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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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13화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13화 생과 사를 가르는 곳 (5)
“큭큭. 드디어 나의, 아니 우리의 시대가 오는 건가.”
왕국군 집결지에 있는 한 커다랗고 호화스러운 막사.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번쩍거리는 붉은 색 로브의 마법사가 낄낄거리고 있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장년의 그는, 여태까지의 설움이 생각 난 것인지 웃으면서도 붉어진 눈을 비볐다.
‘그래. 여태까지 왕국에서 장교 마법사들이 얼마나 푸대접을 받아왔던가.’
왕국이 직접적으로 전쟁을 벌인지는 벌써 50년을 훌쩍 넘긴다.
주변국들의 분쟁으로 전쟁의 위험을 안 것도 벌써 20여 년 전이고.
따라서 왕국은 군대를 푸대접했고, 당연히 그것은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완전히 경쟁에서 밀려난 낙오자들만 가는 취급이니!’
현재 마법사들의 인식은 확실히 그랬다.
대형 마탑이나 평의회가 가장 좋은 곳이며, 그 후론 중소형 마탑이나 아카데미. 혹은 마도구점 등으로 점점 내려가다가, 군대는 저 시골 소형 마탑과 함께 최하점의 인기를 자랑(?)했다.
당연히 그런 만큼 좋은 인재가 오지도 않으며, 받는 대우도 열악했다.
다른 마법사들도 모두 우습게 보는 것은 당연하고.
‘감히 5위계. 고위 마법사까지 오른 나에게 말이지!’
하지만 상황에 따라 늦게 피는 꽃도 있는 법이라 했던가.
군 장교로 간 마법사라고, 무조건 2, 3레벨에서 끝나진 않았다.
늦게 발화된 재능으로 4레벨. 혹은 정말 극소수지만 그처럼 5레벨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아니, 분명히 좋아지긴 했지만 결국 군인의 대우엔 한계가 있는 법.
마탑이나 평의회의 다른 5레벨 위저드들에 비하면, 너무나 부족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지.”
이곳에 모일 부대를 맡을 부사령관. 페르닐은 커다랗게 웃어가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정말로 제때 잘 터진 전쟁이다.
설마 자신이 5레벨에 오르자마자, 이렇게 크게 장교 마법사들이 활약할 무대가 만들어지다니.
정말 태양신이 뒤에서 자신을 위해주나 싶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이번에 중앙에서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내려오는 후작은, 군 경력이 없는 중앙 귀족.
정예 중앙군을 이끌고 온다곤 하지만, 그가 군대에, 전장에 대해 뭘 알겠는가.
군대에 30년 가까이 몸담은 자신에 비하면, 그저 햇병아리일 뿐이다.
결국 실세는 자신이었다. 왕국을 수호하게 되는 이 부대에서!
“부, 부사령관님! 정찰 나가셨던 네르벨님께서 귀환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오. 네르벨이 돌아왔나?”
페르닐 부사령관은 그의 심복 중 하나가 돌아왔다는 부하의 보고에 귀가 쫑긋해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원대한 계획에, 한 역할을 해줄 심복이 돌아온 것이다.
그 역시 이런 군에 처박혀 4레벨까지 오른 인재.
그리고, 자신과 똑같이 처우에 대해 불만이 많다.
‘일단, 무조건 띄워주고 봐야지.’
아직 사령관인 후작은 도착하지 않았지만, 다른 마법사들이나 중앙에서 온 귀족들은 있다.
게다가 곧 마탑에서 징집된 위저드 2명이 도착할 때가 되기도 했고.
설마 놈들이 어쩌진 못하겠지만, 일단 자신과 자신의 심복의 입장을 최대한으로 띄워줄 필요성은 있었다.
애초에 네르벨도 그러려고 아무도 없는 곳에 정찰을 보낸 것이니까.
“그래, 네르벨은 어딘가? 당연히 정찰은 잘 해내고 왔겠지? 내가 손수 공을 치하해야겠네.”
“바, 바로 막사 밖에 있습니다. 하지만 부사령관님…….”
페르닐 부사령관은 계속 뭐라고 하는 것 같은 부하를 무시하며 막사의 밖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오오! 세이지 네르벨! 정말이지 수고했네! 힘든 정찰이었을 텐….”
막사 밖에서 잔뜩 헝클어진 로브 차림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네르벨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부사령관님! 갑자기 나타난 공국 놈들에게 기습을 받아……!”
“……!”
보고를 받은 부사령관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곳에 공국군이 왜 있는가?
네르벨 이 멍청이도 멍청이다. 재빨리 도망이나 칠 것이지, 왜 싸워서 피해를 이렇게 크게 만들었어?
“그래도 다행히 사망자는 많진 않았습니다. 중상자가 많은 건 어쩔 수 없었지만요.”
