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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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6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54화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53화. 제국의 마법사 (7)
“여기가 제국의 수도네. 나도 오는 것은 처음이야.”
“생각보다 훨씬 큰데~? 별 볼 일 없다고만 들었는데~.”
적갈색의 커다랗고 드높은 성벽이 거대한 대도시를 전부 감싸고 있는 웅장한 그 모습에, 일행들은 모두 제각기 감탄사를 터트렸다.
제국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제도 예루니아.
비록 최근 100여 년 동안 급속도로 발전한 왕국의 수도 베르헨에 비해 화려함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백 년 이상 제국의 중심이자 가장 거대했던 도시는 드넓은 초원 한복판에 우뚝 솟아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맞슴다. 역시 소문이란 건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될 것 같슴다. 특히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거나 사이가 안 좋은 측에 대한 소문은 더더욱 말임다.”
마차 안에서 레이칸이 고개를 커다랗게 끄덕이며 말하자, 다른 일행들 역시 공감했다.
기사들이 마법사들에 대해 여러 가지로 잘 못 생각하는 것도 분명 많았지만, 사실 그 반대의 경우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래. 베르헨이 마법사들의 성지라면, 이곳은 기사들의 성지니까.”
유렌은 자신의 머리색과 같은, 거대한 적갈색의 성벽을 바라보며 그리움이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곳은 제국의 심장. 말 그대로 기사들의 성지였다.
전생의 자신에게도 이 도시만큼은 특별했었으니까.
“어떻습니까. 제국의 수도는.”
그리고 옆에서 지금까지 함께 온 슈드나인 공작이 입을 열며 다가왔다.
그의 그 두 눈엔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멋지군요. 베르헨과는 다른 또 다른 품격이 느껴집니다.”
유렌의 진심 어린 그 말에 공작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저도 베르헨에 처음 갔을 땐 정말 놀랐습니다. 그곳도 정말 멋진 곳이었죠. 하지만 역시 제국인이라면 이 도시. 예루니아에 대한 자부심은 어쩔 수가 없군요.”
그거야 물론 유렌 역시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자, 그럼 가시죠. 제가 숙소는 좋은 곳으로 준비해놨으니까.”
“감사드립니다. 공작님.”
“하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법률상 저의 별궁에 초대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죠.”
제국의 법률에선 다른 나라의 공식 사절단을 귀족 개인 소유의 곳에서 묵게 하는 것은 엄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다른 나라와 한 가문의 귀족이 과하게 친근해지는 것은 황궁에 좋지 않은 일이니까.
“자, 이쪽입니다.”
공작은 자신 있는 얼굴로 일행을 안내했다.
이틀 전. 공작은 제도에 도착하기 전에 왕국의 사절단의 머무는 곳으로 지정한 숙소를 미리 사람을 보내 듣고 왔다.
-으음? 이곳은…?
그 숙소는 나쁘지 않은 숙소였지만, 그렇다고 최고급이라고 하기엔 꽤나 부족한 곳이었다.
워낙 급작스럽게 꾸며진 사절단이고, 숫자도 상당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슈나이더 백작을 이런 곳에? 음, 이건 안 되겠군!
하지만 공작은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곧바로 그의 인맥과 자금을 동원, 바로 최상급 여관을 통째로 빌려 황궁에 신청했다.
공작이 인식하기로, 유렌은 현재 제국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다.
제국에 호의를 가지고 있는, 그래서 3황자와의 혼약을 밀어줄 수 있는 여왕의 최측근이지 않는가.
게다가 그걸 떠나서라도, 그는 제국의 한 도시를 구해줬으며, 지금 자신이 끼고 있는 땀 한 방울 나지 않게 하는 마도구를 개발한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감사와 호의의 감정도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였으니, 제국의 자랑인 이 도시에선 가능하면 좋은 장소에서 묵게 해주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아, 저곳은 제도에서 가장 큰 태양신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저 하얀 저택은 한 후작의 저택인데 제국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이 난 집입니다. 아, 그리고 저기는…!”
