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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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75화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75화 얼음 속에서 피는 꽃 (7)
금색 예티는 정신이 몽롱했다.
지금 자신이 현실에 있는 것인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살아는 있는 것인지.
무엇하나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예전에 직접 느꼈던 ‘어머니’의 감정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허. 너 따위 열등한 색의 종이 이 위대한 회의에?
고귀한 종족으로 태어났다지만, 그중에선 가장 약하고 열등하다는 색. 화이트라 같은 ‘동족’들에게 멸시당했다.
-흥! 우리 역시 고귀한 장생종이다! 단지 다른 색보다 조금 작고 약하다고 자존심도 없이 뭐 하는 짓이냐!
동족들에게 꾸벅거리는 같은 색을 가진 종들이 보기 싫어서, 대륙 전체를 떠돌았다.
거의 설산에만 존재하던 그들과는 다르겠다고 다짐하며.
그렇게 대륙을 떠돈 지 수백 년.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연이 생겨났다.
좋은 인연과 악연. 그 모든 게 처음에는 신선했고, 흥미로웠다.
-……단명종들과 엮이는 건 정말 부질없구나.
하지만 그 결과는 항상 허무함만이 함께했다.
기껏 인간은 70~80년. 강자라고 해도 길어봐야 130년을 채 넘기지 못한다.
다른 아인종들도 별 다를 바는 없었다. 인간보다 더 수명이 짧거나, 길어봐야 300년이 좀 넘는 정도였으니까.
엘프? 그것들은 천년 단위로 살지만, 그 재수 없는 귀쟁이들을 가까이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제정신이라면 말이다.
어쨌건, 질릴 대로 질린 그녀는 그대로 설산으로 돌아와 처박혔다.
‘그럴 줄 알았다.’ ‘우리도 과거에 너랑 똑같았다.’라는 말을 같은 하얀 종들에게 들은 채로.
그렇게 천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끝내 설산 가장 깊은 곳에서 잠들었던 그녀를 깨운 것은. 한 외부에서 온 한 인간이었다.
-오오! 진짜로 여기에 드래곤이 잠들어있었어! 저기 괜찮죠? 얼음 속에 있는데 얼어 죽진 않은 거죠? 하긴 빙룡인데 당연히 괜찮겠지?
……아니, 웬 미친놈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도 그 만남을 가장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겨우 30여 년밖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수천 년 동안 살아왔던 그녀의 생 중 가장 소중하고 빛났던 시간이었으니까.
“크르릉!”
금색 예티는 사념을 받긴 했지만, 그녀의 기억까지 읽진 못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라고 숭배하는 그녀의 정체조차 몰랐다.
하지만 그 기억에서 느끼는 감정은, 금색 예티에게 확실히 전해지고 있었다.
동족에게서 느끼는 열등감과 뛰쳐나간 해방감. 그리고 장생종 특유의 허탈함과 생을 바꿔줄 누군가의 만남에서 나오는 기쁨.
“키힉! 크르릉!”
지금 그것이, 기절해있는 금색 예티의 입술을 활짝 벌리게 했다.
“아하하~? 저기 유렌. 이 원숭이 새끼, 지금 웃는데요~?”
“무슨 좋은 꿈이라도 꾸나 보네.”
뻐어억-!
기쁨과 동시에 소중하면서도 애달픈.
그런 간질간질한 감정을 느끼고 있던 금색 예티는, 뒤통수에 강렬한 충격을 느꼈다.
“커르릉?! 뭐, 뭐냐……!”
‘어머니’의 감정에 푹 빠져있던 금색 예티는 강제로 현실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커릉?!”
서서히 돌아오는 의식과 함께, 온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격통이 금색 예티의 정신을 빠르게 되돌렸다.
‘크릉! 그래, 난 분명 그 괴상한 인간에게 붙잡혀서……!’
박자를 맞춰 몽둥이찜질을 당한 기억이 떠오르자, 금색 예티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절대, 절대로 두 번 다신 당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눈을 떴군.”
“……!”
금색 예티의 눈앞에서, 적갈색 머리의 마법사가 씨익 웃고 있었다.
“일단, 우리가 너에게 들을 것이 아주 많거든.”
“크릉!”
분노와 공포.
금색 예티의 자연스러운 그 감정에 그 남자는 더욱더 미소를 짓더니, 옆에서 살기를 풀풀 풍기는 ‘전문가’를 불렀다.
진실의 여부를 판단 가능한 눈을 가진, 드래고니안 - 사이케스와 함께 말이다.
심문에 익숙한 것은 기본이고, 즐기면서 일하는 경지에 다다른 셀레나는 마력을 서서히 올리며 금색 예티에게 다가왔다.
“아하하하~! 늦게 얘기해도 상관없어~! 아니, 오히려 그게 더 좋겠네~!”
