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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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드 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97화
소드마스터가 마법사로 눈을 뜸
197화. 시작과 끝 (3)
지금과는 달랐던 한 미래.
왕국과 제국의 죽고 죽이는 대전쟁 끝에, 제국의 마지막 소드마스터와 그의 정예 부대. 그리고 희망을 깨부순 레니안 폰 베르슈리거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그의 근방에 있는 것은 피와 죽음. 그리고 사방에 흩뿌려져 있는 마력들뿐이었다.
“…제자들의 원수는 갚았다. 하지만, 이러면 대체 뭐가 남는단 말인가.”
방금 죽인, 마법에 대해 기묘할 정도로 재능이 넘쳤던 소드마스터는 분명 자신의 제자와 지인들의 원수였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자신도 그의 부하들과 친구들의 원수였겠지.
애초에 전쟁 자체가 그 빌어먹을 엘프들의 조종으로 시작한 이상, 결국 자신들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핏물과 고깃덩어리로 변한 적과 아군 외엔 아무것도.
‘나는 이제 뭘 해야 하지?’
이미 왕국과 수뇌부는 엘프에게 넘어가 있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제국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터.
자신이 아무리 7레벨이라곤 하지만 제자들도 모두 전쟁으로 죽은 이상, 혼자서 놈들에게 덤비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운명과 그의 천재적인 재능은 레니안을 계속 허탈하게 놔두지 않았다.
그가 모든 것을 놓아버린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거대한 것을 얻어버린 것이었다.
파아아아앗-!!
“…이건…!”
레니안의 온몸이 번쩍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보아온, ‘끝의 빛’.
그것이 7레벨의 대마도사의 몸에서 휘황찬란하게 번쩍여 처참한 전장을 뒤덮었다.
“!”
게다가 그것만이 아니었다. 레니안은 순식간에 자신의 심장에 담긴 마력이 순식간에 팽창하는 것을 느꼈다.
머리가 뜨거워지며 지금껏 의문이었거나 이해하지 못한 공식이나 이론, 그리고 마법의 활용법들이 새롭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것은 그가 지금껏 여러 번 느낀 레벨이 상승하는 감각. 그 자체였다.
“하…하하!”
레니안은 기가 차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마법사인 이상, 이 순간을 꿈꾸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한 이 순간에 오다니.
참으로 잔혹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쿠우우웅-!
그리고, 그의 온몸에서 엄청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조금 전, 하늘을 가르고 산을 부순 7레벨의 그도 상대가 안 될만한 거대한 마력이었다.
‘…이 힘이 있다면, 엘프 놈들을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단순히 거대한 마력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연구했지만, 도저히 답을 알 수 없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마저 새로이 깨달았다.
이를 마법에 응용하면, 아무리 놈들의 세력이 강대해도 이쪽에도 승산이 없지는 않을 터.
‘하지만, 이미 죽은 이들은 돌아오지 않아. 부서진 것들은 말이지…. 음?’
하지만 그 순간.
레벨이 올랐음에도, 그렇게 씁쓸해하던 레니안의 머리에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되돌릴 수 없는 비참한 과거와 현재.
새로이 깨달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마법.
8레벨인 자신의 몸과 전장에 흩뿌려져 있는 거대한 마력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생각하자 레니안은 이 모든 상황을 뒤집어버릴 수 있는 ‘마법’이 생각난 것이었다.
엘프 놈들을 하나하나 잡아 족치는 것이 아닌, 아예 놈들이 한 짓들 자체를 사라지게 할.
그런 엄청난 마법이 말이다.
파아아아앗-!
레니안은 그 즉시 엄청난 마력을 내뿜음과 동시에, 전장에 흩뿌려져 있는 모든 마력을 모았다.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시체들과 모여 언데드들이나 탄생시킬 게 뻔한 마력들.
이런 데 사용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모든 것을 돌리겠다. 대전쟁이 터지기 전으로…!”
엄청난 마력이 모이며 시간이 꿀렁이고, 공간이 뒤틀렸다.
단순히 시간을 몇 분 멈추거나, 아공간을 여는 수준이 아니다.
이 세계의 시간 전체를 되돌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긴 시간을.
투툭-
레니안의 눈에 핏발이 곤두서고, 코피가 터졌으며 몸이 휘청거렸다.
솔직히 무리였다.
아무리 8레벨의 막대한 양의 마력을 가지고 전장의 마력을 끌어모았어도, 시간 자체를 되돌려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행위였으니까.
“끄…윽!”
아니, 시간을 거스르는 것까진 괜찮았다.
하지만, 그 어떠한 ‘거대한 힘’이 마치 단단한 장벽처럼 시간이 거슬러 올라오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커헉!”
붉은, 아니 이젠 검은 피가 그의 입에서 쏟아지고, 온몸의 구멍에서 피가 줄줄 새기 시작했다.
너무나 강력한 마법의 반동에 육체가 이기지 못하고 붕괴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15년 뒤로 돌리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하지만 꼭 그것이 아니라도 된다.
15년이 안 되면, 10년.
