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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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12화
제6장 레이온의 실력Ⅰ (1)
축제 3일째가 되는 날, 축제를 즐기기 위하여 모인 사람들의 대부분이 테라인 아카데미 실내체육관으로 향했다.
테라인 아카데미 검술대회 8강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8강에 오른 순간부터 아카데미에서 가장 검을 잘 다루는 검사들만 모인다고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예선전을 보지도 않고 검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모이는 것이었다.
특히 관객 중에는 귀족들이 많았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신분 관계없이 전부 참가가 가능한 대회이다 보니 인재를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8강에 오른 이는 평민 다섯에 귀족 셋이었다.
귀족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실력을 사람들에게 뽐내고 싶은 마음이 없어 참가를 하지 않았기에 취업준비생인 평민들이 더 많이 오른 것이었다.
“지금부터 아카데미 검술 대회 8강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와아아!
사회자를 맡은 4학년 학생이 확성 마법이 담긴 마이크에 대고 외치자 사방에서 거대한 함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엘리스 같은 경우에는 검술 대회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저택을 지키는 열 명의 그리폰 기사단을 제외하고 함께 따라온 열 명 중 다섯과 함께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이레스와 일레인 일행은 실내 체육관에 자리한 채 검술 대회를 구경하고 있었다.
“평민이 다섯이면 쓸 만한 인재를 구할 수 있겠군요.”
진지한 표정으로 연무장을 내려다보는 일레인을 바라보던 이레스가 잠시 생각을 하는 듯이 턱을 괸 채로 연무장을 올라오는 여덟 명의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여덟 명의 학생 중에는 당연하게도 레이온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함성소리에 손을 들거나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것으로 반응해주는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레이온은 그저 정면을 바라본 채로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흩어지는 여덟 명의 학생들을 바라보던 이레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 좀 만나고 올게.”
“……친구도 있었습니까?”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아 쳐다보는 일레인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쉰 이레스는 설렁설렁 걸음을 옮겨 검술 대회 대기실로 향했다.
참가자들은 8강전이니만큼 임시로 만든 하나의 대기실을 배정받았는데 이레스는 그중에 레이온이라 적혀있는 대기실 앞에 섰다.
* * *
“후…….”
작게 숨을 고른 레이온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한번 보고는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고 해야지.”
레이온은 자신의 귓속을 파고드는 목소리에 짜증 난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꺼져.”
“한마디만 하고 갈게. 아마 이 상태면 4강이 끝일 거다.”
이레스는 반문도 하지 않는 레이온의 모습에 씨익 미소를 그리고는 벽에 등을 기댔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잘 생각해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닥치고 꺼져.”
째려보며 말하는 레이온의 모습에 이레스는 피식 실소를 흘리며 그를 빤히 쳐다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걸어간 후에 걸음을 멈추었다.
“결승전까지 올라가는 방법을 알려주지.”
“…….”
“나하고 했던 수련은 전부 잊어. 지금까지는 가능했는지 모르지만 8강부터는 네 생각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니까.”
탁.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대기실을 나가는 이레스의 모습을 바라보던 레이온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의 말이 이해는 갔다.
16강전만 해도 지금까지 상대했던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난 검술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겼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검술을 믿었다.
스르릉!
맑은 쇠 울림과 함께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집에서 대회용 가검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현재 경지는 익스퍼드 초급이었지만 검술 자체만 보면 테라인 왕가의 검술이었기에 익스퍼드 중급과 비슷한 실력이었다.
천천히 대회에 참가하여 자신과 대련을 하였던 사람들을 떠올리던 레이온이 생각을 정리하고 눈을 뜨는 순간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84번 레이온 선수, 5분 뒤에 시작합니다.”
짧은 설명을 끝으로 사내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레이온은 다시 한 번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았다.
처임 입학을 했을 때를 생각하면 많이 바뀌었다.
그것은 여전히 이레스 덕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친해지고 싶은 마음을 없었다. 그렇다고 그와의 수련을 잊는 것도 싫었다.
그와 대련을 통해 얻은 검술이 왕가의 검술을 가장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8강전 세 번째 경기, 84번 레이온 대 43번 데인의 대결이 시작되겠습니다!”
레이온은 가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검집으로 회수한 후에 대기실을 나와 연무장으로 향했다.
우와아아!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지만 레이온은 그 목소리를 무시한 채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고 연무장 앞에 도착하는 순간 자신의 상대인 데인이라는 학생도 올라왔다.
* * *
작은 충고를 끝으로 일레인 일행에게 돌아온 이레스는 바로 자리에 앉아 연무장을 바라보았다.
“8강전 세 번째 대결, 84번 레이온 대 43번 데인의 대결이 시작되겠습니다!”
둘 다 성이 없었다.
시작한다는 것에 모두가 환호하고 평민이라는 것에 눈을 빛내며 바라볼 때 이레스와 함께 유일하게 레이온의 신분을 알고 있던 헬버튼이 재밌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연무장 위에 서 있는 두 청년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환호에 약간 쑥스러웠는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데인과는 다르게 레이온은 그저 심판을 힐끔 쳐다보며 자신의 가검을 들 뿐이었다.