셀레나의 깔깔 웃는 그 모습에, 금색 예티는 마음을 굳건히 다졌다.
‘크릉! 어머니…….’
지금까지 수많은 힘과 경험. 그리고 지식을 배워왔던 어머니다.
겨우 이런 협박을 받는다고……!
“크르릉! 전부 다 말하겠습니다! 일단 절 고용한 놈들부터……!”
“……하~?”
……일단은 살고 봐야지 않겠는가. 죽으면 다 끝이니까. 단순 계약 관계인 인간 놈들에게 등을 돌리는 것 따윈 아무런 주저가 없었다.
또, 잘 생각해보면 어머니도 관련 정보를 살짝 더 말하는 것 정도야 충분히 용서해주시겠지.
“크릉! 그래서 제가 어머니와 만난 것은……!”
유렌과 그 일행. 모두가 어처구니없어하는 가운데에도, 금색 예티의 빠른 말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가 아는 모든 정보를 풀어낼 때까지 계속.
* *
약 2시간 후.
금색 예티의 끊임 없는 이야기에,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한 유렌과 셀레나는 과감히 그것을 끊어내었다.
뻐억-!
“커릉! 때, 때리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간단히 요약하면 수호대 습격은 웬 강력한 마법사와 그 부하들이 시킨 것이고. 네가 이렇게 성장한 것은 그 ‘어머니’라는 존재가 흘린 힘과 지식, 그리고 사념 등을 흡수했다는 거군.”
“크릉! 저를 직접 가르쳐주신 겁니다! 흡수가 아닙니다!”
매는 몬스터도 예의를 차리게 한다고, 어느새 말을 높이며 정보를 술술 불어버린 금색 예티였지만, 그에게도 마지막 지킬 것은 남아 있었다.
그에게 가르침을 내리신 ‘어머니’의 존재는 가장 마음속에서 가장 소중한 것.
그것을 부정하는 건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아~. 이게 진짜~.”
“크릉! 다시 생각해보니, 사념을 제가 흡수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살아 있어야 마음속에서 소중히 대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럼, 지금부턴 그……. 강력하다는 마법사를 잡아야 하는 겁니까?”
“장소를 주기적으로 옮긴다니, 지금 가봐야 잡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저런 놈을 만들어낸 그 사념이라는 걸 확인하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유렌의 말에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저런 금색 예티 같은 놈이 계속 나온다면, 아무리 그 마법사를 쫓아내더라도 붉은 꽃- 예르비아의 채취에 막대한 문제가 생길 것은 분명했다.
이 금색 예티를 잡은 김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확인하는 게 맞았다.
모두의 눈초리를 받은 금색 예티는,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념’들이 있는 장소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저 예티가 말하는 ‘어머니’라는 존재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강력한 존재겠죠?”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겠죠. 일단 여성형이라는 것과, 대륙의 수많은 기술과 지식을 익히고 있다는 점 정도네요.”
툰드라와 유렌이 그런 말들을 주고받으며 가는 사이, 북방이 고향인 에드워드는 금색 예티의 말을 들으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설산, 강력한 존재……. 설마?’
너무나 불확실하고, 말 그대로 전설에서나 나오는 존재. 설마, 그럴 리가 없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으며 일행을 따라갔다.
* *
“크르릉! 이, 이게 뭐냐?!”
“……저것들이 사념?”
그리고 수십 분 후.
그 ‘사념’이 일부 남았다는 다른 설산에 당도한 금색 예티와 일행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금색 예티의 말대로라면 눈에 거의 띄지 않을 만큼 희미하게 빛나는 흰색의 사념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눈앞의 설산에는, 휘몰아치는 눈보라에도 불구.
산 이곳저곳에서 흰색의 커다란 빛들이 마구 번쩍이고 있었다.
“……저 빛들~ 왠지 이어지고 있지 않나요~?”
게다가 셀레나의 말대로, 그 사념이라는 빛들은 한 줄로 설산의 깊은 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길을 안내 하는 것처럼.
“……금색 원숭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묻는다.”
그 모습을 본 유렌은 곧 표정 없이 금색 예티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게 네가 말했던 ‘약한’ 사념들이냐? 아니면 무슨 함정을 쳐 놓은 거냐.”
“크르릉! 저, 정말 모릅니다! 저도 처음 보는 겁니다! 원래 저기에 사념이 조금씩 있는 건 맞았지만, 저기에 있는 건 워낙 약해서 알아보기도 힘들었습니다!”
유렌은 곧 진실을 판단 할 수 있는 사이케스를 바라보자 그녀는 조용히 비늘을 움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저 예티놈은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뜻이었다.
“……좋아. 일단 저 이어진 곳으로 가보도록 하지.”