“……!”
페르닐의 얼굴이, 그의 옆에서 당당히 나서는 젊은 마법사를 보고 더더욱 일그러졌다.
그도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다.
지금 저렇게 당당히 끼어든 저 적갈색 머리의 마법사가, 누구인지쯤은 눈치채고 있었다.
“……혹시, ‘스태프 오브 파워’ 마탑에서 징집된, 위저드 유렌 입니까?”
“네. 맞습니다. 저희가 이곳으로 오는 도중, 공국군에게 쫓기는 정찰 부대를 발견 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놈들을 쫓아낼 수 있었지요.”
“…….”
부사령관의 얼굴은 더 일그러지진 않았지만, 그 대신 뒤에 숨긴 왼 주먹은 피가 날 정도로 꽈악 쥐어졌다.
‘제기랄! 저 멍청한 놈! 하필 도움을 받아도……!’
아까 자신이 크게 소리를 지른 탓에, 주변 막사에 있는 귀족과 마법사들도 제법 나와 있는 상태.
그들은 이미 간단한 정찰에도 실패한 네르벨과, 소수의 인원으로 공국군을 무찌르고 그를 구한 유렌에 대해 수근덕거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소리는 다 치더니, 왕국땅에서 기습을 받아 패전?
-그마저도 저들이 구해줘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전멸할 뻔했다는군.
‘젠장.’
그들의 목소리를 들은 부사령관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정말이지, 귀중한 마법사와 병사들의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위저드 유렌.”
그는 마음과는 반대로 싱긋 웃어가며 말했다.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계획에 초를 치고 있는, 이 중앙 마탑의 마법사에게 이글거리는 마음을 불태우면서 말이다.
* *
“부사령관이 우리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군.”
몇 시간 후.
유렌은 자신과 그 일행들. 그리고 앞으로 자신들에게 배속될 부대가 머무를 장소을 보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 그렇슴까? 하지만 그 위저드 아저씨. 되게 친절했지 말임다.”
쿠웅- 쿠웅-!
레이칸이 작은 진동을 일으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꿍꿍이가 느껴지긴 했어요~.”
“말속에 악의가 조금씩 들어있었습니다. 아주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지만요.”
반면 셀레나와 루시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상대의 악의에 민감한 그녀들은, 유렌과 같은 결론을 낸 것이다.
“우리에게 이곳을 준 것만으로 알 수 있지.”
유렌은 자신의 부대들이 자리를 꾸밀 땅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얼핏 보면 중앙 막사와 가까워 보이지만, 출입구 쪽이랑은 거리가 멀다. 여차 할때 신속하게 대응하기 힘들어. 게다가 식수원과도 정 반대에 떨어져 있고.”
물론, 대놓고 불편한 자리는 아니었다.
누가 봐도 좋지 않은 자리로 그를 보낼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은근슬쩍 불편하고 떨어지는 자리에 보낸 것이다.
표면상으론 군 경력이 없는 그는 알아채지도 못할 거로 생각하면서.
“……거, 쪼잔한 사람임다. 그 심복이라는 마법사도 우리가 구해줬는데 말임다.”
‘그래서 더 그랬겠지.’
유렌은 굳이 레이칸에게 더 설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셀레나는 대충 눈치를 챈 것 같았고, 루시아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쨌든 쪼잔한 놈이어도 아군은 아군이다.
괜히 우직하게 돌격하는 레이칸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어줄 필요는 없었다.
자세한 것이야, 자신과 다른 사람이 생각하면 되는 것이니까.
* *
다음 날.
부사령관의 명을 받고 온 보급관은, 유렌과 그 수하들의 막사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건 대체?!’
수도에서 이 마탑과 그가 최근 들어 이름을 날린다는 소문을, 다른 중앙 귀족들에게 듣긴 했다.
그런데, 그걸 감안해도 이건 좀 아니었다.
보급관은 부사령관의 막사보다 배 이상 화려하고 번쩍이는 유렌의 막사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 보급관이군. 들어와도 좋습니다.”
그렇게 유렌의 허락을 받고 들어간 막사 안은 더했다.
갖가지 고급 가구들은 기본이고, 그 커다란 막사 안에 방이 몇 개로 나누어져 여러 마법사가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각종 편의를 돕는 처음 보는 마도구들까지 가득했다.
“……무, 물건들이 참 고급스럽군요.”
게다가 이뿐만이 아니었다.
비록 이것보단 못하지만, 일반적인 것보단 훨씬 고급인 막사와 텐트들이 20여 개나 이곳저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보급관이 그렇게 놀라고 있는 사이, 유렌은 재빠르게 그가 가져온 서류를 훑어보았다.
“그나저나, 앞으로 들어올 보급품들의 양이 적게 책정된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겁니까?”
“……아.”
