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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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3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41화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41화 쌓아 올리는 것들 (1)
레니안 폰 베르슈리거.
유렌은 그의 긴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전생의 마지막 기억들이 떠올랐다.
-대, 대장님! 꼭 살아나가셔야 해요!
-커헉! 대장……. 죽지 마십쇼!
숨이 터져 나갈 것 같은 강대한 마법들의 폭풍.
그 속에서 하나둘 멎어가는 부하들의 숨소리.
끝내 전멸까지 이끌고 간 못난 대장이건만, 원망 하나 없이 이쪽만을 걱정하며 죽어간 자신의 부하들.
부관도, 군종 사제도, 기병대장도.
전부 그때 죽었다. 저 대마도사의 손에.
그리고, 끝내 자신마저도.
으득-
유렌은 이를 악물고, 강하게 왼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바로 자신의 왼쪽 뺨에 말이다.
“……!”
“무슨?!”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레니안과 툰드라 모두 놀랐지만, 정작 혼자 때리고 맞은 유렌은 태연히 고개를 들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훈련을 과하게 했는지, 좀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이젠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혀 이유가 되지 않는 유렌의 말에, 툰드라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레니안은 그저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하하. 그렇군요. 이거, 피곤하신 분을 제가 괜히 부른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위저드 레니안께서 저에겐 어떤 일로?”
“아. 정말 별건 아닙니다. 그저, 요새 이름이 하도 많이 들려오기에 간단한 인사나 나눌까 해서요.”
꽈아악-
유렌은 레니안과 평범히 대화를 나누면서도, 꼭 쥔 왼쪽 주먹은 펴지 못했다.
‘위험해. 덤벼들 뻔했어.’
조금 전, 유렌은 상대가 ‘그’임을 인지한 순간, 그대로 살기를 내뿜어 그에게 달려들 뻔했다.
‘적이 아니다. 아직은 아니야. 진정해.’
상대는 자신의 최측근 부하들을 전부 죽이고, 끝내는 전생의 자신마저 죽여버린.
그야말로 원수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상대.
하지만 현재의 그는 적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일 뿐이다.
그가 중년이 아니라 아직 청년이듯,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그런 미래 말이다.
그런 그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니안은 유렌을 보며 감탄한 채 말했다.
“원래는 ‘마력은 평범한 3레벨’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보고가 다 헛된 것이었군요. 혹시 지금 3레벨의 벽을 깨고 계신 것 아니십니까?”
“예. 맞습니다. 얼마 전, ‘끝의 빛’을 보았습니다.”
“다행히, 제 눈이 맞았군요. 하하. 축하드립니다.”
과연, 상대방의 마력을 탐색하는 것도 다른 이보다 훨씬 능숙했다.
실제로 다른 위저드들은 유렌이 말하지 않은 이상, 아직 거기까지 눈치챈 이들은 없었다.
“어머. 정말이에요? 축하……드리긴 하는데, 왜 저에게 말은 안 해주셨죠?”
이렇게 놀라서 되묻는 툰드라 같이 말이다.
“그야 안 물어보셨으니까.”
“……으윽.”
툰드라와 투닥거리면서 조금 감정을 진정시킨 유렌은, 이번엔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라면, 죄송합니다만. 혹시 위저드 레니안도 ‘끝의 빛’을 보셨습니까?”
“……! 예. 이거, 놀랍군요. 맞습니다.”
“어어?! 저, 정말이요?!”
툰드라는 아까보다 훨씬 놀라, 이번엔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평소 침착한 그녀답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이번엔 충분히 놀랄만한 일이었다.
‘끝의 빛’이 어떤 것이던가.
그 레벨의 끝자락에 서서, 다음 레벨을 바라보아야만 보인다는, 레벨 상승의 예비 증표 아니던가.
3레벨이 그 빛을 보았어도, 충분히 축하할 일이었고, 4레벨이 봤으면 말 그대로 경사였다.
그런데, 레니안은 지금 무려 5레벨이다.
즉, 그 귀하다는 6레벨 마스터의 탄생이 눈앞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저드 툰드라. 메이지 유렌. 죄송하지만, 그 사실은 비밀로 해주시겠습니까?”
레니안은 둘째손가락을 입에 대며, 조용히 부탁했다.
“6레벨로 올라가는 것은, 설령 끝의 빛을 보았다고 해도 다른 레벨보다 훨씬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하더군요. 괜히 년 단위로 주위에서 기대만 하고 있으면, 그들도 지치고 저도 부담되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비밀로 할게요.”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거, 정말로 감사합니다. 두 분.”
둘의 대답에, 레니안은 가볍게 고개를 꾸벅였다.
