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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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20화
제9장 왕자 레이온 (2)
테라인이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네 사람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일단 에긴스.”
“예! 전하.”
“반 가문이면 상업으로 유명한 가문으로 알고 있는데.”
“그, 그렇습니다!”
자신의 가문을 알고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란 에긴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대답했지만 바로 잘못을 깨닫고 황급히 고개를 숙이자 테라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일어나라.”
잠시 주춤거리는 것이 있었지만 네 사람이 쭈뼜쭈뼛 자리에서 일어나자 테라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라. 그대들은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들이다. 자신에 능력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엔 망설이는 기색 없이 네 사람이 고개를 들자 테라인은 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레이온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레이온은 그 미소를 무시라도 하는 듯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테라인이었기에 고개를 숙이는 순간 그의 눈동자가 떨리는 것을 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테라인이 다시 고개를 돌려 에긴스를 바라보았다.
“상가의 가문으로서 이리 뛰어난 기사를 배출해 내다니, 반 자작에게 안부를 전해주게.”
“가, 감사합니다!”
고개를 크게 숙이며 감사를 표한 에긴스는 케이든 후작이 테라인에게 건네주고 그가 자신에게 건네주는 상장패를 받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축하하네, 에긴스.”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테라인은 작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인 후에 3등 데인을 바라보았다.
“평민으로서 이 자리까지 올랐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는 것이지.”
“아, 아닙니다.”
“어떤 부모님이시기에 이렇게 뛰어난 아이를 두었는지 한번 보고 싶구나.”
데인이 창피한 듯이 얼굴을 푹 숙이자 테라인은 천천히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작게 쓰다듬어준 후에 케이든 후작이 건넨 상장패를 내밀었다.
“축하하네, 데인.”
“가, 감사합니다.”
테라인이 고개를 돌려 이드린을 바라보았다.
“헨바인 가문의 이드린이라.”
“예, 그렇습니다.”
“축하하네.”
다른 사람들보다 짧은 대화였지만 이미 한 나라의 왕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에 기쁨을 느낀 이드린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상장패를 받으며 고개를 숙이자 테라인의 시선이 마지막 시상자인 레이온에게 옮겨졌다.
아무런 말 없이 레이온을 바라보던 테라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묻겠다.”
“물으십시오.”
말을 더듬으며 당황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레이온이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테라인이 자신도 모르게 레이온의 허리춤에 달려있는 검을 바라보았다.
“마나역류 현상 때문에 기억 못할 수도 있겠지만 혹시 결승전에서 한 말을 기억하느냐?”
“기억합니다.”
“그것을 잊지 않을 자신이 잊느냐?”
마이크를 들고 있었기에 테라인의 목소리는 그의 앞에 서 있는 레이온의 목소리와 함께 공연장을 울리고 있었다.
레이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교육을 받아야 한다. 어렵고, 힘들고, 죽고 싶을 수도 있다. 평범하게 검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정치계가 그렇다. 잘못한 판단을 내리면 백성들이 힘이 들고 그들의 원성은 너에게로 가니까.”
물끄러미 테라인을 바라보던 레이온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저의 스승을 보셨습니까?”
“이레스 말이냐?”
아카데미에서 가장 유명한 학생 중 한 사람이 이레스이며 어제의 사건도 이레스로 인해 종결이 났기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다 옥상 위에 서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 인간의 검술 훈련은 간단했습니다. 모든 수련을 맡기고 하루에 한 번씩 대련을 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 대련에서 전 반년 동안 단 한차례 그를 이겨본 적도 없거니와 그의 옷깃조차 건드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냐?”
“말 그대로 굴욕과 패배감을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게 한 것이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솔직히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굴욕감과 패배감이 오히려 저를 붙잡아줬습니다.”
레이온이 고개를 돌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이레스가 자리한 건물의 옥상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교육이 무엇이든 간에 버티지 못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변했구나.”
테라인이 처음으로 레이온을 바라보며 미소를 그리더니 그의 머리를 작게 쓰다듬었다.
“많이 변했어.”
창피한 것인지 아니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레이온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붉혔지만 테라인은 계속 미소를 지은 채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못 알아볼 정도로 변했구나, 아들아.”
“……!”
“……!”
“……!”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란 듯이 레이온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테라인은 그런 자신의 아들을 흐뭇한 미소와 함께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옥상 위에 서 있는 이레스를 바라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굴욕과 패배감이라.’
