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공작 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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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구름공작 51화
제1장 오해가 오해를 낳고 (1)
“혹시 내 딸을 본 적이 있는가?”
이레스는 헥토스 왕의 질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다른 왕국의 일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그였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2년 뒤 헥토스 왕국을 멸망시킬 장본인이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현재의 왕도 아니고, 차기 왕으로 지명된 헥토스 왕국의 장남 데우스 왕자도 아닌, 귀족파가 밀고 있다는 차남이라는 것에 당황했다.
그가 전생에서 기억하고 있는 최후의 헥토스 왕국의 왕이자, 연합군에 의해 처형을 당했던 헥토스 왕이었기 때문이다.
귀족파가 밀고 있는 왕자가 왕위에 올랐다는 것은 반역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이레스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헥토스 왕의 입을 통해 실피아 공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달칵.
식기를 천천히 내려놓은 헥토스 왕이 양손으로 턱을 받치며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이레스가 자연스럽게 실피아 공주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그녀는 그의 시선이 창피한 것인지,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헥토스 왕의 모습이 창피한 것인지 변명은커녕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며 변명을 하지 않는 모습이 마치 오해의 소지를 만들어주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여기서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레스도 헥토스 왕을 따라 식기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레이온이 재미있다는 듯이 아무도 모르게 미소를 그리며 그를 바라보았고, 크리스는 식사를 계속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레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처음 보는 사이입니다.”
“실피아라는 이름의 정령을 소환할 수 있겠는가.”
실피아를 소환하면 두 개의 결론이 나올 수가 있었다.
오해의 소지가 더욱더 커지거나 오해가 풀리거나.
하지만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헥토스 왕국의 사람들이 자신의 여동생을 본 적이 없었기에 오해의 소지가 커질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실피아를 소환하지 않아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이웃왕국이라고 해도 동맹국의 왕이기에 이것도 하나의 왕의 명으로 분류가 된다. 즉, 거절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왕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바람의 정령인 실피아 대신 흙의 정령인 노엔을 소환하여 거짓말을 하기에는 실피아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식당에 자리하고 있었다.
“……실피아.”
쉬이익.
잠시 뜸을 들이던 이레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식당 안으로 작은 바람과 함께 실피아가 나타났다.
-안녕?
소환된 실피아는 바로 주위를 둘러보다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이레스를 발견하고는 밝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는 그녀의 인사를 웃으며 받아줄 수가 없었다.
그녀를 향해 식당 안에 모든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헥토스 왕뿐만이 아니라 그의 양옆에 앉아 있는 두 왕비도 신기하다는 듯이 실피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이레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보던 실피아는 그의 생각을 읽었는지 해맑게 웃으며 몸을 돌려 헥토스 왕과 그의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
“…….”
-안녕?
헥토스 왕이 인사를 받아주는 대신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실피아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에게 가까이 날아가 다시 해맑게 웃었다.
-안녕?
“……안녕하신가, 아가씨.”
-헤헤헤, 아가씨래. 또 아가씨래.
아가씨라는 단어가 너무 부끄러웠는지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실피아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그리던 헥토스 왕은 자신이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이레스를 바라보았다.
“똑같군.”
“그렇게 똑같다고 생각은…….”
“정말 똑같아.”
다시 한 번 말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실피아 공주와 엮이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레스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여동생의 모습으로 태어났습니다, 실피아는.”
“그런가? 똑같은데?”
절대로 믿지 않는 듯이 반문을 하는 헥토스 왕의 눈에는 불신이 담겨 있었고 그의 목소리는 아주 냉정했다.
입만 벙긋거리며 헥토스 왕을 바라보던 이레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레이온에게 옮겨졌다.
분명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이내 레이온이 엘리스와 만난 적도 없거니와 인사도 나눈 적이 없다는 것이 기억났다.
다시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크리스를 바라보았지만 당연히 귀족파의 수장의 아들인 그가 왕권파의 수장의 딸을 만날 이유가 없었으니 그도 엘리스를 본 적이 없어 자신을 도울 수가 없었다.