그 후에도, 유렌과 툰드라. 그리고 레니안은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그저 마탑 창립을 축하한다거나, 최근에 있었던 가벼운 일을 얘기한다거나 하는, 말 그대로 가벼운 대화가 주였다.
“네이슨은 안타깝게 됐군요. 물론, 분명 그의 잘못은 있습니다만……. 가문은 망하고, 하루아침에 행방불명이 되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이 그런 마음이 조금 듭니다.”
중간에 네이슨을 조금 안타까워하는 말도 하긴 했지만, 그의 상사로서 못 할 말은 아니었고.
약 20여 분 후.
“아, 이런. 제가 바쁜 분을 너무 많이 세워뒀군요.”
레니안은 슬슬 해가 서쪽으로 가는 하늘을 보더니, 작별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럼, 정말 반가웠습니다. 메이지 유렌.”
“저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예. 하하. 아, 죄송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드려도 될까요?”
유렌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레니안은 어느새 유렌의 옆으로 다가와 조그맣게 속삭였다.
“위로 올라갈수록 그림자들을 조심하고, 경계하십시오.”
“……!”
그는 그 짧은 속삭임만을 남기고, 손을 흔들며 길 저편으로 사라졌다.
“…….”
“위저드 레니안이 뭐라고 했나요?”
옆에 남은 툰드라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별말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주변을 신경을 쓰라는 것이었죠.”
“……뭘 당연한 말을 굳이 귓속말까지? 아, 잠시만요!”
툰드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유렌 역시 고개를 꾸벅이며 길을 떠나갔다.
그녀가 뭐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지금 유렌에게 그녀를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레니안. 그 말은 흑막 놈들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반대로 기만……?’
유렌은 그가 말한 뜻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자신의 숙소로 발을 옮겼다.
“아! 잘 들어가라고요!”
뒤에서 인상을 쓰면서도 손을 흔드는. 툰드라를 끝내 보지 못한 채로.
* *
4위계 세이지이자, 실행부대원들의 대장인 셀레나는 기분이 부글거렸다.
‘쳇~! 임무 중, 또 다른 임무가 웬일이냐고~!’
얼마 전부터 그녀는, 실행부대의 몇몇 특수 임무로 가끔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에~? 저는 임무 중인데, 또 맡으라고요~?
-어차피 할 거 별로 없는 호위 일이잖아? 젠장. 담당자 놈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어쨌든 네 부하들도, 그 호위 대상에게 다 붙어있을 테고. 급한 일이니까, 이것부터 좀 해줘.
만약 그녀가 맡은 게 일반적인 호위 임무였다면, 크게 기뻐하며 그 특수 임무들에 푹 빠져, 돌아올 생각도 안 했겠지.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호위 대상이 그 ‘유렌’인 이상, 그녀는 가능하면 그의 곁에 붙어있고 싶어 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신 이런 게 마지막이에요~? 앞으로 두어 달간은 부르지 말아 주세요~!
-그래, 그래. 네가 무슨 바람인지는 몰라도, 그 호위가 그렇게 마음에 든다면 그러마.
실행부대의 총대장 – 위저드 마일즈가 그렇게 투덜거리든 말든, 셀레나는 그가 준 임무들을 후딱 해치웠다.
-으아아아악-!
-꺄하하하하~!
해치우고,
-끄어어어억! 사, 살려줘!
-어딜 도망가려고~?
해치웠다.
다행히도 그녀의 적성에 맞는 임무들이었기에, 그녀는 나름대로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셀레나에겐 기막힌 반전이 도래했다.
-뭐? 변종 트롤~? 그것도 마법이 제대로 안 통하고, 그 앞에선 강화마법도 풀리는~? 세상에! 너무 재미있었겠다~!
-아니, 대장! 전 죽을 뻔했다니까요!
-안 죽었잖아~!
아니, 설마 호위 임무에 더 재미있는 일이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백작의 저택을 습격~?! 그래도 이건 좀 도를 넘지 않았어~?
-우린 그저 보고만 있었수.
-뭐, 유렌 양반이 충분히 대단한 걸 펑펑 보여주긴 했지만 말이죠.
-끄으으으~! 재밌었겠다~!
거기에, 추가로 그 콧대 높으신 고위 마법사들이 죄다 놀라 자빠졌다는 마탑의 창립 회의까지.
뒤늦게 돌아와 놀랍고 재미있는 이벤트(?)를 놓쳤다는 소식을 들은 셀레나는, 그저 약이 올라 발만 동동 굴렸다.
그놈들이 놀란 얼굴들을 봤어야 했는데!
“아아아아~! 화가 쌓인다, 쌓여~!”
셀레나는 씩씩거린 채, 평의회 소속의 비밀 훈련장에 들어갔다.
