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6화
무료소설 구름공작: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1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6화
제3장 찌질이 단련시키기 (1)
“오늘도 올까?”
“야, 삼 일 동안 왔는데 안 오겠냐?”
“그래도 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포기할 거 같은데?”
교실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레이온은 같은 반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레스.
난데없이 나타나 자신에게 검을 쥐어준 한 학년 위의 선배였다.
물론 만난 지 나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행실이 무섭고 말투도 거칠어 피해 다니려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찾아내고 구건물로 불렀다.
이레스를 만나고 레빈 형제가 자신을 건드리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은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레이온의 경우에는 옛날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돈을 뺏기더라도 맞는 고통은 잊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드르륵.
시끌벅적했던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조용해졌다.
저벅저벅.
교실 안으로 한 사내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드르륵.
발소리를 뒤이어 무언가가 끌려오는 소리가 이어서 교실을 가득 채웠다.
발소리와 끌리는 소리에 울상을 짓던 레이온은 자신의 앞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자 다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흑…….”
“누가 보면 때리는 줄 알겠네.”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레이온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의 행동은 때리는 것보다 더 나쁜 행동이나 마찬가지였다.
“흑, 흑.”
양손에 두 자루의 진검을 쥔 이레스는 눈물을 흘리는 레이온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한 자루의 검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기회를 주마.”
“……흑.”
“네가 나를 두려워하는 것은 나흘 동안 보아온 결과 확실한 거 같네.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 검으로 나를 공격해서 성공하면 너를 만나러 오지 않을게.”
생각보다 파격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했는지 레이온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테라인 왕국에서 보기 힘든 흑발이 인상적인 이레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저, 정말요?”
“멸치돼지 형제도 막아주고, 네가 졸업하는 그날까지 누가 와도 막아주지. 할래?”
생각보다 큰 유혹이었다. 왕실에서 검을 배운 적이 있었기에 레이온에게는 파격적이고 큰 유혹이었다.
레이온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이레스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나흘 동안 고생고생해서 강제로 수련을 시키려 했건만 레이온은 그의 생각도 모르고 매일 도망쳤다. 그래서 이레스는 생각을 바꾸었다.
큰 유혹을 미끼로 삼아 강제 수련을 하려는 것이다.
“장소는 전과 동일, 시간도 전과 동일이지만 바꾸고 싶으면 2학년 P반으로 와라.”
“예.”
레이온의 대답을 들은 이레스가 교실을 나가자 잠깐의 정적이 찾아오더니 그의 곁으로 같은 반 학생들이 몰려왔다.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니 레이온은 자신이 실수한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야, 너 미쳤어?”
“으, 응?”
갑작스러운 인기(?)에 레이온이 깜짝 놀라며 자신을 부른 이를 바라보았다.
레이온을 부른 소년은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하아, 미친개의 가문이 어딘지 알아?”
“…….”
귀족인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보다는 미친개라고 불리는 것을 많이 보았기에 어떤 가문인지는 몰랐다.
“그레이즈야. 그레이즈.”
“……히끅.”
지금은 신분을 숨기고 있었지만 왕자의 신분이었던 레이온은 테라인 왕국의 속한 대부분의 유명 가문을 알고 있었다.
그중에 그레이즈 가문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가문이었다.
오러나이트와 익스퍼드 상급 이상의 기사들로만 이루어진 왕국 최고의 기사단 중 하나인 그리폰 기사단을 보유한 가문이자 뛰어난 검술로 인하여 왕국을 대표하는 3대 가문 중 하나가 그레이즈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레이온이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 딸꾹질을 했다.
“그레이즈 더 이레스. 아카데미에 와서는 미친개라는 별명이 붙었기는 하지만 그 별명이 어떻게 붙었는지 알아?”
레이온이 고개를 젓자 소년이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교수들에게만 가문이 알려져 있어 학생들은 몰랐거든. 그래서 매일 수업을 빠지는 이레스가 건방지다고 일진이 그를 교육시키려다 역으로 당하고, 그 소문을 들은 2학년, 3학년이 합세해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본관 뒤편으로 불렀는데 오히려 다 털렸대. 그때 숫자가 열여섯이야.”
“히끅! 히끅!”
“십육 대 일의 전설을 만든 미친개라고!”
“히끅! 히끅!”
* * *
쉬이익!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함께 검이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내려쳤다.
평범한 내려치기에 불과했지만 그 속도와 바람을 가르는 무게감은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날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었다.
수백 번을 넘어 정확하게 일천 번을 휘둘렀을 때 이레스가 천천히 검을 늘어트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첫날 이후 이레스는 매일 1교시를 제외하고는 수업을 빠졌다. 전생을 통해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을 현실에서 사용하는 부분은 얼마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공작가의 장남으로 가문의 승계를 받을 사람이었기에 공부를 하는 것보다 실력을 키우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헉…… 헉…….”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숨을 고르던 이레스가 상체를 뉘어 대자로 뻗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실피아.”
