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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92화

무료소설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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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92화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92화 죽음을 거역하는 법 (4)

 

 

 

힘과 폭력의 신. 데르빗의 두 번째 사제인 루시아는 화가 단단히 난 상태였다.

‘망할 신님 같으니! 대체 무슨 일을 이렇게 하시는 겁니까!’

빠각-!

겨우 세상에 둘밖에 없는 자신의 사제를, 이렇게 황당하게 부려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자신도 겨우 두 번째 받는 그 희귀한 신탁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내릴 수 있냐는 말이다.

뻐걱-!

‘차라리, 언데드들과 죽도록 싸우라고 신탁을 내리시던가 하지! 내려온 신탁도 제대로 못 알아듣다 엉뚱한 짓만 하다 죽으면, 그것만큼 멍청한 사제도 없잖습니까!’

약 2주 전.

루시아는 자신에게 내려온 짧으면서도 알쏭달쏭한 신탁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가 지는 마법의 땅에서, 두 번 사는 자와 함께 날카로운 이들의 부름을 막아라.]

-이게 뭔 개소리입니까? 신 님? 데르빗 님?! 아니, 이딴 수수께끼를 내지 말고 제대로 된 신탁을 내리란 말입니다!

한참 고민한 끝에, 해가 지는 마법의 땅은 마도 왕국의 서쪽 영지를 뜻한다는 것을 간신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는 아무리 생각하고 조사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빠아각-!

루시아는 그렇게, 자신의 울분과 신성력이 듬뿍 담긴 철퇴로 리치의 해골 대가리를 계속 내려찍었다.

그동안 쌓인 마음속 울분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놈이 죄없는 사람들을 죽였던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커억-! 크어억-!]

이 해골바가지가 뭐라고 외치는 것 같지만 상관없었다. 

남은 생명력이 간당간당한 게, 이대로 한두 대만 더 때려도 곧 소멸할 것처럼 보였으니까.

멈칫.

하지만 루시아는 문득 머릿속에 스쳐 간 생각에, 치켜든 철퇴를 공중에서 잠시 멈췄다.

‘……설마, 신탁에서 내려온 두 번 사는 자가, 이 언데드는 아니겠죠?’

사실 그녀가 아는 자신의 신. 데르빗이라면, 결코 언데드 따위와 손을 잡으라고 권하진 않을 터.

하지만 이번엔 직접 내려온 신탁이 그녀에게 약간의 혼란을 주었다. 

‘두 번 사는 자’란 단어는 아무래도 언데드와 가깝다고 생각되는 것이 보통이었으니까.

쒸이이이익-!

그리고 그 멈칫거린 잠깐의 틈이, 리치의 머리가 완전히 박살 나는 것을 막았다.

저 멀리서 웬 화살이 무시무시한 소리로 공기를 찢어가며 루시아의 머리로 날아온 것이다.

‘이런!’

루시아는 순식간에 자신에게 다가온 화살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의 방어 마법으로 저 수준을 막는 것은 무리다. 가볍게 찢겨 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피하는 것도 힘들었다.

설마 저런 초장거리에서 공격이 날아오리라곤 생각을 못 했으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군요!’

분명 팔과 손을 다치긴 하겠지만, 그래도 머리가 날아가는 것보단 낫겠지.

그녀가 그렇게 다짐하고 받아치려 철퇴를 꽈악 쥐는 그 순간.

덥썩-

“어?”

무언가 크고 든든한 것이, 자신을 덥석 안은 채 순식간에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

콰아아아앙-!!

멀리서 날아온 화살이 자신이 있던 곳에 명중하자, 그 주변 수 미터가 통째로 폭발하는 것이 루시아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반쯤 부서진 리치가, 폭발의 연기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도 함께 말이다.

‘……놓쳤군요. 하지만 그대로 반격했다면 팔이 날아갈 뻔했습니다.’

루시아는 식은땀이 자신의 이마로 흐르는 것을 느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일단 팔을 재생하는 것 자체는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막대한 신성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 절단된 후 일정 시간 안에 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많이 붙었다.

중상을 입은 상태로, 저 화살의 추가 공격이 온다면 사실상 재생은 어려웠겠지.

‘……그것보다, 누가 날 도운 거죠?’

루시아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가볍게 안아 올리고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아직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적갈색 머리의 잘생긴 마법사.

