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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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2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53화
제2장 데우스 왕자의 검술 스승 (1)
테라인 왕국의 사신단이 헥토스 왕국에 도착한 그날 저녁, 이레스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그래, 이름이 뭐라고?”
“이, 이레스라고 합니다.”
호수 근처 벤치에 앉은 아드렌 후작은 다짜고짜 자신의 이름을 물었고 이레스는 당황한 상태에서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말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헨들릭스 공작을 처음 만났을 때 살짝 긴장한 동시에 안도를 했었다.
소드마스터 같은 경우에는 마나에 대한 깨달음과 검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마스터 경지에 오른 초인이었기에 자신의 몸 안에 마나와는 다른 기운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여 긴장을 했고, 몸 안을 채우고 있는 기운 중 바람의 기운이 땅의 기운을 집어삼킬 정도로 강하다 보니 헨들릭스 공작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 안도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법사로서 마나와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초인의 경지라 불리는 7서클 마법사 같은 경우에는 마스터 경지의 초인과는 달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무력은 같아도 검에 대한 깨달음이 아닌 세상의 이치를 통해 초인의 경지에 오른 것이기에 세상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양의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알아차린다는 것이었다.
“흐음.”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라는 듯이 아드렌 후작이 하늘을 올려다보다 다시 이레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왕국의 사람이더냐?”
“아, 아닙니다.”
“그럼 테라인 왕국에서 왔겠구먼. 이레스라…….”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드렌 후작은 누군가를 떠올렸는지 작게 미소를 그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레이즈 가문의 자식이냐?”
‘젠장…….’
다른 왕국에서까지 소문이 일어날 정도로 커다란 사건을 일으킨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레스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진 ‘레이온 왕자에게 검을 가르친 일’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한 나라의 왕자에게 검을 가르쳤다는 것, 그리고 그 검을 배운 왕자가 재능이 없음에도 반년 만에 익스퍼드 중급 경지에 올랐다는 것은 대륙을 떠들썩하게 할 정도로 대단한 일었기 때문이다.
대답 대신 입을 꾹 다물자 아드렌 후작이 눈가를 살짝 좁히며 작게 중얼거렸다.
“세 개의 기운이라…….”
작은 중얼거림이 전부였지만 몸을 움찔 떨 정도로 당황한 이레스는 아드렌 후작에게 한 걸음 다가가 멀리 떨어져있는 호위병사에게서 더욱더 멀어졌다.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나?”
오히려 미소를 진하게 만들며 되묻는 아드렌 후작의 모습에 이레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미소가 더욱더 진해졌다.
“그럼 말귀가 좀 통하겠군.”
“통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통해야 합니다.”
무조건 감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왕국이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되어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 기껏 감추기 위해 노력을 하던 자신의 아버지 그레이즈 공작에게 맞아 죽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듣기로는 레이온 왕자에게 검을 가르쳤다고 들었다.”
딱 보아도 귀찮은 것을 부탁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대답을 하는 대신 무의식적으로 입을 꾹 다문 채 바라보자 아드렌 후작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입을 열었고, 그의 입에서 다시 한 번 ‘세 개’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이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 개의…….”
“가르쳐 드렸습니다.”
씨익, 미소를 그린 아드렌 후작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가르쳤지.”
“6개월입니다.”
“그 전의 경지는?”
“……오러 유저.”
“지금의 경지는?”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익스퍼드 중급입니다. 하지만 레이온 왕자님의 실력이 워낙 뛰어…….”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은 아드렌 후작이 의미심장한 미소와 표정을 그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탁 하나만 하지.”
* * *
“잘 부탁드립니다.”
이레스는 자신의 앞에 가검을 든 채로 서 있는 데우스를 빤히 바라보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쪽에는 헥토스 왕가의 사람들과 테라인 사신단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고 한쪽은 왕실에서 일하는 중요 가문의 귀족들, 한쪽에는 헥토스 왕국을 지키는 기사와 장군들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좌에서 우로 이동시키며 주위를 둘러보던 이레스의 시선이 이내 공개 연무장 바로 밑에 자리하고 있는 아드렌 후작에게 고정되었다.
