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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지존기 101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14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01화

제1장 지그프리트 (1)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어둠이다. 어떤 공간에 갇혀 있는 것인지조차 확인이 되지 않는다. 몸의 중심점을 느낄 수 없는 대기는 무(無)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만물의 영역조차 제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었던 그는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의 정체성이었다. 그것은 외부의 감각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그의 내부에서 반항하는 혼(魂)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압도적인 힘으로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애초의 생각을 뒤집었다.

정체된 몸과 다르게 정신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치열한 혼과 혼의 대결은 시간마저 잊게 만들었다.

‘끈질기군.’

-700년의 시공을 뛰어넘으니 삶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소이다.

얄미울 정도로 끈덕졌다. 꺼질 것 같으면 다시 켜지고, 비틀거리면서도 끝까지 저항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혼이 소멸해 버리면 육신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은 삶에 대한 본능이 강하다. 죽고 싶은 자가 있겠는가!

무진은 단숨에 끝장 낼 수 없다는 것을 파악했다. 힘의 우열은 압도했지만 혼의 단단함과 밀집력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검신 적무룡(선우학)은 70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환생한 존재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내 자존심을 건드리고 무사할 수 있다 보는 건가.’

-하찮은 미물도 살기 위해 발악하건만, 그대의 자존심보다 소신의 목숨이 더 중요한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소.

적무룡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렇기에 무진은 짜증이 치밀었다. 이 정도로 끈질긴 존재는 처음이었다.

무진은 시간의 흐름마저 잊은 채 집중해야 했다. 무념무아의 경지를 초월한 무진의 집중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조금씩 적무룡의 자아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무진은 시간조차 잊은 채 혼을 불태웠다. 적무룡 역시 혼을 불태우며 반항했다.

우우우우웅!

혼과 혼의 대결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렬했다. 정신세계의 대우주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거친 격랑은 지칠 줄 모르고 팽창해 나갔다. 상상을 불허하는 막대한 심력이 소모되고 있었다.

경계를 넘어서는 사투가 끝을 모르고 진행이 되어갈 때.

-크윽!

고통스런 혼의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무진의 광포한 공격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타 들어간 심지를 움켜잡고 버티던 적무룡은 더 이상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사방이 가로막혀 빠져나갈 구멍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던 이곳은 무진의 영역이었다. 그 안에서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한 능력이다.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적무룡은 끝이 다가옴을 느꼈다. 이대로는 혼마저 소멸되어 버릴지도 몰랐다.

-죽음에 초연했다 여겼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군. 이대로 죽어줄 수만은 없소이다!

적무룡은 중원을 구할 수 있다면 죽음도 초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진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면서 삶에 대한 애착과 더불어 이기고 싶은 욕망까지 꿈틀거렸다.

무인이 되어 승부에 패하고 싶은 무인은 없을 것이다. 적무룡도 타고난 무인이었다. 그는 마지막 비장의 승부수를 띄웠다.

-천극영안(天極靈眼) 영세무적(永世無敵) 파멸혼(破滅魂).

천극영안의 마지막 비전오의가 펼쳐졌다. 혼신의 역량을 건 필살의 승부수였다. 다시 펼칠 수도 없으며, 이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적무룡의 혼은 조각조각 부서져 버릴 것이다.

혼의 영역을 지배하고 있던 무진은 갑작스럽게 퍼져 나오는 빛의 기운에 흔들렸다. 날카로운 창이 혼의 방패막을 찌르고 들어왔다. 어둠의 영역과 빛의 영역이 극명한 대치를 벌였다.

‘좋군.’

적무룡의 승부수는 가공했다. 무진도 간과하지 않고 전력을 기울였다. 사방을 조이던 혼의 영역을 한곳으로 집중하여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는 적무룡의 영혼과 대적했다.

쿠꽈꽈꽝!

혼과 혼의 충돌로 인해 대 폭발이 일어났다. 대륙이 가루가 되어 휘날리는 것을 연상시켰다. 혼의 영역이 완전히 붕괴되어버릴 지경이었다.

힘의 여파가 상상을 불허했다. 충돌을 할수록 힘의 파괴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그것은 무진과 무룡조차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쩌쩌저적!

이대로 지속되면 무진과 무룡의 혼이 완전히 무너져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가 없다. 수레바퀴가 돌아간 이상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 되었다.