그 청년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 순간, 그녀의 머리와 눈이 강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큭……! 뭐, 뭡니까?!’

당황한 그녀의 눈에, 상대의 몸 전체가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붉은 빛 속에서 새파랗게 빛나는 아름다운 결정체가 눈에 들어왔다.

‘이건…… 영혼?’

어째서 이런 것이 보이는지 그 이유는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본 순간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보는 것이, 이 남자의 육체와 영혼의 색이라는 것을. 그리고, 둘은 처음부터 다른 존재였다는 것을.

마치 푸른색의 영혼이, 붉은 영혼이 사라진 육체에 다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였다.

“괜찮습니까?”

“아, 네.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루시아는 유렌에게 인사하며, 그를 다시 한번 더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봐도 똑같았다.

마치 다른 영혼이 육체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 번 사는 자라……. 혹시?’

루시아는 유렌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신탁에 나온 그 사람일까를 생각하면서.

 

* *

 

루시아의 강력한 철퇴질로 다 죽어가던 리치는, 장거리 화살 공격으로 혼란스러워진 틈에 어딘가로 사라졌다. 

좀비와 구울들은, 현장에 내버려 둔 채로 말이다.

아마도, 처음부터 이럴 목적으로 화살을 쏘았겠지.

‘……조금 전의 저 화살. 엘프 놈들이 틀림없어.’

유렌은 지금은 자신의 주머니 속에 있는 엘프의 활을 생각하며 확신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이 언데드 대량 발생의 뒤쪽에는 그 망할 귀 긴 종자들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왕자에게 새로 생긴 측근이라는 것도, 결국은 엘프 쪽이랑 연결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겠군.’

뻐어억-!

유렌은 그렇게 속으로는 핑핑 생각을 돌려가면서도, 차분하게 스태프를 휘둘러 좀비의 대가리를 박살 냈다.

“끄어어어-!”

유렌과 일행들. 그리고 루시아는 남은 언데드들을 빠르게 처리해나갔다.

이끄는 자를 잃은 하급 언데드는, 그저 단순히 근처에 있는 산 자만을 공격할 뿐, 연계 자체가 훨씬 저하되어있었다.

그런 좀비와 구울은 수백 구가 있어도, 전혀 일행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겨우 20여 분 후.

“이걸로 끝이군요! 수만 많은 멍청이들!”

뻐어억-!

루시아의 신성력 섞인 철퇴에 마지막 좀비의 몸이 녹아내리며, 이 자리에 있는 마지막 언데드가 쓰러졌다.

“저, 전부 무찔렀어!”

“마, 만세! 용사님 만세!”

“우리를 도와주신 성녀님과 영웅분들 만세!”

부실한 나무 성벽 안쪽에서 조마조마한 눈으로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이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이 사태가 난 후. 

그들이 처음으로 맞이하는 산 자의 승리였다.

 

* *

 

“마을 안의 시체는 모두 뒤쪽에 파놓은 웅덩이로 옮기십시오! 근처에만 있어도 질병에 걸릴 수도 있으니, 깨끗한 천으로 코와 입을 가리시고!”

유렌이 큰 목소리로 마을 사람들에게 지시하기 시작했다.

언데드는 무찔러도 커다란 문제를 남기는데, 그것은 바로 질병과 감염이었다.

단순한 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죽어있는 다른 시체들을 언데드로 만들고, 심하면 살아있는 사람들마저 언데드로 바꾸어버리는, ‘언데드 감염’이 퍼질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언데드와 싸우고 난 후에는, 반드시 철저하게 뒤처리해야만 했다.

“자, 이젠 보내줘야지.”

“큭! ……잭, 잘 가라.”

마을 사람들은 슬픔을 견디며, 이웃과 가족의 시체들을 하나둘 옮기기 시작했다.

“……헉?”

“아, 아니 벌써?!”

그리고 유렌이 지정한 장소로 시체를 들고 간 그들은, 슬픔조차 잠시 잊은 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반경만 20m. 깊이 역시 그 이상으로 파진 커다란 구덩이 속에, 좀비와 구울들의 시체가 이미 잔뜩 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얼빠진 마을 사람들의 눈에, 언데드의 시체를 옮기고 있는 일행들이 보였다.

“흐랴압!”

번쩍- 

레이칸이 흙 마법으로 수 십구의 좀비 시체들을 뭉친 다음, 그것을 번쩍 들어 올렸다.