“호오. 멋지군요.”
공작은 신이 나 이끌고 가는 유렌에게 제도의 이곳저곳을 설명했다.
이제 자신도 남들의 눈치를 안 보고, 저런 곳들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들뜬 것이다.
“…아!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이 나 버렸군요.”
그러던 와중, 공작은 자신이 혼자 너무 신난 것을 깨닫고 유렌에게 사과했다.
처음 와보는 그에게, 마구잡이로 말을 해봐야 알아먹기 힘들겠지.
“아닙니다. 정말 멋진 곳들이군요.”
하지만 유렌은 그런 공작에게 싱긋 웃어주었다.
옛 아련한 추억들이 모두 떠오른 덕이었다.
‘저 태양신의 교회는 무너져 내렸고, 후작의 하얀 저택은 불에 깡그리 타버렸었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풍경들의 옛 모습에 유렌은 추억을 음미하며 숙소를 향해 나아갔다.
“…비켜…내가…먼저…!!”
“…이곳이…정말…확실…?!”
하지만 유렌의 귀에, 서로에게 소리치는 기사들의 큰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꽤나 거리가 있어 유렌의 귀로도 모든 것이 들리지 않았지만, 목소리에 마력이 은은히 담겨 있는 것이 분명 기사나 그에 준하는 사람들임이 분명했다.
파앗-
유렌은 그 즉시 마력을 탐지해 지금 자신이 향하는 곳에 상당한 수의 기사들이 모여 있음을 깨달았다.
‘기사들? 잠깐. 이건 혹시…?’
유렌이 생각에 잠겨 있을 그때, 공작은 어느덧 최고급 여관에 거의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자, 저쪽입니다.”
공작은 웃는 유렌과 일행을 재촉하며 마지막 골목을 돌았다.
그래, 분명 이곳은 조용하고도 한적한 고급 택지에 위치한, 크고 멋들어진 여관….
“어?”
…이 있긴 했다.
그 앞에 덩치가 우락부락한 기사들 수십 명이 우글거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왔다!”
“오오! 저들인가!”
그리고 그 수십 명의 기사들은, 단체로 큰 소리를 내며 사절단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맨티코어 기사단의 4석! 재크닐 유리아스라고 합니다! 여러 소문과 드높은 무명은 이미 들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대련을 요청하고 싶…!”
“이봐! 내가 먼저라고! 전 화이트 울프 기사단의…!”
“어이! 밀지 마! 순서를 지켜!”
쾅-! 쿠웅-!
기사들은 서로 드잡이하며, 한 발이라도 빨리 대련을 신청하려 몸싸움을 시작했다.
전신을 마력으로 감싸며 서로 쿵쿵거리는 그 모습을 보고, 공작은 넋을 잃었다.
“아니, 귀한 손님분들 앞에서 지금 이게 뭐 하는 짓들…!”
“하하핫!”
공작이 나서서 대로하기 직전.
유렌은 자신도 모르게 그 기사들을 보며 쿡쿡 웃고 말았다.
“슈, 슈나이더 백작?”
그래 맞다.
기사들은 원래 이런 인종들이었다.
무례라는 걸 저들도 모르는 것은 아닐 터.
하지만 상대가 강하다는 소문이 있다면, 자신도 모르게 달려와 대련을 취하는 인종들 말이다.
유렌은 기사들의 그 불타는 열정의 눈에서, 이미 어느 정도의 처벌은 각오하고 왔음을 알았다.
전생의 자신이 소드마스터에 오르기 전엔 이랬듯 말이다.
‘물론 그때는 전장에 있던 터라 조금 다르긴 했지만,’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더욱, 강함을 탐했던 기억이 났다.
조금이라도 전장이 소강상태가 되어 여유가 났을 땐, 출신이 어디든. 그것이 용병이든 성직자든 상관없이, 강하다는 사람에게 항상 대련을 신청하고 다녔으니까.
