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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56화

무료소설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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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56화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55화. 제국의 마법사 (9)

 

 

 

“아무 연락도 없이 갑자기 죄송합니다.”

“이것 참, 죄송합니다. 백작님.”

“아닙니다. 잘 오셨습니다. 안 그래도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제도 중심가에 있는 한 최고급 여관.

그곳의 방 중 하나에, 제국의 황자와 공작. 그리고 왕국의 백작이 둘러앉아 서로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만난 건 잘되긴 했지만, 확실히 좀 급작스럽긴 하군.’

유렌은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는 3황자를 바라보며, 기억을 떠올렸다.

‘3황자. 레뷰트. 분명 전생의 나와는 접점이 없었었지.’

유렌은 전생의 기억을 끄집어내 봐도, 3황자에 대해서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었다.

나름대로 황위 다툼을 벌인 1, 2황자와는 달리, 그는 항상 조용한 막내 황자였으니까.

‘차라리 1, 2황자는 기억에 남는 게 많지만.’

수많은 전공을 세우고 소드마스터까지 오른 전생의 그에게, 황족들이 그를 눈독 들인 것은 당연지사.

1, 2황자는 그를 회유하러 자주 만나러 왔었기에 자연스레 그들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전생을 통틀어 거의 이렇게 처음 만나는 3황자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는 대전쟁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대해서 전사해버렸으니까.

“그나저나, 정말 백작은 굉장하시군요.”

하지만 3황자는 특유의 사교성으로 유렌과 여러 가지 이야기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숙부님의 체질을 단숨에 고친 왕국의 마도구를 백작이 제작했다면서요? 저도 제국의 제품들엔 자부심이 있지만, 역시 마도구만큼은 당해내질 못하겠습니다.”

“과연, 그렇게 마수에게서 도시와 신민들을 위기에서 구하신 것이군요. 저도 제국의 황족 중 한 사람으로서, 백작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칭찬이 아주 줄줄 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며, 유렌은 3황자가 왕국에 가지고 있는 호의를 눈치를 챌 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칭찬도 칭찬이었지만, 왕국과 마법사들을 입에 담으면서도 제국 특유의 편견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까.

‘뭐, 100%는 아니지만.’

상대의 미세한 얼굴 움직임을 보면, 마음에도 없는 말을 아무래도 티가 나는 법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꿰뚫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황자는 진심에 가까워 보였다.

“하하. 백작과는 말이 잘 통하는군요. 재미있습니다.”

“영광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던 중, 드디어 3황자가 직접적으로 시작했다.

“저로선 백작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몰래 나올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3황자는 차분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유포니아 제국의 3황자, 레뷰트 데 유포니안은 제국과 왕국의 미래를 위해 크로타니아 왕국의 새 여왕이신 에레니안 크로타니아와의 혼약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저, 전하…!”

유렌과 슈드나인 공작의 눈이 커졌다.

아무리 비공식적인 자리라지만, 너무 직설적인 것이 아닌가.

“…그것은 전하 개인만의 의견이십니까, 아니면 제국의 뜻입니까?”

하지만 유렌은 놀란 가운데에서도, 재빨리 침착함을 찾으며 물었다.

즉, 황제도 같은 의견이냐고 물어본 것이었다.

유렌의 그 날카로운 질문에, 3황자는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슬쩍 웃었다.

“지금 일단은 저만의 의견입니다. 다만, 황제께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시는 모양입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렇더라도 왜, 이렇게 저에게 알려주시는 겁니까?”

유렌의 그 말에 황태자는 담담히 대답했다.

“공식적으로 발표가 되기 전에, 왕국의 가장 중요한 인물에게 제 진심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

“그리고, 백작을 직접 제 눈으로 살펴보겠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황자의 그 솔직한 말에, 유렌은 그가 굳이 왜 찾아와 이런 말을 했는지 납득이 갔다.

확실히, 공식 발표 전에 이렇게 얼굴을 보고 말을 하는 편이 더 진실성이 있긴 했다.

게다가 만약 황제의 마음이 바뀌더라도, 본인은 왕국과 척지고 싶지 않다는 의지 표명이기도 했고 말이다.

‘거기에 상대를 살펴본다라.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유렌이 살펴볼 것 중엔 황자의 인물됨도 있었지만, 3황자에게 엘프가 접근했는지 역시 중요한 문제였다.

