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19화
무료소설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19화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19화 생과 사를 가르는 곳 (11)
“위저드 유렌! 설마 전장에서도 이런 활약을 보이다니! 클클. 앞으로 잘 부탁하네!”
부사령관이 조언자의 조수로 굴러떨어진 다음 날.
덩치는 작지만, 유난히 목소리가 큰 노마법사가 유렌에게 찾아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선배님. 죄송하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클클클! 난 쉐룬이라고 하네. 그렇게 예의 차리지 말고, 적당히 말하게나. 적당히!”
6위계의 마스터. 쉐룬은 보라색과 주황색을 적절히 섞은 로브를 펄럭이며 껄껄거리며 웃었다.
“분명 작년에, 마탑을 새로 세우겠다며 고위 마법사들을 평의회에 불러 모으지 않았던가? 끌끌. 그때까지만 해도 좀 많이 당돌한 3레벨 애송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정말이지 놀랍군그래. 그 사이 5레벨이 된 것도 놀라운데, 설마 소드마스터랑 대등하게 붙다니!”
“운도 조금 따라준 덕이죠.”
쉐룬은 굳이 겸손한 척 하면서, 겸손하지 않은 유렌을 보며 크게 웃었다.
소드마스터를 상대로 운이 ‘조금’ 따라줘서 대등하게 싸웠다면, 애초에 그 실력 자체가 엄청나단 뜻이었으니까.
“클클-! 그래, 운과 실력. 그 전부가 있어야 하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운이 없다면, 놈의 칼날에 어딘가 잘렸을 테고, 아무리 운이 좋아도 실력이 없다면 애초에 버틸 수도 없었을 테니! 운이 조금만 더 좋았으면 놈을 잡았을 수도 있었겠어!”
쉐룬은 유렌과 활기차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곧 저 뒤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야! 이놈아! 거기서 안 나오고 뭐 하냐! 나름 부사령관까지 올라갔었다는 놈이, 저렇게나 한심해서야!”
노마법사가 그렇게 쩌렁쩌렁 소리치자, 한참 뒤쪽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페이든 - 전 부사령관이 터덜터덜 걸어왔다.
그의 얼굴은 참기 힘든 굴욕과 허탈함 등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했지만, 그것보다도 더 시선을 빼앗는 것은 시퍼렇게 든 멍이었다.
따악-!
“악-!”
“빨리빨리 하지 못해!”
하지만 노스승의 로드가 그의 머리를 다시 후려치자, 그의 얼굴에는 조급함과 비굴함만이 남았다.
저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이는 나무 막대가 너무나도 아팠던 탓이었다.
적절한 마력이 담겨 있는 저 짧은 나무 막대는, 5레벨 마법사인 그의 모든 마법을 무효화 하며 머리에 충격을 주었다.
“미, 미안했다! 내가 공에 눈이 멀어, 괜한 짓을…!”
한참이나 어린 후배에게 공개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다는 것.
이는 군인으로서 엄청나게 치욕적인 짓이었지만, 지금의 페이든에게 그런 것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30년 만에 만난 그의 괴팍한 노스승을 두려워하는 감정이 훨씬 강했던 것이다.
“너의 사과를 받을 대상은 내가 아닐 텐데? 너의 그 아둔함 때문에 죽은 병사들에게 해야겠지.”
“…?!”
페이든은 유렌의 뜻밖의 반응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 몇몇 장교들에게 이런 식으로 사과했었지만, 이런 반응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비웃었고 누군가는 약간이지만 안쓰러워했다. 유렌은 당연히 비웃는 쪽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 무슨 눈빛이!’
눈이 마주친 유렌의 눈빛은, 정말이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이쪽을 같은 사람이라고 보지도 않는 듯한,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눈빛.
게다가 그 벌레를 당장이라도 잡아 죽일 것 같은 살벌함도 함께 있었다.