보급관은 겨우 몇 분 전 가져간 서류를 다 살펴보고, 지적하는 유렌에 대해 다시 한번 놀랐다.
“저나 다른 고위 지휘관에게 보급품은 멀쩡하게, 하지만 하급 지휘관이나 그 이하 부사관급에게 내려갈 물품들이 너무 부실하군.”
유렌의 말이 점차 낮아지고, 짧아지기 시작했다.
“아, 그게 말입니다. 아직 보급품이 제때 도착 되지 않아…….”
“다른 곳엔 멀쩡하게 보내고도? 뭐, 이래선 보나 마나 물품의 질도 떨어지겠군. 좋은 것을 줄 리가 있나.”
“…….”
유렌은 코웃음 치며 서류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당연하지만 마도 왕국이라고, 모든 장교나 부사관까지 마법사는 아니다.
병사에서 뛰어난 실력이나 공적을 세우고 출세한 무인들이나, 타국에 비해 부족하긴 하지만 기사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갑옷을 닦아낼 모래와 기름의 수만 해도, 부족할 게 뻔히 보이네.’
몇몇 고위기사들이나 돈 많은 기사들이야 마도구로 처리한다고 해도, 모든 갑옷을 그렇게 정비할 수는 없는 법.
특히, 돈도 종자도 없는 부사관들에겐, 이건 치명적이었다.
굳이 모래와 기름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물품이 배치될 부대의 수보다 미묘하게 적게 배정되어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물품들이 더 도착하면 어떻게든 양을…… 헉!”
“…….”
유렌이 아무말 않고 조용히 노려보자, 겨우 1레벨 마법사인 보급관은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마력도 피우지 않았고, 심지어 그에게 살기를 품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냉철한 눈으로 노려본 것뿐이었는데, 보급관의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오고 가슴이 당겨져 왔다.
“죄, 죄……송…….”
“그리 사과할 필욘 없어. 네가 지시한 건 아닐 테니.”
날카롭던 유렌의 눈이 부드럽게 변하자, 보급관의 온몸을 떨리게 하던 공포가 사라졌다.
“흐음. 어차피 돌아가서 바로 부사령관에게 보고하러 갈 거지?”
“예?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 번 몸에 박힌 공포는 그리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법.
보급관은 벌벌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사령관에게 전해드려라. 비록 보급이 모자라긴 해도 감사히, 그리고 순순히 받겠다고. 곧 오시는 사령관에게도 아무 불평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 대신…….”
유렌은 험악하게 웃으며 보급관에게 말을 전했다.
그래, 보급이 좀 모자라거나 딸리면 뭐 어떻겠는가.
만약 자신에게 다른 방법이 없다면 부사령관을 두들겨 패서라도 고치겠지만, 그건 아니다.
지금의 자신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보다 훨씬 좋은 물품들을 마음껏 보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 대신 다른 것을 받아와야지.
‘별 볼 일 없는 부대 내 세력다툼 따위 그냥 넘기려 했는데.’
이렇게 나온다면,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순 없다. 아무리 보잘것없이 보여도, 일단 부사령관은 자신보다 직책이 위다.
적어도 적이랑 싸우기 전. 이쪽에게 더 장난을 못 치게 만들어야 해야 한다.
‘게다가, 겸사겸사 부대 강화도 하고.’
유렌은 자신의 말을 전하러 허겁지겁 떠나는 보급관을 보며, 진하게 미소 지었다.
* *
“아니, 지금 들리는 소리들이 진짜예요?”
왕국의 한 하급 부사관. 헤이든은 같이 불려온 다른 부사관들을 보며 물었다.
“이미 전입 갈 부대가 다 짜여 있었는데, 갑자기 재편성이라뇨!”
“……뭐, 언제나처럼 높으신 분들의 사정이라는 말이겠지.”
다른 부사관의 끄덕임에, 헤이든은 인상을 강하게 찌푸렸다.
“젠장. 아무리 그래도 전쟁 중인데, 이게 무슨 헛지랄이야!”
대놓고 투덜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동료 부사관들이 그를 말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심 그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소위 말하는 ‘높으신 분’들이 듣는 것을 두려워한 탓이다.
마법사들은, 어디에나 귀가 있으니까.
“말 좀 조심해라. 네가 실력임에도 아직 하급 부사관에 머무는 것은, 그 입 탓이야.”
“하하. 제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가 아니라요?”
중년의 부사관이 그렇게 면박을 주자, 헤이든은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확실히 그는 중년이 대부분인 다른 부사관들과는 달리, 이제 막 소년티를 벗은 젊은 청년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의 실력이라면 하급은 어울리지 않다는 걸 말이다.
“게다가 아저씨가 저한테 할 말은 아니잖아요. 아저씨야말로 실력은 있으면서, 상관 불복종으로 지금까지 하급에 머무르고 있는데.”
