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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공작 18화

무료소설 구름공작: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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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구름공작 18화

제8장 철혈의 공작 (2)

 

 

“형님.”

 

테라인 아카데미 보건실 침대에 누워있는 레이온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레스는 자신을 부르는 일레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일레인과 엘리스, 그리고 헬버튼과 보건실 입구를 지키는 두 기사를 제외하고는 모든 그리폰 기사들이 보건실에 모여 있었다.

 

한순간에 불과할 정도로 바로 레이온에게 시선을 돌린 이레스였지만 형님과 시선이 마주쳤다는 것을 기억한 일레인은 바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명분이 저희에게 있다고 해도, 그는 멕케인 공작가의 사람입니다.”

 

“무섭냐?”

 

“귀찮습니다.”

 

일레인에게서 귀찮다는 말이 나올 정도면 그도 멕케인 공작의 힘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레스가 그런 행동을 하면서까지 레이온을 지킨 이유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걱정 마라. 믿는 사람이 있으니 한 행동이다.”

 

“걱정 말라고 해도 걱정이 됩니다만.”

 

진심으로 대꾸하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도 연무장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감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러를 사용하고 정령을 소환하는 무력이 아닌 또 다른 힘, 가문의 주인이 될 자신의 형의 또 다른 능력을 단편적이지만 보았다는 것 때문이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통해 상대를 압박하며 말문을 막아버리는 그 모습이 너무 대단하게 보였다.

 

일레인이 자신도 모르게 침대에 누워있는 레이온을 바라보았다.

 

평민으로서 결승전에 오른 것도 대단했지만 아카데미에서 알려주는 하급 마나심법을 통해 익스퍼드 중급 경지에 올라야만 사용할 수 있다는 오러까지 발현해냈다.

 

마나역류 현상으로 인한 폭주라고는 하지만 그 폭주를 견뎌낸 지금은 불안정하지만 익스퍼드 중급 경지에 있었으며, 이드린과의 대결에서 외친 그의 이야기는 자신의 정신을 흔들리게 만들 정도로 감동을 주었다.

 

“……그는 누구입니까?”

 

여기서 일레인이 모르는 사람은 레이온밖에 없다.

 

이레스는 조용히 누워있는 레이온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지.”

 

가문의 소가주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가족을 제외하면 단 하나밖에 없다.

 

“혀, 형님.”

 

“오, 오라버니.”

 

갑작스레 들려오는 당황한 목소리에 이레스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일레인과 엘리스가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저, 저는 형님의 취향을 무시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다른 귀족들에게는 폐가되니 조심해주시면…….”

 

“오, 오라버니.”

 

당황하지만 자신의 말을 내뱉는 이레스와 실망했다는 듯이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는 엘리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던 이레스가 무언가를 깨닫고는 어이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쪽이 아니니까, 걱정 마라.”

 

“저, 정말입니까?”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정말 크게 다가왔는지 일레인이 다시 묻고 이레스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하려할 때 문밖에서 엄청난 외침이 들려왔다.

 

“추우웅!”

 

보건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볼 때 이레스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왔다. 믿는 사람이.”

 

* * *

 

일레인은 보건실을 방문한 두 사람을 보고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이레스와 헬버튼이 동시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정식적으로 예를 표하는 순간부터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레이즈 가문의 장남, 그레이즈 더 이레스가 테라인 전하를 뵙습니다.”

 

“그레이즈 가문의 기사, 폰덴 더 헬버튼 남작이 테라인 전하를 뵙습니다.”

 

“재밌었네.”

 

인사를 받아주는 대신 테라인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고는 천천히 보건실을 둘러보자 일레인이 당황한 듯이 눈을 껌뻑이는 엘리스의 소매를 살짝 건드린 후에 이레스와 똑같이 귀족의 예를 표했다.

 

“그레이즈 가문의 차남, 그레이즈 더 일레인이 테라인 전하를 뵙습니다.”

