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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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05화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05화 돋아나는 새싹들 (4)
“정말, 이군! 정말로, 드래곤이!”
드래고니안 사이케스는 아메리아에게 안겨 있는 해츨링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그녀의 검고 기다란 꼬리가, 주인의 기분에 맞춰 좌우로 마구 흔들렸다.
붕- 부웅-
날개까지 약간 펄럭이며 해츨링에게 다가간 그녀는,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자신의 날카로운 손톱을 최대한 닿지 않게 하려 애쓰면서.
“조심해요. 유렌과 아메리아 이외의 사람들에겐 굉장히 흉폭하…….”
조금 전 손을 물린 툰드라가 그렇게 경고했지만, 해츨링은 사이케스의 손을 피하지 않았다.
“꾸우우-!”
오히려 그 손길이 기분 좋은 듯, 그르렁거리며 울음소리를 내는 게 아닌가.
“아, 아앗!”
“…….”
사이케스가 기쁨의 순간을 맞이하는 동안, 툰드라는 지끈거리는 손을 홀로 매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저 해츨링. 사실 자신만 싫어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다행히도(?) 해츨링은 그녀의 예상은 빗나갔다.
퍽-!
“으앗!”
“꾸우우-!!”
셋 외의 모든 사람이 해츨링에게 아그작 깨물리거나, 꼬리로 얻어맞은 것이다.
비록 해츨링의 존재는 비밀이라 많은 사람이 다가온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연 셋 외엔 그 누구도 가까이 가기조차 힘들었다.
「아무래도 저나 유렌을 부모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이케스님은, 같은 드래곤의 기운이 있어서인 것 같고.」
“으으…….”
아메리아의 왠지 들뜬 듯한 그 메시지에, 툰드라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녀가 생각해도, 그 말이 맞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슬슬 가봐야겠군.”
유렌은 어느새 자신에게 재롱을 부리는 해츨링 - 레리스베인을 떼어놓고 툰드라에게 향했다.
슬슬, 공주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던 것이다.
“꾸우우…….”
해츨링은 유렌이 자신에게 떨어지자 잠시 침울해했지만, 곧 옆에 있던 아메리아에게 다가갔다.
“꾸우!”
그리고 그녀에게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마치 일 나가는 아빠를 보내고 엄마에게 매달리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그래, 그래. 착하네. 우리 레인.」
아메리아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어느새 해츨링에게 애칭까지 붙여가며 불렀다.
“꾸우우-!”
해츨링도 그런 애칭이 맘에 들었는지, 자그마한 날개를 파닥거리며 좋아했다.
언령을 쓰는 드래곤에게 있어 이름이란 아주 소중하고도 중요한 것.
그 이름을 변형시킨 애칭을 부르게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녀를 깊게 신뢰한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끄응….”
툰드라는 그런 그들을 복잡한 눈으로 보다가, 곧 다가온 유렌과 함께 발을 옮겼다.
웬지 답답한 마음을 날려버리기라도 하듯, 재빠른 발걸음으로 말이다.
* *
베르헨 근교에 있는 한 커다란 저택.
다른 곳에 있었다면 눈에 크게 띌 만한 화려한 저택이었지만, 이곳에선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이 주변이 이보다 화려하고 커다란 저택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이었으니까.
“역시, 귀족들의 별장이 모여있는 곳이군.”
“맞아. 이래서 귀족들이 비공식적으로 많이 모이는 곳이기도 해. 여기만큼 귀족들이 많이 들락날락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곳이니까.”
확실히 툰드라의 말대로였다.
그래서인지 주변이 꽤 낯이 익었다.
바위 언덕을 운석 같이 떨어트리거나, 감금된 아메리아를 구하러 쳐들어간 것도 모두 이 근방이었으니까.
‘설마 이번에도 그렇진 않겠지.’
다른 이도 아니고 공주와 만나는 약속이다.
유렌은 공주를 완벽하게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믿고는 있었다.
옆에 있는 툰드라 정도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 덕에 왕위에 오르면, 필요할 때 도움을 줄거라는 수준까지는 말이다.
“그럼 이쪽으로…… 공주님. 실례하겠습니다.”
툰드라는 안내하겠다는 사용인들을 무시하고,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렌을 안내하였다.
그리고, 공주가 있는 방의 문을 열려는 그 순간.
“……!”