일행은 하얗게 빛나는 사념들을 하나씩 하나씩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것 하나하나를 지나갈 때마다, 누군가의 기억과 감정이 스르륵 흘러들 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엉뚱한……. 하등생물. 인간치곤 강하긴 하지만, 우리 같은 고귀한 장생종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존재.
한 거대한 존재의 독백.
그리고 지독한 권태감과 나른함. 그리고 약간의 호기심이 느껴져 왔다.
“……!”
“이건……!”
“크릉! 어, 어머니의 기억이?!”
금색 예티는 자신이 어머니라고 불렀던 존재의 기억이 직접 들어온 것에 놀랐지만, 유렌과 그 일행은 그게 아니었다.
방금의 독백과 기억으로, 그 ‘어머니’의 존재를 눈치를 챈 것이었다.
“드, 드래곤!”
“호, 혹시나 했는데……!”
“이럴, 수가!”
고귀한 장생종.
그것은 드래곤이 스스로를 부르는 호칭으로 널리 알려진 말이었으니까.
파앗-
그리고 다음 사념에 접촉하자, 곧바로 다른 독백과 감정들이 밀려 들어왔다.
-재미있는, 참 재미있는 단명종이다. 겨우 하등생물 주제에, 우리 고귀한 장생종을 타고 날아보겠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건가? 그래도 최대한의 자비를 베풀어 죽이지는 않았다.
어처구니없어함과 동시에, 아주 약간의 분기. 그리고 호기심의 감정이 가득 느껴졌다.
“타, 타다니. 이건……!”
“……아마 틀림없겠죠.”
유렌 일행들은 드래곤과 그 상대의 정체를 짐작했다.
이 북쪽 땅에 유명하게 전해지는 그 전설의 이야기를.
-보답을 달라고 하도 간절하게 빌어대길래 내 발톱 끝에 타는 걸 허락해주었다. 흥! 자기보다 큰 빙정석을 구해오라는 내 농을 진짜로 실행하다니.
정말 이상한 단명종이다.
황당함과 조금의 기쁨. 그리고 충족감.
-이 하등생물은 뭐지? 고귀한 장생종인 우리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을 저리 손쉽게 구해오다니. 어쨌든 이번엔 꼬리에 태웠다. 기뻐해 마구 날뛰는 것을 보다,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같이 있으면 참 재미있는 단명종이다.
강해진 호기심과 충족감. 그리고 기쁨.
그리고 사념은 계속되어갔다.
끝끝내 그가 자신의 등에 처음 탔던 날에 느낀 약간의 부끄러움과, 한없이 기뻐하던 그를 보며 느낀 만족감.
갑자기 공격해온 녹색의 동족을, 하얀색인 자신이 하등생물을 등에 태우고 무찔렀던 그 환희.
결국 그 단명종과 서로 이름을 교환하여, 본명을 부르게 된 날의 기쁨과 부끄러움. 그리고 떨림.
그렇게 그들은 30여 년 동안, 인간과 색의 한계를 넘어서 수많은 전설을 세웠다.
그들이 함께한 마지막 날, 그녀의 사소한 실수로 그가 절명하기 전까진.
-아아아아아-! 내, 내 탓이야! 나의 반쪽이자 영혼의 동반자여! 제발, 제발 아직 죽지 마라! 아아아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은 후회와 슬픔. 그리고 절망.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엇보다도 단단한 결의가 함께했다.
-살릴 것이다, 그 무슨 일을 해서도! 언데드가 아니라, 반드시 그대의 종족! 인간으로 다시……!
용언으로 빌어버린 그 맹세는, 그대로 한 화이트 드래곤의 거체를 거대한 얼음으로 뒤덮이게 했다.
그녀는 자신을 봉인시켜, 그곳에서 조금씩 생명력을 짜내 수백 년에 걸친 용의 생명력으로 그를 되살리려 한 것이다.
이윽고 사념의 이어짐은 끝났다.
“……그게 저것이군.”
“……큭!”
유렌 일행은 아무 말 없이 사념의 끝에 있는 - 그녀의 이루고자 한 결과물을 바라보았다.
설산의 한 막다른 골짜기 끝에 위치한, 하나의 깔끔히 놓여있는 백골.
유렌과 그 일행들은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저것이, 이 북녘의 땅을 수없이 구한, 전설 속의 드래곤 나이트의 유해라고.
“…….”
에드워드는 저벅저벅 걸어가, 그 백골 앞에 무릎을 꿇어 옛 대영웅에게 경의를 표했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어온 북방의 드래곤 나이트의 전설.
모두의 이야기가 제멋대로 달라서, 머리가 조금 커졌을 때부턴 당연히 꾸며낸 이야기인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남은 업적이 너무나 큰 바람에, 그 업적이 조각조각 났어도 ‘드래곤 나이트’라는 존재가 북방의 기억 속에서 계속 존재해온 것이었다.
