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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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9화
제9장 왕자 레이온 (1)
이레스는 맞은편에 서서 자신을 말똥말똥한 눈으로 쳐다보는 엘리스와 그녀의 옆에 서서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메리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정령친화력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뛰어난 능력이 아니야. 오러를 발현할 수 있도록 개량된 마나도 아니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룬어를 만들 수 있는 마나도 아니기 때문이지. 그럼 정령친화력이란 뭘까?”
이레스는 자신의 머리 위에 앉아있는 실피아를 가리켰다.
“정령계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정령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채워진 정령의 마나라고 생각하면 돼. 흠, 예를 들어 설명하면. 엘리스.”
“예, 오라버니.”
“메리보고 물폭탄 하나 만들어서 저 나무에 쏘라고 해봐.”
“예.”
작게 고개를 끄덕인 엘리스가 쪼그려 앉아 메리의 머리를 작게 쓰다듬었다.
“메리.”
-멍!
“물폭탄을 만들어서 저 나무를 공격해줄래?”
-멍!
크게 짖은 메리가 엘리스가 가리킨 나무를 빤히 바라보자 메리의 머리 위로 거대한 물구슬이 나타나 나무를 향해 쏘아졌다.
쾅!
비틀.
물폭탄이 나무와 부딪쳐 폭발하는 순간 엘리스의 신형도 비틀거렸다.
몸 안에 있던 무언가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자 그 공간이 공허감을 채워버려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은 것이었다.
이레스는 그 느낌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부축해주었다.
“무언가 비어버리는 느낌이 들었지?”
“네.”
“그게 정령친화력, 정령력이라 불리는 힘이야.”
이드린은 그저 공포에 의해 기절한 것일 뿐이었지만 레이온의 경우에는 마나역류 현상이 일어났기에 시상식은 오전에서 오후로 바뀌어버렸다.
갑작스레 시간이 생기자 할 일이 없었던 이레스는 엘리스에게 정령친화력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그나마 있는 친구가 레이온인데 그가 바로 부상의 원인으로 시상식을 오후로 바꿔버렸으니 만날 사람이 없던 것이었다.
“그럼 이 정령력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메리를 소환해.”
“그건 계속하고 있는데요?”
약간 몸이 괜찮아졌나 싶으면 바로 메리를 소환해 노는 엘리스였다.
이레스가 자신도 모르게 레이온과 대련할 때처럼 진한 미소를 지었다.
“한계를 넘어설 때까지 소환해. 그게 정령력을 빨리 늘리는 방법이니까. 처음 소환했을 때 느꼈지? 순간적으로 정신력이 흩뜨려지는 걸.”
“예.”
“그거 버티다 진짜 기절할 거 같다 할 때 돌려보내.”
“……위험한 거 아니에요?”
엘리스가 자신도 모르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묻자 이레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을 가리켰다.
“어차피 정령력이라는 것은 정신적 에너지야. 마나처럼 몸 안에 가두는 육체적 에너지가 아니니 그 결과로 봐봐. 나는 그 방법으로 정령친화력을 늘렸는데도 아직까지도 건강하잖아.”
잠시 생각에 잠긴 엘리스가 고개를 돌려 꼬리를 빠른 속도로 흔들고 있는 메리를 바라보다 굳은 결심이라도 한 듯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할게요.”
“좋았어.”
그 후 이레스는 엘리스에게 정령친화력이 무엇인지 정령이 무엇인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천천히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똑똑.
수련을 시작한 지 몇 시간이 흘렀을 때 노크 소리와 함께 일레인과 헬버튼이 안으로 들어왔다.
“1시간 뒤에 시상식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레스는 일레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해준 후에 땀을 뻘뻘 흘리는 상태에서도 메리를 소환하고 있는 엘리스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여기서 끝.”
“후아!”
털썩.
끝이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엘리스가 작게 숨을 고르더니 수고했다는 듯이 자신의 손등을 핥는 메리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메리야, 미안해.”
-멍!
“누나가 더 노력해서 오랫동안 놀게 해줄게.”
메리는 고개를 흔들고 그녀의 팔에 머리를 부비더니 물이 되어 흩어졌다. 이레스가 이번엔 자신의 머리 위에 앉아있는 정령, 실피아를 바라보았다.
“실피아는 어떻게 할래?”
-흥! 나도 돌아갈래!