이레스가 다시 헥토스 왕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부담을 주었다.
코가 꿰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밭을 갈기 위해 소에게 재갈이라도 물릴 듯이 바라보는 헥토스 왕의 모습에 이레스가 황급히 실피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식사 자리에는 자신과 레이온, 그리고 크리스밖에 없었기에 현재 사신단에서 엘리스의 얼굴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데미안은 손님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믿어야 할 사람은 원인제공을 한 실피아가 전부였다.
새로운 장소로 인해 식당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쉼 없이 입을 재잘거리던 실피아는 사람들이 반응하지도 않고 말도 걸지 않자 재미가 없어졌는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돌아오고 있었다.
“실피아.”
-응?
“예?”
동시에 대답하는 정령 실피아와 실피아 공주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쉰 이레스는 정령 실피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실피아는 누구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지?”
-엘리스!
다행히 원하는 대답이 나왔다.
이레스가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듯이 당당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돌려 헥토스 왕을 바라보았다.
“아시다시피 정령은 거짓말을 못 합니다.”
-응! 거짓말 못 해!
큰 소리로 따라하는 실피아를 바라보던 헥토스 왕은 이내 작은 미소를 그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아가씨는 엘리스라는 아가씨와 실피아 공주 중에 누구를 더 닮은 거 같은가?”
-음…….
잠시 생각을 하는 듯이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고 실피아 공주를 바라보던 정령 실피아가 해맑게 웃으며 실피아 공주를 향해 날아가 그녀의 머리 위에 앉았다.
-실피아 언니!
“큭!”
모두의 시선이 이레스에게 고정되었다.
레이온은 아무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터트렸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단 하나밖에 없는 아군이라고 생각했는데 거짓말을 못하니 그것이 약점으로 돌아와버렸다.
하지만 헥토스 왕의 질문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어째서 바람의 정령에게 실피아라는 이름을 붙여줬지?”
이름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다.
이레스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실피아라는 이름은 과거의 존재하던 크로노스 제…….”
“크로노스 제국에서 명성을 떨치던 여왕의 이름이지.”
“……이름입니다.”
똑같이 실피아라는 이름에 대해 설명을 하자 헥토스 왕은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그를 빤히 쳐다보았고, 이레스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제는 어떠한 말을 내뱉어도 변명으로 판단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 * *
아주 힘들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식사와 다시 한 번 제대로 이야기를 하자는 헥토스 왕의 말을 끝으로 자신이 배정된 방으로 돌아온 이레스는 바로 잠을 청하는 대신 테라스로 나가 바람을 쐬기 시작했다.
“힘들구만.”
테라인 왕국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왕국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이레스였다. 그래서 헥토스 왕국에서 반역이 일어났다는 것도 몰랐고, 실피아라는 이름을 가진 공주가 존재하다는 것도 몰랐다.
그것도 엘리스와 닮은 미녀였다는 것도 몰랐다.
“하아! 실피아.”
작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자 그의 앞으로 작은 바람과 함께 푸른색 드레스를 입은 실피아가 나타났다.
-안녕?
“……쩝, 안녕?”
너무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실피아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 이레스가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인사를 받아주자 그녀는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레스, 왜 그래?
“그냥 집에 가고 싶네.”
-나도! 헬버튼 할아버지 보고 싶어!
이레스가 그녀의 머리를 작게 쓰다듬고 다시 테라스 위에서 경치를 구경하기 시작할 때, 혼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도 재미가 없어졌는지 실피아가 다시 그의 얼굴 앞으로 날아오르며 외쳤다.
-이레스! 노엔! 노엔!
“응?”
-노엔! 노엔!
이레스가 큰 소리로 외치는 실피아를 빤히 바라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경비를 서고 있는 병사들과 기사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테라스를 나와 방으로 돌아온 이레스가 바로 노엔을 소환했다.
“노엔.”
쿠구궁!
작은 지진과 함께 바닥에서 노엔이 소환되자 실피아가 환한 미소와 함께 노엔을 바라보았다.