두근-!

유렌은 조용히 심장의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그 마력의 기운을 밖으로 새지 않게 최대한 억눌렀다.

그리고 그 마력을 눈 쪽으로 돌려, 양 눈 전체를 마력으로 감쌌다.

우웅-

다행히도 공작과 황자는 그다지 수련을 쌓은 사람들은 아니어서인지, 유렌의 마력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작지만 원활하게 돌아가는 두 사람의 마력이 유렌의 눈에 비쳤다.

‘…음?’

하지만 유렌은 공작과는 달리, 황자의 마력에서 조금. 아주 조금의 위화감을 느꼈다.

반짝-

정순한 갈색의 마력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은색의 기운을 느낀 것이다.

“백작?”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유렌에게, 3황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 죄송합니다. 급작스러운 말씀에 제가 잠깐 여러 생각에 잠겼었군요.”

“하하. 그 왕국의 영웅이라는 백작을 놀라게 하다니. 올해 제 최고의 성과군요.”

하지만 그 은색의 자그마한 반짝임은, 순식간의 유렌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치 신기루처럼, 원래 없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말 찰나의 반짝임. 하지만 유렌은 그것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우웅-

황자와 공작 몰래 등 뒤로, 공간을 약간 비틀어 어떤 물건을 꺼낸 것이다.

그리고 약 10여 분 후.

“…으음, 백작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겠군요. 이만 슬슬 가봐야겠습니다. 숙부님?”

“네. 먼저 나가 마차를 준비하겠습니다.”

황자가 그렇게 슬며시 눈치를 주자, 공작은 얼른 혼자 밖으로 나가 이동 준비를 했다.

그리고 공작도 없는 그 잠시간의 사이.

황자는 유렌에게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만약 혼약이 성사된다면, 전 양국의 교두보가 되어 서로 싸우는 일이 절대로 없게 만들겠습니다.”

“…!”

“그러니 백작. 절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백작도 두 왕국의 우호에 진심이라고 들었으니까요.”

“노력하겠습니다.”

“하핫. 그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유렌은 진심이 담긴 상대의 그 말에, 밖으로 나가려던 황자를 불러 세웠다.

다소 고민했지만, 지금의 말로 확신했다.

이건 그에게 넘겨야 할 물건이었다.

“전하, 이것을 받아주시겠습니까?”

“으음? 이건…?”

유렌이 손에 담긴 작은 마도구에, 황자의 눈이 크게 떠졌다.

 

* *

 

다음 날 오후.

“입궁? 지금부터?”

“예. 황궁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최소 3일 이상은 걸린다던 예전의 말이 무색하게, 왕국의 사절단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황궁에 입성할 수 있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난리도 아니군. 더 좋은 방향이지만,’

네루닌 자작에게 받은 고대의 마법서와, 황실에 대한 정보를 번갈아 빨리 읽던 유렌은, 그 소식에 미소를 짓고 황궁으로 향했다.

단, 아무래도 사절단을 맞는 것을 서둘러서인지 사절단 전체를 맞이하는 거대한 행사나 파티는 없었다.

그저 단장인 유렌과 몇몇만을 불러, 황제와 몇몇 중신들만이 작게 그들을 맞이하는 자리인 것이다.

‘뭐, 오히려 이게 낫지만.’

유렌은 미소를 지은 채, 평소보다 조금 긴장해있는 툰드라와 함께 황궁에 입궁했다.

“존귀하신 유포니아 제국의 황제께, 왕국의 사절단이 인사드립니다.”

사절단의 대표 격인 유렌과 툰드라는, 그렇게 고개를 숙이며 황제에게 예를 취했다.

곰곰이 그들을 보던, 엄격한 인상의 장년의 황제는 심술 맞게 입을 열었다.

“음. 반갑군. 그래. 여기까지 굳이 온 이유가 뭔가?”

하지만, 딱 봐도 위압감이 넘치는 황제의 대답은 너무나도 짧고 날카로웠다.

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다른 나라의 사절단을 맞이하는 자세는 아니었던 것이다.

“…으음.”

그런 그에게 익숙해졌을 중신들조차 조금 당황했을 정도니, 원래부터 긴장하고 있었던 툰드라야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유렌만은 달랐다.

