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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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27화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27화 생과 사를 가르는 곳 (19)
“…왜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불길하기 짝이 없는 예감이 듭니다.”
전장의 한 가운데서, 병사들을 치료하며 보조했던 루시아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딱히 새로운 신탁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신탁이 그렇게 양산형으로 마구 뿌려지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녀의 예리한 감각은, 저 멀리서 벌어졌던 싸움에 대해 불길한 예감이 들어왔다.
‘역시 아까부터 벌어진 일은 엘프들이 벌인 일이 틀림없겠군요.’
조금 전 하늘에 작렬하던 거대한 번개 또한, 필시 엘프들의 짓.
그 이후로 엘프가 전장에 나타나진 않긴 했지만, 그것은 아마도….
‘유렌. 유렌이 막고 있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길한 예감이 든다는 것은….’
루시아는 마침 적진을 한바탕 쓸고 돌아온 셀레나에게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루시아를 보냈다.
“빨리 가봐~. 여기는 내가 좀 더 어떻게든 할 테니까~.”
“고마워!”
재빨리 말머리를 돌려 다른 쪽으로 달려가는 루시아를 보며, 셀레나는 복잡한 표정을 얼굴에 띄웠다.
사실, 아까부터 저 번개가 날아온 곳 쪽에서 무언가 거대한 마력들이 부딪히고 있다는 것쯤은 그녀 역시 알았다.
그녀 역시, 이 전장에 그리 많지 않은 5위계인 고위 마법사 중 하나였으니까.
‘내가 직접 가고 싶지만~!’
조금 전부터 마력의 부딪힘이 사라진 것을 보니, 아마도 싸움의 결판이 났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데도, 유렌은 전장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무사하면 바로 달려와 지휘를 맡을 사람이 말이다.
‘설마~. 그가 당할 리가 없지~.’
욱씬-
셀레나는 그렇게 생각하려 애쓰면서도, 걱정으로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당장 전장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저쪽에 가서 그의 행방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에게 이런 기분은 정말로 처음이었다.
-부탁한다.
하지만 셀레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가 부탁한 이 부대를 자신이 지켜야 하니까.
게다가 그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현 상황에선, 자신보다 루시아. 고위 신관 가는 것이 아무래도 나을 것이다.
직접적인 전투력이라면 자신이 위겠지만, 그 외의 것은 아무래도 그녀가 훨씬 더 유용할 테니까.
‘그에게 아무 일도 없기를~.’
셀레나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빌어가며, 다시금 적진에 뛰어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적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한편, 말을 타고 가는 루시아 역시 셀레나의 그 마음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셀레나도 초조해 보였어.’
셀레나는 평상시엔 감정을 마구 드러내는 것 같지만, 의외로 당황하거나 초조한 감정은 잘 드러내지 않는다.
큰 소리로 웃고 화내고 떠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반쯤은 계산되어 드러내는 것.
가끔 광기가 나올 때 외에는, 진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어쨌건, 그런 그녀가 드러난 초조함마저 억누르고 자신을 보냈다.
그것은 분명, 유렌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거라는 셀레나의 느낌이었겠지.
‘서두르는 게 좋겠습니다.’
하지만 루시아의 그 마음은 쉽게 이루어지진 않았다.
그 숲으로 가는 길목은, 하필이면 공국군이 진을 치고 있어, 치열한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이었던 것이다.
‘…돌아가면, 멀어!’
후방의 아군 쪽으로 빙 돌아갈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한시라도 급한 루시아에게, 돌아가는 길은 너무나 멀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저 속으로 간다는 것도 도박이었다.
전투에 휘말리면 시간이 얼마나 더 소요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루시아가 고민으로 잠시 발걸음을 멈칫한 그 순간.
히이이잉-!
“성녀님! 이쪽입니다!”
그녀의 뒤쪽에서, 몇 번 들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을 탄 부사관. 헤이든이, 몇 명의 기병을 이끌고 그녀의 뒤쪽에서 나타난 것이다.
