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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55화

무료소설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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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55화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55화 마법사와 기사도 (4)

 

 

 

-스승님. 어디까지나 주 무기인 검만 갈고 닦으면 되는 것이지, 왜 다른 무기술까지 죄다 배워야 합니까?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냐.

한쪽 눈이 없는 노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제자를 바라보았다.

-넌 기사가 아니냐, 기사! 자고로 기사의 근본은……!

-아이고, 그 소리는 수천 번은 들었습니다. 기사는 다양한 무기들을 능통하게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거! 그래서 전 이제 대부분의 무기를 어느 정도는 다룰 줄 알지 않습니까?

제자는 그런 스승이 이해가 가지 않아, 나무 창을 휘두르는 와중에서도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도 계속 이렇게 주 무기인 검이 아니라 창, 도끼, 망치 등등을 수련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전 소드마스터를 노리고 있지, 스피어마스터나 액스마스터를 노리는 건 아니라구요. 

-이런 멍청한 놈이! 

따악-

노인은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신속한 움직임으로, 제자의 머리에 딱밤 한 대를 쥐어박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악!

-그럼 나는 이 주먹 수련을 계속하면, 피스트 마스터가 되냐? 응? 기껏 하루 몇 시간도 하지 않고, 전장에선 기껏해야 보조 무기로밖에 다루지 않는 주제에 뭐? 스피어 마스터? 하이고. 페로닌 경이 아시면,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지도 못하시겠다, 이놈아!

스승이 대륙에 딱 한 사람뿐인 스피어마스터의 이름을 대며 기막혀하자, 제자도 발끈했다.

-아니, 그러니까 말입니다. 애초에 그 보조 무기로밖에 못 써먹는 걸 왜 계속 배워야 하냐는 겁니다. 검만 죽어라 연습해도, 마스터까지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거잖습니까.

제자의 그 말을 듣자, 스승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에휴. 정말, 아직 한참 멀었구나. 결국 무기는 무엇을 다루든 간에, 일정 이상의 경지가 되면 서로 이어지고 보완되는 법이다.

물론 활이나 석궁 같은 예외도 있긴 하지만, 결국 손과 이어지면서 근접해서 싸우는 무기들은, 익힐수록 다 도움이 되는 법이다.

-…….

스승은 제자가 납득하지 못하자, 다시 한 번 깊이 한숨을 쉬었다.

-에휴. 마스터는 무슨! 전쟁에서 마법사놈들 마법에 맞아 죽지나 마라!

 

* *

 

결국 그 말은 반은 틀리고, 반은 맞긴 했다.

마스터는 되었지만, 결국 마법에 맞아 죽긴 했으니까.

유렌은 실드로 만든 창날로, 옛 스승의 목을 노렸다.

쒸익-!

신체 강화마법을 사용한 것보다도, 더 빨라 보이는 그 속도에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경악했다.

“허! 빠르군!”

심지어 옛 스승- 단장도 그것을 피하며 감탄할 정도였으니까.

‘가볍게 피하면서 무슨!’

쒸이이익-!

유렌의 반투명한 실드의 창날이, 순식간에 다섯 개로 늘어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 모두가 동시에 상대를 찔러 들어갔다.

빠르고 빨라, 마치 창날이 늘어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찌르기였다.

까아앙-!

하지만, 단장의 보검이 한 번 번쩍이자 그 잔상들은 전부 사라졌다.

그 묵직한 일격에, 유렌은 스태프를 잡은 채로 짧게 날아갔다.

“크으-!”

‘이땐 힘도 더 강하셨군.’

유렌은 재빨리, 자신이 날아가는 방향 뒤에 작은 실드를 쳤다.

탓-

그리고 그것을 밟음과 동시에 작게 폭파. 그 반동으로 재빠르게 단장에게 파고들었다.

“저, 저건 돌격?”

“진짜 마법사 맞아?!”