칼날 위를 밟고 서 있는 위태위태한 상황 속에서도 무진은 냉정을 유지했다.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이야말로 무진의 가장 강력한 바탕이었다.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한 무진은 모든 기력을 집중하여 부딪쳐 오는 적무룡의 혼을 감쌌다.

‘부서뜨릴 수 없다면 삼켜주마!’

충돌로 인해 혼의 영역이 부서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공멸이었다. 그것은 무진도 바라지 않는다.

무진은 충돌하는 대신에 적무룡의 영혼을 조금씩 갉아 먹어갔다. 수라혼원심공은 만물의 기운을 흡수하는 천고의 신공. 혼이라고 하여 다를 것이 없었다.

흑백이 팽팽하게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무진의 어둠이 무룡의 빛을 감싸며 어둠으로 물들였다.

‘끝났다.’

-그대는 역시 대단하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소이다!

적무룡의 반항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칠어졌다. 마지막을 위해 모든 역량을 소모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번 기울기 시작한 무게의 중심추는 다시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우우우우웅!

팟!

무언가 꺼졌다. 불타오르는 빛의 기운이 한순간에 어둠 속에 물들어 버리고 말았다. 적무룡의 혼이 마침내 무진의 혼에 제압된 것이다.

길고 긴 싸움의 종지부를 찍어 버렸다. 그러나 승리를 한 무진은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아니,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끝까지 속을 썩이는군.’

어둠으로 일관되었던 무진의 혼이 회색빛을 띠기 시작했다. 짙은 어둠이 혼돈의 회색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무진의 혼과 무룡의 혼이 섞이면서 발생한 기현상이었다.

무진은 혼의 영역을 파고들어 온 무룡의 혼을 정화시키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미 합일(合一)이 된 상태라 다시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었다.

‘어떻게 된 건지 나조차도 확신하기 힘들다.’

혼의 색깔이 완전한 회색빛으로 변해 버렸다. 회색은 혼돈을 상징한다. 어떤 작용을 일으킬지 무진으로서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혼이 변질됐다는 것을 무진은 인정하기 어려웠다. 아직 자신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더욱더 혼란스러웠다.

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 있을 수만은 없기에 주변을 느껴보았다. 알 수 없는 공간에 갇힌 것을 확인했다. 진법이라고 하기에는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방으로 의지를 퍼뜨려 보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도대체?’

어디에 갇힌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무진은 곤혹스러웠다. 뜬구름을 잡고 허우적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의지의 영역을 확장해 보았지만 감각에 닿지도 않았다. 감각의 영역이 파고들 수 있는 공간이 아닌 것 같았다.

‘난감하군.’

시간의 흐름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모든 것이 정지된 공간일 가능성이 컸다. 난생처음 거대한 장벽을 느끼게 된 무진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독한 허무의 공간. 보통 사람이라면 미쳐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공간에 갇혔다.

막막한 상황에서도 무진은 포기하지 않았으며 걱정하지 않았다.

‘생각은 하되, 고민은 하지 않는다.’

그 어떤 장벽이 가로막던 무진은 포기를 몰랐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도 무진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무진은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온 불굴의 사나이다. 무진만이 홀로 세월의 흐름을 떠안으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내부를 관조하고, 무의 공간을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 * *

 

휘이이잉!

바람이 분다.

바람에 흔들리는 숲의 모습이 마치 악마의 웃음처럼 느껴졌다. 녹음(綠陰)의 푸름과는 다른 짙은 어둠이 숲의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하늘을 꿰뚫을 듯이 솟구쳐 오른 거대한 나무는 기기묘묘한 형태를 띠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숲은 미로가 되어 들어오는 자를 내보내지 않았다.

크어어어엉!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둠에 갇힌 밀림은 사나웠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마수와 몬스터의 울음소리는 사람의 심령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이곳이 바로 뮤켄대륙의 4대 금역에 속하는 어둠의 숲, 다크포레스트다. 일반적인 왕국의 크기를 넘어서는 거대한 밀림지대로 온갖 몬스터와 마수가 들끓기로 유명하다.

대형몬스터에 속하는 오우거나 트롤은 이곳에서 흔하다. 그들은 다크포레스트의 1급 몬스터에 속하지도 못한다. 몸집이 드래곤에 필적하는 거대한 몬스터가 자리하고 있어 사람들의 접근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지역이다.

과거에 제국과 왕국이 다크포레스트를 점령하려고 하다 무수히 많은 기사와 마법사, 병사를 잃은 적도 있었다. 그로 인해 죽음의 숲이라 불리게 되었다.

