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6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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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66화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65화. 제국의 마법사 (19)
왕국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유렌은 새벽부터 일어나, 자신이 묵는 여관을 나와 천천히 주변을 걸었다.
피해를 복구하고 있는 제도가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잊어버린 듯한 것이 있는 것 같은데.’
그 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에 빠진 유렌이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몇 번이나 생각해도 제도에서 할 일은 충분히 다 하였으니까.
“어차피 떠나는 건 오후니 훈련장에서 조금 몸을 풀어둘까.”
마침 새로 얻은 장비도 시험해볼 겸 말이다.
유렌은 발걸음을 돌려 여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 훈련장은 요 며칠, 제국의 귀족들과 기사들이 통째로 빌려 왕국의 사절단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물론 마법사들과 대련하거나 보고 배울 목적으로 기사들도 우글거리긴 했지만.
“오, 오셨습니까!”
“백작님! 안녕하십니까!”
훈련장에 도착한 유렌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는 사람들은 같은 사절단이나 마탑원이 아닌 기사들이었다.
이미 이른 새벽인데도 수십 명이 넘는 기사들이 몰려와 있었는데, 그들이 유렌을 보는 눈은 존경심으로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마법사라거나 왕국이라거나 그런 것들은 이미 그들의 마음속엔 없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오로지 엄청난 실력을 지니곤 이 제도를 구한 영웅만이 비칠 뿐이었다.
“아, 대장! 오셨습니까!”
그런 기사들을 제치고, 창을 빙빙 돌리는 메링겔이 앞으로 나왔다.
이젠 몸도 낫고, 유렌과 마법사들도 엄청나게 유명해졌으니 굳이 기사들과의 대련을 피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흐음. 확실히 다 나은 것 같군. 머리와 눈썹만 빼면 말이야.”
“큭…! 대장. 그 말은 아직 환자에게 너무 아픈 말이오. 그래도 이 정도면 제법 자랐잖습니까.”
메링겔은 투덜거리면서 이제 새파랗게 자라나고 있는 꺼끌꺼끌한 눈썹과 머리를 매만졌다.
그 망할 이프리트의 화염에 완전히 타버려 제법 걱정하긴 했다. 불에 타면서 화상을 입은 머리는 다시 자라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마스터의 초월적인 육체는 모근에도 포함되는지 다시 금세 쑥쑥 자라고 있었다.
자랑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던 메링겔은 유렌이 들고 있는 스태프에 눈이 갔다.
평상시와는 조금 달랐다.
“아, 대장. 설마 그게?”
“그래, 맞다. 이번에 새로 개조한 거지.”
유렌은 만족한 얼굴로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하단부터 중간까지는 예전처럼 새하얀 스태프였지만 그 이후부턴 은색의 금속이 표면에 달라붙어 있었다.
‘겉보기만으로 보면 저 은색 합금을 도금해 놓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 외엔 잘 보니 스태프의 가장 밑에는 그 도금으로 달라진 균형을 맞추기 위한 금속의 추 비슷한 것이 추가되어 있었다.
‘정말 저게 다인가? 딱히 마력이 크게 느껴지는 금속도 아닌데.’
메링겔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렌의 스태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황궁의 보물고라는 엄청난 곳에서 유렌에 직접 가지고 나온 것을 이용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절대로 이렇게 평범하게 덧붙인 것일 리가 없었다.
“흐음. 궁금해? 그럼 살짝 같이 몸 좀 풀어볼까?”
유렌은 그런 메링겔을 보며 물었다. 마침 유렌도 적절한 상대가 필요하던 참이었으니까.
“…두말하면 뭐 합니까? 대장, 자, 어서 붙어 봅시다!”
메링겔은 싱글벙글 웃으며, 크게 소리쳤다.
6레벨로 오른 새로운 대장과 그 새로운 무기를 상대할 수 있다는 기쁨에 찬 채.
* *
“세상에.”
“…저게 어떻게?”
채앵- 터엉-!
파앙- 쒸익-!
