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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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26화
제1장 습격을 통한 가르침 (1)
“도, 도련님! 앞! 앞!”
“엉? 어.”
멍하니 마차를 몰던 이레스는 데인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경로를 수정했다. 육두마차 옆으로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지나쳐갔다.
“도련님, 제가 몰까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앞을 확인도 못하는 상태가 벌써 세 번째였기에 데인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지만 이레스는 고맙다는 인사 대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을 멀미로 죽일 일 있냐?”
테라인 성도를 떠난 지 이튿날이 되자 데인과 데미안은 이레스가 마차를 모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이유로 자신들에게 마차를 모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하였다. 이레스도 거절할 이유가 없기에 한 사람당 한 시간씩 마차를 몰게 하였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을 때 말을 이끄는 채찍은 다시 이레스에게 넘어갔다.
데미안은 너무 신중하게 움직여 평소의 두 배나 느리게 움직였고, 데인은 너무 거칠어 마차 안에 사람들이 멀미를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입을 다물며 앞을 바라보는 데인의 모습에 이레스는 피식 실소를 흘리고는 다시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어젯밤 익스퍼드 중급에서 익스퍼드 상급으로 경지가 상승하고 하급 정령이었던 실피아의 진화는 그를 당황시키는 것도 모자라 머릿속에 혼란을 심어주게 할 정도였다.
익스퍼드 상급은 이미 몸과 머리가 기억하고 있는 깨달음이 그 순간 깨어났다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실피아의 진화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와! 실피 커졌어!”
“우와!”
-실피 커졌다! 꺄하하하!
이레스의 귓속으로 아이들의 목소리와 이제는 자기의 입으로 자신을 실피라고 부르는 실피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음.”
전생에서는 40년간 함께했음에도 하급 정령에 머물러 있었던 실피아였다.
다른 정령들과 마찬가지로 말도 하지 않고 계약자의 명에 복종하는 평범한 정령이었지만 4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하였기에 중급 정령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실피아는 중급 정령으로 진화하지 않았다.
그런데 과거로 돌아오고 반년 만에 실피아는 중급 정령으로 진화했고 전생과는 달리 말도 잘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정령으로 바뀌어 있었다.
자신의 머리로는 실피아가 중급 정령으로 진화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고 판단한 이레스는 마차를 모는 상태에서 고개를 돌려 두 용병단을 바라보았다.
전방과 좌측에는 샤벨타이거 용병단이 호위를 하고 있었고 후방과 우측에는 파이어캣 용병단이 호위를 하고 있었지만 두 용병단의 단장들은 마부의 옆에서 밀착 호위를 하고 있었다.
“질문할 것이 있습니다.”
현재 일행에서 이레스가 존대를 하는 사람들은 마차 안에서 쉬고 있는 어른들과 용병단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샤인과 페리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물어보십시오, 도련님.”
“어떤거요?”
동시에 바라보고 동시에 묻고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동시에 상대를 째려보는 두 사람의 모습에 작게 미소를 지은 이레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정령에 대해 약간의 지식을 가진 분이 계신가요?”
“정령이요?”
두 사람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정령과 계약을 한 정령사가 정령에 대한 지식을 가진 자를 찾으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이레스는 그들의 표정을 읽었지만 설명 대신 미소를 그리며 바라보았고 그 둘은 동료들을 향해 말을 이끌고 가 한 사람씩 데리고 왔다.
“샤크라고 예전에 하급 정령사와 함께 의뢰를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레일리라고 하는데 하급 정령사를 호위한 적이 있다고 하네요.”
“샤크입니다.”
“레일리예요.”
첫째 날 수련을 하였던 샤크가 먼저 인사를 하고 붉은 단발머리와 허리춤에 차고 있는 두 자루의 검이 인상적인 여인이 뒤를 이어 인사하자 이레스도 고개를 살짜 숙여 인사를 받아주고 물었다.
“먼저 용병 정령사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음…… 그때를 생각해보면 흙의 정령인 노움과 계약한 정령사였는데 참 재미없는 정령사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재미없는 정령사요?”