* * *
솔직히 이 정도의 관심이라면 무시할 수도 있었다.
왕권파의 가문 중 하나인 검으로 유명한 그레이즈 가문의 장남이 왕자에게 검을 가르쳤다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라인이 자신을 쳐다보는 순간 이레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젓고 말았다.
마치 더 이상의 관심은 필요 없다는 행동이었지만 테라인은 그런 이레스의 모습에 입가에 그린 미소를 더욱더 진하게 만들었다.
표정만 보아도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아들과 대련을 하면서 패배감과 굴욕을 주었다고 하니 약간의 장난을 치려는 것이었다.
“레이온의 검술 스승인 이레스는 앞으로 나오너라!”
‘빌어먹을.’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속으로 중얼거린 이레스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테라인의 짓궂은 표정을 보고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번엔 테라인이 이상하다는 듯이 실눈을 뜨며 바라보았고 이레스는 옥상 난간에 손을 올리더니 그대로 양팔에 힘을 주어 옥상에서 점프를 했다.
“실피아.”
점프를 하고 난 직후이기는 하지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그의 머리 위로 작은 회오리바람과 함께 실피아가 나타나 바람을 조종해 그를 공연장 위에 착지시키고 사라졌다.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습니다, 전하.’
자신을 관심의 대상으로 만들어 괴롭히려 한다고 생각한 이레스였기에 그는 오히려 더욱더 많은 관심을 쏠리게 하기 위해 옥상에서 공연장으로 날아서 착지했다.
공연장 위에 착지한 이레스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레스 더 그레이즈, 테라인 왕국의 주인 테라인 전하를 뵙습니다!”
마이크가 필요 없을 정도로 마나를 이용해 큰 소리로 외치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갑작스레 시작된 두 사람만의 이상한 대결로 인해 네 사람이 멍하니 이레스를 바라보는 순간 테라인이 한쪽 입가를 살짝 끌어올렸다.
“레이온을 도와준 것에 대한 선물을 주고 싶네.”
“그레이즈 가문의 장남으로서 저하를 보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미 받았다. 5년간의 자유를 말이다.
테라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레이온의 머리를 작게 쓰다듬었다.
“그래도 자네는 세상을 배우기 위하여 평민의 신분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한 레이온의 비밀을 감추고 실력을 키워주지 않았는가. 그 정도면 선물은 주어야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네.”
‘이 영감탱이가…….’
자신도 모르게 전생에서의 성격이 나와 버렸는지 속으로 욕설을 내뱉은 이레스가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고개를 들자 테라인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필요한 것이 있는가? 원하는 것이 있는가? 인재를 내어줄 수도 있고 그대만의 영지를 하사할 수도 있네.”
이레스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약간의 심술이 있기는 하였지만 테라인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일을 크게 벌였는지에 대해 생각을 했다.
정말 호의일지 아들을 위한 작은 복수일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단 하루지만 지금까지 알게 된 테라인을 생각한다면 호의보다는 레이온에게 굴욕감과 좌절감을 주었다는 것에 대한 작은 복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원하든 간에 약간의 장난을 쳐놓을 것이 분명해. 인재를 내어준다는 것은 마법사든 기사든 내어주겠지만 평범한 놈은 아니라는 것, 영지를 주어도 평범하지 않을 터이니, 물건이 좋다!’
생각을 정리한 이레스가 누군가를 떠올렸는지 작게 미소를 지었다.
“마나석이 필요합니다.”
생각과는 다른 대답에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이레스와 테라인을 번갈아 바라보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눈을 가늘게 뜨며 이레스를 바라보던 테라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나석이면 되겠는가?”
“예. 하급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약속을 철회할 생각은 없었기에 가만히 마나석에 어떠한 장난을 칠지 유심히 고민하던 테라인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케이든 후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현재 왕실에서 보유하고 있는 하급 마나석이 몇 개인지 알고 있는가?”
“삼천 개가 조금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생산량은?”
“한 달에 일백 개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테라인이 이레스에게 말했다.
“하급 마나석으로 일천 개를 주지.”
또 한 번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 말았다.
하급 마나석이라도 일천 개라면 판매를 할 경우 작은 영토를 구입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설마 전체의 3할에 해당되는 양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지 이레스가 고개를 번쩍 들었지만 여전히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를 지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저 마나석이다.