그래서, 유렌은 지금 이들의 이 무례에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반가웠다.
비록 그는 이런저런 일로 바빠 그들을 상대할 시간까진 없었지만, 서로에게 딱 좋은 상대가 있었다.
“레이칸.”
“옙!”
덜컹-!
유렌의 부름에, 뒷 마차에 있던 레이칸이 문을 열고 재빨리 그에게로 달려왔다.
쿵- 쿵-!
“어어? 마, 마법사라고?! 저게?!”
“더, 덩치가 어떻게 저렇게?!”
마차에 수그리고 있었던 레이칸이 밖에 나오자, 기사들의 눈길이 모두 그곳으로 쏠렸다.
비록 행동은 좀 철이 없어 보였지만, 그들은 거의 대부분이 베테랑 기사들.
잠깐 본 것만으로, 레이칸의 육체가 얼마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수준인가를 꿰뚫어 본 것이다.
“숙소에 짐을 푼 후, 나 대신 상대해 드려라.”
“옙!”
“슈, 슈나이더 백작. 굳이 그럴 필요까진….”
공작이 말리려 했지만, 유렌은 싱긋 웃으며 기사들을 둘러보았다.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강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몰려온 자들입니다. 뭐 여기서 이러는 것은 폐가 되겠지만, 적당한 장소를 잡으면 문제없겠죠. 거기, 혹시 이 근처에 적당히 대련할만한 곳들을 알고 있습니까?”
“아, 그게….”
기사들은 이쪽에 이상할 정도로 호의적인 유렌에게 당황하면서도, 여기서 멀지 않은 한 훈련장을 빌려 놨다고 말했다.
그래. 그들이 아무리 대련에 눈이 멀었어도, 척 봐도 돈이 듬뿍 들어간 최고급 여관의 정원을 박살 내고 싶진 않았겠지.
저러다 정원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갑옷까지 저당 잡아야 할 테니까.
“그럼, 먼저 그곳으로 가주십시오. 조금 후에, 이쪽의 일행을 보낼 테니까요.”
유렌의 그 흔쾌한 모습에, 모든 기사의 눈들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들은 당연히 어느 정도 욕을 먹거나 문전박대를 당할 것도 각오하고 온 것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왕국의 마법사다. 소문에 의하면 그들은 모두 성격이 괴팍하다고 했으니 더더욱 그랬고.
하지만 이게 뭔가. 오히려 제국의 귀족이, 아니 대련을 신청한 자신들이 더 당황할 정도로 친절하지 않은가.
“…감사드립니다!”
기사들은 그렇게 꾸벅 감사의 예를 표한 채, 다시 우르르 자신들이 빌린 훈련장으로 발을 옮겼다.
“마법사라고 다 괴팍한 건 아니군.”
“저 유렌이라는 마법사. 엄청난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어? 조금 아쉽긴 하군.”
“저 레이칸이란 친구. 너보다 훨씬 체격이 좋던데? 기대되는데?”
그들 생전에 거의 처음으로, 왕국의 마법사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 *
약 1시간 후.
최고급 여관에 짐을 푼 유렌과 사절단들은, 황궁에서 온 전령에게 황제는 최소 며칠 후에나 만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최소 3일이라. 하긴 황제도 워낙 바쁘긴 하겠지.’
사실 황제가 그들을 딱히 괄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본래 사절단을 맞이하기 위해 어느 정도 준비가 필요했고, 더군다나 이번 사절단은 정말 갑작스럽게 결정되어 나온 것이기에 오히려 며칠의 대기 정도면 빠른 편이긴 했다.
다만 유렌은 확실히 이 며칠의 텀이 마음에 조금 걸렸다.
그 빌어먹을 귀쟁이들. 즉 엘프들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음은 분명했으니까.
‘내가 황제를 며칠 늦게 빠르고 만나는 것에 따라, 놈들의 계획이 달라질까?’
