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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공작 17화

무료소설 구름공작: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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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구름공작 17화

제8장 철혈의 공작 (1)

 

 

테라인은 재밌다는 듯이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띤 채로 연무장을 바라보았다.

 

변해도 너무 변하여 자신의 아들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는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관객들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로 외치던 그 말은 자신이 왕위를 물려받기 전 아버지에게 들었던 조언과 아주 흡사했다.

 

평민을 무시하지 말고 귀족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려주라는 그 조언과 너무 흡사했다.

 

자신이 알려준 적이 없으니 아카데미 생활을 통해 깨우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테라인 왕가의 사람만 듣고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할 뿐 다른 귀족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잠까안!”

 

갑작스레 들려오는 거대한 외침에 관객석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연무장을 내려다보는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중년인은 분노를 한 듯이 눈을 부릅뜨더니 검지로 레이온을 가리켰다.

 

“지금 저 평민은 귀족모독죄를 저질렀소!”

 

“허허허.”

 

테라인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누군지는 상황을 보면 대충이나마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자부심이 강한 귀족이거나, 결승전에 올랐던 이드린의 아버지 헨바인 가문의 현 가주인 헨바인 백작이 분명했다.

 

“난 헨바인 가문의 가주, 헨바인 백작이오!”

 

아무래도 후자인 듯했다.

 

헨바인 백작이 큰 소리로 외치더니 성큼성큼 걸어가 관객석 난간까지 이동하는 순간 강하게 도약해 연무장에 착지했다.

 

“저 평민은 조금 전 오러를 사용하여 귀족의 자제를 죽이려 했소! 검술 대회에는 살상이라는 것이 허용되는 것이오?”

 

“그, 그게.”

 

사회자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며 말을 얼버무리자 헨바인 백작은 이레스가 업고 있던 레이온을 바라보다 다시 이레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보게, 평민과 함께하는 것을 보니 평민으로 보이니 그자를 내버려두고 떠나게.”

 

헨바인 백작의 행동이 너무 어이가 없었는지 케이든 후작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테라인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저, 전하.”

 

“기다려보게.”

 

테라인의 시선이 천천히 이레스에게 옮겨졌다.

 

* * *

 

이레스는 자신의 등에 업힌 레이온을 가리키는 헨바인 백작을 빤히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이 학생은 마나역류 현상이 일어나 바로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만.”

 

“그 마나역류 현상이 일어난 자가 귀족살해죄를 저질렀고 귀족모독죄를 저질렀다. 죽어야 마땅하다.”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헨바인 백작의 모습에 이레스가 잠시 생각을 하는 듯이 기절한 이드린과 그의 아비인 헨바인 백작을 번갈아 바라본 후에 피식 실소를 흘렸다.

 

‘아들이 죽을 뻔했다는 것과 귀족으로서의 자부심이 폭발한 건가?’

 

이레스가 헨바인 백작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귀족살해죄라지만 시합 중에 일어난 일이고, 그나마도 미수. 그리고 귀족모독죄는 아닌 거 같은데요.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자네도 지금 귀족을 모독하는 것인가?”

 

헨바인 백작이 무의식적으로 검집에 손을 옮기며 이를 갈았다.

 

관객석에 앉아있는 학생들이나 사회자는 이레스가 귀족이며 어떤 가문인지 알고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귀띔해주면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겠지만, 그들은 귀족모독죄라는 죄목을 가지고 나타난 그가 너무 두려워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귀족모독이라…….”

 

이레스는 잠시 헨바인 가문에 대해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헨바인 가문.

 

백작의 작위를 승계받은 귀족으로 전형적인 귀족의 자부심을 가진 귀족파의 실세 중 한 사람으로, 검의 명문가인 그레이즈 가문에 속해 있었지만 200년 전에 독립을 선언했던 가문이 이레스가 알고 있는 헨바인 가문이었다.

