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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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07화
제2장 적응 (3)
소드룸을 나와서 통로를 따라 다른 방으로 향했다. 무진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일일이 모든 방을 다 들어가지는 않았다. 지나치는 방은 지그프리트의 설명만으로도 충분했다.
무진을 안내하면서도 지그프리트는 소드아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괜히 무진에게 자랑하려고 하다가 배만 아프고 말았다. 아쉬움 마음을 간직한 채 거대한 방 앞에 섰다.
〈타이탄룸.〉
‘아! 이런!’
고대시대의 마도공학을 총 집대성하여 만들어낸 총화. 그것이 바로 타이탄이다.
마도시대의 마법공학은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 원리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사라졌고, 발견해낸 미완성의 마법공학만으로는 타이탄을 만들어 내기 힘들었다.
또한 타이탄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과 작동원리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분해조립도 불가능했다.
타이탄은 제국과 왕국의 국력과 맞먹는다. 국력을 완전한 파해법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분해했다가는 그대로 공중분해 되어버릴 수 있었다. 그런 모험을 할 국가는 세상에 없었다.
지그프리트는 타이탄마저 헌납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주춤거렸다.
“뭘 그렇게 망설이지.”
“아…닙니다!”
“그럼 들어가지.”
“예? 여기는 그다지 볼 게 없는데요!”
“그래서.”
“주…군의 마음에 들지 않을…겁니다!”
“그래서.”
“그…것이 그냥 평범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젠장! 할 말 없네!’
무진이 보기에 드래곤은 생각보다 순진한 동물인 것 같았다. 망설이는 행동과 횡설수설하는 말투만 봐도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통천심이 아니어도 솔직히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타이탄이 무진의 눈에 들어왔다. 작은 동산을 보는 것처럼 컸다. 15미터에 달하는 기체는 보는 것만으로도 시위를 압도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오랫동안 제자리에 앉아 있어서 먼지가 쌓인 것을 제외하고 외형은 그대로였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낡아야 하는 기체가 멀쩡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이것이 타이탄인가?”
“그렇습니다.”
“얼마나 됐지?”
“제가 발견한 이후로 천 년 정도 됐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타이탄 1대 정도 있으면 드래곤 사이에서도 제법 자랑거리가 됐습니다. 뽀대 좀 내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드래곤 사회에서 타이탄 수집에 대한 열풍이 분 적이 있었다. 한정수량만 남아 있는 고대의 타이탄을 수집해서 자랑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당시에는 타이탄 1대 정도는 있어야 기본이 된 드래곤이라는 말도 있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드래곤로드와 고룡급의 드래곤들은 알고 있었다. 타이탄이 드래곤에게는 위협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마도시대가 몰락하고 타이탄 설계도와 제조법이 손실된 것도 드래곤들의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후에 간간이 발견되는 타이탄도 드래곤에게는 위협적인 물건들이다.
그래서 드래곤로드는 타이탄 수집이라는 말도 안 되는 유행을 조금씩 퍼뜨린 것이다. 소장품에 대한 애착이 강한 드래곤들에게 한정수량의 수집품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순식간에 열풍이 되어 버렸다.
“그 당시라는 말은 지금은 아니라는 뜻인가?”
“1천 년 전 메카닉왕국이 들어서면서 타이탄의 생산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사실 과거의 타이탄과는 외형과 기능에서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세상의 판도를 바꿀 만했습니다.”
“그럼 타이탄이 흔한가?”
“그건 절대 아닙니다. 메카닉왕국의 최고위층 마도공학자가 남긴 설계도가 유실되는 바람에 현재에는 노멀급 타이탄을 제외하고는 생산해 내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노멀급이라고 해도 그 위력은 가공합니다. 대륙최강국이라고 불리는 브릴란트제국이 대륙을 일통하지 못하는 것도 메카닉왕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평온하다는 뜻이군.”
“사실 그전까지 대륙은 무척이나 혼란했습니다. 대륙십강을 4명이나 포함하고 있는 브릴란트제국이 대륙정복 선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피해가 상상을 불허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때를 대륙 최악의 혼란기라고 불르기도 했었습니다. 말도 마십시오. 드래곤도 그 당시에 많은 피해를 봤습니다. 메카닉왕국과 신성제국이 아니었다면 평화는 어림도 없습니다.”