솔직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일단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알아볼 수밖에.
스르륵-
유렌은 공작을 보낸 뒤, 눈에 띄지 않은 색의 후드로 옷을 바꾼 채, 여관의 밖으로 나왔다.
적당한 옷으로 갈아입은, 루시아와 함께 말이다.
“자, 그럼 어디로 가실 겁니까?”
본래는 유렌 혼자 가려 했지만, 모든 일행이 그 혼자는 안 된다면서 필사적으로 말려 루시아가 따라붙은 것이다.
-아무리 강해도, 혼자는 좀 그래. 내가 같이 가도록 할게.
-내가 가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나오기 전, 툰드라와 셀레나가 그렇게 서로 가겠다고 주장했지만, 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제가 가겠습니다. 두 분은 기사들이랑 대련이라도 해주십시오.
바로 루시아가 스스로 나선 것이었다.
유렌은 그런 그녀를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같이 갑시다.
-으음~. 알겠어요~.
-…뭐, 루시아라면 괜찮겠죠.
의외로 셀레나와 툰드라도 루시아가 나서자 금방 물러섰다.
그렇게 여관 밖으로 나온 둘은, 유렌의 주도하에 상점가로 발을 향했다.
“베르헨도 그렇지만, 이 도시도 상당히 발달했군요.”
평상시보다 훨씬 즐거운 얼굴을 한 루시아는, 상점가를 돌며 감탄한 듯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쇠락이니 뭐니 말은 많아도, 제국 또한 대륙의 2강. 그곳의 중심이니까요.”
루시아는 그녀가 입은 옷이 이리저리 펄럭일 정도로, 주변을 활기차게 살펴보았다.
비록 베르헨에 머물기 시작한 것이 몇 달이 지나 조금 익숙해지긴 했지만, 거의 평생을 시골이나 산에서 산 그녀였다.
이런 대도시는 아직도 여러 가지로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쪽으로.”
유렌은 루시아와 함께 북적북적한 상점가를 벗어나, 다소 한산하고 지저분한 골목이 많은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골목들을 자유자재로 헤치고 다니자, 뒤에서 따라가던 루시아의 눈이 놀라움에 커졌다.
“여기에 오신 적이 있으십니까?”
“…뭐, 옛날에 말이죠.”
유렌은 그렇게 대답하며, 자신이 목표로 하던 크지 않은 건물을 발견하곤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이 도시가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웬 낡아 빠진, 시끄러운 술집을 가리키면서 말이다.
* *
“크하하하핫-! 마셔! 마셔! 오늘은 다 내가 쏜다!”
“오오! 로니, 이 친구! 멋지군! 그래! 남자가 시원하게 한 번쯤은 쏴야지!”
“끄어억-. 여기! 술 더 가져와!”
“조금 기다려! 지금 바쁜 거 안 보여? 이 망할 주정뱅이야!”
“그게 손님에게 할 말이야? 이런 빌어먹을!”
쿵-!
한 빈민가 근방의 지저분한 한 술집.
주로 하위층 노동자들이 주로 모이는 이곳은, 오늘도 여전히 시끌벅적하며 주먹과 술병이 오갔다.
그런 혼란 속에서, 한 덩치 큰 청년은 서로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있는 취객들을 말리며 떼어놓았다.
“아, 아. 그만! 그만 싸워! 아저씨들. 더 하겠다면 나가서 기사들처럼 정식으로 결투나 하던가!”
“끄억-! 이, 이거 놔!”
“젠장! 내가 이래 봬도 한때는 기사의 종자였다고!”
술에 취한 두 중년의 술꾼이 각각 악을 썼지만, 청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 그래. 아저씨가 종자였으면, 난 정 기사였겠다. 이봐. 아저씨들. 아무리 여기가 별 볼 일 없는 술집이라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게 물건들을 부수면 다른 사람들이 술을 못 마시잖아. 엉? 그러면 안 되지!”