“무능은 죄가 아니라고 어디선가는 말하지만, 전장에서 무능한 지휘관은 죄다. 혼자서 아군을 수백, 수천. 혹은 수만 명을 죽음에 다다르게 할 수 있으니까.”
그가 높낮이 없이 뱉는 말은, 하나하나가 페이든의 가슴에 와 박히기 시작했다.
“그래도 잘해보려고 노력이라도 했었다면 어느 정돈 이해라도 할 거다. 하지만, 네놈은 그 같잖은 공명심 때문에 목숨을 사라지게 한 거지.”
유렌은 가차 없이 ‘전’ 부사령관에게 마음속의 말을 내뱉었다.
그는 이미 전생에서 수없이 느꼈다.
강력한 왕국의 마법사대도 무서웠지만, 공명심에 머리가 빈 아군의 지휘관이 더 무서웠다는 것을.
“죽어도 되지 않을 병사들이 수백 명이 죽었지. 네놈이 그들에게 직접 사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그렇지 못하는 이상 내 앞에서 사과라는 말을 지껄이지 마라.”
유렌의 그 말에 페이든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부들부들 떨었다.
치욕, 창피, 부끄러움, 등등. 여러 가지 커다란 감정이 뒤섞여 그를 흔들었다.
“클클. 다 맞는 말이군. 맞아. 이놈은 몹쓸 놈이지.”
노마법사- 쉐룬이 끼어들어 고개 숙인 제자의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이놈의 성급하고 어리석은 선택 탓에 괜한 목숨들이 사라진 건 사실이야. 하지만, 아직 기회는 줄 수 있지. 이놈의 마법 능력은 남아있지 않는가.”
“….”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 문제는 앞으로의 일 아니겠는가. 아무리 5레벨의 최하위권에 걸쳐있고, 겁쟁이라 실제 전장에선 겁을 먹는 바보긴 해. 하지만 옆에서 엉덩이를 걷어 차주면, 그래도 쓸 만한 마법들은 내뿜지 않겠나? 그럼 죽을 생명들도 살릴 수 있을 테고, 그게 속죄가 되지 않겠는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쨌든 고위 마법사에 속하는 5레벨의 마법사.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고 해도, 최소 병사 수백 명의 힘은 충분히 지닌 자다. 제대로 힘만 제때 조종을 한다면야, 충분히 많은 아군을 구할 수 있겠지.
단지, 그와 일일이 붙어가면서 컨트롤이 가능한 상급자, 그리고 강자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말이다.
“비록 30년 전에 도망간 멍청한 제자라도, 일단은 내가 가르친 놈일세. 이번 전쟁에서 어떻게든 책임은 지게 만들 테니, 그때까지만 봐주게나.”
“…마스터 쉐룬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유렌은 진심을 담아 노마법사에게 꾸벅 인사했다.
어떻게 이런 스승에서 저런 제자가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꼿꼿한 심성을 그에게서 느낀 것이다.
“끌끌. 그럼 나도 열심히 해보겠네. 자. 멍청한 제자 놈아! 가자!”
“예, 옙. 스승님.”
그렇게 사라지는 스승과 제자를 보며, 셀레나가 조용히 유렌에게 말했다.
“대단하네요~. 저 영감님~. 아마 마스터 중에서도 강한 분일 것에요~. 은퇴한 지 꽤 되어서 굳이 이런 일선까지 오지 않아도 되는데~.”
“감사히 생각해야지. 덕분에, 놈들을 상대할 난이도가 훨씬 줄어들었으니까.”
“…검은 기사. 그 놈 뒤에 있는 뾰쪽귀 놈들 말씀이시죠~?”
셀레나의 속삭이는 질문을 받은 유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방의 상단에게 의뢰한 것도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검은 갑옷의 소드마스터 뿐만이 아닌, 그를 보낸 흑막들을 상대할 계획들을 꾸준히 세우며 말이다.
* *
“여긴가? 놈이 머물고 있다는 곳이.”