그는 황제의 이런 면을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오히려 얇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히려 폐하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저희에게 딱히 물을 필요도 없이 말입니다.”

“…! 유렌?!”

안 그래도 다소 새하얗게 변했던 툰드라의 얼굴이, 방금 유렌의 말로 더욱 하얘졌다.

상대는 제국의 황제다. 

아무리 저쪽에서 먼저 예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지만, 애초에 신분과 입장 자체가 다르다.

저쪽은 그저 나중에 작은 사과 하나로 넘어갈 것이라면, 이쪽은 물리적으로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것이다.

“…흐하하핫-!”

하지만 새하얗게 질린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황제는 크게 폭소를 터트렸다.

“크흐흐. 그래. 이거 내가 실례를 범했군. 그래. 내가 알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물었지. 음.”

황제의 그런 모습에, 유렌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예전과 똑같으시군.’

현 제국의 황제 - 레이들리 2세는 전생에 유렌이 모셨던 황제.

비록 소드마스터가 된 후. 그러니까 고위직으로 오르고 얼마 안 가 세상을 떠나 아주 오래 모신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알만큼은 알았다.

“역시. 왕국의 영웅이라고 불릴만하군! 내 시험하는 행동. 사과드리네.”

“폐하도, 참.”

“왕국의 사절단에게까지 이러시니….”

그래, 황제는 저런 식으로 약간 무례하게 나가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는 좋지 못한 버릇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 황제가 제일 좋아하는 반응은, 아예 이쪽도 화통하게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예전에 논공행상 때. 누군가 장난을 친 폐하에게 당돌하게 대들었다가 상을 받은 적도 있었으니.’

황제는 한참을 껄껄 웃다가,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 우리 레뷰트, 즉 3황자를 알아보러 왔겠지. 과연 어떠한 놈인지 재보려 말이야. 아닌가?”

“…분명 혼례에 대한 소문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로 인해 왕국에서 3황자님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큭큭. 이놈 정말 맘에 드는군.’

황제는 유렌이 사실상 인정한 그 말을 듣고, 올라간 입꼬리를 간신히 찍어 눌렀다.

아무리 그래도, 외국에 사절단 앞에서 헤벌쭉 웃는 황제는 좀 아니지 않은가.

저 왕국의 영웅이라고 나타난 놈은 오늘 처음 보는 것이지만, 그야말로 황제의 맘에 쏙 들었다.

저 당돌하면서도, 그 와중 선은 넘지 않게 지키는 예의.

소문으로 들은 무력은 말할 것도 없고, 마법사라 그런지 머리도 잘 돌아간다던가.

‘제국엔 이런 놈이 부족하지!’

무력이 강하면 돌머리고

머리가 쓸만하면 약해 빠졌다.

물론 둘 중 하나라도 확실하면 쓸만하긴 하지만, 문제는 돌머리에 약해빠진 것들까지 자꾸 많아지고 있었다.

‘왜 왕국에만 저런 인재가 나와선.’

하지만 황제는 그 직책에 어울리는 이답게, 즐거워하면서도 머리 한편으로는 앞으로 재빠르게 분석을 시작했다.

‘저런 놈이 권력의 중추에 서게 되면, 왕국은 빠르게 강해질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안 그래도 경제력은 이미 어느 정도 차이가 난다. 

거기에 자신의 사촌, 슈드나인 공작. 그 녀석이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싱글벙글 웃고 다니는 것에서, 그곳의 마도구와 기술이 생각보다도 훨씬 발달했음을 다시금 알았다.

게다가 저런 놈이 모시고 있다면, 아마 새로운 여왕도 보통은 넘길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편으로 삼든가, 아니면 지금 여기서 돌아가지 못하게 죽여야 했다.

“그래, 만나 보니 어떻던가? 내 귀여운 막내아들은.”

“훌륭하셨습니다. 진심입니다.”

역시 3황자와 만난 것을 알고 있었나. 

아니, 애초에 황제가 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유렌은 그저 자신이 느낀 그대로 말했다.

그래. 분명 3황자는 훌륭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제국과 왕국의 화해를 이룰, 그런 혼담의 대상으론 두 할 나위 없이 말이다.

“그래, 그럼 그 혼담이 ‘긍정적으로 검토’되길 나 역시 바라네.”

“…!”

황제의 그 말에, 중신들과 툰드라가 얼어붙었다.