“저 숲 쪽으로 가시는 거죠? 저희가 길을 뚫을 테니, 따라오십시오!”
그는 딱히 이유도 묻지 않았다.
그저 어느새 자신을 뒤따르게 된 몇몇 기병을 이끌고, 그 특유의 기마술로 재빠르게 돌격해 나갔다.
“어, 어?!”
“이 자식!”
푸욱-!
다른 기병보다 더 빠른 가속과, 기괴한 자세에서 뻗어져 나오는 공격들.
이것들이 조합되니, 어느 정도 기병에 대한 경험이 있던 공국병들도 속절없이 뚫리기 시작했다.
겨우 몇 명의 기병들에게 말이다.
“…! 알겠습니다! 돌파합시다!”
그 기병들의 끝에, 루시아도 합세했다.
게다가 신성력을 모아, 그들에게 보조 마법을 거니 그 속도는 훨씬 빨라졌다.
“다 왔습니다!”
그렇게 10분도 지나지 않아, 헤이든이 이끄는 기병과 루시아는 적진을 돌파. 숲의 경계에 다다를 수 있었다.
“전 다시 돌아가, 아군들을 지원하겠습니다! 성녀님도 힘내시길!”
“감사합니다.”
헤이든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다른 기병들을 이끌며 다시 전장으로 내달려 나갔다.
‘굉장하군요. 분명 말을 처음 탄 지가 2주가 채 안 되었을 텐데, 저 모습은 이미 어엿한 기병대의 지휘관입니다.’
무슨 일인지 모는 상태에서도, 재빠르게 루시아를 이끄는 판단력.
게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미 기병들을 이끄는 지휘력까지.
그는 이 전장에서 정말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성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루시아는 감탄에 빠질 틈새도 없이, 말에서 내려 재빠르게 숲속을 달려 나갔다.
핏-
“윽!”
왜인지는 몰라도 훨씬 날카롭게 변한 나뭇가지가 그녀의 피부에 빨간 줄을 그었지만, 루시아는 멈추지 않았다.
숲에 이상이 생긴 것을 보고, 더욱더 마음이 조급해진 상태였다.
타타탁-!
몸에 신성력을 집어넣어, 숲속에서 야생동물보다 빠르게 달린 지 수 분.
점점 짙게 풍겨오는 피비린내에, 루시아는 이를 악물었다.
“…!!”
그리고 반쯤 초토화 된 장소에 도착하자, 그곳에 피범벅이 된 두 사람이 보였다.
머리가 반쯤 깨져 죽어가는 엘프와,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로, 주저앉아 눈을 감고 있는 유렌이 말이다.
“유렌!”
루시아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재빠르게 그에게 달려 나갔다.
* *
파아앗-
“…렌!”
차가웠던 감각에, 조금씩 온기가 돌아옴을 느꼈다.
모든 것 멀어지며 멍하기만 했던 머리에도, 점점 모든 것이 뚜렷해져 왔다.
“유렌! 정신이 듭니까?! 망할! 얼마나 신성력을 더 퍼부어야 되는 겁니까?!”
그리고 모든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던 귀에도, 확실하게 루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그녀는 유렌이 정신이 든 것을 눈치챘는지 그렇게 웃는 얼굴로 말을 내뱉고 있었다.
눈가는 또 빨갛게 물들이면서 말이다.
“이런. 설마 정신을 잃었을 줄이야.”
유렌은 그런 루시아를 보며, 자신이 의식을 잃고 있었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피를 많이 흘렸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설마 의식까지 놓았을 줄이야.
지금 달려와 준 루시아가 치료해주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위험했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군요.”
“….”
유렌이 여사제의 눈을 올려다보며 한 그 말에, 루시아는 밝게 웃으며 그를 일으켰다.
“자, 이제 일어나세요. 부족한 피까지 신성력으로 재생해서 채워놓았으니, 어지럽진 않을 겁니다.”
“…이거, 놀랍군요.”
루시아의 말대로, 유렌은 아무런 휘청임 없이 그대로 일어났다.
