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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공작 1화

무료소설 구름공작: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45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구름공작 1화

프롤로그

 

 

판데아 대륙 서열 8위로 상위권에 속해있는 테라인 왕국의 3대 공작 중 한 사람인 그레이즈 더 이레스는 테라인 아카데미를 둘러보며 회상에 젖었다.

 

“그때가 좋았지.”

 

지금은 56세라는 나이. 왕국의 미래가 바뀌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영지로 돌아왔다.

 

하지만 지난 40년은 그야말로 파란만장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곳에서 한 사람을 만나고, 그를 위해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공작의 자리에 앉아 영지로 돌아올 때까지 그를 지켰다.

 

검에도, 마법에도 재능이 없는, 그저 하급정령인 실프와 계약을 맺은 운 좋은 정령사에 불과했지만, 유일한 친구였던 그를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다. 통치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했고, 뒤늦게나마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올라 정령검사로 명성을 떨치며 테라인 왕국을 지켜냈다.

 

지금은 다 흘러간 과거지만, 이렇게 아카데미를 둘러보자 옛날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옆으로 길게 자라난 나무와 나뭇가지가 한데 엉켜 아름다운 길을 만들고 있는 아카데미의 후문을 걷던 이레스는 쉬지 않고 움직이던 다리를 멈추고 그 자리에 섰다.

 

“쯧쯧쯧. 그걸 못 기다리는가?”

 

슈슈슉!

 

아무도 자리하지 않았던 주위로 서른에 가까운 사내들이 나타나 그를 포위했다.

 

검은색 복면으로 온몸을 감추고 양손에 단검을 쥐고 있던 그들의 앞에 선 금발의 중년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끝났기에 정리를 하러 왔습니다.”

 

“허허허.”

 

천천히 몸을 돌린 이레스는 사십을 바라보는 중년의 사내, 테라인 왕국의 3대 공작 중 한 사람이자 왕의 자리에 오른 멕케인 공작의 오른팔인 헨들 자작을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전하께서 돌아가신 날, 중립을 표방하고 영지에서 지켜본다고 하였을 텐데?”

 

“전하께서는 깔끔한 것을 좋아하십니다.”

 

두 사람이 말하는 전하는 달랐지만 테라인 왕국의 왕을 뜻하는 것은 같았다.

 

몇 십 년을 준비한 듯 멕케인 공작의 반역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단 하루 만에 종결을 지었다.

 

물론 왕실을 위한다는 자신이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바다의 왕국인 페이언 왕국과의 외교문제를 해결하러 간 것에도 문제가 있었다.

 

멕케인 공작을 알기에 반역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를 간과했다. 적어도 국왕이 건재한 이상 허튼짓은 하지 않으리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테라인 왕이 급사함과 동시에 멕케인 공작이 반역을 일으키는 것을 페이언 왕국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온유하고 마음이 따뜻하여 백성을 사랑한 왕. 전대 왕의 죽음으로 왕실이 무너져내릴 때 이를 지탱하기 위해 노력한 왕. 그리고 어려서부터 보았지만 이상하리만큼 건강해 잔병치레하지 않은 사내였다.

 

즉, 급사로 위장한 암살이라는 것은 보고를 받는 순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물끄러미 헨들 자작과 서른의 암살자들을 바라보던 이레스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호위들은 전부 죽였겠군.”

 

“싱겁더군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헨들 자작의 모습에 이레스는 하늘을 향해 양손을 마주치며 인사를 하고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꺼냈다.

 

스르릉.

 

맑은 쇠 울림과 함께 그의 손에 새하얀 검신이 인상적인 한 자루의 검이 들리자 헨들 자작도 검집에 숨겨두었던 흑색 검신의 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수십의 암살자와 헨들 자작을 바라보던 이레스가 물었다.

 

“그레이즈 영지는 어떻게 되었나?”

 

“10만의 군대가 출진했습니다. 그러니 이만 물러나시지요.”

 

물러나라는 뜻은 이미 모든 것을 버려두고 은거에 들어간 이레스에게 죽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헨들 자작.”

 

“예.”

 

“내가 멕케인 공작의 생각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생각했는가? 몇십 년을 사귄 친우인데.”

 

헨들 자작이 움찔하고 몸을 떨자 이레스는 천천히 미소를 지우며 자세를 잡았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왔네. 자네들도 이곳에 올 줄 알고 있었고.”

 

“크으윽!”

 

함정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어디서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고 설마 하는 심정으로 마나를 사방으로 산개하여 함정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나 확인해보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헨들 자작은 의심쩍은 눈빛을 지우고 억지로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함정이라는 뜻입니까?”

 

“허허허! 나는 이미 살만큼 살았으니 상관없네만 우리 영지는 아직 발전이 가능한 곳이 아니던가.”

 

“하하하! 역시 철혈의 공작님이십니다.”

 

“20만이네. 동생이란 놈이 꽤 잘해냈더군. 자네만 여기에서 묶어놓을 수 있다면 문제 없지.”