“견제할 수 있는 세력으로 균형을 유지한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현재의 대륙은 평온했다. 브릴란트제국을 견제하는 메카닉왕국과 신성제국이 있음으로써 평화가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것이다. 또한 직간접적으로 드래곤들도 브릴란트제국을 견제하고 있었다.
인간의 힘이 단일화되어 그 힘이 정점에 이르게 되면 드래곤은 물론 이종족의 존재 자체가 위험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전쟁 이후 몇 년이나 흘렀지?”
“30년밖에 안 됐습니다.”
“그래.”
드래곤의 기준으로 따지면 짧은 기간이다. 반면에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긴 세월이기도 했다.
힘이 있으면서도 주변 세력의 견제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가 30년이나 지속되었다. 인간의 인내심이 그 이상으로 길다고 할 수 없다. 언젠가 다시 터질 때가 올 것이다.
씨익!
균형의 시간이 길수록 평화는 오래간다. 그러나 평화는 고착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무진은 고착된 시간이 오래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무진이 중원대륙을 일통한 시기도 세력과 세력의 균형을 깨뜨리고, 이간질을 시켜 반목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
오싹!
지그프리트는 무진의 웃음에 소름이 끼쳤다.
‘설마! 아니겠지!’
힘들게 이룩한 균형을 억지로 깨뜨리려는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보편적인 이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무진은 일반적인 생각을 가진 존재들과는 다르다. 혼란과 파괴를 몰고 오는 패황이었다. 패황은 멈춰진 세계를 용납하는 평범한 존재가 아니다.
무진은 피를 몰고 다니는 파멸의 능력을 지닌 존재였다. 오랜 세월이 그의 패도적인 기질을 무디게 만들기는 했지만 기질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세상은 변화가 있어야 흥미가 있지.’
아직 뜻을 완벽하게 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상의 혼란과 분란을 조장하여 또다시 대륙정벌을 해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무진은 앞으로의 미래를 잠시 고민하다가 현재로 돌아왔다. 미래의 일은 현재의 견고한 바탕에서 나온다. 미래만 바라보고 살아서는 절대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무진은 알고 있었다.
‘아직은.’
무진은 타이탄의 외형을 살폈다. 거대한 기체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막대한 힘을 필요할 것이다. 무진이 알고 있는 세상에서는 저런 기체를 만들어 낼 수도 없을뿐더러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마법과 공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상 타이탄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 원리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이름이 있나?”
“그…것이!”
지그프리트는 대답을 망설였다. 이름을 말하는 순간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진의 말을 거역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빼도 박도 못하고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지그프리트는 서럽기까지 했다.
“이…카루스…의 애마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이카루스의 날개와 이카루스의 애마. 딱 봐도 답이 나온다. 지그프리트는 이카루스의 날개를 구한 동시에 이카루스의 애마까지 수집했다. 세트로 수집했으니, 둘은 일심동체와 같았다. 이카루스의 날개를 얻은 무진이 이카루스의 애마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무진이 타이탄에 다가섰다. 뒤에서 지켜보는 지그프리트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반응하지 마라! 필연은 개뿔이다! 반응하지 마!’
이러다가는 가지고 있는 것 다 털리게 생겼다. 그것도 알짜배기만 무진이 고르고 있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소장품을 가지고 있다는 은근한 자부심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가까이 접근하자 타이탄의 기체가 더 커 보였다. 아래서 위를 보는 것도 까마득했다. 웅장함과 큰 힘이 전해졌다.
우웅!
혼돈력에 스며든 카이젠에게서 반응이 왔다. 은은한 떨림은 타이탄에 대한 공명이었다.
무진은 내부의 떨림을 감지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타이탄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러자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타이탄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번쩍였다.
끼이이잉!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타이탄이 무진에 의해서 반응했다. 미세한 진동으로 수북히 쌓인 먼지가 떨어져 내리면서 시야를 가렸다.
아무리 만져도 반응하지 않던 타이탄이 손쉽게 깨어난 것을 보자 지그프리트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미치겠네!’