노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실피아가 콧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것에 망설임 없이 찬성하더니 자신의 눈앞으로 날아오르자 이레스는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다 그녀의 머리를 작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
-흥!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음에도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린 실피아도 바람이 되어 사라지자, 이상하다는 듯이 실피아가 사라진 장소를 바라보던 이레스는 다시 엘리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넌 어떡할래?”
“쉴래요.”
“그래?”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 엘리스가 그리폰 기사단의 기사 한 사람의 부축을 받은 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자 이번엔 일레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전부 가냐?”
“엘리스가 안 간다고 했으니 그리폰 기사단 열다섯을 남겨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러냐.”
익스퍼드 상급 이상의 기사를 열다섯이나 남긴다는 것을 보니 자신보다 더한 시스터 콤플렉스인 거 같았다.
* * *
우글우글.
이레스는 수많은 사람이 왕성 중심부에 자리 잡은 거대한 공연장으로 향하는 모습에 작게 미소를 지었다.
아카데미 축제에서 열리는 검술 대회는 평범한 축제의 하나가 아닌 재능 있는 기사를 찾아냈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회나 다름없었기에, 대회 시상식을 테라인 아카데미가 아닌 왕성 중심부에 만들어놓은 공연장에서 열었기 때문이다.
어제의 사건 때문인지 공연장에 다가갈수록 평민과 귀족이 따로따로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레스는 주위를 둘러보다 비어있는 자리가 없자 건물 옥상을 바라보았다.
귀족들의 경우에는 좋은 자리를 이미 차지하고 있었기에 평민들은 기사가 막고 있는 공간의 뒤편에 서 있거나 건물 옥상에 올라가 구경을 하고 있었다.
“우리도 올라가서 볼까?”
“그게 나을 거 같군요.”
축제에 참가하지 않은 귀족들까지 자신의 호위를 이끌고 오다 보니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일레인이 귀찮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자 이레스는 일행을 이끌고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확인이 가능했고 공연장 뒤편에 천막이 쳐져 있는 것도 볼 수가 있었다.
“형님.”
“왜?”
“그…… 레이온 저하는.”
잠시 뜸을 들인 일레인이 이번엔 말끝을 흐리자 이레스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레이온 저하는 왜?”
“얼마나 강하신겁니까?”
“익스퍼드 초급, 지금은 중급 경지에 올랐다.”
“열다섯의 중급이라…….”
보기 드문 검의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고 뒤에 서 있던 그리폰 기사단의 기사들이 감탄을 했지만, 그다음 들려오는 말을 이해하는 순간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검술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지는 반년. 대련을 제외하고는 혼자서 독자적으로 수련을 했지.”
“……!”
익스퍼드 중급 경지 자체가 누구나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오러를 사용하는 최초의 경지였기에 검술에 대한 재능이 있어야 오를 수 있는 경지인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익스퍼드 중급의 경지를 반년 만에 올랐다면 그는 평범하게 검의 천재라 불리는 것이 아니라 1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는 것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미래의 레이온을 떠올린 일레인이 군침을 삼키며 다시 물었다.
“형님도 알고 계셨습니까?”
난간에 팔을 올린 채로 공연장을 내려다보던 이레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었으면 대련을 통한 수련이 아닌 직접 검을 가리키거나 왕실로 보냈겠지.”
전생은 그저 같이 놀아주고 성격만 바꾸었을 뿐 검술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때의 그도 검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보니 검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레스는 일레인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레이온이 왜 신분을 감춘 채로 아카데미에 입학을 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테라인의 부탁도 있었지만 너무 유약한 성격을 고치기 위해 평민의 신분으로 입학을 했다는 것 자체를 귀족들로서는 믿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렇군요.”
작게 고개를 끄덕인 일레인이 다시 공연장을 내려다보는 순간 검술 대회의 사회를 맡았던 4학년 학생이 공연장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보와는 다른 엄청나게 뻣뻣한 모습으로 계단을 오르고 공연장 중심부로 향하는 모습에 이레스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하긴.’
테라인이 내뿜는 존재감은 평범한 사람에게 큰 떨림을 주거나 긴장감을 극대화시켜 공포감을 심어줄 정도로 엄청났다. 그렇기에 사회자가 긴장한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아아.”
마이크를 검사하는 듯이 작게 소리를 낸 사회자가 눈을 감은 채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작게 미소를 지었다.