 

“그레이즈 가문의 장녀, 그레이즈 더 엘리스가 테라인 전하를 뵙습니다.”

 

이레스와 헬버튼이 인사할 때와는 다르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받아준 테라인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침대에 누워있는 레이온에게 다가갔다.

 

물끄러미 잠이 든 레이온을 바라보던 테라인이 물었다.

 

“어떻다고 하나?”

 

“하루 푹 쉬고 나면 괜찮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렇군.”

 

작게 고개를 끄덕인 테라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직까지도 예를 거두지 않은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될 것을 알고 나보고 조용히 관람하라고 한 건가?”

 

이레스가 심장에 가져다대었던 왼쪽 팔을 내리더니 고개를 들어 대답 대신 작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허허!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다는 말인가?”

 

“원래 제가 바랐던 것은 레이온의 검술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성격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바뀌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는 것은 이 아이가 테라인 왕국의 왕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이군.”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사람의 모습에 깜짝 놀란 일레인 일행이 레이온의 정체를 듣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침대에 누워있는 레이온을 바라보았다.

 

왕자.

 

반년이라는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으며 테라인이 레이온의 수련을 위해 비밀 연무장에서 수련 중이라고 말했기에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비밀 연무장이 아닌 아카데미에 입학을 했다.

 

그것도 평민의 신분으로.

 

이레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그저…….”

 

잠시 뜸을 들이는 이레스의 모습에 테라인이 바로 입을 열었다.

 

“괜찮네, 보고서를 통해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으니.”

 

“그저 맞고 다니는 게 불쌍해서 단련 좀 시키려했는데 왕가의 검법을 사용하더군요.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자네 말고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흐음.”

 

알겠다는 듯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 테라인이 그와 함께 예를 표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이레스와 대화를 하고 싶네만.”

 

“알겠습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일레인을 대신하여 헬버튼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더니 일행을 이끌고 보건실을 나서자 테라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무엇인가?”

 

왕자라는 신분을 알게 되었음에도 그것을 감추고 단련시켰다는 것은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 테라인이었다.

 

이레스는 대답 대신 잠시 레이온을 바라보다 다시 테라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일 검술대회 시상식 날 레이온 저하의 정체를 밝히고 왕실로 돌아가시는 것, 그것이 제가 바라는 것입니다.”

 

“호오?”

 

생각 이외의 소원에 테라인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그리다 다시 물었다.

 

“이유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력과 왕으로서의 자질을 키우는 것은.”

 

“즉, 제대로 왕위승계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가?”

 

이레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일주일마다 올라오는 정기적인 보고서와 직접 확인한 단 하루만으로도 이레스의 말이 없었어도 왕위계승 수업을 받기 위해 데리고 돌아가려고 했다. 그렇기에 그것은 소원이라기보다는 해야 할 일에 가까웠다.

 

“다른 것은 없는가?”

 

이레스는 잠시 생각을 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단 5년, 그레이즈 가문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관심을 거두어주십시오.”

 

이번에는 테라인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관심을 거두라는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무시하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왕가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한 영지전을 일으켜 영토를 넓혀도, 다른 나라를 침공해도 무시하라는 뜻이었다.

 

테라인의 눈빛이 잠깐 변하는가 싶더니 다시 원상태로 돌아와 이레스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유는?”

 

“귀족파를 압박하겠습니다.”

 

어떠한 방법으로 귀족파를 압박하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귀족파를 압박한다는 것은 자신에게는 가장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스무 살도 넘기지 못한 청년에게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레이즈 공작의 생각인가?”

 

“아닙니다. 제 생각입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방법은 확실한 것인가?”

 

이번엔 대답 대신 미소를 그리자 테라인이 피식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레이온에게 시선을 돌렸다.

 

조용히 잠들어있는 자신의 아들의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굳은살과 상처가 많은 손이 지금까지 얼마나 힘든 수련을 했는지 알려주는 듯했다.