유렌은 상대를 향해 스태프를 내지르려 하다, 급히 고개를 숙였다.

쒸이이익-

역시, 검이 단 한 번 번쩍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단장 특유의 강검이 그렇게 휘둘러지자, 닿지도 않은 유렌의 적갈색 머리칼 몇 개가 잘려 공중에 흩날렸다.

“허.”

하지만, 유렌이 내지른 실드 창날의 끝에, 희끗희끗한 회색 머리 역시 몇 가닥 잘려 공중에 날렸다.

강격을 피하면서도 정확하게 스태프를 내지른 덕이었다.

“허헛. 이거, 제법이라는 말로 끝나기엔 부족하군.”

상대의 실력을 확인한 단장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졌다.

눈 속 깊은 곳에 있던, 경멸의 감정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역시, 어쩔 수 없는 천부적인 기사시군.’

상대의 실력이, 특히나 이런 근접전이 강하면 강할수록, 상대에게 호의적으로 변해가는 것이 바로 기사라는 인종이다.

마법사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단장 역시, ‘강자’로 보이는 유렌에게 느끼는 감정이 달라지고 있었다.

다른 기사들이, 레이칸에게 느끼는 감정처럼 말이다.

타악-

그리고 단장은 조용히, 보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이거, 내가 잘못 생각했었군.”

단장은 표정 없이, 유렌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유렌은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며, 이제야 옛 스승의 눈빛을 조금이나마 느꼈다.

“자넨 충분히 저 견습을 지도할 자격이 있었어.”

그리곤,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아무나 좋으니, 창을 하나만 빌려다오!”

단장의 그 소리에, 창을 사용하는 기사 하나가 헐레벌떡 다가와, 자신의 무기를 단장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단장님.”

“그래, 고맙다. 잘 쓰고 돌려주마.”

부웅-

제법 길고 무거운, 3m 가까이 되는 철창이었지만, 단장은 별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듯 가볍게 붕붕 휘둘렀다.

“실례했네. 진정한 ‘지도’를 하려면, 기왕이면 같은 무기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말이야. 물론 무기야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니만큼, 자네 실력이 한참 아래라면 검으로도 상관없었겠네만……. 그건 아닌 걸로 보이는군.”

“그거 영광이군요. 전 상관없습니다.”

“허헛. 그래, 그렇다면…… 받아보게!”

퍼어엉-!

거의 작은 폭발마법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며, 단장은 엄청난 빠르기로 유렌에게 다가왔다.

기사들이 쓰는 기술인 ‘돌격’을 아주 성대하게 써버린 것이다.

“허헛! 아까는 다섯 번 연속 찌르더군! 그건 대체 어디서 배운 건가?”

흔들- 

단장의 철창 끝이 흔들리며, 순식간의 세 번의 공격이 동시에 들어왔다.

다만 지금까지 비슷한 곳을 찌르던 유렌과는 다르게, 단장의 찌르기는 도달하는 장소가 각각 크게 달랐다.

‘목, 배, 그리고 발목!’

상단과 중단. 그리고 하단.

채앵-!

유렌은 재빠르게 스태프를 휘둘러 상단과 중단을 튕겨 냈지만, 하단이 로브 끝을 스쳐 가는 것까진 피하진 못했다.

찌직-

“……하핫!”

유렌의 얼굴에 미소가 달렸다.

사실, 유렌이 나아가는 검술의 길은 스승과는 조금 달랐었다.

단장은 어디까지나 우직한 강검의 소유자. 하지만 유렌은 강과 유를 적절히 조합하여 결국 검의 끝에 달했었으니까.

하지만, 창술과 봉술들은 달랐다. 

비록 스승의 사후 이후 자신이 어느 정도 변형은 가했으나, 근본 자체는 역시 스승에게 나온 것.

즉 지금 스승의 창술을 본 유렌은, 자신의 기술의 근본을 다시 보고 있었다.