“……유골의 이 상태를 봐선, 다시 살리는 덴 실패했겠군. 그나저나 이상한데? 드래곤의 목숨을 건 계획이 이렇게 허술하진 않을 터.”
유렌의 중얼거림에, 툰드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의 기억에서 그 강렬한 얼음을 봤어요. 저와는 상대도 안 되는, 그 차디찬 얼음을요. 그것을 깰 정도가 되려면, 아마 같은 드래곤급이 아니고서야…….”
“흠. 드래곤이 와서 망쳐 놓은 것일 수도 있겠군요.”
유렌과 일행들이, 그렇게 드래곤 나이트의 유해 주변을 살펴보고 있을 그때.
콰아아앙-!!
무언가의 막대한 힘에, 설산이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 *
유렌의 머릿속에 처음으로 스쳐 간 생각은 자연적인 산사태.
하지만, 아주 짧은 시간 후. 유렌은 그 가정을 부정했다.
드래곤의 사념과 전설이라는 드래곤 나이트의 유해.
그것이 괴상하게 번쩍거리거나 발견된 지금. 이것은 단순한 자연 사태일 리 없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확신시켜주듯, 거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툰드라와 같이 차가우면서도 그녀보다 훨씬 거대한 그 마력은, 곧바로 유렌 일행의 머리 위에 등장했다.
“……! 마, 마스터 케니한!”
“크흐흐. 어디선가 많이 느껴지던 마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너였군. 툰드라.”
회색의 로브를 입고 있는 한 장년인이, 특이한 웃음소리를 내뱉으며 등장한 것이다.
‘6위계 마스터!’
상대방의 정체를 안 순간, 유렌과 일행들은 단숨에 전투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케니한이라 불린 마스터는, 그러건 말건 너무나 여유로워 보였다.
“그래. 네놈이 유렌이란 세이지군. 호오. 도저히 일반적인 세이지라곤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군. 음? 이런! 드래고니안도 있다니. 크흐흐! 이게 무슨 우연인가! 하필 이 자리에 말이야!”
“크르릉! 저, 저 사람이 우리에게 습격을 부탁한 인간들의 우두머리입니다!”
“음? 뭐야. 금빛 원숭인가? 크흐흐. 네놈, 배신한 거냐? 하핫! 이거 짐승에게 별 걸 다 당해보는 군!”
콰르르릉-
유렌은 뒤쪽에서 몰려오는 거대한 굉음에, 이를 악물었다.
보지 않아도, 압도적인 물량의 눈이 덮쳐오는 눈사태일 게 뻔했다.
‘……저 케니한이라고 하는 놈. 마력이 이상할 정도로 높아!’
사실 눈사태만이라면 큰 문제는 없었다. 툰드라와 자신이 있다면, 이 일행이 무사하는 정도야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문제는 눈앞의 저 마스터였다.
그는 유렌이 지금까지 봐왔던 마스터 중에서도 굉장히 높은 마력의 소유자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마력뿐만이 아니라 이질적인 강력한 무언가가 함께 느껴졌다.
“크흐흐. 뭐, 상관없다. 귀여운 얼음계열의 후배를 죽이려니 조금 마음은 아프다마는, 줄을 잘못 잡은 것에. 그리고 하필 이 타이밍에 온 것을 원망해라!”
그렇게 외친 케니한의 뒤에서, 엄청난 마력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인간의 것과는 본질적으로 규모가 다른, 말도 안 되는 밀도의 마력.
“저건, 드래, 곤의!”
사이케스의 경악한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그 거대한 마력은 그대로 넓게 퍼져 유렌과 일행들을 짓누르러 다가왔다.
‘……! 이건 컨트롤로 어떻게 할 게 아니야.’
엄밀히 말하면 시간이 없었다.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푼다면, 유렌은 저 드래곤의 마력도 결국 풀어 낼 수 있을 거라 직감했다.
하지만 거기에 걸리는 시간을 저 빌어먹을 마스터가 그냥 내버려 둘리가 없다.
게다가 바로 뒤에선, 거대한 눈덩이들이 몰려오고 있었으니까.
이 몸으로 눈을 뜬 이후, 가장 위험한 상황.
하지만 당연히도 유렌은 포기하지 않았다. 확률이 크게 높아 보이진 않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나갈 길이 있는 것이다.
“흡!”
그리고 그것을 노리고 유렌이 스태프를 움직인 그 순간.
「좋아, 너! 아주 멋진데!」
조금 전. 드래곤 사념에서 들은 한 남자의 목소리가 유렌의 머릿속에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파아아앗-!
또 하나의 강대한 마력이 무너져가는 설산에서 꿈틀거리며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