공국의 진지 내 중에서도, 가장 구석에 있는 어느 허름한 막사 앞.
이곳에는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사치스러운 옷차림을 한 중년 남자가 인상을 쓰고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백작님.”
“흥. 이런 보잘것없는 곳에 만족하다니.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역시 태생은 어쩔 수 없나.”
“배, 백작님.”
그의 폭언에, 안내하러 온 장교의 눈이 크게 떠졌다.
하지만 백작은 피식 웃으며 장교의 가슴께를 툭툭 쳤다.
“왜. 그자가 들으면 어떨까 봐서? 흥! 그런 떠돌이가 검을 좀 잘 쓴다고 해서, 백작인 나에게 뭐라 큰소리를 칠 수 있을 것 같으냐?”
“아닙니다.”
공국의 장교는 검집으로 백작의 면상을 강하게 때리고 싶은 기분을 간신히 억눌렀다.
‘…반란군에 빌붙은, 준 남작 출신 주제에!’
차라리 상대가 정말로 유서 깊은 가문 출신으로, 오만했다면 그나마 장교는 이해했을 것이다.
어쨌든 전통 깊은 고위 귀족이란 간판이라도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놈은 아니었다.
능력도 혈통도 없어 빌빌거리며 무시당하던 놈이, 어쩌다 반란 세력과 잘 엮여 백작까지 한 번에 올라간 것이다.
그런 주제에, 마치 수백 년 전부터 백작인 양 거들먹거리는 게 어찌나 역겨운지.
‘참자, 참아. 내가 뭘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저 소인배 놈에게 잘못 보였다간, 나와 내 가족만 끝장이야.’
장교는 감정을 꾸욱 억누르고, 정중하게 도착을 알린 후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루, 루카스님. 실례합니다.”
그렇게 들어간 막사 안은, 정말이지 사람이 머물고 있다고 있다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텅 비어있었다.
본디 아무리 전쟁 중인 군의 막사라 해도, 일단 최소한의 물건들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아예 사람 사는 느낌 자체가 들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이런데 있긴 하는 거냐? 나, 참….”
그렇게 투덜거리려던, 백작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갔다.
꿀꺽-
엄청나게 흉포한 맹수가, 마치 자신의 목덜미에 어금니를 그르렁거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루, 루카스님!”
반면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한 장교는, 검은 갑옷의 기사를 발견하고 머리를 숙였다.
비록 살기는 뿜지 않는다고 해도, 루카스에게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백작은 거의 거품을 물듯이 비틀비틀하다가, 간신히 루카스가 살기를 거두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나, 나, 나에게 무, 무슨…!”
“할 말이 뭐냐.”
성별도 나이도 알 수 없는 기묘한 목소리와, 흉악한 검은 갑옷에, 백작은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 느낀, 맹수의 그 살기가 아직 자신의 목덜미에 넘실대는 것 같았다.
“네, 네, 네가 전해라! 나, 난 이만!”
그렇게 백작은 허겁지겁 서류를 장교에게 건네주고, 도망가듯 막사를 나섰다.
더 이상 있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 채, 식은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후우.”
그 광경을 본 루카스는, 자신도 모르게 짧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벼락출세네 뭐네 해도, 백작이라는 작위는 공국에선 몇 없는 고위 귀족.
그런데 그 백작이란 놈이 하는 짓이라는 게 저게 뭔가.
아무리 소속감이 적어도 일단은 자신도 공국군 소속인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 음. 그럼 백작님 대신 전해드리겠습니다.”
장교는 백작이 도망가는 꼴을 보며 한숨을 한 번 쉬곤, 대신 서류를 읽었다.
“왕국 쪽에 심어둔 정보통에 의하면, 이, 이런. 이 지역 부대에 6레벨 마법사가 새로 부임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령부에선, 놈들이 공격할 때까지 일단 대기하라고 하십니다!”
“…알겠다. 그만 가라.”
루카스는 안절부절못하는 장교를 보며, 손을 휘둘러 축객령을 내렸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물러나겠습니다!”
