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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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55화
제3장 레이온의 검술 (1)
“조용하니 좋군요.”
“그러네요.”
아무리 연회장 안이 시끄럽다고 해도 테라스로 향하는 문을 닫아놓았고, 사방에 밀폐된 공간이 없는 밖이다 보니 들려오는 소음은 아주 미약했다.
경치를 구경하던 크리스의 중얼거림에 작게 미소를 그린 이레스가 몸을 돌려 연회장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없이 연회장을 바라보는 이레스의 모습에 크리스도 몸을 돌려 연회장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헥토스 왕국에는 무슨 이유로 오신 것입니까?”
크리스가 이레스를 힐끔 쳐다보는가 싶더니 다시 연회장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체결될 수밖에 없는 동맹이었습니다. 동맹이 걱정되어 왔다는 것은 아니고, 레이온 왕자님의 표정을 보니 오고 싶어서 온 것도 아닌 거 같고…….”
‘큭.’
어리고 아직 공작이라는 직위에 오르지 않았어도 크리스는 테라인 왕국이 자랑하는 천재이자 멕케인 공작이었다.
하지만 이레스도 그가 실피아를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도, 역시나 전생에서는 자신과 대적했던 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 이왕 새로운 삶을 살고 있으니 테라인 왕국을 귀족파와 왕권파가 나눠지지 않은 하나로 통일된 왕국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먼저 접근을 하고 함께 헥토스 왕국으로 왔다.
“내일 잠시 저와 함께 다니시겠습니까?”
“예?”
이레스는 크리스의 반문에 천천히 걸음을 옮겨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는 문고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내일 찾아가겠습니다.”
의문을 품은 채 고개를 갸웃하는 크리스를 내버려두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서자 악단의 음악 소리와 귀족들의 수다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던 이레스는 그나마 조용한 곳, 테라인 왕국 사신단에서 가장 사람들이 접근하고 있지 않은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여.”
우걱우걱.
“예.”
우걱우걱.
“…….”
우걱우걱.
입에 음식을 담은 채 대답을 하는 그레이즈 가문의 마법공학자 데미안의 모습에 그를 빤히 쳐다보던 이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의 옆에 섰다.
“준비는 마쳤고?”
우걱우걱.
“무슨 준비요?”
정말 모르냐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이레스의 모습에 무언가를 떠올린 데미안이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끝났죠.”
“그럼 내일 출바…….”
“스승님!”
내일 당장 미스릴 광맥 수색에 돌입하려 하는 이레스였다.
하지만 그럼 그의 말을 끊어버린 사람은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달려오는 데우스 왕자였다.
갑작스레 들려오는 큰 소리에 이레스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데미안과 함께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오는 데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하아. 왕자님.”
“예, 스승님.”
자신의 앞에 당도한 데우스를 다시 불렀지만 여전히 스승님이라 부르는 모습에 또 한 번 한숨을 내쉰 이레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겨우 한 번의 대련입니다.”
“하지만 가르침을 주었으니 스승님은 스승님이십니다.”
이레스는 ‘뭐 이런 왕자가 다 있나’ 하는 듯이 바라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때 데우스의 시선이 왕자가 눈앞에 있음에도 여전히 음식을 집어먹는 데미안에게 고정되었다.
데미안 같은 경우에는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왕자라는 신분과는 어울리지 않는 레이온과 함께 움직이다 보니 다른 왕자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데우스가 양손에 먹을 것을 든 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데미안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다 이레스에게 물었다.
“누구인지 알 수 있으시겠습니까?”
“……저희 가문의 마법공학자입니다.”
우걱우걱.
꿀꺽.
갑작스레 자신의 소개가 시작되자 황급히 입안에 담긴 음식물을 집어삼킨 데미안이 양손에 든 음식을 내려놓더니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레이즈 가문의 마법공학자 데미안이라고 합니다.”
“……마법공학자.”
마법공학자는 처음 본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던 데우스는 이내 이레스와 데미안을 번갈아 바라보다 고개를 살짝 숙였다.
“헥토스 왕국의 1왕자 헥토스 더 데우스라고 합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데우스였다.
왕자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거만하지 않고 겸손한 모습이 레이온 왕자를 떠올리게 하자 데미안은 다시 미소를 그리며 그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짧은 대화가 시작되었을 때 데우스가 조심스럽게 이레스를 불렀다.
“스승님.”
“스승님 아니라니까요.”
“저 레이온 왕자님의 실력도 스승님처럼 대단한가요?”
자신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질문을 던지는 데우스의 모습에 이레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연회장 한쪽에서 헥토스 왕국의 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레이온을 바라보았다.
“아니요.”
“아닌가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왕가의 검술은 살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지, 마스터가 되기 위해 배우는 게 아니라고.”
“그런데 익스퍼드 중급입니까?”
이레스는 솔직히 말해서 3년 만에 다시 레이온을 만났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신 같은 경우에는 이미 익스퍼드 상급으로 오르기 위해 필요한 깨달음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마나만 충분하면 가능하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익스퍼드 상급에 오를 수 있었지만, 레이온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겨우 3년이라는 시간 만에 익스퍼드 중급 마지막 단계까지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이레스가 레이온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테라인 왕국에는 병사들과 함께 전장에서 싸우던 분이 계셨습니다. 아마 레이온 왕자님의 이상이 그분이기에 더욱더 노력하는 것일 겁니다.”