10년이 안 되면 5년.
5년도 안 된다면, 단 1년이라도.
그것도 안 된다면, 아예 돌아가는 것은 자신이 아니더라도.
‘…그래.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거다! 내가 아니라면 어떻게든…!’
그는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쥐어짰다.
지금까지 일어난 커다란 비극을, 어떻게든 존재하지 않는 일로 만들기 위해서.
.
.
.
,
“…그리고 20년을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고? 세계 전체의 시간을?”
유렌의 기가 찬 듯한 목소리가, 엉망진창으로 박살 난 산 위로 울려 퍼졌다.
황당한 듯한 그 목소리엔 감탄과 여러 가지의 감정들이 은은하게 실려 있었다.
“예.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처음의 계획과는 상당히 달라져 버렸습니다.”
“달라졌다고?”
“예. ‘저’는 전쟁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막 죽었던 당신의 영혼을 선택했으니까요. ”
“…설명을 더 들려주겠나?”
유렌은 아직 납득이 가지 않는 얼굴로 물었다.
그래. 시간을 돌린 것은 알겠다.
대전쟁으로 상처받은 그의 심정 역시 말이다.
하지만 왜 자신의 영혼을 이 몸에 넣어야만 했는가.
그런 지극히 당연한 유렌의 의문에 레니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무리 제가 8레벨에 올랐다지만, 저 혼자의 마력과 전장에 뿌려져 있는 마력만으론 힘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괜찮았지만, 그 마법을 막고 있는 ‘세계의 법칙’을 깨기엔 말입니다.”
“세계의 법칙?”
처음 들어보는 개념에 유렌의 고개가 갸우뚱거리자, 레니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예. 저도 굳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오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존재입니다.”
세계 자체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힘.
예를 들면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이 당연한 것과 같은 종류의 법칙이다.
애초에 8레벨에 오른 한 존재가 멋대로 시간을 돌려 세계를 주물럭거릴 수 있다면 그게 더 문제일 터였다.
한 번 흐른 시간은 고정되고, 바꿀 수 없다. 그것이 세계의 법칙 중 하나였다.
“하지만, 넌 거슬러 올라왔고?”
“아무리 8레벨이라고 하더라도, 힘만으론 법칙 자체를 어길 순 없더군요. 그래서 편법을 쓴 겁니다.”
“편법이라면… 나 말인가?”
레니안은 유렌을, 아니 그 속에 있는 자신이 죽였던 제국의 소드마스터의 영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 대신, 이 세계를 바꿔 줄 사람을 말입니다.”
“…그렇군. 본인 대신, 이미 죽어있던 내 영혼을 과거로 보낸 건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저 말고 가장 재능이 있는 영혼. 그리고 강렬한 의지를 가진영혼은 주변에 오직 당신뿐이었으니까요. 물론 사령술도 함께 익힌 저라 가능한 짓이었지만…. 그래도 법칙은 영혼이 홀로 시간을 넘는 것까지는 예상을 못 했는지 그것에 대한 방해는 없더군요.”
“…없을 만하지.”
개개인이 시간을 거스른다는 것도 황당한데, 영혼이 자신의 것이 아닌 힘으로 시간을 거스른다?
아무리 법칙이든 뭐든, 상상하지 못할만했다.
‘그렇군. 날 이 몸에 집어넣은 것은 바로 레니안. 그라는 거군.’
자신이 어째서 이 몸속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안 유렌은 여러 가지로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악연이 쌓일 대로 쌓여 전생의 자신과 부대를 죽이고 전멸시킨 대마도사가, 자신의 영혼을 과거의 마법사에게 되돌려 세계를 구하려 했었다니.
그에 대한 감사와 아직 전생에 있던 원한. 그 밖에도 여러 감정이 마구 뒤섞여 정말이 복잡한 심경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유렌은 그와 동시에 참으로 그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당시의 무엇보다도 비참했던 현실과 그것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다는 발버둥.
적어도 그는 거기서 어떻게든 바꾸려 시도한 것이다.
그것만큼은 정말로 존경할 만했다.
다만 그가 지금까지 말한 것들과는 정반대인 행동들을 보면, 아마 그로 인해 받았던 대가가 컸던 모양이지만.
“그래서 그 편법을 한 대가가 지금의 그건가? 강제로 움직여야 하는?”
“…하하. 정말이지. 눈치는 정말로 빠르시군요. 전 마법에 대한 재능과 그 정신력을 높게 산 것이지, 눈치의 재능은 몰랐는데 말입니다.”
유렌의 날카로운 말에, 레니안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편법으로 당신의 영혼을 그 유렌이란 마법사의 시체로 보낸 직후, 저의 영혼은 세계의 법칙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과거의 젊은 제 육체에 심어져 강제당하게 되었습니다. 최대한 당신을 막고, 원래의 역사대로 흘러가게 하라고요.”
“…혹시 전생의 내 몸. 에드빈 드라이언의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것도, 그래서인가?”
레니안의 말을 듣던 유렌의 질문에 레니안은 긍정했다.
