굴을 가린 드워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일단, 당신이 제일 알고 싶어 하는 소식부터 전하죠. 당신의 아내는, 당신이 나가고 10년 후. 병사했습니다.”
“……!!”
하이아킨의 고개가 푹 하고 떨어졌다.
혹시, 정말 혹시나 하던 후드를 입은 드워프는, 그의 아내가 아니었다.
사실 몸의 실루엣으로부터 이미 눈치는 대강 채고 있었지만, 아예 확정 되는 것과는 기분 자체가 달랐다.
“…….”
그리고 몇 초 후, 고개를 다시 올린 그의 눈에는 분노와 울분이 가득 차 있었다.
돌아오면 아내를 죽인다고 해서, 당장 그녀와 만나고 싶은 것을 참은 게 56년째였다.
그런데, 이젠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없다.
“그렇담, 저건 누구입니까-! 메이지 유렌! 혹시, 혹시……?!”
자신의 원수 중 하나가 아닐까.
의심을 매개체로 한 분노가 저 얼굴을 가린 드워프에게 폭발하려는 순간. 유렌은 그것을 막기라도 하듯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녀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다고 하더군요.”
“……예?”
뜻밖의 말에, 하이아킨의 몸이 굳었다.
“나이는 올해로 55세. 아버지가 쫓겨나고 약 11개월 후. 태어났다고 합니다. 인간이라면 아마 다른 사람의 아이였겠지만……. 드워프의 임신 기간은 얼마 정도죠?”
“……14개월 정도입니다.”
하이아킨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손발이 저절로 떨리고, 눈앞이 뿌옇게 변하고 있었다.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자연스럽게 잘만 튀어나오던 말이, 이상하게 지금은 잘 나오지 않았다.
“음, 그, 어.”
“뭐, 여기서 더 말할 필욘 없겠죠.”
스르륵-
유렌은 조용히 그의 후드를 치웠다.
그곳에는 눈물이 가득 고인 한 젊은 드워프가, 하이아킨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하이아킨은 재빨리 달려가 매키넨의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있었다. 아내의 얼굴이.
있었다. 자신의 얼굴도.
“아아아아아-!!”
“으어어어어-!!”
55년 만에 처음 만나는, 두 드워프 부자의 울음소리가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 *
“으하하핫-! 감사합니다. 유렌님!”
약 1시간여 후.
아들과 실컷 울고 웃고 떠든 하이아킨은, 머리를 깊게 숙이며 은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말투는 돌아와 있었으나, 목소리만은 진중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유렌님께 은혜를 갚겠습니다-! 으하하핫! 제 은행을 통째로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그건 관리하기만 힘들죠. 그저, 절 필요할 때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언제든 돈이든, 연줄이든, 협잡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필요하면 말만 하십시오!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이뤄 드릴 테니까요!”
유렌은 그렇게 다짐하고 있는 그에게, 추가로 선물을 하나 더 주었다.
바로 나이 든 원로 드워프들을 쪽쪽 쥐어짜는 그 계약서였다.
“……! 이, 이건?!”
“저 대신 대행자의 역할을, 맡아주시겠습니까? 제가 좀 바쁜 몸이어서요. 3개월마다 드워프 마을로 가서 수금을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하이아킨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으하아아하하핫-!!”
거의 눈물까지 찔끔거린 그는, 곧 주먹을 꼭 쥔 채 또박또박 말했다.
“철저히, 철저하게 일하겠습니다! 56년 어치를 아주 확실하게 말입죠! 으하하하핫-!”
기쁨과 복수심, 그리고 끝없는 감사의 감정이 동시에 담긴 목소리가 사무실에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