 

“마나역류 현상은 정신을 흩뜨려 놓게 됩니다. 레이온이 잘못한 것은 그 정신이 흩뜨려져서이니 용서해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정신이 흐트러져 있든 아니든 상관없다. 지금 저자는 헨바인 가문의 차남을 살해하려는 시도를 했고 모든 귀족을 모독했으며, 정신이 흐트러졌다고 말했나? 그것은 이미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마치 관객석에 앉아있는 모든 귀족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는 듯이 큰 소리로 외치는 모습에 이레스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실소를 흘렸다.

 

“헨바인 가문이라…….”

 

“어디서 평민 따위가 가문의 이름을!”

 

갑작스레 발끈하는 것을 보니 다혈질에 단순무식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러를 사용하고 정령을 사용하는 자신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껴 사람들에게 신분을 알려달라고 하였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레스는 실피아의 능력을 이용해 레이온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힌 후에 천천히 허리를 펴며 헨바인 백작을 바라보았다.

 

“저 아이는 제 친구입니다.”

 

“친구라는 것과 피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대도 귀족을 모독하고 귀족살해죄를 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살해를 제가 막았습니다.”

 

“그렇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참 말이 안 통하는 작자였다.

 

이레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용서해주시겠습니까?”

 

“저자의 목을 베어야겠다.”

 

상상 이상이다.

 

이레스가 자신도 모르게 짜증 난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자신의 옆에 서서 레이온을 바라보는 실피아에게 말했다.

 

“실피아, 잠깐 돌아가 있을래?”

 

-……알았어.

 

걱정된다는 듯이 쳐다보던 실피아였지만 자신의 말을 듣고 정령계로 돌아가자 이레스는 다시 헨바인 백작을 바라보았다.

 

“아놔, 대가리에 돌이 앉았나.”

 

작지도 크지도 않은 목소리였지만 너무 조용한 체육관 안을 가득 채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뭐, 뭣!”

 

헨바인 백작이 갑작스러운 욕설에 깜짝 놀란 듯이 소리쳤지만 다시 분노한 표정을 짓자 이레스는 턱짓으로 기절한 이드린을 가리켰다.

 

“저 새끼 때문에 지랄하는 거잖아.”

 

“새, 새끼? 지, 지랄?”

 

“내 말이 틀려?”

 

차아앙!

 

“아이고, 이제는 칼까지 뽑아 드네.”

 

헛웃음을 친 이레스가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헨바인 백작은 자신의 검을 들어 올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귀족에게 욕설을 내뱉다니! 그것도 귀족모독죄로 사형에 처한다!”

 

이레스는 두려움에 떠는 대신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죽일라고?”

 

“아마 관객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는 모양이겠지. 이곳에는 평민을 기사로 초빙하려는 사람들도 있으니 오러를 사용하는 학생은 큰 힘이 되겠지.”

 

그래도 한 영지의 주인답게 아주 조금이지만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레스가 믿고 있는 것은 관객석에 앉아있는 귀족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즉결처분은 다르다! 바로 죽이면 되기 때문이지!”

 

탓!

 

빠른 속도로 달려온 헨바인 백작이 강하게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이레스의 앞으로 두 사내가 나타났다.

 

카아앙!

 

쉬이익!

 

자신의 공격이 막히는 것과 동시에 복부를 노리고 한 자루의 날카로운 검이 찔러 들어오자 헨바인 백작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게 무슨 짓…….”

 

버럭 소리치려던 그의 시야로 한 노인 기사가 눈에 들어오자 깜짝 놀란 듯이 몸을 흠칫 떨고 말았다.

 

“헤, 헬버튼 님.”

 

“흐음.”

 

헬버튼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헨바인 백작은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창피한 모습을 보여서 죄송합니다.”

 

“창피?”

 

헬버튼의 되물음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헨바인 백작이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피할 생각은 없었는지 이레스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자는 귀족을 모독했습니다.”

 

“귀족을 모독했다라…….”