“그렇습니다. 한 영혼이 같은 시간대에 함께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도 다른 육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현재 당신의 영혼이 젊은 에드빈의 영혼보다 훨씬 강력하니, 법칙은 자동으로 약한 쪽을 지운 모양이더군요.”
“…그런가.”
그동안 유렌은 풀리지 않았던 궁금증의 답을 알았다.
자신이 시간을 역행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왔다면, 동 시간의 자신의 육체와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그 정답은 이것이었다. 돌아온 순간, 옛 자신의 젊은 육체와 영혼은 그대로 흔적도 없이 소멸해버린 것이었다.
어쩐지 아무리 조사를 해봐도 나오지 않더라더니.
유렌의 복잡한 감정이 섞인 얼굴을 본 레니안은, 그걸 위로라도 하듯 자신의 처지를 입에 담았다.
“그리고 저는, 본래의 역사를 따라가기 위해 눈을 뜬 후, 엘프들을 도와야 했지요.”
“…그건 참 안 됐군.”
레니안의 그 말에, 유렌은 자신의 모든 감정을 일단 밀어 둔 채 그를 진심으로 동정했다.
강제적으로 그 빌어먹을 엘프를 도와야 한다니.
그것은 정말이지 지옥과도 같은 심정일 것이 분명했으니까.
“물론 저도 가만히 손 놓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요.”
하지만 레니안은 결코 법칙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그 강력한 정신력과 잔머리로 슬쩍슬쩍 반항한 것이다.
자신의 젊은 시절 육체. 즉 이 레니안의 육체에 심어지긴 했지만 최대한 늦게 눈을 떠, 아직 약했던 유렌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엘프들을 도와주면서도 은근히 구멍들을 만들어 그들의 자멸을 유도했다.
“엘프들에게 기생수의 씨앗을 준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분명 그것은 놈들의 힘을 올려주며, 미래를 기약할 수 있지만 강한 상대를 만나면 오히려 통째로 불타버릴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니까요.”
“과연. 그 나무를 돕지 않고 미적지근하게 움직인 것도….”
“마수들을 만든다는 핑계로 빠져 있던 겁니다. 뭐, 그 덕분에 너무 많이 만들어버리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그는 그 법칙을 어떻게든 억누르고, 피해 가며 최대한 엘프들을 방해했고 유렌에게 유리하려 애썼다.
그것도 이제는 끝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결국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한계군요.”
쿠우우웅-!
그리고 그 순간. 레니안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와 마력이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지금까지 억눌려 있던 것을 감안이라도 하듯, 더욱더 강렬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찌릿찌릿-
언제든 상대가 이럴 거라고 대비하고 있던 유렌의 몸이 찌릿찌릿하며 조금씩 떨릴 정도로 강렬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법칙의 조종을 간신히 피하거나 억눌러 왔지만, 역시 엘프라는 종족의 멸종은 큽니다. 이제 법칙을 슬쩍 무시하거나 속이는 것도 한계가 온 것 같군요.”
저벅- 저벅-
레니안은 표정이 없는 얼굴로 다가오며 그렇게 말했다.
“법칙은 지금도 제 속에서 외치며 절 조종하려 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한시라도 빨리 죽이고, 나라를 조정해 다시 대전쟁을 일으키라고 말이죠.”
“…!”
그의 말대로 유렌 자신과 그의 마탑원들이 전멸한 후, 전설적인 7레벨 마법사인 레니안이 수많은 마수들을 이끌며 뒤에서 암약한다면?
대체 그것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다시 대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만약 그보단 못하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얼마든지 죽어 나가겠지.
그래. 지옥과도 같은 그때처럼 말이다.
“그러니, 절 멈추시길 바랍니다. 어떻게든, 당신 손으로.”
조용히 선언한 레니안을 보며, 유렌은 스태프를 꽉 붙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생각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과 수하들을 위해.
무엇보다도 새로운 기회를 자신에게 준, 저 레니안을 위해서라도.
자신은 질 수 없었다.
콰아아아앙-!
레니안의 엄청난 마력이 폭발하다시피 늘어나며, 근방의 모든 곳에서 그의 마력이 느껴졌다.
8레벨에 다다랐던 기억이 있는, 7레벨 마법사의 진심이었다.
푸화아아악-!
슈우우욱-!
사방팔방에서 날아오는 은빛의 화염과, 하늘 곳곳을 날아다니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보검들.
그 하나라도 맞는다면 몸이 갈라지거나 불타버리는 상황에서, 유렌은 스태프를 움켜쥐며 그 한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무슨…?!”
레니안이 소리치려 했지만, 유렌은 무시하고 위험한 곳으로 나아갔다.
쩌저저적-!
조금 전 레니안이 한 것처럼, 공간을 주위의 공간을 갈라버리면서.
“어…?!”
레니안의 두 눈에 처음으로 감탄이 아닌 경악이 가득 담기며 커다랗게 커졌다.
‘저, 저걸 그냥 보고 따라 한다고?!’
자신의 상식을 이미 아득히 뛰어넘고 있는, 유렌을 바라본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