장교는 6레벨의 참전에도 무덤덤해 보이는 루카스를 보곤 자신감이 올라갔는지, 침착한 상태로 물러났다.
혼자 조용히 있던 루카스의 검은 헬멧에서, 기묘한 목소리가 다시 튀어나왔다.
“6레벨이라….”
6레벨의 마법사. 분명 만만치 않은 존재다.
하지만, 그 한 명으로 자신이 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놈이 더 문제겠지.’
유렌 슈나이더.
요 며칠 자신의 모든 생각을 차지한 놀라운 5레벨 마법사.
‘설마 무술까지 통달한 마법사가 있었다니. 아니, 단순히 그래서 강한 게 아니다. 그 이상으로 뭔가 있어.’
당연히 마스터 클래스까진 아니게 보였지만, 뭔가 굉장히 깊은 무언가가 그에게서 느껴졌다.
‘…다음에 만나면, 또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
분명 객관적으로 봤을 때, 다시 만나면 유리한 것은 아마 자신이다.
겨우 1~2주 정도론 크게 진전이 있을 리도 없으며, 이제는 놈이 무술에도 능한 것을 알고 싸우는 것이니까.
하지만 뭐랄까. 마스터 특유의 예리한 ‘직감’이, 무언가 찜찜함을 알렸다.
‘뭐, 다음에 만나보면 알게 될 일.’
루카스는 보검을 꽉 움켜잡으며, 조용히 머릿속으로 놈과의 대결을 상상했다.
얼마 후, 놈을 그렇게 실제로도 베어버리기 위해서.
* *
부사령관이 경질된 후, 대략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레이칸과 셀레나. 그리고 루시아는 셋이 모여 싹이 보이는 부사관과 병사 일부를 훈련을 끌어들였다.
“하나- 둘! 하나 - 둘!”
구보.
구보는 군인 병사에게 있어, 당연히 실시하는 기본 중 기본 훈련.
물론 한창 전장일 때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지만, 이렇게 잠시 싸움이 멈춘 기간 중엔 평범하게 실시되었다.
특히나, 훈련에 환장하는 유렌과 그 수하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크허억! 허어억!”
“하아악! 흐으억!”
온몸에 각종 물건을 대롱대롱 매단 채, 흙바닥에 뒹굴고 있는 이들을 보며, 주위에선 혀를 찼다.
“아이고. 사람을 잡네, 잡아.”
“선택받았다고 부러워할게 아니었구만.”
처음에는 그들이 곧 새롭게 출세할 거라며 부러워했던 다른 부사관이나 병사들이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그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동정의 눈빛으로 보게 된 것이었다.
“끄으응-!”
부사관 헤이든은, 그런 눈빛 속에서 어기적어기적 일어나 몸을 정돈했다.
다른 훈련 동기들은 아직 쓰러져 있지만, 그는 그렇게 얌전히 쓰러져 있을 수는 없었다.
‘오, 오늘이지. 연대장님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게!’
그래, 오늘은 직접 레이칸이 연대장인 유렌 슈나이더에게, 그들을 소개해주는 날이다.
원래는 조금 더 일찍 하려고 했지만, 워낙 유렌이 바빠 오늘에서야 시간이 났다고 한다.
게다가, 간단한 조언 등도 해줄 수도 있다고 하니. 헤이든에겐 정말로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이런 흙투성이의 꼴을 보일 수 없어!’
그렇게 필사적으로 몸을 다듬던 헤이든의 등 뒤로, 적갈색 머리를 가진 고위 장교가 로브를 입고 나타났다.
그가 그토록 바랐던 이 부대의 영웅.
유렌의 등장이었다.
* *
“헤, 헤이든이라고 합니다! 성은, 고아라 딱히 없습니다! 마,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
유렌은 ‘소질이 있다는’ 훈련생들과의 만남 도중.
