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52화
무료소설 구름공작: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52화
제1장 오해가 오해를 낳고 (2)
인상을 찌푸리며 작게 중얼거린 이레스가 쪼그려 앉아 복면인을 바라보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좀 착합니다. 그래서 별명이 천사의 아들이죠.”
-아니야!
“……아니야?”
바로 반박하는 실피아의 모습에 이레스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며 묻자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레스의 별명은 미친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통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 복부를 부여잡고 있던 정보원이 실피아를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이레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정령이 거짓말을 못하는 존재라는 것은 어린아이라도 알고 있을 만큼 유명했기에 미친개라는 별명을 어떻게 얻었는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이레스에 대한 정보를 통해 확인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레스가 실피아를 째려보았다.
“내가 그런 말 하지 말랬지.”
-꺄하하하. 미친개! 미친개!
주의를 주었음에도 오히려 그런 자신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웃음을 터트리며 외치는 실피아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쉰 이레스가 다시 정보원을 바라보았다.
“하나만 약속하면 그냥 보내드리죠.”
목소리를 표출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대답은 없었지만 눈빛만으로 그 약속이 뭐냐고 묻는 거 같았다.
“헥토스 왕국을 벗어날 때까지 절대로 귀찮게 하지 마세요. 방금 보셨죠. 제 기감이 무진장 발달한 것을.”
어차피 명령 때문에 지켜본 것이었기에 명령보다 목숨을 더 소중하다고 판단한 정보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레스는 작게 미소를 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갔다.
더 이상 말해봤자 귀찮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실피아와 방으로 돌아와 함께 놀기 시작한 지 10분쯤 흘러 다시 테라스를 바라보았을 때 정보원이 쓰러져 있는 테라스 대신 아무도 자리하지 않은 테라스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더 실력 있는 사람을 보내겠지?”
어차피 돌려보내봤자 다시 올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죽이기도 뭐해서 그런 부탁을 하고 보낸 것일 뿐이지, 그 정보원을 믿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똑똑똑.
다시 헥토스 왕국에 대해 생각을 하며 실피아와 놀고 있을 때, 그의 귓속으로 문을 두들기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크리스입니다.”
“……예?”
이레스는 문 밖에서 들려오는 대답에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레이온 왕자나 아이스 자작 같은 왕실파의 귀족이라면 자신을 만나러 온 이유를 대충이나마 추측할 수 있었지만, 크리스가 자신을 만나러 오니 그 이유를 추측할 수가 없던 것이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자 문 앞에 서 있는 크리스와 그를 호위하는 헥토스 왕국의 병사가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로?”
“잠시 이야기 좀 나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레스의 옆으로 작은 바람이 스쳐 지나가더니 실피아가 크리스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안녕!
“…….”
“……하하하.”
이레스는 잠시 당황하다 얼굴을 부여잡은 채 인사를 하는 실피아와 그런 실피아에게 붙잡힌 크리스를 보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형체를 가지지 않은 정령이기에 크리스의 얼굴에 달라붙는 순간 그의 얼굴을 통과해야 정상이었지만, 그녀가 통과하기 직전 멈춰서 안긴 듯이 그냥 얼굴을 감싼 것이었기 때문에 얼굴을 부여잡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 * *
딸칵.
“그런데 무슨 일로.”
찻잔을 내려놓은 이레스의 질문에 크리스는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
“처음 보지 않습니까. 저희는.”
전생에서는 자신이 먼저 말을 걸었다면 이번 생에서는 크리스가 먼저 말을 걸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미래의 모습에서 아주 작지만 점점 바뀌어가는 현재의 모습에 이레스가 이유를 찾기 위하여 잠시 고민하는 사이, 크리스가 힐끔힐끔 주위를 날아다니는 실피아를 훔쳐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하! 이거였군.’
미래를 알고 있었기에 모든 것을 빠르게 준비하려 했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동생이 있는 자신과는 달리 멕케인 가문의 크리스는 독자였다.