 

말끝을 흐린 헬버튼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나도 듣기는 들었네. 자네에게 갖은 욕설을 퍼부었지.”

 

“그, 그렇습니다.”

 

자신을 옹호한다는 듯한 말투에 헨바인 백작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헬버튼은 의아하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저자를 귀족모독죄로 형벌을 즉결처분하려는 것이었나?”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귀족을 모독했습니다! 평민 따위가 귀족을 모독한 겁니다. 만약 이대로 평민을 내버려둔다면 다른 자들이 귀족을 무시할 수도 있으니 본보기를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본보기라…….”

 

또 한 번 말끝을 흐린 헬버튼이 고개를 돌려 이레스를 쳐다보았다.

 

“도련님.”

 

‘도, 도련님?’

 

헨바인 백작이 깜짝 놀라며 황급히 이레스를 쳐다보았다. 헬버튼이 속해있는 가문이 어디인지 알고 있기에 그 가문의 도련님이라면 그분의 아들이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순간적으로 그레이즈 가문의 자제가 아카데미 학생으로 있다는 것과 레이온을 기절시킬 때 사용한 검술이 떠올랐다.

 

“죽이겠다고 하는데 어찌하시겠습니까?”

 

작게 미소를 지으며 묻는 헬버튼의 모습에 이레스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헨바인 백작은 그레이즈 가문에 속해있던 가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선언하여 멕케인 공작가를 섬기는 가문으로, 그레이즈 가문으로서는 배신이라는 생각을 만들어주었지.”

 

“그, 그것은…….”

 

“거기다 지금 헨바인 백작, 당신은 그레이즈 가문의 장남인 나!”

 

이레스가 입가에 그린 미소를 더욱더 진하게 만들었다.

 

“이레스 더 그레이즈를 죽이겠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그레이즈 가문을 공격하겠다는 이야기.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수밖에. 그리고 그레이즈 가문은 방어보다는.”

 

“공격을 합니다.”

 

헬버튼의 대꾸에 이레스는 피식 실소를 흘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전을 선포해도 무방하군. 나를 죽이겠다고 외쳤다는 증인은 수두룩하고, 직접 나를 공격하기까지 했으니까.”

 

헨바인 백작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로 주춤 물러섰다.

 

지금 그가 상대하고 있는 자는 평범한 아카데미의 학생이자 철이 없는 그레이즈 가문의 장남이 아닌, 전생에서 철혈의 공작이라 불렸으며 정령검사라고도 불렸던 그레이즈 가문의 이레스 공작이었다.

 

순간적으로 말문을 막아버리는 카리스마와 존재감에 의해 그의 옆에 서 있던 헬버튼과 그리폰 기사단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레스가 몸을 풀듯이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한 걸음 내딛자 헨바인 백작이 그에 맞추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영지전을 원하는 건가? 헨바인 가문의 가주 헨바인 백작이여.”

 

“그, 그것이.”

 

“꿇어라.”

 

관객석에서 잠깐의 술렁임이 일어났지만 이레스가 관객석을 한번 훑어보는 순간 다시 조용해졌다.

 

헨바인 백작과 마찬가지로 지금 연무장 위에 서 있는 사람이 그레이즈 가문의 장남, 소가주 이레스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헨바인 백작도 그의 시선을 따라 관객석을 훑어보며 또 한 번 뒤로 물러났다.

 

귀족은 자존심으로 먹고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른 귀족들에게 얕보일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 행동 하나가 가문이 무너질 수 있는 발판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레스가 물끄러미 헨바인 백작을 바라보다 뒤로 물러나는 그의 걸음보다 빨리 걸어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가문보다 자존심을 택한다라……. 그것도 좋겠지.”

 

털썩.

 

헨바인 백작이 무릎을 꿇었다.

 

관객석은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고 이레스는 그런 헨바인 백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허리를 숙여 다시 한 번 귓가에 속삭였다.

 

“흥! 내일 한번 지켜봐라. 네 가문이 행한 일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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