일어선 그의 주변으로, 쪽지를 물고 온 하얀 새들이 몇 마리나 빙글빙글 돌았다.
아무래도 쓰러진 그에게 전할 수는 없어 계속 근방에서 기다린 듯했다.
‘이렇게나 멀쩡해지다니. 전혀 어지러움이 없어.’
몇몇 쪽지를 빠르게 본 유렌은 흔들림 없는 시야에 감탄했다.
물론 떨어진 체력이나, 깊게 파인 곳은 아직도 통증이 어느 정도 남아있기에 완벽한 완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정말로 피까지 재생되었는지, 쓰러지기 전 그렇게 강렬하게 느껴졌던 현기증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마치 동사할 것 같이 온몸이 차갑게 굳어가는 그 더러운 느낌 또한 말이다.
‘역시 젊어도 루시아는 루시아군.’
유렌은 전생 시절. 욕을 내뱉으면서도 언제나 자신을 회복시켜주었던 군종 사제. 즉, 미래의 루시아를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그때 그녀는 피를 재생하는 것은, 다른 치료 상처에 비해 특히나 신성력이 특히 많이 든다며 투덜거렸었지.
“아, 음.”
한편 루시아는 유렌이 흐뭇한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자, 왠지 모르게 얼굴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신성력이 부족해서 이런 걸까요?’
확실히 전장에서 내내 신성력을 쓴 후, 유렌을 살리기 위해 대량으로 신성력을 쏟아붓긴 했다.
음, 그렇다. 이건 신성력이 부족해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든 그쪽으로 결정지으려는 루시아와, 과거의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던 유렌의 귀에, 작지만 또렷한 저주의 말이 들려왔다.
“…모두, 죽을 것이다…. 비참하게….”
머리가 깨져 죽어가는 엘프의 입이, 중얼거리면서 말을 내뱉고 있었다.
“거, 고위 생물답게 끈질기시군. 그런 상태에서도 아직 의식이 남아서 말을 하다니.”
유렌은 감탄 반, 비꼼 반을 넣어 말했다.
아무리 자신이 쓰러지기 직전이라 힘을 제대로 못 줬다고 해도, 상대는 이미 죽어 나자빠져 정상이여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그걸 버텨내며 이 상황에서도 저주를 퍼부어?
여러 의미에서 감탄이 나올만한 의지였다.
뭐, 살아보려고 싹싹 빌다가 안 되니까 저주나 퍼붓는 추한 의지긴 하지만.
“…큭…큭… 설사 네놈이… 여기서… 살아나가도… 다음번엔… 꼭….”
“그래그래. 그놈의 다음번 소리는 이미 수천, 수만 번을 들었었지. 하지만 성공한 경우는 없더라고.”
전생의 자신을 죽였던 대마도사는 그 말 없이 죽인 것이니, 유렌의 말이 틀린 것은 없었다.
유렌은 표정 없이 다가가, 그녀의 우스운 가면과 촌스러운 장신구들. 그리고 우아하고 매끄러운 장검을 챙겼다.
“이 우스꽝스러운 전통 의상은, 너희가 재미로 반 멸종시켰던 드워프들이 철저히 분석하도록 하지. 어떤 기분이지? 하찮게만 여겨졌단 하등생물들이 서로 손을 잡아, 고등생물이라는 네놈들을 죽일 거라는 게.”
“….”
유렌의 말에 엘프는 굴욕이라고 느꼈는지, 거의 꺼져가는 생명에서도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제가 끝내도록 할게요. 마침 신성력도 모자랐거든요.”
그것을 보던 루시아는, 조용히 철퇴를 들고 와 엘프 앞에서 높게 들었다.
하마터면 유렌을 저세상으로 보낼 뻔한 엘프가 매우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뭐, 신성력을 채워야 한다는 사실도 거짓말은 아니었고.
“…흥… 지금…쯤… 네놈의… 소중한… 부하들은… 모두…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죽어가는 엘프는 일그러진 얼굴 가운데서도 억지로 미소를 지어가며 말했다.