차기 가주라는 직위를 위해 형제를 죽이고 가주의 직위에 오른 멕케인 공작으로서는 귀족파를 다스리고 가문의 안정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다. 때문에 자신이 갑자기 죽어도 빠르게 직위를 넘길 수 있어 자식을 하나밖에 두지 않았다. 그래서 크리스가 온 것이었다.
형제자매가 없었던 크리스에게 마치 여동생 같은 모습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실피아의 모습이 색달랐던 것이었다.
5, 6년 후 만났을 때 크리스는 차기 가주로서 모든 준비를 마쳤기에 실피아를 보여주었을 때에도 정령이라는 생각만 했을 뿐, 어떠한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크리스는 차기 가주로서 가져야 하는 생각과 판단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헥토스 왕국도 마찬가지였다.
2년 후에 일어날 사건을 대비하여 빨리 움직였으니 미래가 바뀐 것이다. 아니 미래가 바뀌기 전에 온 것이었다.
‘큭.’
갑작스레 자신의 앞에서 실피아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크리스의 모습이 신기해 속으로 웃음을 흘린 이레스가 다시 찻잔을 들며 실피아에게 생각을 전하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그녀는 바로 해맑게 웃으며 크리스에게 날아갔다.
-헤헤헤. 오빠!
갑작스러운 외침에 잠시 당황하는 듯이 실피아를 바라보던 크리스였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진한 미소를 그렸다.
그 미소를 확인한 그녀는 해맑은 웃음과 함께 테이블 위에 놓인 그의 손등 위에 올라탔다.
-심심해!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자신의 감정을 외치는 그녀의 모습에 크리스가 자연스럽게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심심하다고 외친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자신에게 놀아달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실피아가 좋아하는 것도 모르고 어린아이들과 놀아본 적도 없었던 크리스였기에 이레스를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고개만 끄덕이면 알아서 놀 거예요.”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크리스는 이레스의 말을 따라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피아가 환한 미소와 함께 하늘 위로 떠올라 그의 주변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바람을 조종했다.
쉬이익!
-실피아, 잘하지?
“응? 응.”
이레스는 바람의 정령이 바람을 조종하며 자랑스럽게 묻는 실피아와 그런 그녀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 크리스를 보며 또 한 번 미소를 그렸다.
당황하는 일이 많은 날인 만큼 이상하리만치 웃을 일도 많은 날이었다.
전생에서와는 다른 그의 접근이 처음에는 혼란을 주었지만 오히려 이쪽이 더 좋다고 생각되었다.
이레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잠시 산책 좀 하고 올 테니 실피아 좀 부탁할게요.”
“……이 시간에 말입니까?”
실피아를 바라보던 크리스가 고개를 돌리며 묻자 이레스는 대답대신 미소를 그리며 방을 나왔다.
여동생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실피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은 방해꾼밖에 더 되지 않기 때문에 둘을 남겨두려는 것이었다.
끼익.
“어디 가십니까?”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헥토스 왕국의 병사가 질문을 던졌다.
이레스는 산책을 하고 싶다고 말한 뒤 자신에게 말을 건 병사와 함께 왕성을 나와 정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늦은 저녁이다 보니 어두워진 정원을 둘러보던 이레스가 미소를 그리며 병사에게 말했다.
“어둡네요.”
병사가 무슨 당연한 이야기를 하느냐는 듯이 이레스를 바라보자 그는 입가에 그린 미소를 더욱더 진하게 만들며 정원을 둘러보았다.
어둡다고는 하지만 왕성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과 기사들이 들고 있는 횃불과 구름 안에 숨어들지 않은 두 개의 달로 인해 주위가 보일 정도는 되었다.
“흠…….”
병사를 뒤에 단 채로 계속 걸음을 옮겨 정원을 구경하던 이레스는 호수의 앞에 도착하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나만 질문해도 될까요?”