고개를 갸웃하는 이레스의 모습에 샤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흙의 정령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정령이었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정령사는 전투를 벌일 때를 제외하고는 정령을 소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조용한 정령사와 정령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정령을 소환하는 것만으로도 정령친화력이 소모되는 것도 있었지만 정령을 관심을 모으는 일종의 물건으로 보지 않는 게 대부분의 정령사였기에 정령을 소환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자신의 의문을 해결해주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이레스는 한 손으로 마차 안을 가리켰다.
“그럼 그 정령이 실피아와 다른 점이 있나요?”
“다른 점이라면…….”
잠시 생각을 하는 듯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샤크가 고개를 돌려 마차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말했듯이 전투를 벌일 때를 제외하고는 정령을 소환하지 않았기에 잘 모르지만 실피아처럼 모습이 선명하지 않았습니다.”
“선명하지 않았다?”
정령의 모습이 선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형체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며,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전생의 이레스처럼 실프라는 정령 전체를 포함하는 이름을 붙여주었을 경우이며, 두 번째가 계약자의 정령친화력이 약할 경우였다.
“흐음. 다른 건요?”
“그렇게 큰 것은 없었지만…… 저는 만약 처음 만난 정령이 실피아였다면 정령은 원래 저렇게 활발한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을거 같다는 정도라고 할까요?”
확실히 실피아는 전생의 실피아와는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어떻게 보면 지금 계약한 정령이 이전의 정령과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정령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령친화력과 가장 잘맞는 정령과 계약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람의 정령과 계약을 하면 다른 속성의 정령이라면 모를까, 같은 하급 바람의 정령과 계약을 할 수가 없었다.
‘예전의 나라고 볼 수 있나?’
이레스가 쓴웃음과 함께 속으로 중얼거렸다.
전생의 자신은 샤크가 말한 정령사와 비슷했다.
전투를 벌일 때를 제외하고는 정령을 소환하지 않았으며 수련을 한다는 목적으로 정령을 소환하여 정령친화력을 극한으로 소모시키더라도 정령과 함께 어울리기는커녕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 뒤에 다른 수련을 하거나 영지의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레스가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레일리라는 여성을 바라보며 똑같은 질문을 던지자 그녀도 샤크처럼 마차를 한번 보고는 대답했다.
“제가 만난 정령은 물의 정령사였어요.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정령과 계약했는데 샤크 씨가 말한 정령사와는 달리 실피아처럼 모습이 선명했어요.”
다른 대답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가 원하는 답일 수도 있었다.
형체가 선명하다면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에게 특징이 있다는 것이기에 잠시 생각을 하던 이레스가 다시 물었다.
“그 정령사는 어땠어요?”
“약간 재미있는 사람이었어요.”
“재미있는 사람이요?”
레일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기억을 회상했는지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분은 말이 좀 많은 귀족이었는데 신분이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용병들을 고용했음에도 함께 싸우고 함께 놀던 사람이었어요. 특히 잠시 쉴 때마다 정령들과 놀아주고 검술은 그 누구보다 뛰어났어요.”
검을 들고 싸우는 정령사.
늑대의 모습을 한 물의 정령사.
정령검사 귀족.
“……혹시 이름을 기억하고 계시나요?”
순간 누군가가 떠올랐지만 기억이 너무 희미했다. 그저 다른 왕국에 자신과 같은 정령검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아마…… 반데크였나?”
“그거다!”
히이잉!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치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바라봤고, 말도 놀랐는지 몇 마리가 크게 울었지만 이레스는 그녀가 말한 반데크라는 정령사로 인해 하나의 단서를 획득할 수 있었다.
물의검사 반데크.
바다의 왕국인 페이언 왕국에 백작이라는 작위를 가지고 있는 정령검사로,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에 중급 정령과 함께 해적들을 소탕하는 대장군으로서 페이언 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에 한 사람이었다.
‘설마…….’
샤크가 말한 흙의 정령사와는 달리 자신은 레일리가 말한 반데크처럼 정령을 매일 소환하고 있으며 정령과 함께 놀아주는 정령사였다. 그렇기에 아주 작지만 단서를 찾았다고 확신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단서로 인해 이상한 의문점이 생기고 말았다.
‘놀아주면 진화한다는 거야?’
전생에서는 40년간 실피아와 전장을 누볐지만 중급 정령으로 진화하지 않고 하급 정령에 머물렀다. 그러나 지금은 전장을 누비지도 않고 그저 정령과 함께 놀았다.
