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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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44화
제9장 테라인 왕국 사신단 (1)
레이온은 헥토스 왕국과 동맹 연장 사신단에 합류하고 테라인 왕성을 벗어난 지 사흘째가 되던 날, 이레스를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난 네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귀족파 귀족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장 불가능한 사람을 사신단에 합류시켰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미래에 대해 생각을 하던 이레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징그러우니까 존대는 빼고.”
“뭐?”
바로 말이 짧아지는 이레스를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레이온이 한쪽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는 금발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왜 그를 부른 거지?”
사신단에 합류한 금발의 사내는 레이온으로서는 가장 피해야 할 상대 중 한 사람이었다.
귀족파, 왕권파, 중립파 가릴 것 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고 해도 만약 상대가 귀족파 수장의 아들이라면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히려 친해지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실수와 약점을 찾아내 귀족파가 정치적으로 유리한 이점을 확보하게 만들 수가 있으니 반드시 피해야 할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멕케인 더 크리스.
테라인 왕국 귀족파 수장인 멕케인 공작의 아들이자 테라인 왕국에서 정치와 전쟁에서는 최고의 기재라 불리는 사내, 그가 크리스였다.
헥토스 왕국과의 동맹연장 사신단에는 왕권파의 귀족, 귀족파의 귀족, 중립을 선언한 귀족 등 다양한 소속의 귀족들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적대적이라고 볼 수 있는 왕권파 귀족과 귀족파 귀족들 사이에서 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두 테라인 왕국의 사람들이라 나라를 위해 사신으로 파견되었다는 생각 덕분에 다툼이 일어나기는커녕 오히려 그 순간만큼은 정치적인 전쟁이 약간이나마 완화되자 사신단의 인원이 그렇게 결성된 것이었다.
레이온이 다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자 이레스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사건을 불러일으키기에 한쪽에서 수련을 하던 데인과 옆에 앉아 물건을 점검하던 데미안이 몸을 움찔 떨며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어디 가십니까?”
데인의 물음에 이레스는 대답 대신 미소를 더욱더 진하게 만들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데인, 데미안, 레이온의 시선이 그의 등을 쫓아 목적지를 확인하는 순간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처음 뵙는 건가요?”
이레스의 목소리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금발의 사내, 멕케인 가문의 소가주인 크리스가 천천히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하아! 저게 진짜 미친 건가?”
어이없는 표정을 그리며 이레스를 바라보는 데인과 데미안을 대표해 작게 중얼거린 레이온이 그의 행동을 막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안녕?
“……안녕?”
-헤헤헤, 이레스가 레이온하고 놀래.
어느새 나타난 실피아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뻗었기 때문이다.
“…….”
이미 자신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있던 것이었다.
레이온이 이레스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실피아가 손바닥 위에 앉을 수 있도록 손을 올렸을 때 테라인 왕국 왕권파의 차기 수장과 귀족파의 차기 수장이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레스 님이시군요.”
깔끔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단정한 용모와 오른쪽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이 인상적인 크리스의 말에 이레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 아버지는 아버지들끼리 싸우라 한다고 쳐도 죄송하네요.”
자신이 생각하는 왕권파의 차기 수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털털한 이레스의 모습에 그를 빤히 바라보던 크리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사신단.”
“……이레스 님이 하신 것이었군요.”
사신단에 합류한다는 소식은 크리스가 테라인 성도에 머무르고 있어 생각보다 쉽게 처리가 되었다.
중요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소가주라는 직위를 얻게 된 순간부터 왕이 만든 나라가 아닌 모두가 만든 나라라고 인식하여 왕권파의 사람들에게 휘둘리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왕성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레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크리스를 향해 씨익 미소를 지은 후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뭐 이것도 경험이 되지 않겠습니까?”
“……킥!”
왕권파의 차기 수장과 귀족파의 차기 수장이 너무 대수롭지 않은 듯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버린 크리스가 작게 실소를 터트리더니 이레스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두 개의 달이 모습을 감추는 듯이 천천히 구름 뒤로 숨어들고 있었다.
이레스가 자신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는 크리스를 힐끔 쳐다보았다.
몇몇 사람만 아는 이야기였지만 전생에서 이레스는 크리스와 친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가끔 만나는 사이였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후계자 교육을 받던 도중 우연히 왕성 파티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끄럽고 사람 많은 것은 딱 질색이던 이레스는 다른 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바로 테라스에서 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크리스와 만났다.
무뚝뚝하고 자기 할 말을 끝내면 절대로 입을 열지 않는 묵묵한 크리스와 욕을 입에 달고 살고 생각보다는 행동이 우선이었던 이레스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정반대의 성격으로 인해 상대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아버지들 몰래 친구로 지내게 되었다.
물론 마지막이 좋지 않아서 그렇지, 크리스는 이레스에게 있어서 몇 없는 친구 중에 한 사람이었다.
‘분명히 뭐라고 했는데.’
전생에서 자신이 페이온 왕국의 사신으로 떠나 레이온을 지키지 못했을 때, 테라인 왕국을 떠나기 전에 멕케인 공작, 그러니까 크리스가 그에게 하나의 편지를 넘겼었다.
하지만 너무 바빠 사신으로 먼저 출국을 하게 되었고 레이온이 사망한 후에 읽을 수 있었다.
편지의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자 다시 하늘 위로 시선을 돌렸을 때 크리스가 고개를 떨어뜨려 레이온의 앞에서 날아다니는 실피아를 바라보았다.
“정령이라…….”
속으로의 중얼거림이 무의식적으로 밖으로 표출되자 이레스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예전에도 실피아를 보았을 때도 저랬었다.
“왜요? 계약하고 싶어요?”
크리스가 잠시 실피아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있으면 즐겁겠지만 그것은 계약이 가능할 때에 이야기이죠.”
대답을 하지 않은 이레스였지만 정령과의 계약은 정령친화력이 존재했을 때만 가능했다. 정령친화력을 가지지 못한 그에게 정령과의 계약은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레스는 오히려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령의 공격법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그렇기에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인 자신과는 달리 뛰어난 판단력과 미래를 예측하는 지략가인 그가 정령과 계약을 하게 된다면 그는 테라인 왕국에서 그 누구도 막아낼 수 없는 정치가이자 전략가가 되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실피아.’
속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레이온과 이야기를 나누던 실피아가 고개를 돌리며 이레스를 향해 고개를 갸웃하다 천천히 날아왔다.
-왜?
“인사해. 크리스야.”
실피아의 시선이 크리스에게 옮겨졌다.
처음 보는 사람은 무조건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는지 크리스를 빤히 바라보던 실피아가 해맑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크리스가 당황하며 자신을 바라보자 이레스는 ‘안녕.’이라는 입 모양을 만들었다.
“……안녕?”
-헤헤헤. 또 친구 생겼다.
인사만 나누면 바로 친구로 생각하는 실피아가 너무 귀여웠는지 이레스가 작게 미소를 지을 때 그녀가 크리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이 보이게 손을 내밀라는 거예요.”
“손이요?”
질문을 하면서도 손을 내밀자 실피아가 천천히 날아올라 그의 손바닥 위에 앉았다. 크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전생의 기억을 통해 알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어도 만나본 사람들이 모두 귀족이다 보니 멕케인 가문의 소가주라는 직위를 가지고 있는 크리스를 무조건적으로 피해 다녔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외로움을 많이 느끼던 사람이 크리스였다.
이레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크리스를 향해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는 실피아에게 옮겨졌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정말 실피아는 귀여운 소녀 같은 정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