“중요한 것은 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병사 한 사람 한 사람도 헥토스 왕국에 충성을 다하고 있다는 듯한 단호한 대답에 이레스가 작게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헥토스 왕국에 초인은 몇 분이 계시죠?”
초인이란 7서클 경지에 오른 마법사나 마스터 경지에 오른 무인으로 인간으로서 지니고 있는 능력을 초월한 사람들을 통틀어 말하는 칭호였다.
사실상 특급기밀에 해당하나, 이미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의 경우 숨길 이유도 없었다.
“현재 왕실에서 사신단 호위를 맡고 계시는 헨들릭스 공작님과 북방 경계선에서 순찰을 돌고 계시는 7서클 마법사 아드렌 후작님이 계십니다.”
헨들릭스 공작.
헥토스 왕국의 유일한 소드마스터로서 팔십을 넘긴 나이로도 수많은 경험을 겪어 젊은 마스터들보다 더 강하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 무인이었다.
아드렌 후작.
7서클 익스퍼드 경지에 오른 마법사로서 세상에 여덟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대마법사라는 칭호를 가진 이였다.
“흐음.”
작게 신음을 흘리던 이레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한그루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럼 저분은 누구시죠?”
* * *
“……아. 젠장.”
테라인의 설명을 듣고 다시 영지로 돌아가던 그레이즈 공작은 마차의 창문을 통해 경치를 구경하다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마부에게 소리쳤다.
“왕실로 돌려라.”
“알겠습니다.”
까먹고 있었다. 아니,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말이 맞았다.
“들키겠군.”
소드마스터라 불리는 초인은 오러블레이드라는 오러소드의 한 단계 높은 경지의 오러를 사용할 수 있어 초인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뛰어난 기감과 마나에 대한 높은 이해력, 검이란 무엇인지, 힘이란 무엇인지 깨달아 그 누구보다 힘을 사용할 줄 알기에 초인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이레스가 직접 알려주었기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었는데 현재 자신의 아들은 익스퍼드 상급의 경지로서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마스터 경지의 무인이라면 단번에 그의 능력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낮은 경지였다.
문제는 그것이 마나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마나와는 또 다른 기운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레이즈 공작은 이레스가 흙의 정령을 소환하기 시작한 이후 자신의 아들을 볼 때마다 신기하게 여겼다.
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바람의 정령력과 흙의 정령력, 그리고 마나가 한데 어울려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바람의 정령력이 흙의 정령력보다 더욱더 많아 헷갈렸지만 집중하고 보면 알 수 있었다.
자신도 알 수 있다.
과연 다른 마스터가 모를 리 없었으며 또 다른 초인 마나에 대한 이해력과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7서클 경지에 오른 대마법사라면 자신이 알아차리는 시간보다 더 빠른 시간 안에 이레스가 가진 기운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젠장.”
그레이즈 공작은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밖에 만난 적이 없었지만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헥토스 왕국을 대표하는 헨들릭스 공작과는 또 다른 초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거대한 나무 뒤에서 나타난 사람은 지팡이를 짚고 있는 늙은 노인이었다.
“재밌는 놈이군.”
병사의 말대로라면 아드렌 후작은 헥토스 왕국의 북방 경계선에서 순찰을 돌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자신을 긴장시킬 사람이 나타났으니 또 다른 초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을 빤히 바라보던 이레스가 고개를 돌려 누구냐는 표정으로 병사를 바라볼 때 그가 경악한 듯이 입을 떡 벌리고 있다 황급히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헤, 헥토스 왕국의 대마법사님을 뵙습니다!”
“그딴 칭호는 귀찮을 뿐이다. 일어나라.”
“예, 옛!”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한 노인의 모습에 이번엔 이레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방금 들어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노인이 누구인지 단번에 파악되었다.
“아드렌 후작님……이시군요.”
북방 경계선에 있어야 할 아드렌 후작이었다.
“그래, 세 가지 기운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놈아.”
“하하하…….”
하나의 실수.
초인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그 하나의 실수로 인해 모든 계획이 망가질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레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