슈욱-!

‘그래. 저런 찌르는 공격은, 이렇게 피하고 반격하라 하셨지.’

쒸익-!

유렌은 상체를 슬쩍 움직여 창날을 피한 후, 그대로 옆으로 주저앉으며 스태프를 내질렀다.

‘……!’

단장의 눈이 커지며, 간신히 그의 창날을 피해냈다.

‘……방금 건?!’

당연히 몰라볼 리가 없었다. 저건, 자신의 패턴이며 자신의 기술이었다.

분명 아까까진 ‘유사한’ 움직임이었다면, 지금 것은 완벽하게 ‘똑같은’ 움직임.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쒸이익-!

“허어?”

찌르기도, 휘두르기도, 빈틈을 노려 빙글 돌아 발로 차는 것도.

점차, 상대 마법사의 행동이 자신과 완벽하게 동일화되었다.

절대로 서로 다른 타인이 하는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이놈……. 대체 뭐지?’

창날이 갑옷과 로브를 스치며 이리저리 날아들고, 팔꿈치와 무릎이 상대방을 언제든 후려치려 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언뜻 보기엔 거의 대등한 상황이지만, 실제론 그렇지만은 않았다.

아무래도 순수한 신체 능력은 아직 단장이 훨씬 위였던 것이다.

불리하면 불리하지, 절대 유리하지만은 않은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유렌은 즐거웠다.

‘내 기술의 근본을 보니 문제점과 나아갈 길이 훨씬 잘 보이는 군.’

전생의 자신은, 분명 검으론 스승을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밖의 무기는 아직 아니었었나 보다. 

그저 자신의 몸에 더 잘 맞게 살짝 변형했을 뿐, 더 나아가진 않은 상태였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근본을 다시 보았고, 따라 했으며, 이젠 더 나아간다.

쒸이이익-!

창날이 흔들리고, 곧 네 개로 갈라져 단장의 몸 곳곳으로 향했다.

왼쪽 어깨와 오른쪽 가슴. 그리고 오른 발목과 왼 허벅지.

네 개의 창날이, 네 곳을 동시에 베어 들어갔다.

창이라고, 무조건 찌르라는 법은 없으니.

“제법이군!”

쩌억-

단장은 세 곳은 어떻게 막아냈지만, 남은 한곳에 갑옷이 살짝 찢겨 나갔다.

‘좋아. 이렇게 조금씩……!’

이 육체로 눈을 뜬 후, 제대로 발휘하기도 힘들던 무기술이 이렇게 발전하고 있었다.

스태프를 한 번, 발을 한 번 내지를 때마다 무언가가 조금씩 더 나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20분, 30분.

둘을 땀을 비 오듯 흘려가면서도, 홀린 듯이 끝까지 창과 스태프를 내밀었다.

2시간 후. 고도의 집중과 마력의 소모에 단장이 주저앉기 전까지. 

둘의 춤과도 같은 대련은 그렇게 계속 이어졌다.

 

* *

 

‘천재라는 말로 부족해. 그냥, 괴물이야 괴물…….’

클레이스는 멍한 눈으로, 유렌과 사신단 단장의 대련을 쭉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엔 유렌이 걱정되면서도, 솔직한 마음으론 그가 당하는 모습을 한번 보고 싶긴 했다.

결코 그를 미워하거나 악감정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추한 열등감과 질투라는 감정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런 추하고 작은 감정은, 대련이 시작하고 몇 분 가지도 않아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쒸이익-

퍼억-!

찌르고, 차고, 피하고, 구르고, 휘두른다.

그들이 하는 행동을 단순화하면, 그렇게 간단히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 실려 있는 힘과 빠르기. 

그리고 그 동작 사이사이의 연계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기술은, 자신이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반칙이잖아.”

게다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상황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저 마법사 유렌이, 실시간으로 더 발전하고 있다는 것쯤은 말이다.