사람의 접근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 다크포레스트의 정중앙에 사람이 서 있었다. 대륙에서 흔한 갈색머리카락에 평범한 인상을 지닌 청년이었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청년이지만 그 주변으로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다. 대형몬스터가 우글거리는 다크포레스트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용했다. 숲이 마치 청년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청년은 죽음의 숲이라고 불리는 다크포레스트를 제집처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주변에 관여치 않고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청년의 손짓에 의해 나무와 바위가 뽑히면서 숲이 평지가 되어갔다. 반듯한 평지를 만든 청년은 대지 위에 거대한 원을 그렸다. 가장자리에 원을 겹쳐서 그린 그는 원 안에 빼곡한 수식을 그려 넣었다.

특이한 것은 그려진 원은 각인이 되어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의 그림이 아니라 마법진이었다.

청년은 상당한 집중력을 보였다. 주변의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마법진을 완성하는 데 모든 심력을 소모했다. 마법진의 도안은 이미 완성을 시켜 놓았기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리기만 하면 되었다.

반경 6미터에 해당하는 원 안에 새긴 수식은 개미의 크기보다 작고 정교했다. 도안을 보지도 않고 기억력만으로 수식을 완성해 나가는 청년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청년의 놀라운 능력에도 불구하고 마법진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다. 무려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청년은 한 달이 지나는 동안 한 번도 마법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집중력이 아닐 수 없었다.

완성된 마법진을 본 청년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드디어 완성했다!”

청년이 만들어낸 마법진은 일반적인 마법진이 아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외형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간이라고 불릴 수 없는 위대한 존재였다.

그는 그린일족의 웜급 드래곤 지그프리트였다. 지고의 존재로 불리는 드래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마법진이 평범할 리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마법진의 도안을 완성하기 위해서 지그프리트는 500년이라는 시간을 소모했다. 수면기마저 잊어가면서 완성을 해낸 마법진이었다.

“흥! 차원을 인위적으로 열 수 없다고! 그런 말이 쏙 들어가게 해주마!”

드래곤 중에서도 약체로 평가받는 그린일족이라 다른 드래곤들에게는 무시를 당하는 편이다. 그렇다 해도 자존심이 강한 종족이 드래곤이다. 지그프리트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당시에 마법진에 대한 얘기를 지나가는 식으로 한 적이 있었다. 마법진을 통한 차원게이트의 완성에 대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드래곤들이 모두 불가능하다고 단정을 짓고 있었는데 지그프리트만은 달랐다. 마법진에 대한 지식만은 다른 드래곤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 지그프리트다.

지그프리트는 마법진으로 차원을 열 수 있다는 의견을 내세웠지만 드래곤들은 가당찮은 짓이라며 묵살했다. 공간의 굴곡으로 인한 차원의 불규칙성에서 틈을 찾아내 차원게이트를 열 수 있다는 의견이 무시되자 지그프리트는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500년의 시간을 소모했다.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현재의 대륙에 차원이동을 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다만 어떤 식으로 차원이동을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차원이동에 대해서 마법적으로 증명해 내려고 한 드래곤들도 곧 불가능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포기했다.

만약 오늘 지그프리트가 마법진을 통한 차원게이트를 완성한다면 뮤켄대륙 역사상 처음으로 성공한 사례로 마법의 단계를 한 차원 더 높이는 혁명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여기라면 충분해.”

지그프리트가 다크포레스트를 차원게이트의 실험장소로 선택한 것은 공간의 불규칙성이 가장 심하기 때문이다.

아득히 먼 고대, 드래곤조차 탄생하기 이전부터 다크포레스트는 존재했다고 한다. 그 시절 마족의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차원을 열려다가 실패했다는 곳이 바로 다크포레스트다.

완성을 눈앞에 둔 마신은 주신의 방해로 마력을 숲에 퍼뜨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마신의 부서진 파편에 불과한 마력으로 평범한 숲 지대가 다크포레스트가 되었다.

공간은 완벽한 법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틈이 존재하지 않는 형태를 띠고 있기에 비집고 들어가지 못한다. 완벽한 공간이라면 차원굴곡을 통해 마법진의 연구가 불가능하다.

반면에 다크포레스트는 오래 전부터 균형이 조금씩 무너져 있는 상태였다. 조금 더 균형을 어그러뜨리고, 그 안으로 마력을 집어넣게 된다면 차원게이트를 여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었다.

물론 마신을 깨운다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그저 타 차원의 문을 여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좋아,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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