그의 얼굴 위로 작은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손바닥만 한 소녀, 실피아라는 이름을 받은 실프가 나타나 그의 얼굴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레스! 이레스!
이레스는 얼굴에 달라붙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실피아의 모습에 작게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다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령을 소환한 이후 조금 늦은 감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는 정령친화력을 올리는 방법 중 하나를 떠올렸다.
그것은 체력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한계를 넘는 체력단련 방법처럼 정령을 계속 소환하여 정령친화력을 극한까지 소비하여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이었다. 어차피 정령을 소환하는 것 자체만으로 정령친화력을 올릴 수 있으니 두 배의 효과를 받을 수 있는 수련이었다.
물론 수련을 마치는 순간 정령친화력이 전부 소비되어 기절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회귀 전의 이레스도 정령과 계약한 이후 이런 수련방법을 즐겨했기에 버티는 것은 쉬웠다.
-이레스! 이레스!
“응?”
-재미없어!
갑작스러운 실피아의 외침에 그제야 이레스가 생각을 접고 고개만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실피아는 입술을 쭉 내민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자신이 놀아주지 않고 멍하니 누워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전생에도 실피아와 놀아준 기억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레스가 천천히 상체만 일으켜 세우더니 손바닥을 펼치자 실피아가 작은 날개로 펄럭이며 손바닥 위에 앉았다.
“그럼 놀까?”
-응! 응!
“뭐하고 놀까?”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했는지 눈을 껌뻑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실피아의 모습에 이레스는 피식 실소를 흘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럼 구경할까?
-구경?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묻는 실피아의 모습에 이레스는 실피아를 손바닥에 올린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옥상 난간으로 걸어가더니 그의 시야로 테라인 아카데미의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우와아아.
실피아가 신기하다는 듯이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실피아가 소환된 장소는 기숙사 안과 별관 옥상이 전부였다.
이레스는 감탄을 하는 실피아를 향해 미소를 지은 후에 그녀와 함께 별관 옥상에서 내려와 테라인 아카데미를 산책하기 시작했다.
야외수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실피아의 정체가 들통 나겠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들통이 났으면 했다.
이미 테라인 아카데미에는 정령학부가 존재한 것도 한몫 했지만 자신의 별명인 미친개로 인해 실피아에게 다가와 귀찮게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이레스는 관심이 필요했다.
그레이즈 공작가는 검의 가문이었기에 많은 기사들이 충성을 다하고 있고 병사들도 하나하나가 하급에 불과하지만 검술을 배우고 있어 강한 무력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양성할 수 있는 인재가 기사밖에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레스는 미친개로서의 관심이 아닌 그레이즈 가문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생에 기억을 통해 마법사과 정령사, 그리고 문관을 양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라인 아카데미에 학생들은 귀족이 아닌 이상 대부분 졸업식 날 인재를 찾기 위하여 각 가문에서 보낸 사람들을 통해 일자리를 찾았다. 일종의 관례가 되어버린 일자리 찾기 중에 하나였다.
그렇기에 이레스는 아카데미의 학생들에게 자신의 관심을 쏟게 하고 미친개라는 별명을 지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림수는 이내 맞아들었다.
“정령이다.”
“우와, 처음 보는데?”
정령학부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학생의 수는 적었다.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마나와는 달리 정령친화력은 일명 자연력이라고 불리는 능력으로 정령친화력을 얻자는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자연에서 살거나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지 않으면 힘든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테라인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받는 정령학부 학생은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포함하여 총 서른 명이 넘지 않은 상태였다.
거기다 정령을 관심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진 정령학부 학생들이었기에 그들은 대부분 정령을 소환한 채 학교를 활보하지는 않았다.
“근데…… 저 사람. 혹시.”
“미친개 이레스!”
실피아를 바라보던 학생들이 계약자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큰 소리로 외치자 이레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미친개? 미친개?
자신의 계약자의 이름이 나와서 그런지 그 학생에게 시선을 돌렸던 실피아가 물끄러미 이레스를 바라보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미친개! 이레스!
“……하아.”
설마 정령에게까지 싫어하는 별명으로 불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지 이레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실피아의 이마를 살짝 건드렸다.
딱.
-아우.
“이레스. 미친개라는 말 빼고 이레스.”
이레스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실피아는 이마를 부여잡은 채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손바닥 위에서 날아오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미친개! 미친개!
“하아.”
-꺄하하!
깔깔깔 하고 웃던 실피아는 이레스의 주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누군가를 발견했는지 어딘가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레스는 산책을 하기로 했지만 검술 수련을 마치자마자 이동한 나머지 너무 피곤하여 근처 벤치에 앉아있었는데, 웃으며 돌아다니던 실피아가 갑자기 조용해지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실피아?”
실피아는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아한 느낌이 들어 실피아의 시선을 따라 한쪽으로 옮기자 한 소녀가 실피아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열정적으로 쳐다보는 것이 많이 부담이 가겠지만 소녀가 바라보는 것은 정신적 생명체인 바람의 정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