‘역시 압도적인 재능 앞에선, 그 무엇도…….’

클레이스는 고개를 숙이며, 재빠르게 이 자리를 벗어나려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도저히 여기선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헤헤! 역시 마스터! 응? ……꺄악!”

그러다, 신나서 유렌을 응원하는 자주빛 머리의 견습 마법사와 부딪혔다.

쿠웅-

마침 신나서 폴짝폴짝 뛰고 있던 그녀는, 균형을 잃었는지 땅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

“아야야-!”

“아, 이런. 미안하다.”

클레이스는 재빠르게 사과하며, 넘어진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분명, 유렌의 제자인 아이였지? 그래도 이 애는 평범해 보이는데…….’

하지만 그런 클레이스의 생각은, 그녀의 손을 잡고 일으키려 한 순간 완벽하게 어긋났다.

휘청-

“……?!”

그래도 기사인 그녀가, 넘어진 견습 마법사 소녀 하나를 일으키지 못하고 그저 휘청거린 것이다.

“뭐, 뭐지?”

“아. 맞다! 죄송해요! 스스로 일어날게요! 으차-! 끄-응!”

에리나는 얼굴에 빨개지도록 힘을 줘가며, 느린 동작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것만으로도 땀을 뻘뻘 흘리는 게, 상당히 힘들어 보였다.

클레이스는 이상하게 무거웠던 그녀를 생각하며 물었다.

“혹시 몸에 뭘 차고 있는 거니?”

“아, 네! 헤헤. 이 토시랑, 발찌랑, 조끼랑, 그리고…….”

“……!”

클레이스는 에리나의 설명에 그저 입을 쩍- 하고 벌렸다.

아니. 이 작은 견습 마법사 소녀가, 다 합치면 자신의 무게만큼을 끼며 생활하고 있다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클레이스는, 대놓고 에리나에게 물었다.

“아니, 왜 그런 고생을 하는 거지? 너도 마법사인 이상, 그렇게까지 육체적으로 고생은 하지 않아도…….”

“으음? 그야, 전 마스터처럼 강해지고 싶으니까요! 마스터께서 항상 훈련하시는 건, 저완 비교도 안 되는 강도인데요, 뭐.

그래도 보세요! 그 덕에, 마스터도 저렇게 강하시고, 더 강해지시고 있는 거니까!”

“……!!”

그 순간. 

클레이스는 마치 해머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같이 멍해졌다.

그래, 그랬다.

검술이든 창술이든 그건 둘째로 치더라도, 마법사가 마법 없이 저렇게 몸을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

적어도 경량화 갑옷만 입고, 적당히 훈련하는 자신보단, 훨씬 힘들고 고통스럽게 몸을 만들었겠지.

“……애초에, 시작부터 글렀었나.”

근위 기사가 입는 경량화 갑옷.

마법사들이 찬 무거워지는 악세서리.

같은 중력계열 마법인데도, 정 반대로 쓰이고 있었다.

이 너무나도 큰 갭에, 클레이스는 뱀 구멍에 들어가 숨기라도 하고 싶었다.

재능이고 아니고 그 전에, 최소한의 할 것조차 하지 않았다는 거니까.

그래놓고 동등한 대접을 바랐다니.

그저 어린아이가 떼쓰는 수준의 바람 아닌가.

클레이스는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는 둘의 대련을 똑바로 지켜보았다.

으득-

그리곤, 이를 악물며 다짐했다.

주군을 위해서라도, 아니, 자신을 위해서라도, 꼭 이 마도 왕국의 ‘진짜 기사’가 되겠다고.

 

* *

 

“허억- 허억! 나도 늙었나 보군. 허헛. 이쪽의 패배네.”

어느새 한밤중이 되어버린 시각.

단장은 후련한 얼굴로, 창을 내려놓으며 양손을 들었다.