 

테라인이 몸을 돌려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고맙네.”

 

갑작스러운 인사에 이레스가 의아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드는 순간 테라인이 몸만 살짝 틀어 레이온의 앞머리를 정돈해주며 말했다.

 

“너무 약한 자식이어서 강하게 키우려고 했었는데 그것을 옆에서 도와줬으니 고맙다고 하는 걸세.”

 

이해를 했다는 듯이 작게 미소를 지은 이레스는 다시 레이온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 * *

 

털썩!

 

헨바인 백작은 절대로 굽히지 않을 무릎을 단 하루 만에 두 번이나 굽히고 말았다.

 

“흐음.”

 

창밖을 바라보던 중년의 사내는 헨바인 백작이 무릎을 꿇은 후에야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재밌는 짓을 했더군.”

 

“죄, 죄송합니다.”

 

설마 이분까지 아카데미 축제에 참가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헨바인 백작은 무릎을 꿇었을 때의 기억을 잊기 위하여 아들을 데리고 황급히 왕도에 구입해놓은 저택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저택에는 한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가문을 말 한마디로 무너트릴 수 있는 무력과 권력, 금력을 가지고 있는 주군이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그레이즈 가문에게 무릎을 꿇었다라. 다른 가문에서 보면 비웃을 만한 행동이겠군.”

 

중년의 사내, 테라인 왕국의 3대 공작 중 한 사람인 멕케인 공작이 말하는 비웃는 행동은 단순하게 창피를 당한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다른 귀족에게 먹힐 수 있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멕케인 공작은 이제는 오체투지를 하며 외치는 헨바인 백작을 빤히 바라보다 다시 의자에 앉아 와인 잔을 들었다.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왕성에 잠깐 들렀을 뿐 테라인 아카데미 축제에 참가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저 작업을 마치고 저택에서 쉬려고 했는데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다.

 

헨바인 백작이 그레이즈 가문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었다.

 

“말해보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 * *

 

“으으윽!”

 

이레스는 짧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뜨는 레이온의 모습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깼냐?”

 

“……천국은 아닌가 보군, 네놈이 있는 것을 보니.”

 

작게 실소를 터트린 이레스는 다시 레이온을 바라보았고 그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워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보건실인가.”

 

“응.”

 

“결승전은 어떻게 됐지?”

 

“한 놈은 무서워서 기절했고, 한 놈은 정신을 못 차려 마나역류 현상이 일어나 기절해서 무승부.”

 

“크큭! 그래도 패배한 것은 아니군.”

 

다행이라는 듯이 웃음을 터트린 레이온이 천천히 눈을 감은 채 마나심법을 운용해 신체의 이상을 확인한 뒤에 다시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패배한 것은 아니고, 무승부라면 우승이나 마찬가지.”

 

“…….”

 

“약속을 지켜라.”

 

“너의 대해서 알고 있냐는 약속?”

 

레이온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레스가 작은 미소를 띠었다.

 

“알고 있었지, 레이온 저하.”

 

“아버지가 보낸 것이냐?”

 

“멍청한 것은 타고났나 보네.”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린 이레스가 침대 옆에 놓여있는 대회용 가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처음 너랑 대련을 할 때 네가 선보인 검술이 뭔지 기억도 안 나냐?”

 

“……아.”

 

그때는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생각에 막무가내로 휘둘렀지만 며칠이 지났을 때 그는 왕가의 검술인 문소드를 사용하여 이레스를 공격했었다. 문소드 자체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모를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레이온이 자신의 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런데 왜 아직도 반말을 하는 거지?”

 

“뭐가.”

 

“난 왕자다.”

 

“그래서?”

 

말문이 막혔는지 레이온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이레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를 지었다.

 

“뭐 그래서 존대라도 해주길 바랍니까? 레이온 저하.”

 

마치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자 레이온이 고개를 저었다.

 

“징그럽군.”

 

“크크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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