유렌은 순간적으로, 방 안에 거대한 마력을 가진 무언가가 있음을 느꼈다.
마력을 최대한 숨기는 기술이 대단한지 아직도 희미했지만, 5레벨에 오르고 나서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 유렌이다.
‘적? 그럼 공주가 인질? 만약 그게 아니라면……!’
여러 가지 생각이 유렌의 머리에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잠깐……!”
“어?”
유렌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툰드라의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재빨리 오른팔로 그녀를 감싸 안음과 동시에, 왼쪽 어깨로 문을 들이박았다.
콰지직-!
제법 두꺼운 나무로 이루어진 문이었지만, 육체를 극한까지 단련 중인 유렌의 어깨엔 버티지 못했다.
“……!”
그렇게 박살 난 문 안에 보이는 것은, 이쪽을 보는 공주와 놀란 듯한 한 노인이었다.
‘6레벨 마스터!’
유렌은 그 노인에게서 굉장한 마력이 숨겨져 있는 걸 간파하고, 재빨리 스태프를 왼손에 들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즉시 공격하지 않는 것은, 공주가 침착하게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 노인의 얼굴. 어디서 본 듯한데…….
“예, 예니힌 공작?!”
유렌의 오른팔에 껴있던 툰드라가 놀란 목소리로 소리치자, 유렌은 머릿속에 보았던 공작의 초상화와 정보가 떠올랐다.
예니힌 공작.
사실상 왕자파를 ‘이끌었던’ 수장.
이 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귀족이자, 왕자와 공주의 외할아버지.
최근에 자신이 보고 받은 정보론…….
‘과연. 그런 거였나? 이쪽을 떠보려는 공작에게 우리를 만나게 해준 거였군.’
이것에는 유렌도 꽤나 놀랐다.
그는 스태프를 내리면서, 조용히 앉아있는 공주를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서 극도로 차분한 저 눈은, 절대로 이 일을 먼저 꾸미지 못하면 나오지 못하는 눈빛이다.
‘하지만 설마 툰드라에게도 미리 말을 안 해주다니.’
그가 공주의 외조부인 것은 알지만, 그래도 이것은 조금 심했다.
최측근에겐 알리지 않고, 아직은 적쪽에 있는 상대방에게만 알리는 만남이라니.
그에 대해서 유렌이 자그마한 불평을 입에 담으려는 순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공주님!”
흥분한 예니힌 공작이 벌떡 일어나 공주에게 항의했다.
평소 침착하다고 알려진 그의 성품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이었다.
‘……저 쪽에게도 안 알렸다고?’
왕자파를 이끌었던 예니힌 공작.
그리고 사실상 공주파를 이끄는 거나 마찬가지인 유렌 슈나이더.
그 둘의 직접적인 첫 만남은, 이렇게 서로를 보며 놀란 채로 시작되었다.
* *
“속여서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그리고 유렌, 툰드라. 미리 말씀을 안 드려 죄송해요.
분위기가 싸늘해진 방 안에서, 공주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공주는 양쪽에게 정중한 사과를 한 후, 자신의 할아버지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가 할아버지의 제안을 승낙하지 않았더라면, 움직이시지 않으셨겠죠?”
“……당연합니다.”
노공작은 낮은 목소리로, 손녀에게 대답했다.
그가 공주에게 요구한 것은 바로, 그녀와 유렌이 만나는 모습을 자신에게 몰래 보여달라 한 것이었다.
-이해가 좀 가지 않네요. 왜 몰래 보시겠다는 거죠?
-3자의 시점에서 봐야, 그가 어떠한 인물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공주님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소문대로의 사람인지 직접 봐야 제 결론이 나올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옆방에서 그를 데려와 이야기하면 되나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마력을 숨기고 수정구로 지켜볼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후우.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그녀는 그렇게 승낙하고, 날을 오늘로 잡았다.
만약을 대비해, 그녀의 최측근인 툰드라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했다.
그런데 설마 이런 식으로 그녀가 행동할 줄이야.
“그는 저의 수하이며 동시에 동료입니다. 아무리 할아버지도 중요하다곤 하지만, 그를 속이면서 일방적으로 정보를 유출하는 짓은 할 수가 없죠. 신뢰라는 건 그리 간단히 쌓아 올려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
그 이야기를 노공작은 숨이 턱 막혔다.