꽈아악-
“히익!”
“아, 알겠어. 알겠다고!”
청년이 우람한 팔에 힘을 조금 주자, 두 취객은 식겁해서 가게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야 이 자식들아! 돈은 내고 가야지! …달아둘 테니 그리 알아!”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괄괄한 덩치 큰 여주인은, 그들의 뒤통수에 호통을 날리더니, 곧 씨익 웃으며 청년을 보았다.
“잘했어. 제크. 이젠 정말 많이 익숙해졌는데?”
“하하. 그럼 다행이네요.”
청년- 제크는 쓴웃음을 지은 채,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술집 전체를 둘러보았다.
‘그래. 이제 이런 생활도 3개월째인가.’
3개월 전.
그는 본디 제법 잘나가는 뒷골목 조직의 간부였지만, 그의 조직은 하루아침에 라이벌 조직에게 박살 나고야 말았다.
-비, 비겁한 놈들! 감히 이런 더러운 함정을 파?!
-헹! 양지도 아니고, 여기서 비겁을 찾나?!
그때, 거의 모든 조직원들이 목숨을 잃거나 잡혀 팔려나갔다.
다만 제크, 아니 당시엔 다른 이름이었던 그만은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때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망연자실한 그에게, 다른 누군가의 손길이 내려왔다.
-다, 당신들은 누구야?!
-우린 여기에 새로운 조직을 세울 사람들이다. 네 사정은 이미 알고 있지. 우리 조직에 들어오지 않겠나? 우린 너 같이 이곳 사정에 밝은 자들이 필요하다. 얼굴도 목소리도 모두 바꿔주지.
-…!
제크는 크게 고민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방법도 없을뿐더러, 그 라이벌 조직에 대한 원한도 여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3개월.
‘설마 벌써 원수를 갚게 될 줄은.’
제크를 영입한 조직은 막대한 자금과 신기한 마도구들을 무기로, 엄청난 기세로 세력을 키워갔다.
겉으로는 이 술집의 경호원. 뒤에서는 정보원으로 일하게 된 제크는 2주 전.
그 자신이 속한 이 조직이 라이벌 조직까지 죄다 박살 내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 됐나.’
솔직히 조금 김이 샌 것은 사실이지만, 적의 간부 놈들의 시체를 보자 마음속에 있던 원한도 풀렸다.
앞으로는 이 조직의 일원으로서, 살아가야지.
끼이익-
제크가 다시금 그렇게 다짐하는 그 순간,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의 두 남녀가 술집으로 들어왔다.
‘…’진짜 손님‘인가?’
얼굴은 가리고 있었지만 훌륭한 체격까지 가릴 수 없는 그 남자는, 여자를 데리고 곧장 제크에게로 다가왔다.
“이곳의 스테이크는 바싹 익히나?”
‘역시 손님이군.’
제크는 이 술집의 메뉴로 있지도 않은 스테이크의 익힘을 묻는 손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바로, 이 술집과 이어진 곳을 열어달라는 암호였기 때문이다.
“값은 어떻게 치를 겁니까?”
“여기 있다.”
슥-.
그리고, 질문 후 이렇게 내미는 동전은 신분증이다.
제크는 무심히 남자가 내민 동전을 받았다.
“…!!”
그리고 그것을 본 순간, 요 최근, 가장 크게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건…!’
남자가 내민 것은, 바로 이 조직에서 가장 최상위 등급의 증표.
가장 중요한 사람에게만 내준다는, 가운데에 자수정이 박힌 은보라색 은화였다.
그로서도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제크는 놀라 재빨리 둘의 모습을 다시 한번 살폈지만, 역시 특별함이 느껴지지 않는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이, 이쪽입니다….”
“그래. 고맙군.”
제크는 정중하게 두 사람을 안쪽의 한 비밀 통로와 이어지는 방으로 안내했다.
‘…이, 이 사람들은 대체?’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궁금증을 애써 억눌러 가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