“바로 정신을 차렸다고?”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는 눈빛으로 사회자를 바라보는 순간 그가 한 손을 펼쳐 하늘 위로 치켜세우며 소리쳤다.
“지금부터 제13회 테라인 아카데미 검술 대회의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
귀족들은 조용히 공연장을 바라보았지만 아무리 귀족들이 많더라도 평민보다 많지 않았기에 평민들이 동시에 소리를 지르자 거대한 함성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채우고 사라졌다.
사회자는 함성소리가 마음에 든 듯이 주위를 바라보다 미소와 함께 몸을 떨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시상식은 아카데미의 교장이신 베자인 백작님이 아닌 테라인 아카데미 건설자께서 시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카데미 건설자?”
건설자라는 것은 아카데미를 건설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같이 온 동료나 친구, 가족과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눌 때 누군가를 떠올린 귀족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공연장 위로 올라가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저벅! 저벅!
계단을 올라 공연장 위에 서는 순간 당연한 듯이 술렁임이 멎으며 사내의 발소리만 들려오기 시작했다.
황금빛 머리카락과 왼손에 착용하고 있는 반지가 인상적인 50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중년인이었다.
평민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누군가 하는 생각과 함께 사내를 바라보는 순간 몸을 부들부들 떨던 귀족들이 황급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세이르 백작가의 가주, 세이르 백작이 테라인 왕국의 주인, 테라인 전하를 뵙습니다!”
“즈벤 자작가의 가주, 즈벤 자작이 테라인 왕국의 주인, 테라인 전하를 뵙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귀족들의 외침은 몇 분이 지나도 계속되었고 귀족의 거대한 외침을 들은 평민들은 사색이 된 채로 사내를 바라보다 황급히 양쪽 무릎을 꿇었다.
털썩! 털썩!
공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차례차례 무릎을 꿇는 모습은 엄청난 광경이었다.
하지만 테라인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사회자가 들고 있는 마이크를 뺏어 입에 가져다대었다.
“일어나라.”
모든 사람들이 왕의 명령이라는 생각을 했는지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테라인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회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시상식을 시작하지.”
“아, 알겠습니다.”
고개를 깊게 숙이며 대답한 사회자가 또 한 번 심호흡을 통해 정신을 차리더니 마이크를 입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4등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테라인 아카데미 검술대회 4등 에긴스 더 반! 테라인 아카데미 검술대회 3등 데인!”
우와아아!
두 사람이 동시에 올라오자 다시 한 번 거대한 함성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성을 가진 귀족인 에긴스보다 성이 없는 평민인 데인이 3등의 자격으로서 시상식에 오르는 모습에 평민들이 감동을 한 것이었다.
에긴스와 데인이 쑥스러운 듯이 똑같이 얼굴을 푹 숙인 채 걸음을 옮겨 테라인의 앞에 서는 순간 한쪽 무릎을 꿇었다.
“테라인 아카데미 검술대회 공동 1등 이드린 더 헨바인!”
우와아아아!
에긴스와 데인이 오를 때보다 더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처음 보는 귀족이었지만 일단 귀족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밉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여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이드린이 사람들의 함성소리에 걸맞게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왔지만 역시 왕의 앞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테라인의 앞에 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멈칫하다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 테라인 아카데미 검술대회 공동 1등!”
모두의 시선이 뜸을 들이는 사회자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약간의 긴장감을 스릴로 만들어버리는 그 모습에 이레스가 재밌다는 듯이 사회자를 바라본 채로 헬버튼에게 말했다.
“쟤도 저희 쪽에서 영입하죠. 외교 쪽에는 최고일 거 같은데.”
“……허허허!”
외교 쪽으로는 생각도 못했는지 잠시 이레스를 쳐다본 헬버튼이 작게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주 짧은 대화가 끝났을 때 사회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레이온입니다!”
설마 성이 없는 자가 1등을 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사람들이 당황하며 공연장을 올려다보았지만 이내 금발의 청년이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우와아아아!
천천히 계단을 오르던 레이온의 눈이 테라인에게 쏠리는 순간 동공이 흔들리고 걸음도 느려졌다.
테라인은 오히려 그런 레이온의 모습에 작은 미소를 띠었고 천천히 걸어오던 그가 굳은 결심이라도 한 듯이 모르는 척 무릎을 꿇자 다시 사회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전하.”
“고맙네.”
사회자가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로 뒤로 물러나자 케이든 후작이 네 장의 상장패를 양손에 들고 테라인의 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