그래, 확실히 상대방이 알면 문제가 되는 일이다. 아무리 수하라곤 하지만, 당연히 감정이 있는 사람.
그런 짓을 나중에 알면, 감정이 좋게 남을 리가 없다.
일국의 군주라면, 거기에 신경을 쓰는 게 당연한 건데…….
‘내가 어느새 왕자. 그놈에게 맞춰지고 있었던 거군.’
자신이 왕자를 바꾸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왕자에 맞춰서 비정상적으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노공작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말았지만, 공주의 말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제 욕심에 할아버지에게 거짓을 말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라면 이렇게 직접 그와 맞닥뜨렸는데 그냥 돌아가실 린 없겠죠?”
“……그렇습니다.”
분명 공주의 말 그대로였다. 상황이 꼬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만나버렸는데 아무 말도 없이 돌아갈 수는 없었다.
결국 공주는 수하의 신뢰를 잃지 않으면서, 노공작을 설득할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재미있네.’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유렌은 희미하게 입꼬리를 띄웠다.
‘공주가 생각보다 훨씬 제법이야.’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유렌에게 있던 공주의 이미지는 크게 좋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 망나니 왕자보다야 100배는 낫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
군주로선 나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뛰어나지는 않았던 이미지였다.
성품은 착하고 머리가 어리석진 않지만, 큰 능력은 없는. 그런 느낌?
하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같았다.
‘심지가 생각보다도 훨씬 굳어.’
나라에서, 정치에서 군주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일까.
물론 필요한 여러 가지 능력은 많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을 이끄는 능력이다.
그리고 어긋나지 않은 굳은 심지는, 바로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원동력이 된다.
‘이미 얼굴이 반쯤 넘어왔군.’
유렌은 공주에게 깊게 감명 받은 듯한 노공작을 보며, 얼굴의 미소를 짙게 지었다.
인성이 막장인 망나니 왕자에게서 온 그다.
수하에게도 신뢰를 중요시하여, 자신의 영입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로 굳은 그녀의 도덕성과 심지에 강한 인상을 받았겠지.
저렇게 공주가 판을 깔아주니, 노공작을 설득하는 난이도가 대폭 내려간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사냥으로 치면,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사냥감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
“처음 뵙겠습니다. 예니힌 공작님. 조금 전엔 놀라 실례했습니다.”
유렌은 노공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정중히 인사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잠시 저도 공주님과의 이야기에 이야기에 끼어도 되겠습니까?”
유렌은 그렇게, 공주와 함께 손쉬운 사냥을 시작했다.
비록 조금 늙었지만, 아직 충분히 가치가 넘치는 훌륭한 사냥감을 말이다.
* *
제프린 공국.
왕국의 남서쪽에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나라로 진네만 대공이 대대로 다스리는 국가다.
왕국의 남서쪽, 그리고 제국의 북서쪽의 국경을 맞닿고 있는 작은 나라이기에, 아무래도 양쪽 모두의 영향이 강한 곳이었다.
철컹- 철컹-
다만 비율로 따지자면, 아무래도 제국의 영향이 조금 더 강하긴 했다.
마법사보단, 기사 쪽을 좀 더 등용하고 우대하는 기풍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라간의 사이도 아무래도 제국과 좀 더 가까웠다.
그런 제프린 공국의 중심부.
수도에 있는 대공의 성.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평화로웠던 이 성은, 지금 한없이 무겁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공작의 가족과 친지들 모두, 남김없이 잡아들여라!”
“옛!”
“히익!”
철컹-!
두꺼운 풀 플레이트를 입은 기사들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고위 귀족의 말에 성 안을 달려 나갔다.
콰앙-!
“여기! 공자들은 여기에 숨겼나?! 공녀는!”
“여, 여기엔 안 계십니다요.”
“비켜봐라!”
그들은 성 이곳저곳을 깨부수며 필사적으로 주군의 명을 이행하려 했다.
비명과 고함. 욕설과 파열음이 성 곳곳에서 들려왔다.
“백작님. 성 위, 가장 잘 보이는 발코니에 놈을 놓았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백작이라 불리는, 이 사태의 주도자는 험악하게 웃으며 위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백작은 성 밑 도시가 뻔히 보이는, 이 성에서 가장 커다란 발코니에 도착했다.
“뭐, 뭐지? 웬 기사들이 더 올라왔어!”
“대공께선 무사하신 건가?!”