“…내… 동포가… 이끄는… 마수… 군단…으로… 말이지.”
“!!”
그 엘프의 말에, 철퇴를 내려찍으려던 루시아의 눈이 커졌다.
도저히 이 반 시체의 말이 거짓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저게 사실이라면 큰일입니다! 레이칸, 셀레나 등이 위험합니다!’
아무리 공국을 점점 밀어가고 있다지만, 전력 자체는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진 않는다.
갑작스러운 마수들의 기습이면, 정말 위험했다.
하지만 다급하게 고개를 돌린 루시아가 본 유렌의 얼굴은, 평온 그 자체였다.
“너. 설마 내가 그런 것도 예상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냐?”
유렌은 무릎을 꿇고, 죽어가는 엘프의 얼굴에 바싹 다가갔다.
“너희 빌어먹을 뾰쪽귀들은, 기본적으로 2~3인을 기준으로 움직이지. 최소한 다른 한 명이 더 개입할 것이라는 생각쯤은, 너희를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야.”
“…허세부리지… 마라! …벌레가…!”
엘프는 죽어가면서도, 유렌을 비웃었다.
이미 마법으로 유렌의 부대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신의 동포는 알고 움직이는 것이다.
설사 대기대로 병사 몇백 정도 빼놓은 것을 믿는 모양인데, 그 정도론 어림도 없….
“허세라. 글쎄, 이게 보이나?”
흔들리는 엘프의 시야 속에, 종이 속의 공용어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뜻을 이해한 순간, 다 죽어가던 엘프의 눈이 커졌다.
설마, 설마 이 녀석은 정말로 미리 대비를 해 놓은 것인가?!
대체, 대체 어떻게?! 어떻게 하등 종족이 이럴 수가 있…!
“루시아.”
“알겠습니다!”
쒸이익-!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그녀의 숨통을 끊으러, 신관의 철퇴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엘프는 그저 멍한 눈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지켜보았다.
불과 몇 초 전까지 가득 찼던, 하등생물이니 뭐니 바락바락 소리치던 악의적인 감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생각 없이 멍하니, 죽음만을 기다리는 하나의 생물체만이 남아있었다.
빠각-!
그리고 무언가가 뭉개지는 소리와 함께, 천 년을 넘게 살아왔던 엘프의 삶은 그렇게 끝이 났다.
“…어? 어어?”
그 거대한 역사를 끝내는 ‘폭력’의 행위로, 신성력이 급속도로 차오른 힘과 폭력의 신의 사제.
루시아의 놀라는 목소리와 함께.
* *
“…세상에. 이럴 수도 있음까?”
두꺼운 철판 갑옷을 피로 붉게 물들인 레이칸이 거대한 망치를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어느새 조용히 나타난 거대한 마수들의 부대가 수백이나 그르렁거리고 있었다.
마치 군대처럼 열을 맞춰서 말이다.
게다가, 지금 이곳에 있는 왕국 부대의 대부분은 유렌이 지휘하는 13연대의 부대들.
그들이 따로 진격하는 틈을 노려, 둘러싼 것만 같은 움직임은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하나를 상대하려면 병사들 수십이 필요한 마수가 수백이나 있다는 압박감은, 레이칸 같은 강자에게도 상당한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그러게 말이야~.”
셀레나에게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녀는 마수도 상대한 경험이 많아 더더욱 잘 알고 있었다.
저 마수들은 마법사에게 특히나 강한, 항마력을 높은 종들을 따로 모아서 온 놈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 상태로 상대한다면, 기껏 수십 마리를 상대한 시점에서 자신의 목숨도 다하겠지.
하지만 지금 둘의 얼굴엔, 아니 다른 병사들의 얼굴에도 죽음의 공포나 절박함은 떠올라있지 않았다.
크릉-!
카르릉?!