-노엔!
-아……. 으으.
무언가 두려운 것을 보았다는 듯이 해맑게 웃는 실피아의 모습에 뒤로 한걸음 물러서는 순간, 그녀가 노엔의 팔을 붙잡고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꺄하하하.
-으으으으.
“크큭.”
작게 미소를 그리며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정령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던 이레스는 갑자기 한숨을 내쉬더니 침대 위에 상체를 눕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떡하나…….”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웃왕국, 동맹국에서 일어난 세세한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남의 나라 일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일단 막아야겠지?”
무력을 통해 왕위에 오른 자는 무력으로 인해 쓰러진다.
그 결과가 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질지, 또 다른 반역일지 알 수는 없었지만 역사가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지금의 왕과 계약을 한 후에 헥토스 왕국에서 일어날 반역을 미리 차단할 방법을 찾는다면 테라인 왕국은 미스릴을 위해 전쟁을 하는 대신 정기적으로 싼 값에 구입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지금의 왕은 적어도 욕심으로 인해 왕국을 멸망시킬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흐음.”
생각을 하는 듯이 작게 신음을 흘리던 이레스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워 테라스로 향하는 문을 바라보다 인상을 찌푸렸다.
“노엔.”
-응?
“돌아가줄래?”
아무리 실피아에게 끌려 다닌다고 해도 며칠 동안 중간계로 내려오지 못해서인지 노엔이 아쉬운 표정을 짓자 이레스가 작은 미소와 함께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 나중에 오래 소환해줄게.”
-……약속.
잠시 뜸을 들이다 말하는 노엔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이레스는 미소를 진하게 만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의 망설임을 끝으로 노엔이 정령계로 돌아가자 실피아에게 자신에게 다가오라는 생각을 전하며 테라스로 걸음을 옮겼다.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테라스로 향하는 문을 통과하는 순간 이레스는 검지만 펼친 채 하늘 위를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실피아가 회오리바람을 만들고 화살 모양으로 바꾸어 쏘아 보냈다.
쉬이익!
퍼어억!
“누가 훔쳐보는 것은 질색이거든요.”
그저 검은 구름과 두 개의 밝은 달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허공에서 둔탁한 소음이 들리더니 누군가가 테라스로 떨어졌다.
어둠에 동화되기 위한 듯이 온몸을 검은색으로 물들인 전신 가죽갑옷에 면을 뒤집어쓴 사내가 복부를 부여잡은 채 고통을 완화시키고 있었다.
“어쌔신은 아닐 테고…… 스파이인가?”
자신의 왕국에서 다른 왕국의 귀족, 그것도 공작가의 자제가 죽는다면 그것보다 더 귀찮은 일은 없었다.
그 죽음을 통하여 왕국과 왕국 간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른 왕국에서 사신이 오면 그 나라는 어느 때보다 더 철저한 경비와 호위가 만들어졌다.
테라인 왕국과 헥토스 왕국 간의 전쟁이 일어나도록 다른 나라에서 보낸 암살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전무했다.
마스터 경지의 검사인 헨들릭스 공작이 현재 왕성에 있는 이상, 왕성을 침입할 수 있는 암살자는 그렇게 많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레스는 자신의 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암살자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정보원이라고 의심을 했다.
아무리 이웃왕국, 동맹국이라고 해도 언제 동맹이 파기될지도 모르고 언제 사람이 바뀌어 공격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타 왕국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왕실인지…… 귀족인지가 문제인데.”
왕실파이면 어차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되기 때문에 그냥 보내도 상관없지만 반역을 일으킬 귀족파의 정보원이라면…….
이레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아! 그냥 보내야 되잖아.”
어느 소속이던 그냥 보내야 했다.
지금 당장 자신의 앞에 쓰러진 정보원을 죽이면 동료가 죽었다는 이유로 복수를 할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헥토스 왕국에서 자신을 경계를 해야 할 대상으로 지정할 것이라는 것이었다.