이곳은, 말 그대로 특수부대원들이나 평의회에서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나 아는 곳.
깽판을 쳐서 비품 등을 부숴놔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서 셀레나도 가끔씩 즐겨 사용하는 곳이었다.
참고로 그녀가 가끔씩 오는 이유는, 너무 자주 부수면 아무리 그래도 윗선에 혼나기 때문이었다.
바아아아앙-!
“응~?”
누가 먼저 왔나?
셀레나는 김이 빠진 듯 투덜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러면 힘을 마음껏 쓰기가 힘든데~.’
수십 명이 한꺼번에 훈련이 가능한 넓이의 장소이긴 했지만, 그래도 4위계 전체에서 몇 손가락에 뽑히는 전투마법사가 바로 그녀다.
조금 힘을 과하게 주면, 이 정도 공간을 초토화하는 건, 말 그대로 일도 아니었다.
바아아아앙-!
하지만, 들리는 소리가 조금 이상하다 싶어서 그쪽을 바라본 순간.
히죽-
그녀의 입이, 거의 찢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깊게 미소 지었다.
그곳에는 그녀의 호위 대상- 유렌이 대기를 찢을 듯한 기세로 스태프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녀에게 겨우 돌아온, 오래간만의 행운이었다.
* *
유렌은 최대한 생각을 비운 채, 스태프를 휘둘렀다.
우측 상단에서, 대각선으로 갈라 좌측 하단으로.
바아아아앙-!
그대로 힘을 거스르지 않고 빙글 돌아, 그대로 중앙을 세로로 가른다.
바아아아앙-!
스태프는 유렌의 눈길이 향하는 곳으로, 마치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물론, 그 물은 흐르는 소리가 매우 살벌하긴 했지만.
‘아직, 뭔가 부족해.’
유렌은 스태프를 힐끗 보며, 다시 최대한 생각을 비웠다.
그러자, 머리가 저절로 전생. 즉, 소드마스터였던 시절을 떠올려냈다.
아무래도, 아까 전 레니안을 만난 영향일 것이다.
당시엔 이렇게 검에 몰입해서 훈련으로 휘두른 적은, 거의 없었다.
오로지 살아남고 적을 죽이기 위해 검을 휘둘렀던 시절이니까.
그렇다면, 그때는 도대체 무기를 어떻게 휘둘렀는가?
비록 그때는 검이고, 지금은 스태프지만 결국 무기는 무기.
똑같다는 말까지는 안 하겠지만, 그래도 둘 사이에 이어지는 것은 컸다.
유렌은 전신의 마력을 끌어올리며 옛 방식대로 스태프를 휘둘렀다.
바아아아앙-!
뭔가, 소리가 달라졌다. 얼핏 듣기엔 비슷했지만, 무언가가 째지는 듯한 소리가 속에서 들려왔다.
두근두근-
심장의 마력들이 꿈틀거리며, 껍데기를 깨려고 용쓰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유렌은 마치 심장이 그렇게 얘기한 것 같은 환상을 들으며, 스태프를 마구 휘둘렀다.
무언가 조금만 더 하면, 바뀔 것만 같았다.
바아앙-! 바아앙-!
바아아아앙-!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무언가가 살짝 모자라 거기에 닿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때.
“저랑! 저랑 대련~! 지금 해요~!”
셀레나가 그렇게 소리치며, 갑자기 끼어들었다.
마치 짐승처럼 자세를 낮게 웅크린 그녀의 양손엔, 번쩍이는 짧은 로드가 각각 한 개씩 들려 있었다.
게다가 굉장히 흥분했는지, 눈을 크게 부릅뜨는 와중에 입에서는 침이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말 그대로, 흥분한 야생의 맹수가 사람을 습격하기 직전이었다.
“……이거, 참. 끝내주는 귀환 인사네.”
그녀의 갑작스러운 난입이었지만, 유렌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눈치챘다.
‘그래, 지금 나한테 모자랐던 것은 바로 이거로군.’
옛 기억을 다시 떠올리든, 새롭게 실력을 쌓아 올리든, 그건 상관없었다.
그게 어떤 것이든 간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실력자와의 싸움.
사실 당연한 거다. 결국 자신은 기사로서도, 마법사로서도 철저한 실전 파니까.
유렌의 입가가 조금 올라가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 와라.”
“아하하하핫~!”
그 수락의 뜻에, 셀레나는 광소하며 기뻐했다.
얼마나, 얼마나 기대했던가.
자신의 눈앞에서 마법 화살들을 우드득 꺾어버릴 그때부터, 그에게서 끝을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다.
‘이번 걸로 확실하게 확인하겠어~!“
훈련장 담당자의 비명을 불러올 두 사람의 대련이,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