마나를 품고 있는 마나석에 불과한데 어떻게 장난을 칠 수 있을까.
* * *
테라인 아카데미 검술 축제 시상식.
그것은 지금까지 있었던 시상식보다 엄청난 사건을 몰고 온 시상식이 되어버렸다.
검술 대회 공동 1등이 평민으로서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세상을 배우던 레이온 왕자라는 것과 자신의 아들에게 검을 가르쳐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천 개의 하급 마나석을 선물한 테라인 때문이었다.
검의 가문인 그레이즈 가문에서 마나석이 필요한 경우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기사들의 마나심법을 순간적으로 증폭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일천 개의 마나석을 사용했을 경우에는 완벽하게 달라진다.
일천 개를 일천 명의 기사에게 선물한다면 그들의 능력은 물론이거니와 그레이즈 가문 자체의 무력도 상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갑작스러운 사건에 빨리 반응하기 위해 움직일 때 레이온은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테라인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아버님?”
“그놈 대체 뭐냐?”
“예?”
레이온과 함께 왕실로 돌아온 테라인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놈 말이다, 그놈. 네 스승.”
“아아.”
이레스를 떠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작게 미소를 그리고 만 레이온이 테라인을 바라본 채로 다시 물었다.
“뭐 때문에 그러십니까?”
“좀 골려주려고 마나석을 골랐을 때 일천 개를 준다고 했는데 당황하기는커녕 바라는 바다라는 듯한 표정을 보았느냐?”
“예.”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미소를 그리지 않았느냐.”
“크큭.”
처음으로 본 아버지의 색다른 모습에 웃음을 흘린 레이온이 그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테라인은 고개를 푹 숙이던 옛날과는 달리 자신처럼 창밖을 바라보는 레이온의 변한 모습에 작은 미소를 띤 채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놈은 어찌한다고 했느냐?”
미리 아카데미에 손을 써놓아서 기숙사에 있던 모든 물건을 가지고 왕성으로 돌아왔다.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빨리 끝내야 하는 버릇이 있다 보니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돌아온 것이었다.
레이온이 잠시 눈을 껌뻑이며 바라보다 아버지가 말하는 그놈이 누구인지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렸으니 귀찮다고 자퇴할 거라고 합니다.”
“역시 이상한 놈이야. 다른 사람들은 관심을 받고 싶어 죽자 살자 달려들 텐데.”
“원래부터 특이한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레이온의 보고서를 떠올린 테라인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 작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그런 놈에게서 그런 귀여운 정령이 나왔을까.”
잠시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실피아의 모습에 레이온이 작게 고개를 끄떡였다.
이번엔 테라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실피아를 볼 때마다 자신도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형님.”
“그래, 가라. 며칠 내로 돌아가마.”
축제가 끝나자 일레인과 엘리스는 영지로 돌아가기로 했고, 이레스는 자퇴서를 내고 남은 할 일을 끝마친 뒤에 돌아가기로 했다.
아카데미 정문에서 그들을 배웅해주던 이레스가 고개를 돌려 메리의 머리 위에 앉아있는 실피아를 바라보았다.
“실피아. 이리 와.”
-싫어!
“…….”
-베에.
-멍!
실피아가 혀를 날름 내밀며 메리의 복슬복슬한 털 사이로 자신의 얼굴을 숨기자 메리가 꼬리를 흔들며 큰 소리로 짖었다.
이레스의 시선이 실피아에게서 메리로 옮겨졌다.
“이봐.”
-헥헥헥.
“엘리스 잘 부탁한다.”
-멍!
크게 짖으며 머리를 쓰다듬는 자신의 손에 얼굴을 부비는 메리의 모습에 작게 미소를 지은 이레스가 다시 실피아를 바라보았다.
“이리 오라니까?”
-싫어! 더 놀 거야!
“내가 놀아줄게!”
-베에! 놀아준다고 했는데 안 놀아줬잖아! 이만큼이나!
실피아는 양손으로 아카데미 축제 기간인 만큼의 일곱 개의 손가락을 펼쳤다.
-놀아준다고 해놓고! 바보! 그래서 매일 메리랑 놀았단 말이야!
“바보란 말은 또 어디서 들었어!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실피아가 발끈했는지 인상을 찌푸리다 큰 소리로 소리 질렀다.
-미친개 이레스!
“그런 말 하지 말랬지!”
-미친개 이레스! 미친개! 미친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