‘이게 무슨…….’
아드렌 후작이 부탁한 것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단 하루라도 상관없으니 데우스 왕자에게 진심으로 검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세 개의 기운을 가지게 된 이유를 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테라인 왕국에 대한 정보를 알려달라는 부탁도 아닌, 간단한 가르침을 내려달라는 부탁이었지만, 이것도 그에게는 무리가 가는 부탁이었다.
헥토스 왕국에서는 검에 재능이 없었던 레이온 왕자를 반년 만에 익스퍼드 중급의 경지로 올려버린 이레스를 테라인 왕국에 나타난 최고의 검술 스승이라는 소문이 나 있었다.
이레스는 실피아 공주와의 관계로 인해 이미 이목이 집중될 대로 된 상태였기에 가능하면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드렌 후작이 그저 데우스 왕자에게 검을 가르치라는 것이 단순히 검을 배우게 하기 위한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부탁을 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었다.
아드렌 후작이 이레스에게 왕자에게 검을 가르치라는 부탁을 한 이유는 데우스 왕자가 테라인 왕국에서 가장 유명해진 이레스에게, 그것도 검의 가문으로 유명한 그레이즈 가문의 사람에게 검을 배울 정도로 아주 친밀한 사이라는 것을 보여주어 귀족파를 선동시키기 위해서였다.
데우스 왕자에게 검을 가르치는 것은 아무도 없을 때 몰래 가르쳐도 되었음에도 공개 연무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을 정도로 소문을 낸 것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내쉬던 이레스가 단념했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데우스를 바라보았다.
“배우신 검법은 역시…….”
“왕가의 검법입니다.”
테라인 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검술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생각에 진지한 목소리와 흥분이 감춰지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하는 데우스의 모습에 이레스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왕가의 검법을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저희 왕가의 검법도 테라인 왕국의 검법처럼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검법이기에 상관이 없습니다.”
왕가의 검법은 공개적인 연무를 통해 백성들에게 왕실의 힘은 약하지 않다. 너희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공개적인 검법과 사람들에게 비밀로 감추고 나라가 위급해졌을 때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숨겨두는 비공개 검법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이레스가 알았다는 듯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 모습을 준비가 마쳤다는 뜻으로 해석한 데우스가 양손으로 검을 쥐며 말했다.
“일단 왕가의 검법을 보여드…….”
“덤비세요.”
“……네?”
“단 하루입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가르치는 것보다 현재의 실력에서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그렇군요.”
가르침을 받을 시간이 오늘밖에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 데우스가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레스는 자신의 손에 쥐여진 가검을 바라보며 또 한 번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덤비세요.”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아드렌 후작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 한 시간이라는 시간을 통해 대충이나마 그의 성격을 파악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부탁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하기 싫어도 제대로 해야 했다.
“옛!”
타악!
대답과 동시에 자세를 잡은 데우스가 땅을 박차며 달려오자 이레스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 아래에서 위로 검을 올려쳤다.
쉬이익!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함께 가검이 휘둘러지자 이레스의 손을 타고 휘둘러진 가검의 속도에 깜짝 놀란 데우스가 반격이나 회피를 하며 접근하는 대신 뒤로 물러났다.
공격 한 번에 뒤로 물러나는 데우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던 이레스는 교육용 대련에서 필수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현재 경지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익스퍼드 초급입니다.”
“아……, 예?”
이레스가 자신도 모르게 당황하여 다시 묻자 레이온은 고개를 살짝 갸웃하다 다시 대답했다.
“익스퍼드 초급입니다.”