다른 이들보단 약간 반들반들한, 젊은 부사관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설마?! 이름은 다르지만, 이 얼굴은….’
뚫어지게 헤이든을 바라보던 유렌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 헤이든 부사관. 나이가 어떻게 되지?”
“넵! 나이 말씀이십니까? 그, 제가 고아라 확실치는 않지만, 대략 20 정도입니다!”
“…그래. 그렇군.”
그리고 조금 전의 대답으로, 유렌은 확신했다.
-제 나이요? 하. 대장님. 고아에게 나이를 묻는 것만큼 실례되는 건 없습니다. 하하.
뭐, 농담이고, 대략 40 정도 될 겁니다.
젊은 건 아니지만, 아직 20살 애송이들한텐, 지지 않습니다!
그리운 옛 부하의 목소리가, 기억 속에서 샘솟아 다시 유렌의 머릿속을 스쳐 간 것이다.
“레이칸. 혹시, 남는 말 있나?”
“옙? 아, 넵. 여유분으로 어느 정도 있긴 함다.”
“그럼 그중에서 상태가 제일 좋은 놈을, 이 헤이든 부사관에게 잠시 빌려주도록.”
“옙!”
“어, 어…. 저, 저한테 말입니까?”
유렌의 말에 레이칸은 쿵쿵거리며 재빠르게 마구간으로 뛰어갔고, 헤이든은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영문을 몰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저, 전 정말 말에 타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혹시, 이 군마에게 상처라도 입힌다면….”
“그럴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타봐라. 여기 신관도 있으니, 너나 말이나 다칠 걱정은 하지 말고.”
유렌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헤이든도 더는 주저하지 않았다.
솔직히 왜 이런지 이해는 못 하겠지만, 어쨌든 타보라니 타볼 수밖에.
‘말이라. 10년 전쯤 몰래 짐말을 한 번 타보려다 된통 맞은 후에는 말 근방에도 잘 안 가봤었지.’
당연하지만, 고아 평민이었던 그는 보병으로 입대해 부사관이 된 이후에도, 쭉 보병 자리에 있었다.
기병에 지원한다는 생각 자체는 해보지도 않았다.
워낙 말과 관련 장비가 비싸기도 하고, 익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으니까.
“합!”
히이잉-!
하지만 그런 여러 가지 잡생각은, 한 덩치 큰 말에 올라타는 순간 전부 사라졌다.
‘어?’
분명, 이 말은 자신의 몸이 아니다.
하지만 이 말에 올라타 고삐를 잡은 그 순간.
자신의 몸이 확장되었다.
히이이잉-!
자신의 몸은 크게 다치지 않는 이상,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헤이든은 생전 처음 타보는 말을 자신의 몸과 같이 너무나도 익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저게 정말 말을 처음 타보는 실력이라고~?”
“…말도 안 됩니다. 서부지방 야만인도 저것보단 아닐 텐데요.”
“세상에. 저렇게 말을 잘 타는 놈은 처음 봤슴다!”
옆에서 지켜보던 모두가 입을 쩍 벌리며 놀랐다.
단순히 기마에 익숙한 것이 아니다.
헤이든이 말 위에서 하는 모든 행동과, 그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따라주는 말의 행동이 정확하게 일치해, 시너지를 이루고 있었다.
말을 자신의 몸처럼 다룬다.
그 어려운 경지를 생전 처음 말을 타본다는 사람에게서 느낀 것이다.
‘역시나.’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유렌은 그리운 옛 기억을 느꼈다.
전생의 전장에서, 부관과 함께 그와 제일 많이 뛰어다닌 소중한 부하.
30살까지 한 번도 말을 타본 적이 없었지만, 말에 탄 그 즉시 제국 최고의 기병이 되었던 전설의 기병.
비록 이름은 달랐지만, 그가 젊은 모습으로 유렌의 앞에서 말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나벨른. 너였구나.’
유렌은 전생에 자신의 기병대장을 맡았던 한 천재를 보며 그렇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