성 밑 도시에선 공국민들이, 가장 잘 보이는 성의 커다란 발코니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본래 저 발코니는, 후계자가 태어나면 공국민들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며 축복을 받는 신성한 장소.
평상시엔 사람의 출입을 엄하게 금하고 있다. 하지만 성에서 난리가 난 지금, 웬일인지 몰라도 그곳에 사람들의 그림자들이 잔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들! 잘 들어라!”
그리고 어두웠던 발코니에 불이 켜지며, 그림자들의 모습이 밝혀졌다.
“꺄아악-!”
“대, 대공님!”
“저건 헬슨 백작?!”
공국민들의 경악 어린 시선을 받는 것은, 바로 검을 높게 든 백작과 그 발아래 무릎 꿇려 있는 대공의 모습이었다.
“이 제프린 공작은! 우리 공국을 통째로 마도 왕국에 팔아먹으려 했다!”
백작의 그 소리에, 밑에서 듣고 있던 공국민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대공님이? 그럴 리가 있나.
“너희들 평민들은 모두 노예로 바치고! 우리 고귀한 귀족들도 모두 영지를 몰수하겠다고 왕국의 그 악독한 국왕 앞에서 선언한 것이다! 이게, 용서가 될 일인가!”
헬슨 백작은 핏대가 서가며 버럭버럭 소리쳤지만, 공국민들의 호응은 낮았다.
아니, 오히려 분노하고 있었다.
“그, 그게 말이나 돼?!”
“대공님을 놓아주시오!”
“거짓말하지 마라!”
격양된 공국민들의 고함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현 7대 제프린 대공은, 온화하며 나라를 20여 년간 잘 다스려 국민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런 군주를, 갑자기 평판이 안 좋은 백작 하나가 꽁꽁 묶어서 보여준다?
당연히 그에 호응하는 이들은 극소수일 수밖에.
“……그래서! 나는 피눈물 나는 심정으로, 충성을 맹세했던 주군을 지금 이 손으로 베려 한다!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하지만 백작은 그런 공국민들의 목소리 따위 알 바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혼자 울부짖으며 소리치곤, 곧 검을 높게 들었다.
“안돼!”
“젠장! 어떻게든 막아……!”
“으악!”
어느새 밑 광장에 모인 백작의 병사들이 닥치는 대로 공국민들을 후려치는 가운데, 높이 치켜든 백작의 검이 번쩍였다.
서걱-
피가 치솟고, 몸뚱이는 나뒹굴었으며, 잘린 목은 백작이 높이 치켜들었다.
“사악한 배신자는 이렇게 최후를 맞이했다-!!”
“와아아아아-!!”
“이, 이런 반역자 놈들……!”
“으아아아! 대고옹-!”
고함과 환호. 비명 등이 어지럽게 섞이며, 공국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어 갔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혼돈을 지켜보는 몇 사람의 인영이 있었다.
그들의 하나같이, 엄청난 미모와 마력. 그리고 뾰쪽한 귀를 지니고 있었다.
“흥. 이렇게나 쉽게 무너지다니. 역시 하등생물은 어쩔 수 없나 보군. 왕국 쪽에서 계속 실패한 게 믿기지 않을 정도야.”
한 붉은 머리의 엘프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흑발의 엘프가 피식거리며 답했다.
“여긴 훨씬 작고 세력도 약한 곳이니까. 게다가 우리 동포가 이미 50년 전부터 공작해 온 결과야. 마침, 최근 저 멍청한 놈이 군권을 잡아서 더 쉬웠졌지.”
“흥. 직접 움직이면 3일이면 충분히 될 것을. 정말 쓸데없는 고생이야.”
“하. 이제 와서 그런 소리야? 우리는 이렇게 간접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걸 뻔히 알면서. 뭐, 이제 그것도 10년도 안 남았겠지만.”
흑발의 엘프는, 10년도 안 남았다는 그날을 입에 담으며 눈을 반짝였다.
그 동족의 모습을 본 적발의 엘프가, 투덜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그날을 바랬다. 아니, 그것을 바라지 않는 동족- 엘프들이 어디 있을까.
곳곳에 불이 나기 시작한 대공의 성과 도시를 바라보던 엘프들은, 미소를 지으며 모습을 감췄다.
자신들이 다시 대륙의 전면에 자유롭게 나타날 수 있는 날을 꿈꾸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