원래의 시체 무게에 흙까지 더해져 엄청난 무게였지만, 레이칸은 가볍게 들어 웅덩이 속으로 시체를 던졌다.

콰지직-!

【언데드의 사체들은 모두 공중에 떠오른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선, 아메리아가 언령 마법으로 주변의 시체들을 공중으로 솟구치게 했다.

“흐읍!”

그리고 그것을 공중에서 날던 드래고니안 – 사이케스가 잡아, 커다란 웅덩이를 향해 강하게 집어 던졌다.

우지직- 우직-!

공중에서 날아온 시체들은 뭉개지긴 했지만, 빠른 속도로 쌓여만 갔다.

마법사와 드래고니안의 훌륭한 연계였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루시아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이 모든 지시를 내린 유렌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참으로 훌륭한 대응이십니다. 실례지만 이런 처리의 경험이 있으십니까?”

 설령 성직자라고 해도, 이런 대규모의 언데드 시체를 처리해본 자는 상당히 적었다.

하지만, 마법사라던 그는 아주 능숙하게 지시를 내리고 그대로 실행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약간 경험이 있긴 합니다.”

“……수백에 이르는 이런 언데드 시체를 처리해본 경험이 말입니까?”

“하하. 뭐 그 정도는 아니지만요.”

사실은, 지금보다 미래에서 수백이 아니라 수천 단위의 언데드들도 처리한 경험도 있었지만 말이다.

“두 번 사는 자.”

“……!”

“혹시 이 말과 본인이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루시아가 조용히 그렇게 묻자, 유렌은 놀라며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전생에선 부상으로 혼탁했었던 그녀의 녹색 눈이, 지금은 양쪽 모두 맑게 반짝이고 있었다.

“저를 도와주신 분께 이런 식으로 추궁하듯 묻는 것이, 실례임은 알고 있습니다.”

루시아는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조금 숙이면서도, 말은 멈추지 않았다.

“제가 모시는 신님이, 신탁을 아주 개 같이 내려버렸습니다. 아니면, 똑바로 말을 할 신력도 없던가요.”

“…….”

그녀의 포장되지 않는 신성모독에, 순간 유렌도 말을 잃었다.

과거에도 이래서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사제가 자신의 신을 이렇게 말하는 건 언제 들어도 적응이 참 안 되긴 했다.

“더 많은 것은 묻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저, 하나만 답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녀는 녹색의 맑은 눈으로 유렌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두 번 사는 자’. 신탁에 나온 이 말이, 본인을 지칭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유렌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물은 이가 루시아가 아니였다면 부정하며 차분히 한 걸음 떨어져서 봤을 터이지만, 유렌은 이미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결코 함부로 더 물어보지도, 이 말을 떠벌리지도 않는다.’

비록 20여 년의 달라진 시간 축으로 인해 겉모습은 완전히 달랐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녀였다.

자신의 군단에 있던 부하 중, 가장 뛰어난 군종 사제였던 그녀. 

루시아 말이다.

“해가 지는 마법의 땅에서, 두 번 사는 자와 함께 날카로운 이들의 부름을 막아라,”

루시아의 입에서, 그녀의 신. 데르빗이 말한 신탁이 흘러나왔다.

과연, 왜 개 같다고 했는지 조금 이해가 가긴 했다. 

그냥 다른 신의 신탁처럼 지명이나 이름을 직관적으로 말하지, 저게 대체 뭔가.

하지만 그래도, 이제 저 말의 뜻은 무엇인지 다 알 수 있었다.

“조금 전에 저에게 날아온 화살. 이것은…….”

“귀가 뾰족한 놈들의 것이 틀림없겠죠.”

유렌의 즉답에, 루시아는 싱긋 웃었다.

이 빙빙 돌린 신탁의 뜻을, 이제야 다 알게 된 것이다.

“귀가 날카로운 그것들을, 막으러 가실 겁니까?”

“네. 전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온 것이니까요.”

유렌의 대답에, 루시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 시체들을 전부 다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레이칸의 커다란 목소리가 둘에게 들려왔다.

마을에 쌓인 시체와 수백 구에 달하는 좀비와 구울의 시체를 커다란 구덩이에 모두 넣었다는 말이었다.

“…….”