데인이 검집에서 가검을 빼내는 레이온의 모습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똑같이 가검을 빼 들었다.
“과연 누가 이길까요?”
일레인의 질문에 이레스가 대답 대신 연무장을 빤치 쳐다보는 순간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상대방을 향해 돌진했다.
카아앙!
빠르게 올려치는 레이온의 검을 데인이 대각선으로 강하게 내리쳐 막아내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튀어나오며 검을 강하게 찔렀다.
쉬이익!
바람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가검이 얼굴을 향해 날아오자 이레스가 황급히 몸을 숙여 한 끗 차이로 피하며 똑같은 방식으로 검을 찔렀다.
쉬이익!
“흡!”
데인이 황급히 몸을 뒤로 젖혀 한 바퀴 구르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역시 평민이란 어쩔 수 없군요.”
“쯧쯧쯧, 창피를 모르는군.”
앞좌석에 앉아있는 두 귀족 학생의 중얼거림을 들었지만 그리폰 기사단과 헬버튼은 오히려 눈을 빛내며 데인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된 놈이군.”
검을 배운다는 젊은이들은 바닥에 몸을 굴리는 것을 치욕스럽게 여기고 위험한 상황에 검을 놓는 것을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전쟁에 참여했던 기사들은 그가 귀족이든 평민이든 바닥에 몸을 구르고 검을 놓는 것을 치욕스럽게 여기거나 비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남을 방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뛰어난 검술을 선보이는 레이온보다 데인에게 시선이 더욱더 갔다.
언뜻 보면 평범한 얼굴과 갈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평범한 청년일 뿐이었지만 몸을 구르며 공격을 피하고 반격을 하는 것만 보아도 생각 이외의 인재라고 결정지을 수 있었다.
이레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왕실기사단 단장 데인.
평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왕실기사단에 입단하여 단장의 직위까지 오른 그는 아카데미 졸업생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전장에서 배운 듯한 패도적이고 몸을 사리지 않는 검술을 통해 오러나이트 경지에 오른 기사로, 레이온이 왕위에 오르고 죽을 때까지 그의 곁에서 그를 지키다 쓰러진 충성스러운 기사이기도 했다.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이야.’
자신도 모르게 피식 실소를 흘린 이레스가 다시 대련에 집중했다.
황급히 몸을 일으켰던 데인이 다시 돌진을 하자 레이온이 검을 휘둘러 막고 반격을 가했다.
처음에는 빠른 검술을 통해 레이온이 데인을 압도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몸을 굴리며 이리저리 피하고 피하는 것과 동시에 반격을 가하는 데인과는 달리 레이온이 몸을 굴리지도 않고 어려운 공격을 아주 힘겹게 막아서자 승기는 점점 데인에게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승기가 점점 레이온에서 데인에게 옮겨지자 다시 열광하기 시작한 관객들이 집중을 하며 연무장을 바라보는 순간 이레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레스의 모습에 연무장을 바라보던 일레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려 할 때 거대한 외침이 실내체육관을 울렸다.
“야! 정신 안 차려!”
사람들의 함성소리를 묻을 정도의 거대한 외침에 관객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레스에게로 옮겨졌지만 이레스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다시 소리쳤다.
“내가 말했지! 지금까지 나와 한 대련은 전부 잊으라고!”
챙! 챙!
조용한 관람석과는 다르게 데인과 레이온은 연달아 검을 부딪쳤다.
레이온이 입술을 깨물며 다시 검을 휘둘렀지만 데인은 힐끔힐끔 이레스를 쳐다보는 상황에서도 몸을 구부리며 피하고 반격하는 데에는 어떠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
“네 신분을 생각해! 네가 만약 전쟁터에 나서면 그렇게 싸울 거야!”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기를 바랐다.
이레스는 다시 자리에 앉았고 모두의 시선이 잠시 그에게 고정되는 순간 연무장에서 시선을 떼지 않던 몇몇 관객들의 함성소리가 실내체육관을 울리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
* * *
‘나의 신분…….’
레이온은 그 말에 깨달았다.
이레스가 자신의 신분을 알고 그런 말을 한 것인지는 확신할 수가 없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기사가 되어서도 그렇게 싸울 것이냐는 질문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신분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는지에 대해 잠깐의 혼란이 왔지만 그 혼란이 온 것만큼 깨달음도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난…… 왕자다.’
왕자의 신분으로 전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테라인 왕국도 그 왕자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특히 테라인 왕국의 2대 왕인 패왕이 대표적이었다.
그는 병사들의 앞에 서서 직접 지휘를 하고 직접 적들과 싸워 가장 영토를 많이 넓혔던 왕이었다. 물론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검을 배운 이상 패왕까지는 아니더라도 왕자의 신분에 맞는 실력을 가지고 싶었다. 즉 그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이 비웃더라도 끝까지 살아남는 실력이 필요했다.
쉬이익!
생각을 비틀 정도로 앞으로 몸을 굴려 공격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아래에서 위로 검을 찔러오는 데인의 모습에 레이온은 작은 미소를 띠며 황급히 고개를 뒤로 젖혀 피하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며 옆으로 몸을 굴려 그의 공격범위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