“흐음.”
작게 신음을 흘린 데우스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데우스와 이야기를 나누려다 깜빡했다는 표정과 함께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아, 그리고 보니 아버님께서 오라고…….”
순식간에 인상이 찌푸려지는 이야기였다.
“……누구요?”
“아버님이오.”
데우스 왕자의 아버지라면 헥토스 왕밖에 없었다.
짜증난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던 이레스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데우스는 데미안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뒤에 연회장을 벗어나 왕의 집무실로 향했다.
연회장과 왕의 집무실과의 거리가 좀 있었는지 자신의 눈앞에 기다란 복도가 들어오자 이레스는 데우스를 힐끔 쳐다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뭐든지 대답해드리겠습니다.”
단 하루에 불과했지만 검을 가르쳐준 사람이 그레이트 실드를 부술 수 있는 실력자라는 것을 알게 되니 데우스가 이레스에게 가지고 있는 신뢰와 존경은 엄청났다.
이레스가 어색하다는 듯이 미소를 그리다 질문을 던졌다.
“왕자님의 동생.”
“제이스 말씀이십니까?”
걸음이 갑자기 느려졌다.
고개를 돌리며 오히려 되묻는 데우스를 향해 이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분이십니까?”
“으음.”
정말 애매한 질문이라는 듯이 작게 신음을 흘린 데우스가 복도의 중간쯤 다다랐을 때 입을 열었다.
“욕심이 많은 아이입니다.”
“욕심이오?”
“무조건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죠.”
“소유라…….”
“그래서 뚱뚱해진 겁니다. 먹을 것에도 욕심도 많은데 살을 빼려고 노력하는 것도 없고, 스스로의 것을 베푸는 일도 없으니까요.”
동생임에도 너무 단호하게 말하는 데우스의 모습에 이레스가 잠시 그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데우스의 눈빛은 어떠한 감정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뭐가 있군.’
형과 동생 사이가 틀어져 있다. 그렇기에 반역이 있던 것은 당연했다.
“만약에…….”
너무 조심스럽게 묻는 것이 표정과 목소리에 담겼는지 데우스가 고개를 돌려 그가 질문을 하려는 것을 파악했는지 웃으며 물었다.
“반역이오?”
이레스가 깜짝 놀라며 바라보자 걸음을 멈춘 채 다시 고개를 돌려 창문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보던 데우스가 아무 말 없이 씁쓸한 미소를 그렸다.
“알고 있으셨습니까?”
“블러디 울프가 자리하고 있으면 안 되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블러디 울프의 서식지는 원래 그들이 나타난 장소에서 500m는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알고 있음에도 추궁하지 않는다.
오히려 냉정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데우스의 모습이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데우스의 모습을 지워버리는 듯했다.
데우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증거가 없죠. 그렇기에 가만히 있는 것일 뿐입니다. 반역이 준비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왕국이 풍지파탄 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고 있었다.
이레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데우스를 바라보았다.
“다 속임수였군요.”
방긋방긋 웃던 모습도 장난을 치는 것도 전부 거짓말이었다.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냉정한 1왕자의 모습이 진정한 데우스의 모습이었다. 귀족들 앞에서도 스승님이라고 불렀던 것도 자신의 인지도를 상승시키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다.
이레스의 머릿속으로 헥토스 왕이 스쳐 지나갔다.
“헥토스 전하께서는…….”
“모르시죠. 아니 알고 있는데도 모르는 척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데우스가 다시 순수한 미소를 그리며 앞을 가리켰다.
“다시 가실까요?”
* * *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르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전생의 삶을 통해서 깨닫고 있던 이레스였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데우스 왕자는 감춰둔 자신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밝힌 것은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분명 자신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암습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대비를 하지 못했다는 것은 데우스 왕자가 지니고 있는 힘이 너무 부족하거나 계속 감추려 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는데 자신의 앞에 한 사람이 보이자 하나의 의문점이 생겨 그의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렸다.
헥토스 왕.
한 나라를 다스리는 그라면 제이스 왕자가 암습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정도의 정보조직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왕위 계승의 1위라는 데우스 왕자가 암습을 당하는 정보를 알고 있음에도 무시했다는 것은 단 하나의 이유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두 왕자 중 더 뛰어난 왕자를 왕위에 올린다는 뜻이었다.
데우스 왕자가 언제 죽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가 죽었기에 차남인 제이스 왕자가 왕위에 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헥토스 왕은 자신의 둘째가 자신의 형을 죽이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무시했다는 뜻으로 이어진다.
순간적으로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내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헥토스 왕의 정보조직이 이미 데우스 왕자에게 넘어갔을 확률도 있었기 때문이다.
‘미치겠군.’
어떤 것이 정답이고, 어떤 것이 오답인지 알 수가 없다.
이레스는 자신의 앞에 헥토스 왕이 앉아 있음에도, 데우스 왕자가 헥토스 왕의 옆에 앉아 있음에도 어떠한 말도 내뱉지 못하고 두 사람을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암습을 알고 있음에도 무시했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지만 너무 담담한 표정, 그리고 딸을 아끼던 지금까지 보아온 헥토스 왕의 모습이 모두 거짓인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