“아뇨. 전력을 다하지 않으셨다는 걸 압니다.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흠, 티가 많이 났나? 하지만 자네도 마법을 거의 안 썼지 않나. 그래야 공정하지. 특히 그 신체 강화마법만 썼어도 날 훨씬 밀어붙였을 텐데.”

유렌은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분명 전력으로 싸운다면 지금의 옛 스승에게도 승리할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미 보여드릴 건 다 보여드렸는데.

“……솔직히, 자네에게 묻고 싶은 건 아주 많네만…… 딱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나?”

“예. 무엇입니까?”

“처음엔 모르겠지만, 적어도 초중반부터 자네가 사용한 그 창술과 봉술, 그리고 체술들. 그것은 나를 따라 한 건가?”

굳이 묻지 않아도, 둘의 대련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상황.

하지만, 단장은 진지한 눈으로 유렌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입에서 직접 듣고 싶었던 것이다.

“예. 맞습니다. 아주 훌륭하시기에, 저도 모르게 그랬습니다.”

“……허허헛. 그래, 그렇단 말이지. 후우- 고맙네.”

단장은 작게 웃더니, 곧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이 흑마법사에게 죽은 이후, 그는 여태까지 후계자도 제자도 없었다.

손자가 하나 있었지만, 녀석은 검술이든 뭐든 이쪽엔 전혀 재능과 관심이 없었으니 논외고.

누군가에게 가르치려 해도 그렇게 재능이 있는 제자는 구하기도 힘들었고, 또 그렇게 억지로 가르쳐 주기도 싫었다.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이, 10~20여 년이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할 때.

이 듣기만 해도 싫었던 마도 왕국에서, 자신의 것을 몽땅 가져가 흡수해버린 마법사를 볼 줄이야.

“허허허…….”

게다가, 단순히 흡수만은 아니었다. 

중간에 그가 더 나아간 그 과정은, 분명 자신의 기술을 토대로 그것을 더 발전시킨 것.

‘참 묘한 기분이군.’

자신이 한 일은, 겨우 2시간 가량을 마법사와 대련한 것뿐이다.

하지만 어느새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하고, 끝내 자신을 뛰어 넘어버린 제자가 하나 생긴 것만 같았다.

말도 안 되는 비약이자 상상.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 걸 어쩌겠는가.

단장은 유렌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물론이고, 밑에 애들한테도 멍청한 짓은 안 하도록 단단히 일러두겠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지만 위에서의 지시가 있는 이상, 이대로 끝낼 수만은 없었다.

‘어차피 할 거라면, 마음에 드는 쪽을 밀어주는 게 낫겠지.’

단장은 그렇게 결론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우리 애들도 불만이 쌓일 테니 가끔 폭발은 해줘야 하네. 그게 언제면 자네들에게 좋은지, 나에게 미리 알려주게나.”

“……! 알겠습니다. 감사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렌은 웃으며 말하는 단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지금의 말은 ‘적당히 깽판을 칠 장소’를 고르라는 말이었다.

만약 모든 곳에서 난리를 피운다면, 당연히 왕녀가 곤란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곳에선 조용하다가, 특정 계파가 주가 되는 장소에서만 깽판을 친다면?

총책임자인 이쪽과는 별개로, 그쪽 주최의 체면이 땅으로 떨어질 것이다.

다른 곳에선 안 그랬는데, 그쪽에서만 뭔가 불만을 느꼈다는 말일 테니까.

“그 대신, 바라는 게 있으시다면 이야기해 주십시오. 저희도 마련해보도록 하죠.”

“허허. 아직은 잘 모르겠네만, 그렇게 하도록 하지.”

꽈악-

자신도 모르게 유렌에게 친밀감이 잔뜩 든 단장과, 옛 스승을 바라보는 유렌은 그렇게 깊은 악수를 나누었다.

왕자파는 물론이고, 공주파마저도 절대 생각하지 못한.

기묘한 친분 관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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