“……흥. 부하들을 뻔히 다 죽으라는 그런 명령을 내가 어떻게 듣고 있겠냐. 차라리 내가 벌을 받고 말지.”
“1계급 강등으로 끝난 걸 다행으로 아세요.”
헤이든은 동료들과 그렇게 떠들다가, 문득 주변을 둘러보곤 이상한 점을 느꼈다.
모인 부사관들이, 모두 실력으로 소문난 인재들이었다.
심지어 자신 같이 상관 평이 나쁘더라도, 실력만큼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이들이었다.
‘……우연인가? 아니면…….’
그렇게 모인 부사관들은, 곧 나타난 한 장교에게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모두 이번에 새 부대들로 전입들을 간다는 것. 알고 있겠지? 하지만 이번에 부사령관님의 특별한 배려로, 너희들에게 특별히 선택지를 하나 더 주게 되었다.”
장교는 그렇게 말하며, 새로운 전입 명령서를 나눠주었다.
“이곳으로 갈 사람은 그 밑에 사인을 하면 된다. 본래 배정받은 부대로 갈 생각이라면, 그냥 찢어버리도록.”
“……이게 무슨 장난질인지.”
“아니, 이런 식으로 부대를 편성하는 것이 어디 있어? 난생처음 들어보는군.”
헤이든과 부사관들은, 장교에게 들리지 않게 투덜거렸다.
자신들이 받은 명령서의 가장 위에는, ‘13연대’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13연대? 여기는 그 중앙에서 온 마탑의 밑으로 갈 부대 아냐? 아하. 그 마탑의 위저드가 부사령관. 그 대머리 놈과 다툼이 있나 보군.’
헤이든은 피식 웃으며, 서류를 찢어버리려 했다.
제대로 읽지도 않았지만, 뻔한 거 아니겠는가.
그 맘에 안 드는 부사령관과 다투는 것은 좋다 치더라도,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중앙 마탑의 애송이에게 명령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그 대머리가 별로여도, 군에서 오래 있던 놈이야. 아무 것도 모르는 생초보보단 100배 낫지.’
찌익-
그렇게 서류를 단숨에 찢어버리려는 그 순간.
턱-
옆에 있던 부사관이, 헤이든의 손을 붙잡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헤, 헤이든…… 내용을 잘 봐.”
“엉? 갑자기 왜 손은 잡고 그래요? 그리고 뭘 보라고요?”
“그, 제일 밑 부분. 연대장이 주겠다는 특별 보급품들과 포상금…….”
“……어?”
고위 장교가 부하들에게 사비로 포상이나 따로 보급해주는 것은 은근히 흔한 일이었다.
보통은 특식이나, 공을 세운 병사에게 자잘한 포상금을 내려주는 정도였지만.
“자, 잠깐. 이거 금화랑 은화가 바뀐 거 아냐?!”
“그, 금화가 이렇게나 많이?!”
“돈뿐만이 아니야. 세상에. 이런 갑옷까지…….”
그런데 여기에 쓰여 있는 금액은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각종 고급 물품들과 심지어는 마도구까지 보급품에 들어가 있었다.
조그맣던 술렁임은, 어느새 점점 더 커져 막사를 꽉 채웠다.
게다가 여기서만 하는 것이 아니었는지 옆 막사들도 동시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도, 돈으로 우릴 사려는 거냐……?!”
옆에 있던 부사관 중 하나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종이를 찢으려 했다.
하지만 곧 눈을 꽉 감더니, 잠시 후 한숨을 쉬며 서류 밑에 사인을 시작했다.
거절하기엔, 너무나 그 돈이 많았다.
“……제기랄!”
헤이든도, 그 옆에 있던 다른 부사관도.
모두가 펜을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힐끗 연대장의 이름을 살펴보았다.
13연대장. 5위계 위저드.
유렌 슈나이더.
그의 인품이 어떤지, 수도에서의 명성이 뛰어난지, 군대를 지휘하는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솔직히 불안했다. 경험 없고 멍청한 지휘관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갑옷들이랑 마도구가 주어진다면, 위험한 곳에서도 훨씬 오래 버틸 수 있는데…….’
하지만 불확실한 것과는 반대로, 거기에 적혀 있는 보급품들은 확실했다.
설령 여기에 적혀 있는 것에 절반만 받아도, 생존률은 크게 상승하겠지.
‘게다가 이런 대우.’
그리고 평상시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액과 보급품들에서 느꼈다.
그는 제대로 부사관인 그들을 ‘인정’ 해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그것이었다.
‘……젠장. 안 갈 수가 없잖아.’
심지어는 거액의 사망보상금까지 있는 것을 본 헤이든과 부사관들은, 거의 동시에 사인을 완료했다.
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 연대장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