처음에 수집한 후 반응하지 않자 분해해서 확인해 볼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분해해 버리면 다시 조립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망설였다. 그래서 고이 모셔 두고 감상만 했을 뿐이다.
위압적인 안광을 번쩍이는 타이탄이 무진을 내려다보며 뜻을 전했다.
-고대신의 율법에 따라 계약을 맺겠는가?
‘그러지.’
-고대신의 맹약에 의해 당신을 주인으로 인정합니다.
‘이름은?’
-저의 이름은 카무트라고 합니다. 당신을 주인으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너의 능력은 어느 정도지?’
-총 3단계의 변신이 가능하며, 주인님의 능력으로는 1단계까지 가능합니다.
‘고대신의 이름은 아나?’
-저는 카이젠보다 아는 것이 없습니다. 카이젠은 열쇠이며 고대신의 조각이지만 저는 다릅니다. 저는 고대신에 탄생한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알겠다. 그럼 이만 들어가라.’
-예.
파팟!
작은 동산만 한 거대한 타이탄이 아공간으로 사라졌다. 크기와 부피가 큰 타이탄의 경우 자체적으로 아공간을 형성하여 계약자의 부름에 나올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타이탄이 아공간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그프리트는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역시나 세트여서 그런지 바로 계약이 성사되어 버렸다.
“다음으로 가지.”
“그…러지요.”
방을 안내할 때마다 소장품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는 속이 점점 쓰려오고 있었다. 힘들게 수집한 소장품을 날로 먹는 무진을 말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 그렇게 속 좁은 드래곤 아니다! 대범하게 행동하자!’
이미 지나간 것은 후회한들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 지그프리트다. 깔끔하게 인정하고 다시 무진에게 방을 안내했다. 하지만 방을 지날 때마다 지그프리트의 속은 새까맣게 타고 있었다.
‘떠그럴! 내가 모르는 것들이 신기였을 줄이야!’
소장품으로 모셔 논 것들 중에서도 그 용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확인해 보려고 했던 것들이 무진의 손이 닿자 반응한 것이다. 그리고 밝혀지는 놀라운 능력에 지그프리트는 짜증이 치밀었다.
‘이것들이 단체로 날 놀리나!’
* * *
레어 안을 모두 확인하는데 20일이 흘렀다. 집 구경이 20일이나 걸릴 정도로 지그프리트의 레어는 컸다. 20일 흐르고 집 안을 모두 구경했을 때 지그프리트의 안색은 X물을 한 바가지 이상 퍼먹은 것처럼 검게 변해 있었다.
으윽!
침음성이 터져 나온다.
지그프리트가 아끼는 소장품 가치 서열 10위 안에 드는 〈지그프리트의 애장품〉들 중에 9가지가 무진의 손아귀에 들었다. 칼만 안 들었지 도둑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걸 모으느라 허비한 시간을 생각하면 쓰리다 못해 창자가 뚫리는 기분이다. 다시 돌려달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돌려 줄 리도 만무하지만 애장품들 대부분이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라 한번 주인을 택한 이상 낙장불입이었다.
방법이 있다면 무진이 죽는 것뿐인데, 금제가 걸려 있어서 무진이 죽으면 지그프리트도 죽는다.
‘이런 X빵같은 상황이라니!’
속이 쓰려서 일할 의욕도 없는 지그프리트와는 달리 무진은 획득한 마법아이템과 필요한 장비를 아공간에 챙겨 놓고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무진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잠재력이다. 숨겨져 있는 힘은 사용할 수 없는 힘, 실전에서 활용할 수 없는 힘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그래서 무진은 아이템의 기능과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열중했다.
“카이젠은 카무트의 합체 시에 필요한 장비였군.”
타이탄 카무트에 탑승할 시에는 반드시 카이젠이 필요했다. 카이젠이 없이는 카무트의 기능을 완벽하게 활용할 수 없었다. 카이젠의 외부에 뚫려진 작은 구멍이 카무트와 연결하는 고리부분이었다.
카이젠과 카무트로부터 기능설명을 들은 무진은 작동을 해보았다.
-카이젠, 카무트 소환!
우우웅!
그 순간 무진의 전신에 연기가 퍼지더니 카이젠이 전신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