잠시 후.
훈련장에 모인 모든 기사들은, 유렌과 메링겔의 ‘가벼운’ 대련을 입을 벌리며 지켜보았다.
기사들의 실력은 각자 들쭉날쭉했지만, 정기사, 혹은 기사단의 간부 수준인 기사도 제법 끼어 있었다.
“저, 저 혹시 지금 제대로 보이십니까?”
“…아니. 나도 잘 보이지 않아.”
그런데 그런 그들조차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의 몸놀림을, 두 사람이 보여주고 있었다.
쒸익-
‘확실히, 상처는 다 나았군. 머리카락만 뺀다면.’
유렌은 자신의 목을 노리는 메링겔의 찌르기를 간단히 피하며, 그의 상태가 만전에 가까움을 눈치챘다.
“흡!”
그렇게 창을 피한 유렌은 이번엔 강하게 스태프를 휘둘렀다.
부우웅-!
예전보다 좀 더 묵직해진 스태프는 위험한 소리를 내며 메링겔의 왼쪽 어깨를 향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그에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유렌이 진심으로 휘두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를 피하기란 그다지 어렵지도 않았다.
서걱-
“…!”
아니, 않아야 했다.
분명히 몸을 돌려 피했을 것이 분명한 일격이 그가 입은 옷 일부를 자른 것이다.
“…허어?”
“왜, 벌써 지쳤나? 마스터가?”
“그럴 리가요. 대장. 그저 신기한 것을 봐서 그럴 뿐이지.”
메링겔은 인간의 한계에 달한 그 시력으로 분명히 보았다.
자신이 아슬아슬하게 피한 유렌의 스태프의 도금 부분의 일부가 저절로 날카롭게 변했다가 다시 돌아간 것을 말이다.
그것도, 자신이 겨우 볼 정도의 재빠른 스피드로.
‘…금속이 변형한다고? 이렇게나 빠르게?’
사실 유렌의 무기의 반경이 이리저리 변화하는 것은 지금까지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단,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력으로 만든 창날이나 망치 등의 이야기.
지금은 마치 금속이 자신의 의지를 가지듯이 순식간에 형태를 바꾼 것이다.
‘…이거 정말 황당한 무기를 다 보겠군. 상대하기가 참 골치 아파.’
쒹- 쒸익-
메링겔은 공격해 들어오는 유렌의 스태프를 몇 번 더 피했다.
‘이번엔 변했고, 이번엔 또 아니고!’
한 번의 찌르기에 금속이 변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 변화의 폭이 클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다.
변화의 과정도 날카로울 수도 있고, 넓게 퍼질 수도 있다.
뻐억-
“컥.”
여러 가지 변수들로 인해 머리가 복잡한 메링겔의 복부를 유렌의 스태프가 강타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가볍게 상태만 보려는 대련이었던 탓에 메링겔은 비틀거리면서 물러나는 데에 그쳤다.
“대장. 아무리 봐도 저거 반칙 같은데 말입니다.”
“싸움에 그런 것이 있나?”
메링겔은 쓴웃음을 지으며, 유렌의 손에 들인 스태프를 잡아먹을 듯이 바라보았다.
원래 유렌이 스태프 끝에 쓰던 마력의 무기는 그 자유로움이 최대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아무래도 금속을 매개체로 한 무기보단 내구성이나 위력에선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별 약점이 되지 않았던 것은 유렌의 그 무지막지한 마력과 컨트롤로 기존 무기들에게도 뒤지지 않게 치고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것은 다르다.
자유롭다는 장점과 단단하다는 금속의 장점을 모두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이번에 대장은 6레벨로 올라가 마력도, 마법의 힘도 대폭 늘었지. 그 마력을 저기에 쏟아붓는다면, 대체….’
메링겔은 전신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확신했다.
대장은 자신과 진지하게 대련을 벌인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는 것을.
“아~ 졌습니다. 대장!”
메링겔은 얌전히 두 손을 들며 뒤로 물러났다.
