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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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4화
제7장 레이온의 실력 Ⅱ (1)
8강전이 끝나고 4강전이 마무리되어 아카데미 결승전이 열리는 축제의 마지막 날이 되자 이레스는 아침 일찍 아카데미를 벗어났다.
단 한마디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생각보다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는지 레이온은 4강전도 힘겹지만 승리를 하여 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
물론 거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이레스였다.
4강전에서 패배를 하여도 시상식에서 왕과 대면하였던 기억이 있었기에 4강전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이레스는 새벽녘에 나와 사람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자 정적을 없애기 위해 실피아를 소환했다.
“실피아.”
작은 목소리의 부름과는 다르게 앞으로 강한 소리를 일으키며 작은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실피아가 나타나 그의 머리 위에 앉았다.
-안녕!
“안녕.”
짧은 인사를 끝으로 이레스의 흑발을 이리저리 가지고 놀던 실피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레스! 이레스!
“왜?”
-여기 어디야?
계약을 한 지 반년이 흘렀음에도 단 한 번도 아카데미에서 벗어난 적이 없던 실피아였기에 아카데미 바깥의 광경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성도야.”
-성도?
“음…….”
성도라는 말을 모르는 실피아였기에 이레스는 어떻게 설명해줄지 가만히 생각을 하다 대답했다.
“왕이라고 하는 대장이 사는 곳이야.”
-왕? 대장?
“가장 힘이 쎈 사람.”
-아아.
이상한 설명이었지만 그것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인 실피아가 다시 이레스의 흑발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테라인 아카데미는 테라인 왕국의 성도 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처음에는 성도 바깥에 직접 거대한 아카데미를 세우려고 하였지만 많은 귀족의 자제들이 모이는데 경계가 허술할 수도 있어 한쪽 성벽을 무너트리고 아카데미를 지은 뒤에 다시 성벽을 쌓은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성도 안이나 밖이나 그게 그거 같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단 성벽 안에 존재하면 수천의 병사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왕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정예 기사들의 보호를 받을 수가 있었다.
새벽녘에 움직이다 보니 뿌연 안개가 가득차 시야가 밝지는 않았지만 움직이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점점 중심가로 이동하자 많지는 않지만 벌써부터 장사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청소부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일일이 사람들을 둘러보던 이레스는 중심가를 벗어나 왕성에 가까워질수록 주위에 우뚝 서 있는 건물들이 점점 커지고 건물 앞에 기사들이 경비를 서고 있자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쪽 건물로 향했다.
새하얀 백색으로 물들어있어 안개로 인해 희미하게 보이는 건물로, 다른 건물들보다 약간 왜소한 것이 특징이기도 했다.
문 앞으로 걸음을 옮기자 백색 건물을 지키던 두 기사가 검집으로 손을 옮겨 이레스를 쳐다보았다.
“여기는 그레이즈…… 충.”
기사들은 걸어오는 자가 이레스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검집에서 손을 떼고 인사를 하였다. 이레스는 미소를 지으며 두 기사에게 말했다.
“헬버튼 할아범 좀 불러주실래요?”
“알겠습니다.”
가문의 저택임에도 들어서지 않고 부탁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도 특이한 것은 아니었기에 기사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을 하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이레스는 문을 지키기 위해 남아있는 다른 기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새벽녘 추위와 무서운 철갑옷을 입은 채 경비를 서는 모습이 약간 힘들어 보였다.
이레스가 실피아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실피아, 저 사람하고 놀아줘.’
-응? 응!
이레스의 머리 위에서 놀던 실피아는 그의 생각을 읽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날아올라 기사의 앞에 섰다.
-안녕!
“……안녕하십니까.”
손을 크게 흔들며 인사하는 실피아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기사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아주자 실피아는 해맑게 웃으며 한 손을 내밀었다.
“음?”
실피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기사가 고개를 살짝 갸웃하자 실피아는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더니 입술을 빼죽 내밀고는 다시 손을 내밀었다.
-손!
기사는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이레스를 쳐다보았고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헤헤헤.
실피아가 웃으며 기사의 손에 앉더니 그의 손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댔다.
바람의 정령은 공격형 정령도 아니고 방어형 정령도 아닌 회피와 보조의 정령으로 불렸다.
바람을 날카롭게 만들면 무엇이든 벨 수 있는 검이 된다고는 하지만 정령친화력의 소모가 너무 컸기에 적이 공격을 할 경우 갑작스레 강한 바람을 일으켜 공격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보조는 말 그대로 도움이었다.
물이 가진 생명의 기운을 이용한 치유의 능력도, 독의 상성이라는 불로 독을 태울 수도 없었지만, 바람의 정령은 사람의 기분을 좋은 쪽으로 바꾸는 바람을 만들어 컨디션을 회복시켰다.
실피아의 손을 따라 희미하던 따듯한 바람이 한데 모여 손을 타고 자신의 온몸을 감싸자 새벽녘에 추위가 잠깐이나마 잊어졌고, 해맑은 미소를 보니 그레이즈 영지에서 놀고 있을 자신의 딸이 기억났다.