반데크와 비슷했고 그런 그는 10년 뒤에 물의 하급 정령을 진화시켰다. 그러나 자신은 전투를 벌이지 않고 그저 놀아주었는데 진화했다. 즉 그 하나의 단서를 통해 답을 찾는다면 놀아주었기에 진화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무슨 개떡 같은 이론이…….”
하지만 이레스가 그 개떡 같은 이론이라 생각한 놀아주면 진화한다는 이론은 정답일 수도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40년 후에도 정령과 정령친화력, 정령진화는 베일에 싸여있는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 * *
약간 강행을 하여 해가 진 후에도 마차를 몰던 이레스는 하늘에 떠오른 두 개의 달이 머리 위를 지나는 순간 산 중턱에서 멈추어 섰다.
산 중턱에서 야행을 결정한 이레스는 가장 먼저 샤벨타이거 용병단과의 계약을 지키기 위해 한 사람과 대련을 해준 뒤에 실피아를 소환해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레스. 왜?
실피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지만 이레스는 대답 대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사람들과 너무나 잘 어울려 지내며 말도 배우면 그때그때 알아듣고 습득하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를 키우는 느낌이 들 때도 자주 있었지만 전생에서 정령과 함께 했을 때보다 훨씬 즐거웠다.
하지만 정말 실피아가 중급 정령으로 진화한 이유가 놀아줬기 때문에 진화한 것이라면 그는 전생의 실피아에게 너무나 많은 잘못을 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때의 자신이 정령이라는 것을 마법처럼 하나의 무기로 생각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레스가 작게 미소를 그리며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실피아가 날아올라 손바닥 위에 올라섰다.
-헤헤헤.
“크큭.”
해맑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실피아의 모습에 그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은 이레스는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실피아를 향해 달려오자 그녀가 아이들을 볼 수 있게 손을 살짝 틀었다.
실피아도 달려오는 아이들을 발견했는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이레스! 이레스!
“놀다와.”
-와아!
정말 즐겁다는 듯이 양손을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지른 실피아가 아이들을 향해 날아가자 이레스는 미소를 지은 채 실피아와 아이들을 바라보다 숲 속으로 고개를 돌렸다.
전생에 실피아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해소시켜주면 된다.
더욱더 많이 소환해주고, 놀고 싶으면 놀게 하며, 노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면 된다.
“여섯? 아니 여덟이군.”
그의 마나가 숲 속을 달려오는 여덟 개의 마나덩어리를 읽고 알려주었다.
익스퍼드 중급이 마나를 바깥으로 표출하게 해주는 최초의 경지라면 익스퍼드 상급의 경지는 미세한 마나를 감지할 수 있는 육감을 만들어주는 경지였다.
이레스가 고개를 돌려 사방을 경계하는 용병들을 바라본 후에 다시 자신의 검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알린다면 용병들은 호위를 위하여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야 하고, 그렇게 되면 아이들과 놀고 싶어 하는 실피아는 실망할 것이 분명했다.
이레스는 마나를 통해 육감을 더욱더 강하게 만들었다. 지금 오는 마나덩어리들은 익스퍼드 중급 때라고 하면 동시에 공격을 하더라도 막아낼 수 없었지만 이젠 자신이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마나덩어리였다.
“흐음.”
익스퍼드 상급의 경지.
서른에 나이로 올랐던 익스퍼드 상급의 경지가 아닌 열여섯의 나이로 전성기 때 오른 익스퍼드 상급의 경지는 뭐가 다른지 한번 시험해보고 싶었다.
이레스가 고개를 돌려 한쪽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데인을 바라보다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크큭.”
그리고 기사를 목표로 한 누군가에게는 기사가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실전이라는 것을 가르쳐줄 수 있는 기회였다.
이레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한쪽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데인에게 다가갔다.
“도련님?”
자신의 발소리를 들은 데인이 수련을 멈추고 자신을 바라보자 이레스는 작은 미소를 띤 채로 그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대련 자체가 심각한 부상을 입을 정도로 강렬한 대련이 아니었기에 땀을 흘리고 있어도 상처도 없고 마나의 양에도 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대답 대신 검지를 까닥이자 고개를 갸웃하던 데인이 강아지처럼 자신의 옷을 들고 달려왔다. 이레스는 아무 말도 없이 숲 속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오늘은 수련을 하나 더 추가할게.”
“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