사실 조금 더 저 무기의 상태를 보고 싶었지만, 어쨌든 공개적인 대련이라 보는 눈이 많다.
진짜 위력을 보는 것은, 왕국으로 돌아간 후.
다시금 진심으로 대련을 신청해 볼 생각이었다.
유렌 역시 메링겔의 그 마음을 읽었는지 싱긋 웃으며 빠르게 물러났다.
“그래. 몸도 풀렸으니, 여기까지만 하지. 자. 혹시 다음에 올 사람 있나?”
“…! 제, 제가 상대하고 싶습니다!”
“아니, 접니다! 어젯밤부터, 이 훈련장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유렌은 그렇게 몰려든 기사들을 싱긋 웃으면서 박살 내가며 제국에서의 마지막 새벽을 즐겼다.
* *
“그럼, 연락해! 아니, 다음엔 내가 한번 가보지. 그 베르헨이란 곳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말이야.”
“오, 정말? 하하. 그래. 꼭 한 번 와줘. 내가 직접 구석구석까지 안내해주지!”
“제길! 3승 7패라니! 그렇게 비겁하게 이기고 도망가는 거냐?!”
“억울하면 왕국까지 와보던가. 거기에서라면 20전이든 그 이상이든 상대해줄 테니까.”
그날 오후.
제도의 고급 여관 앞은 많은 마차와 사람들로 시끄럽게 북적이고 있었다.
왕국의 사절단이 제도에 머문 시간은 열흘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하지만 사절단의 마법사들과 그와 친하게 지낸 기사들은 마치 친구와 헤어지듯 아쉬워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럼, 빠른 시일 내에 제가 왕국으로 향하겠습니다.”
“그때는 저도 꼭 같이 따라가도록 하지요.”
물론 아쉬워하는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3황자와 슈드나인 공작은 눈에 아쉬움을 가득 담은 채로, 유렌과 그 일행들에게 인사했다.
그들은 몇 번이고 말하고 강조해도 모자랄 생명의 은인들.
게다가 이제는 여러 계획이나 미래에 함께 가야 할 중요한 인물들이다.
유렌은 그들과 인사하고, 주변을 둘러보다 시민들까지 우르르 몰려와 그들을 지켜보고 있자 약간 놀랐다.
“가,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아내가 살았습니다!”
“제 아들도요! 저,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꼭, 다시 오시길 바랍니다! 다음번엔 저따위 불 괴물 따윈 없을 테니까요!”
제도의 시민들이 스스로 다가와 왕국의 마법사인 그들에게 감사하며 환송해주는 풍경이었다.
제도 내의 여론을 생각하면 사실 그다지 놀랄만한 광경도 아니었지만 유렌에겐 달랐다.
아무리 그래도, 20여 년 가까이 서로 죽고 죽이며 전쟁을 했던 전생의 기억은 아직 깨끗하게 아직 미쳐 씻어 내려가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권력자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맺은 호의가 아니라 시민들, 평민들이 거리낌 없이 보내오는 호의는 유렌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유렌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시민들에게 인사를 한 후 일행들과 함께 제도를 떠났다.
비록 제도가 한때는 자신의 옛 기억처럼 다시 불타오르긴 했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에 크게 만족하면서.
* *
유렌 일행이 제국을 떠나기 전날 밤.
왕국의 북동쪽에 있는, 신성국의 한 한가했던 시골 마을.
비록 2층 이상의 건물이 교회 하나일 정도로 단출한 마을이었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그곳은 이미 없었다.
그저 썩은 내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며, 온통 땅이 검붉게 짓눌린 죽음의 땅이 남았을 뿐이었다.
“커헉- 크흑-!”
그리고, 그곳에서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며 도주하는 한 그림자가 있었다.
마침 달조차 제대로 뜨지 않은 어두운 밤 날인 덕에, 회색 옷에 피를 잔뜩 묻힌 그 그림자 역시 제대로 눈에 띄지 않은 것이다.