기사가 작게 미소를 그리더니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맙습니다, 아가씨.”
-헤헤헤. 아가씨래.
이번엔 쑥스러운 듯이 양손으로 볼을 문지르며 웃음을 흘린 실피아는 다시 이레스의 머리 위로 날아가려다 누군가를 발견했는지 문 안쪽으로 날아갔다.
-할아버지!
“어이쿠.”
갑작스레 얼굴에 달라붙는 실피아의 행동에 걸음을 멈춘 헬버튼은 그녀가 자신의 머리 위에 올라갈 때까지 기다려준 후에 다시 걸음을 옮겨 이레스에게 다가갔다.
“아침잠이 없는 늙은이라서 일찍 일어나기는 했지만 무슨 일이십니까?”
헬버튼의 기분 좋은 미소를 작은 미소로 받아준 이레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중요한 사람을 만나야 되는데 제 명성으로는 불가능해서요.”
“중요한 사람이요?”
이레스는 그의 되물음에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 * *
테라인은 재미있다는 듯이 보고서를 읽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레스라…….”
그가 읽고 있는 보고서는 성격을 한번 바꿔보자고 강제로 아카데미에 입학시켰던 레이온에 대한 보고서였다.
입학 당시에는 아이들에게 맞고 다닌다는 보고서에 분노를 하였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의 보고서에는 상황이 아주 많이 변해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변하게 된 계기가 그레이즈 가문의 이레스 더 그레이즈라고 적혀있었다.
테라인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중년의 기사, 왕실호위기사단장 케이든 후작에게 물었다.
“이레스라고 알고 있나?”
케이든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즈 가문의 장남 이레스 말씀이십니까?”
대답 대신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이는 테라인의 모습에 케이든은 또 한 번 생각에 잠기다 대답했다.
그레이즈 가문 자체가 왕실파의 대표적인 가문 중에 하나이자 검술로 뛰어난 가문이었기에 몇 번 들러본 적도 있었고 그레이즈 공작과는 친우의 관계이기도 했다.
“그레이즈 공작의 장남은 검술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동생처럼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듯이 특별한 재능은 없지만 그렇다고 콕 집어서 못난 점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흐음.”
테라인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보고서를 바라보았다.
케이든 후작을 믿기는 하였지만 보고서에 적힌 것만을 보고 판단한다면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다.
“한번 읽어보게.”
케이든 백작은 대답하는 대신 자신에게 내밀어진 보고서를 받아 읽기 시작했고 이내 깜짝 놀랐다는 듯이 테라인을 쳐다보았다.
“이게 정말입니까?”
“이레스를 말하는 것이라면 내가 더 묻고 싶네만.”
오히려 되묻는 테라인의 모습에 케이든 후작은 정말 놀랐다는 듯이 보고서를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열여섯에 나이로 익스퍼드 중급 경지에 정령사라니요.”
“중요한 것은 그가 레이온을 가르친다는 것이지. 현재 레이온의 경지는 익스퍼드 초급이라는 것을 보면 뛰어난 선생이거나 실력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고.”
기사의 초입단계라는 오러 유저의 경지도 오르지 못했던 레이온을 생각한다면 반년 만에 엄청난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할 수가 있었다.
테라인이 깜짝 놀라는 케이든 후작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마차의 창문을 통해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번 만나 보고 싶군.”
반년 만에 성격을 고치고 검술까지 가르친 아이였다. 거기다 테라인 왕국에서 30년 만에 나타난 정령검사였지만 그는 왕이라는 신분을 통해 인재를 만나고 싶은 것보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한번 만나고 싶었다.
창밖으로 보이던 거대한 성이 점점 멀어지고 성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성벽이 눈에 들어오는 순찬 천천히 움직이던 그의 시야가 멈췄다.
갑작스레 마차가 멈추자 케이든 후작이 고개를 갸웃하며 마부 쪽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아직 성과 거대한 성벽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왕성을 나온 것은 아니었다. 미리 문도 열어놓았기에 멈출 리가 없었다.
“무슨 일인가?”
대답은 마부를 맡은 기사가 아닌 마차를 둘러싸고 있던 기사들에게서 들려왔다.
“이상한 사내가 앞을 막고 있어서 잠시 멈췄습니다. 죄송합니다.”
케이든 후작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자 한 사내와 한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반가운 미소를 그렸지만 이내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노인은 자신의 기억 속에 뚜렷하게 박혀버린 사람이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지만 사내는 기억 속에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라고 하나?”
테라인의 질문에 노인과 눈이 마주치자 작게 미소를 지은 케이든 후작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고개를 갸웃하던 테라인이었지만 뒤에 들려오는 노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다 마차로 들여보내게.”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케이든 후작은 바로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의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눈에 들어오자 테라인이 나이가 어린 청년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대가 이레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