그래, 저 말은 결국 3황자의 혼인 신청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껏 대단한 전쟁은 없었지만, 종종 작은 국지전은 벌어지는 사이 나쁜 두 나라가 화해의 길을 마련한 것이다.

‘아직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야. 하지만….’

그래. 아직은 양국의 사이가 확 좋아진 것은 아니다.

혼담이 확정된 것도 아니며, 되더라도 무슨 일이 있어서 다시 두 나라가 갈라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유렌의 전생처럼 둘로 갈라져 대전쟁을 벌일 확률은 일단 확실하게 내려간 것이다.

그것도, 제국 황제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로 말이다.

“그 말씀, 정말로 감사하기 짝이 없습니다. 폐하.”

유렌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전생의 옛 주군, 황제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지금의 육체로, 그에게 자신의 스태프를 휘두를 미래는 없기를 바라면서.

 

* *

 

그날 밤.

제국의 3황자. 레뷰트는 외각의 궁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역시 슈나이더 백작이군. 폐하의, 아버지의 마음에 그렇게 쏙 들다니.’

어젯밤. 황제의 은근한 뒷압박으로 직접 찾아간 유렌 슈나이더.

그에 대해 안 순간, 왜 제국에는 그 같은 인재가 없냐고 저절로 한탄이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오늘.

결국 황제의 선택이 왕국과의 화친으로 결론이 내어진 것도, 그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했으리라.

‘왕국인가.’

사실 3황자는 어릴 적부터, 마법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다.

그 관심은 자연히 마도 왕국에 대해서도 옮겨갔다.

그래서 그 마도 왕국의 성지. 베르헨에서 산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행히 황제도 마음을 정했으니 이젠 딱히 숨길 것도 없이 갈 수 있었다.

‘…너무 성급히 굴지 말자.’

이제 정식으로 구혼을 신청하는 것이니 결혼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물론 자신과 제국보다 더 좋은 혼례처는 찾기가 매우 힘들 것이니 확률은 이 높긴 하겠지만.

‘내일은 슈나이더 백작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절단들이나 만나러 가볼까…?’

3황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얇게 웃으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시야가 빙글 – 돌았다.

“…어?!”

시야가 노랗게 변하며, 온몸의 감각이 괴상하게 변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서 엄청난 크기의 목소리가 반복되어 울리기 시작했다.

복종하라- 라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말이다.

“크…억!”

3황자는 최대한 저항하려 이를 악물고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이것은 보통의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목소리들은 점점 황자의 마음속으로 깊게 파고들어 왔다.

“호오. 역시나 제법 버티고 있군. 하등 생물 주제에 말이야.”

“…!”

덜컥-

아무도 없던 3황자의 방에서, 한 푸른 머리를 지닌 미남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발 한쪽에서 덜컥거리는 소리를 낸 그는, 마치 당나귀처럼 귀가 길쭉했다.

“…에…엘프?! 크윽!”

“역시 나름 황족은 황족이라는 건가? 제법 수고가 들었어. 뭐, 그래 봐야 소용없지만.”

“…!”

3황자는 엘프를 본 순간, 머릿속에 잊고 있던 기억이 한 번에 떠올랐다.

최근 일주일간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장소에 가 있거나, 뜻 모를 말들을 계속 중얼거린 기억들 말이다.

‘크…윽! 왜, 왜 그것들은 왜 잊고 있었지? 아니, 그리고 이 엘프는 대체!’

푸른 머리의 엘프 – 페르듄은 괴로워 바닥을 구르는 황자를 보며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다른 눈을 피해 저주를 천천히 걸었어도, 설마 인간 따위에 일주일이나 걸릴 줄은 몰랐지. 뭐, 오늘로 그것도 전부 끝이다.” 

페르듄은 품속에서 커다랗고 검은 마석을 하나 꺼내, 곧바로 3황자의 머리에 문댔다.

“자. 이제 새롭게 눈을 떠라. 하등 생물아.”

“으으으윽-!”

3황자의 숨을 죽인 비명이 들려온 1분 후.

눈을 감고 누워 있었던 3황자는, 엘프가 만족스럽게 바라보는 가운데, 천천히 일어나 눈을 떴다.

그리곤 아무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그 밤색의 눈동자 안에, 뚜렷한 은색 빛을 품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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