 

20만이라니…… 역시 철혈의 공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인상을 찌푸린 헨들 자작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여유로운 미소를 유지하며 고개를 좌우로 꺾어 몸을 풀었다.

 

“그럼 대화는 이만하고.”

 

땅을 향해 천천히 검을 늘어트린 헨들 자작이 턱짓으로 이레스를 가리키자 그를 포위하고 있던 암살자들이 검은색 물결을 만들며 이레스를 덮쳤다.

 

“허허허.”

 

헨들 자작과는 다른 노인의 웃음을 흘린 이레스는 자신을 집어삼키듯이 몰아치는 검은 물결을 바라보다 말했다.

 

“자네 그거 아는가?”

 

쉬이익!

 

날카로운 단검이 맹수의 이빨에 빛이 반사되는 듯이 빛을 반사하며 어깨로 향하자 이레스는 물러서는 대신 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카아앙!

 

“전하는 욕을 잘하셨지. 실프.”

 

그의 앞으로 작은 회오리가 일어나더니 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 바람의 정령 실프가 나타나 정면에서 쏘아지는 또 다른 암살자를 향해 거대한 바람을 쏘아 보냈다.

 

퍼어엉!

 

거대한 바람이 그를 감싸는 순간 작은 폭발이 일어나더니 그의 몸이 허공에 둥실 떠올라 날아갔다.

 

“그거 아카데미 때부터 나와 붙어 지내다 보니 물들은 거라네. 이런 씹어 먹을 오크 같은 새꺄!”

 

* * *

 

헨들 자작은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었다.

 

멕케인 가문이 직접 양성한 암살자 중에 B급 이상의 실력자들만 모아서 움직였다. 그런데 겨우 한 시간 만에 스무 명의 암살자들이 목숨을 잃고 바닥에 허물어져 있었고 남은 암살자들이 상처를 입은 채 뒤로 물러나 있었다.

 

역시 철혈의 공작이라는 칭호와 정령검사로 유명한 이레스 공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상처도 만만치가 않았다.

 

상대한 자들이 B급 암살자이다 보니 온몸에 단검이 박히고 입과 코, 그리고 귀에서는 핏물이 흘러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역시 철혈의 공작이라고 해야 하는 겁니까? 정령검사라고 해야 하는 겁니까?”

 

“그걸 알고 싶으면 덤벼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이레스의 모습에 헨들 자작이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걸음을 옮기자 이레스가 땅을 박차며 돌진했다.

 

알고 있었다.

 

자신의 주군이었던 레이온 왕과의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아카데미에 도착하는 순간 깔끔한 처리를 좋아하는 멕케인 공작이 암살자를 보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호위도 자신을 따르던 늙은 기사 두 명만 데리고 왔다.

 

이미 늙은 목숨이니 언제 죽어도 상관없었지만 그 목숨을 잃는 것이 두려워 호위를 많이 데리고 온다면 가문의 무력이 그만큼 약해질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쉬이익!

 

실프를 몸에 둘러 빠른 속도로 쏘아지는 이레스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속도였지만 이미 이레스 공작을 알고 있던 멕케인 공작이었기에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암살을 시작했다.

 

쉬이익!

 

헨들이 검을 휘두르자 그의 검신에 붉은 오러가 둘러싸였다.

 

카아앙!

 

파직!

 

단 한 번의 부딪침에 불과했지만 푸른 오러가 둘러싸인 검이 붉은 오러가 둘러싸인 검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 흩어지는 순간 이레스의 신형도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털썩.

 

“역시 실력을 숨기고 있었군.”

 

억지로 무릎만 굽혀 상체를 꼿꼿이 세운 이레스의 말에 작은 미소를 지은 헨들 자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헨들 자작의 경지는 이레스와 똑같은 익스퍼드 최상급의 경지였다.

 

하지만 지금 선보인 오러의 강도를 보면 그가 이미 오러나이트 경지에 오른 무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헨들 자작이 천천히 검을 들며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수고하셨습니다.”

 

“헨들 자작.”

 

쉬이익!

 

멈칫.

 

갑작스레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휘둘러지던 헨들 자작의 검이 멈췄다.

 

이레스는 그런 헨들 자작을 올려다보다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 자네는 그 오크 같은 얼굴과 개보다 못한 성격 때문에 결혼을 못할 것이니, 하녀 한 명 임신시켜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이이잇!”

 

정신이 흐트러질 정도의 도발에 헨들 자작이 눈을 부릅뜨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쉬이익!

 

날카로운 검신이 자신의 목에 파고들었다.

 

눈을 감고 있던 이레스는 그 고통을 느끼고 인상을 찌푸리는 대신 작게 미소를 지었다.

 

판단 부족과 준비를 하지 못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릴 후회를 하고 말았지만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추억이 담긴 곳에서 죽으니 그렇게 큰 후회가 남지 않았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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