후다닥 시골 마을에서 달려가던 그 그림자는, 어딘가 부상을 입었는지 절뚝거리며 잠시 멈춰 섰다.
“젠장. 신께선 참으로 나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엿을 먹이시려는군.”
장년 남자의 목소리를 낸 그림자는 커다란 나무 밑에 앉아 조용히 자신의 신성력을 높였다.
파앗-
그와 동시에 옆구리에 가져다 댄 그림자의 오른손이 잠깐 밝게 빛났다.
거기서 나온 따스한 빛은 그림자의 상처를 아물게 함과 동시에 그의 모습을 빛 앞에 적나라하게 비추어주었다.
나이는 대략 50대 정도로 되어 보이며 한없이 피곤해 보이는 한 장년의 남자가 피로 더러워진 회색의 성직자 복을 입고 있었다.
“젠장. 이게 당신의 뜻이십니까? 데르빗이시여?”
남자는 불경하게도 자신이 모시는 힘과 폭력의 신, 데르빗을 향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보통의 사제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 그의 경우에는 약간 달랐다.
어차피 자신은 데르빗에게 겨우 둘밖에 없으며 그중에서도 으뜸가는 사제다.
‘게다가 이런 엿 같은 상황에 던져 넣어버리셨으니 욕 정도는 드시는 게 서로에게 공평한 일 아니겠습니까? 망할.’
그는 깊게 한숨을 쉬며 다시 도망가기 직전 체력을 조금 보존했다.
비록 그는 성직자이며 사제이지만 모시는 신이 신인지라 회복마법은 그의 특기는 아니었다.
자신의 제자나 다름없는 두 번째 사제, 그녀는 그래도 회복마법이 제법 뛰어난 편이었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자상을 치료한 다음, 품속에서 한 장의 지도를 꺼냈다.
기왕 치료 마법으로 빛이 난 김에 그 잔불감으로 다시 한번 보기로 한 것이다.
“…지금이 대략 이쯤인가? 왕국으로 계속 가려면 저쪽이겠군.”
남자는 한숨을 푹푹 쉬어가며 지도를 품속에 넣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저 멀리에서 남자의 근방으로 무언가가 재빠르게 날아들었다.
쒸이익-!
퍼억-!
반은 우연으로 몸을 돌린 남자의 뒷 나무에 굵직한 석궁의 볼트가 틀어박혔다.
“이런 망할!”
남자는 재빠르게 앞으로 몸을 굴렸다.
퍼엉-!
그리고 그 순간, 볼트는 밝은 빛을 내고 폭발하며 주위를 불살랐다.
남자는 볼트가 날아온 방향에서 많은 인기척을 느끼며 인상을 있는 대로 일그러트렸다.
어느새 겨우겨우 따돌렸다고 생각한 추격자들이 다시 자신을 찾아 따라붙은 것이었다.
“데르빗이시여-! 제발, 쫌!”
타다닥-
남자는 발에 신성력을 쏟아붓고 정신없이 숲속을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쒸잉-!
퍼억-!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석궁의 볼트들이 귓가를 울리며 계속 날아들어 근방 나무들에 박혔다.
쩌적-
게다가 볼트를 맞은 나무가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위가 얼어붙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본 남자의 얼굴은 더더욱 처참히 일그러졌다.
‘젠장! 달의 교단 놈들까지 왔나! 하나도 모자라서 추가라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를 쫓는 추격 단체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었다.
남자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악의와 볼트들을 정신없이 피하며 동남쪽으로 빠르게 내달렸다.
‘젠장! 어떻게든 마도 왕국까지 가야 한다! 가서, 루시아 녀석을 만나야 해! 아니, 그 녀석뿐만이 아니라 그 남자도 반드시 만나야 해.’
남자는 머릿속으로 마도 왕국에 있는 자신의 제자이자 같은 신을 모시는 사제와, 그옆에 있다는 한 강대한 마법사의 이름을 떠올렸다.
‘유렌 슈나이더!’
이 위태롭기 짝이 없는 신성국의 상황을 알릴 남자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