루시아는 아무 말 없이 구덩이 근처로 다가가, 울고 있는 몇몇 마을 사람들을 뒤로 물렸다.

누구보다도, 침통해 보이는 얼굴로 말이다.

그리곤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시작했다.

“힘과 폭력의 신. 데르빗이시여. 지금 부당하고 섭리를 벗어난 폭력을 당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드리옵나이다…….”

결코 커다란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밤하늘의 초승달같이 은은한 그녀의 목소리는 그 주변의 모두에게 뚜렷하게 들려왔다.

파아앗-

그 기도가 진행될 때마다, 그녀의 회색 사제복이 나풀거리며 점점 신성력이 강하게 모여갔다.

“……그리하여, 부당한 폭력을 당한 그들에게 마땅히 당신의 진정한 힘과 폭력을 보여주십시오.”

그렇게 기도가 끝나자, 그녀의 머리 위에 주먹만 한 하얀 불덩이가 생겨났다.

그 불덩이는 나풀나풀 날아가더니, 곧 구덩이에 들어가 한 언데드 시체와 맞닿았다.

푸화아아악-!!

그 순간.

작디작았던 하얀 불꽃이, 높이 수십 m의 거대한 하얀 불기둥으로 변하며 구덩이 속의 모든 것을 불태웠다.

“아……아아.”

유족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하얀 불꽃 속에서 가족과 친구의 시체가 정화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비록 모든 것을 태우고 있지만, 동시에 상냥함마저 느껴지는 그 하얀 불꽃은 검붉었던 시체들을 새하얗게 정화해 나갔다.

보기만 해도 꺼림칙하고 울렁거렸던 근방의 기운들 역시, 점차 사라져갔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성녀님…….”

유족들이 고개를 숙여 감사하는 가운데, 루시아는 차분히 걸어 유렌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그 빌어먹을 뾰쪽귀들의 머리를 박살 내는 일에,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신탁은 분명 ‘막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유렌의 그 말에, 루시아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일단 그 잡것들을 죄다 박살 내면, 뭘 하려고 하든 죄다 막아지겠지요.”

그녀는 힘과 폭력의 신의 신성물.

철퇴 ‘마그닛’을 들어 올리며, 싸늘하게 웃었다.

 

* *

 

[커……억.]

어느 어둡고 깊은 숲속.

거의 소멸하기 직전인 리치 케니한은, 반쯤 박살 난 해골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의 생명 병은 이 숲의 어딘가에 묻어 놓았지만, 그것은 이미 상관없었다.

한계치 이상의 강력한 신성력을 그대로 받아, 한참이나 멀리 있었던 그 생명 병마저 박살 나기 직전이었다.

“이 쓰레기는 왜 회수해 온 거지?”

아름다운 미성이지만, 혐오의 감정만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나무 위에서 들려왔다.

녹색 머리의 엘프가, ‘저것’을 회수해온 은발의 엘프에게 비난조로 물어본 것이다.

“이제 곧, 저따위 쓰레기보다 더 강력한 언데드들이 얼마든지 생겨난다. 굳이 활을 쏘아서 우리를 굳이 알릴 필요가 있었나?”

“어차피 놈들은 여기서 모두 죽일 거니 상관없지. 아니, 놈들뿐만이 아닌 곧 중앙에서 파견된다는 모든 인간도 함께 말야.”

은발의 엘프는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그보다 이놈을 데려온 것은, ‘자의식이 있는 언데드’가 제물로 필요하다더군. 그런 놈은 여기에 몇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흠.”

녹색 머리의 엘프는, 억지로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힘’으로 만들어지는 언데드들은 아무리 고위라도 모두 충실한 꼭두각시들.

이 되다 만 리치처럼, 자의식을 가진 언데드의 수는 현재 매우 적은 것이 사실이니까.

[손……대지 마라.]

덥썩-.

은색 머리의 엘프는 반쯤 부서진 리치의 해골 대가리를 들어 올리며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네가 그렇게도 되고 싶었다던 엘더 리치. 아니, 그 이상의 힘을 가진 언데드가 될 수 있을 거다. 그 쓸데없는 자의식 따윈 날아가겠지만.”

쿠르르-

엘프의 손에서 나온, 이질적이고 강렬한 흑색 마력에 해골 대가리가 잠식되어갔다.

[악마…… 같은 놈들.]

그것이 리치 케니한으로서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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