오히려, 저 앞에서 이쪽을 덮치기 직전이었던 마수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느새 13연대와는 전혀 복장을 한 기병 수백 명이, 그 마수들과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우- 늦지 않았군요!”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적발에 갈색 머리를 지닌 여상인이 싱글거리며 레이칸과 셀레나에게 다가왔다.
“으음?!”
“당신이 왜 여기에~? 설마~?!”
둘도 몇 번 본 얼굴이라 이미 상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대륙 남쪽을 꽉 잡은 예루니스 대상회의 회주. 샤디아였다.
유렌과 마탑에게 향신료를 제공하고, 대신 드워프제 물건을 납품받는, 그런 상인인 그녀가 이곳엔 대체 왜?
“미리 유렌님께 부탁받았던 ‘물품’들입니다. 설마, 진짜로 전쟁이 일어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녀는 스스로도 지금 상황이 황당한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두어 달 전.
공국에 혼란이 있긴 했지만, 왕국은 아직 전쟁에 대한 확신조차 없었던 그때.
유렌은 예루니스 상회와의 회담에서 고대 신의 신전에서 얻은 ‘월장석’을 건네며 거래를 했다.
금화는 필요 없으니, 대륙 남부에서 강력한 용병단을 최대한 고용해 와달라고 말이다.
-저, 전쟁이라도 벌이실 생각이세요?
-질문은 제가 했습니다. 저는 그게 가능하냐, 불가능하냐. 이것만 물었고.
-…알겠어요.
솔직히 그때 샤디아는, 유렌이 반란이라도 일으킬 줄 알았다.
물론, 그 후에 대륙 남부에 들려온 전쟁 소식으로 그 생각은 모두 사라졌지만.
“여기 대륙 중부와 싸움 방식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한명 한명이 기사에 그다지 꿀리지 않은 실력자들이에요.”
그들이 실력이 높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대륙 남부는 영주들이 기사를 키우는 대신, 실력 있는 용병들을 고용하여 병사를 맡기고 영지전을 하는 전통이니까.
대륙 중앙으로 치자면, 말 그대로 주인 없는 기사들의 집단이랄까?
샤디아는 싱긋 웃으며 지휘의 인을 레이칸에게 넘겼다.
만약 현장에 자신이 없다면, 그에게 주라는 유렌이 내렸던 지시대로 말이다.
“아마, 이 용병대로 전쟁을 치렀던 남부의 귀족들이 지금쯤 난리가 났을 걸요? 영지전의 가장 중요한 병력인 용병들이 죄다 빠져 버렸으니까. 후훗. 자, 빨리 저들의 지휘를 부탁드리게요. 전 전투원이 아니라서.”
“아, 알겠슴다!”
샤디아는 그렇게 말하고 슬쩍 왕국의 군대로 말머리를 돌려 빠져나갔다.
이번에 저들을 데려오느라 막대한 돈이 들었지만, 솔직히 월장석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당할 만한 돈이었다.
게다가, 그들을 설득할 때도, 앞으로 대륙 중부에서의 의뢰도 있을 거라고 말하니 가격을 좀 더 싸게 하기도 했었고.
“그, 그럼 돌진하겠슴다! 따라오십쇼!”
번쩍-
레이칸이 받은 지휘의 인이 빛나며, 그의 공용어가 그대로 번역되어 남부어로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오오오오오-!!”
“카르리자아-!!”
대륙 남부 사막의 전사들은, 남자다운 레이칸의 목소리와 모습. 그리고 그 위압감에 기쁜 함성을 지르며 그를 따랐다.
역시, 자신들을 이끄는 지휘관은 저런 강력한 전사여야 한다.
항상 배만 나온 남부 귀족들을 따라는 것 보다, 지금이 훨씬 나았다.
두두두두-!
어쩐 일인지 우왕좌왕하기 시작한 마수들을 상대로, 레이칸과 남부의 전사들이 기세를 타며 돌진했다.
“뒈지십쇼!”
퍼억-!
레이칸이 휘두르는 거대한 망치가 마수를 으깨는 소리와 함께, 이 회전의 최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