경지를 알고 그 경지에 맞는 실력으로 상대해주는 것이 가르침을 통한 교육용 대련이었다. 그렇기에 이레스가 이다음에 할 일은 실력에 맞추어 대련을 해주는 것이었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며 데우스를 바라보다 다시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죄송하지만 현재 나이가.”
“열여섯입니다.”
“미친…….”
천재다.
레이온과 같은 검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왕자였다.
“아니 무슨, 왕자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약이라도 먹나.”
“예?”
작은 중얼거림이었지만 대련이라는 이유로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어서인지 데우스가 반응하자 이레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검을 늘어트렸다.
“아닙니다. 덤비세요.”
“예!”
데우스는 또 한 번 대답을 한 후 몇 초간 뜸을 들이다 돌진했고 이레스는 익스퍼드 초급 경지에 맞춘 실력으로 그를 상대했다.
캉! 캉!
순식간에 수십 번의 부딪침이 일어난 후 데우스는 뒤로 물러나고 이레스는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가검을 가리키며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다.
“왜 왕가의 검법이 존재하는지 아십니까?”
“예?”
“솔직하게 말하면 왕이라는 직위는 나라를 다스리는 직위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만.”
“그럼 왜 왕가의 검법이라는 게 있는지 아십니까?”
데우스가 대답을 하지 않자 이번엔 이레스가 땅을 박차며 돌진했다.
카아앙!
“다른 나라에서 전장에서 싸우는 왕이 있었기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많은 생각을 했는지 몇 번의 부딪침 이후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대답하는 데우스의 모습에 이레스가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죽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죽지 않기 위해서?”
카아앙!
“솔직하게 말하면 다른 귀족들도 가문의 검법이 있으니 귀족들을 다스려야 하는 왕실에서 검법이 존재하지 않으면 얕보일 수도 있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검술 수련을 한다고 해도 얼마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다른 명확한 이유가 있지요. 바로 죽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봐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검술이지요.”
“흐음.”
잘 모르겠다는 듯이 신음을 흘리는 데우스의 모습에 이레스가 이번엔 미소를 그리며 말을 이어갔다.
“성도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무관 귀족들은 전부 다른 지역에서 적들을 막기 위해 떠난 상태이고 성도에는 뛰어난 무관 귀족이 몇 명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왕가입니까?”
지금 하는 이야기가 전부 왕실의 검법에 대한 이야기다보니 추측은 금방 할 수가 있었다.
이레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휘둘렀다.
“정답입니다.”
카아아앙!
커다란 검명과 함께 뒤로 물러난 데우스는 잠시 휴식을 취하려 했지만 귓속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바람소리에 황급히 검을 들 수밖에 없었다.
카앙!
“성도에 문은 몇 개나 있습니까?”
“크윽……. 세 개입니다.”
“그럼 그 세 개의 성문에서 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시작했지만 병사들을 지휘하며 적들을 막아낼 지휘관이 없습니다. 자신들에게 정확한 지휘를 내려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병사들의 사기는 당연히 떨어질 것이고, 승리라는 생각을 하는 대신 패배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됩니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지휘관이 왕가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사기가 올라가는 겁니까?”
“정…….”
콰아아앙!
이번엔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공중에 떠오른 데우스가 바닥을 구른 후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강한 충격에도 검을 놓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며 다음 공격을 대비하는 모습에 이레스는 입가에 그린 미소를 진하게 만들며 말을 끝마쳤다.
“……답입니다. 그렇기에 왕가의 검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지휘관의 경지에 상관없이 왕실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사기가 올라간다는 겁니까?”
“왕실의 사람이 자신들과 함께 전장에 서 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죠. 과연 사기가 안 올라간다고 생각합니까?”
“…….”
“그래서 전장에 한 번 가는 것도 좋습니다. 물론 후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방에서 병사들과 함께 싸우면서요. 이해하셨습니까?”
생각에 잠긴 듯이 자신의 가검을 빤히 바라보던 데우스가 또 한 번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젓자 이레스가 이번엔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시 시작할까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